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신청
“나간다고? 전국대회에?”
“와. 너니까 걱정은 안 되긴 하지만, 6개월이나 시간을 뺏길 텐데 괜찮겠어?”
막상 수현이 전국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박선화와 차윤희가 동요했다.
“아니다, 나가. 나가라, 한수현! 너 전국대회에 정신 빠질 동안 신의 손 자리, 내가 좀 차지해보자.”
그러나 걱정도 잠시. 차윤희가 먼저 야망을 드러냈고,
“응원도 갈 수 있나? 잠깐만. 이번에 심사위원 누가 나오지? 내가 좀 알아볼까?”
박선화는 인맥을 총동원해 대회를 탈탈 털 기세로 덤벼들었다.
수군수군.
수현의 참가 소식을 들은 다른 애들도 엉덩이를 들썩였다.
“들었어? 이번 전국대회, 한수현이 나간다는데?”
“진짜? 그 대회, 몇 년 전부턴 좀 시들하지 않았나?”
“확실히 작년은 별로였지. 김예나 선배가 나가서 상 탔을 정도잖아.”
“김예나면 겨우 10등 안에 들던 선배잖아. 와, 그럼 대회 수준 진짜 떨어진 건데.”
“근데 올해는 규모가 더 커지기도 했고, 뭔가 있다는 말도 있어. 한수현도 앞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거 아닐까?”
“흠. 그런가.”
“……나도 나가볼까?”
“진짜?”
“좀 궁금하긴 하네. 나도 해볼까?”
한참 상승세를 달리다 최근 몇 년 시들해진 전국대회.
그러나 분위기는 급반전되고 있었다.
바쁘게 달려온 수현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나 세현예고 내 수현의 영향력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런 수현이 전국대회에 참가한단 소식이 세현예고 미술과를 들썩이게 한 거다.
***
“음. 70명이면 거의 절반이잖아요?”
“그러게요. 이게 무슨 일이지?”
미술과 교무실.
2학년 담당 실기 선생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국 청소년 미술대전.
지원 자격은 중고생 모두였으나 가장 주축이 되는 건 고등학생, 그중에서도 2학년이다.
고3은 미대 입시에 전력을 다할 시기라 참여하는 일이 거의 없고, 1학년은 입학 후 여러 행사로 바빠 6개월이란 긴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
특히 세현예고는 미술전시회를 1학년 최고의 행사로 기획해 준비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게 애초에 어렵기도 했다.
어쨌거나 주로 2학년들이 출전해온 이 대회는 최근 몇 년 선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게 사실이었다.
대회 규정이 워낙 깐깐하고 과정이 힘든 데다가, 수상을 한다 해도 가시적인 보상이랄 게 크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 전국대회는 달랐다.
문화체육부 주관에 JK그룹이 후원사로 붙다니.
식품 브랜드로 시작해 14개 계열사로 확장한 대기업 JK. 최근엔 문화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단 소문이 돌았는데, 그 사업 중 하나로 전국대회를 보고 있는 걸까.
소식이 빠른 선생들 몇몇은 JK그룹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현예고 2학년 애들이 절반 이상 전국대회 참가 신청을 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얘들이 어디 보통 애들인가. 대부분 짱짱한 집안의 자제들. 분명 집에서 어떤 고급 정보를 들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전국대회에 몰려드는 거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리 흘러갔고, 그렇다면 선생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전담반을 또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미술 전시회 때처럼 말이죠?”
“2학년은 전공 수업도 빡빡한 편이라 대회 준비에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주말이라도 특별 수업을 개설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하긴, 이왕 이렇게 일이 커진 다음에야 모른 척할 수 없죠.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고.”
“과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선생들이 새로 부임한 미술과장 조재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형욱이 쫓겨나다시피 세현예고에서 자취를 감춘 후, 한동안 공석이던 자리. 교장은 신학기에 맞춰 잡음 없고, 실력 있는 새 인사를 등용해 미술과장 자리에 앉혔다.
30대 중반, 그러나 신인작가협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조재환이 그 주인공이었다.
“전국 청소년 미술대전. 아주 유서깊은 대회죠. 게다가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대로 이번 대회는 예년과는 다릅니다. 대상 상금이 커지고, 수상작들을 모아 국립미술관에 전시하겠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죠. 다들 아시다시피 청소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전시장이 아니니까요.”
조재환이 차분하고 조리있게 의견을 정리했다.
“특별전담반, 당연히 개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전국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이 지도를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조재환의 시선이 몇 선생에게 머물렀다.
부임한 지 고작 한 달이 되지 않았으나, 선생들과 학생들에 대한 파악이 모두 끝난 조재환.
그는 교사 개개인의 특성과 이력의 세세한 부분들을 머리에 담고 있었고, 전국대회 특별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이미 적임자를 그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작년 미술 전시회에서 수현을 지도했던 회화과 김윤수와 수현의 빛나는 재능에 눈독을 들이며 진로지도를 했던 디자인과 김여진 선생이 있었다.
***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겠으나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직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가 극히 드문 시절인 1996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질 수 있었을까.
학부모들의 입방아 때문인지, 아이들이 친구를 통해,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통해 말한 게 전해진 것인지.
세현예고 미술과 학생들이 이번 전국대회에 대거 참여할 것이고, 교내에 특별전담반이 운영될 거란 소식이 다른 예고에도 속속 전해졌다.
그리고 중앙예고에 비상 회의가 소집됐다.
“다들 이렇게 손 놓고 있을 겁니까?”
박상수 교장이 각 과 실기 과장 선생들을 불러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번 17기 신입생들, 성적들 보고도 느낀 바가 없어요?”
불같은 분노는 다시 미술과 과장을 향해 정확하게 꽂혔다.
만년 2등 중앙예고.
개교 이래 한 번도 세현예고를 앞지른 적 없는 중앙예고는 어떻게 해서라도 세현예고를 한 번 이겨보는 게 소원이자 목표였다.
세현예고 학생들보다 중앙예고 학생들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 세현예고 애들보다 더 많은 학생을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
가장 큰 목표는 이렇듯 입시 성적이었으나, 쉬울 수가 없었다.
애초에 중앙예고에 지원하는 애들의 자질이 세현예고보다 떨어진 탓이 컸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면 예고 미술과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학생 중 전국 1등부터 138등까지가 세현예고에 진학하면, 139등부터 258등까지 120명이 중앙예고 미술과에 진학하는 식이기 때문이었다.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 꼬리는 되지 말란 고사성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학생들은 세현예고라는 타이틀에 목숨이라도 걸었는지, 불나방처럼 그쪽으로만 달려들었다.
중앙예고는 장학제도, 해외 유명 교수진 특강, 특별 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강수를 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니 세현예고와의 간극을 줄일 수 없었고.
너무도 불리한 출발선. 입시에서 극적인 역전을 이뤄내기엔 3년이란 기간은 너무나 짧았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비단 미술과뿐 아니라, 음악과, 무영과, 연영과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해서 중앙예고는 몇 해 전부터 입시 전략을 바꿨다.
국내 입시보다는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시키는 데 특화된 예고란 타이틀을 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
그리고 그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전국대회 타이틀이었다.
그러니 이번 대회에 세현예고가 전력을 다한단 소식은 중앙예고를 긴장으로 몰아가기 충분했다.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런 배경과 초조할 수밖에 없는 박상수 교장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중앙예고 미술과 강 과장이 싱긋,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현예고 미술과 최형욱 과장이 작년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요?”
박 교장이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최형욱 선생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긴 했으나, 입시 전략만큼은 탁월한 사람이었죠.”
강 과장이 웬일로 최형욱을 높이 평가하며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부끄럽게도 매년 대학 입시에서 우리 중앙예고가 세현예고에 밀렸던 건, 최형욱 선생의 감과 정보력, 그리고 판단력이 우수한 부분도 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강 과장이 교장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비리 문제가 수면에 떠오른 바람에 세현예고는 최형욱 선생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현예고는 그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고, 우리 중앙예고엔 절호의 기회가 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최 과장 후임으로 온 미술과 과장이 조재환이라고, 30대 중반에 경험이 일천한 새파란 애송이거든요.”
“30대 중반이요?”
강 과장의 말에 박 교장이 귀가 번쩍 뜨였다.
강성실 중앙예고 미술과 과장.
40대 중반의 나이로 입시 경력만 20년에 달하는 베테랑.
그는 세현예고 최형욱 선생의 대학 선배기도 했다. 후배인 최형욱과 입시 경쟁에서 붙고 매년 패배할 때마다 엄청난 압박을 느껴왔겠지만 결국 버텨내 자리를 지켰으니, 진정한 승자는 그인지도 몰랐다.
어찌 됐건, 제법 판세를 읽을 줄 아는 강 과장의 말에 따르면 세현예고의 이번 움직임은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란 것이었다.
“나이가 좀 어려 보이긴 하지만 아무한테나 미술과 과장 자리를 줬겠습니까?”
박 교장은 그래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으나,
“바로 그 점이 세현예고와 중앙예고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강 과장은 껄껄 웃으며 크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세현예고엔 혁신이니, 뭐니, 불투명했던 관행들을 엎겠다는 바람이 제법 세게 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교장도 앗 뜨거워, 하며 그에 맞는 인사를 뽑은 걸로 보이고요. 하지만, 투명하게 실력으로만 경쟁하겠다. 이런 신념이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건지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빙빙 돌려 말했으나 뜻을 전달하기는 충분했다.
강 과장은 박 교장과 선생들과 차분히 시선을 마주치며 다음 말로 쐐기를 박았다.
“입시든 대회든 우승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입시전담반이요? 백날 만들어 운영해보라 해보세요. 제대로 된 전략 없이 죽어라 그림이나 그리라 가르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습니까.”
자신만만한 강 과장의 얼굴.
박 교장은 그런 그의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 능구렁이가 어쩐 일이지?’
이사장한테 깨지고 재단에 욕먹고 돌아와 아무리 분풀이를 해도 입에 본드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가타부타 말이 없던 인간이었다.
가늘고 길게, 자리보전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인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사 소극적이었는데, 오늘의 강 과장은 평소와 달랐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전략이라니, 세현예고의 아성을 무너뜨릴 절묘한 수를 이미 떠올리기라도 한 건가?
박 교장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작전이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