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첫 시험(2)
“시험은 잘 봤어?”
김민준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뭐야?”
“와, 강아지다.”
부쩍 친근하게 다가오는 김민준은 충분히 수상했으나, 귀여운 강아지가 경계심을 사르르 녹였다.
수현의 친구들이 수현과 김민준을 번갈아 보다가 강아지를 보며 하트 눈을 했다.
“한번 만져봐도 돼?”
“너무 귀엽다.”
“안아볼래?”
처음 보는 애들에게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강아지를 안겨주는 김민준.
겉으로 보기엔 그저 친절하고 상냥한 고등학생 남자아이였다.
“너희 반엔 깨진 석고상이 시험 주제로 나왔다며?”
그리고 김민준은 잠자코 서 있는 수현에게 한 번 더 말을 걸어왔다.
“어. 맞아.”
“우리 학교 애들 몇 명이 그 반에서 시험 봤거든. 얘기해주더라고.”
“그랬구나.”
짧은 대답으로 거리를 두는 수현을 가만히 보던 김민준이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아. 그리고 애들이 네 그림, 엄청 칭찬하더라.”
“어?”
“세현예고 신의 손답게, 끝내주는 걸 그렸다고. 진짜 대단했다고 하던데? 나도 궁금하더라니까? 아쉬웠어. 같은 반이었으면 네 그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
“아, 내가 또 기분을 상하게 했나?”
별 대답이 없자 김민준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너, 되게 사교적인 애구나 싶어서.”
“어? 내가? 하하. 그런가.”
김민준이 다시 해맑게 웃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근데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야. 너니까 그랬지.”
“…….”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했어. 네 그림을 보고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거든. 내 또래에 이런 애가 있다니, 어떤 애인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직접 보고 싶더라고. 그러니까 이건 좋아하는 가수를 만난 팬이 느끼는 기쁨? 그런 비슷한 감정이라고 봐주면 될 거야.”
“오.”
“와…….”
듣기도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김민준에게 수현의 친구들이 탄성인지 야유인지 모를 감탄사를 던졌다.
“어쨌든 담에 보면 또 인사하자.”
그리고 김민준은 담백하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는 수현이 오히려 냉정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기, 강아지도 데려가야지.”
“아, 맞다. 하하. 이리 줘.”
“근데 이 강아지, 네가 키우는 거야? 대회까지 데려온 거고?”
강아지로 호감을 키운 애들은 김민준에게 몇 마디 말을 걸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냐. 나도 오늘 처음 봤어.”
“어? 길 잃은 강아지야?”
“그건 아니고.”
잠시 머뭇거리던 김민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시험장엔 얘가 과제로 나왔거든.”
“어?”
“강아지가?”
“응. 너무 예쁘지 않아? 시험 끝나고 감독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주인이 사정이 생겨서 못 키우게 된 애래. 그래서 내가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봤지.”
“와, 그랬구나.”
“에구, 불쌍해라.”
“이름도 지었어. 뭉치야, 뭉치.”
“뭉치?”
“응. 사고뭉치. 우리 시험장에서 오늘 얘가 사고를 엄청 쳤거든. 하하. 그래도 되게 재밌었어. 어쨌든 난 이만 가볼게. 반가웠어, 얘들아.”
“아, 그래. 잘 가.”
“안녕.”
여기저기 바쁘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김민준.
“와, 중앙예고에도 착한 애는 있었네.”
“그러게. 애 성격 되게 괜찮아 보인다. 남자애가 사교적이고.”
“어. 얼굴도 되게 잘생기지 않았어? 인기 많겠는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김민준. 김민준이라고 한 것 같은데?”
“오. 김민준. 기억해둬야겠다.”
짧은 시간, 김민준은 애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지만,
“하…….”
수현의 입에서 짤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 반은 꽤 난이도 있는 주제가 나왔구나.’
김민준이 안고 있던 하얀 강아지는 한눈에도 활달해 보였다. 묶어두거나 가둔 게 아니라면 시험을 치르는 내내 이리저리 시험장 안을 쏘다녔을 테고.
‘그런 강아지를 그렸단 말이지.’
보통 애들이라면 스케치를 하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아까 52반 문은 내내 굳게 닫혀있었어.’
시험 종료 10분 전부터 복도는 꽤 복작거렸다.
먼저 그림을 제출한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계단을 향했고, 복도에 서서 시험 내용을 두고 떠드는 애들도 많았다.
그런데, 수현이 뒤돌아 나올 때까지 52반 시험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 명도 먼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넘겼는데, 마지막 1분까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시험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겠다 싶었다.
다른 반에 비해 어려운 주제가 나온 영향이었겠지.
그리고,
“난 망했어.”
이번엔 울상을 한 애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이야기가 수현의 귀에 꽂혔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이건 대놓고 떨어지라는 거잖아. 절벽에서 미는 거랑 다를 게 뭐야.”
“맞아. 발발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어떻게 그리라고.”
“하, 그래도 막판에 30분쯤은 잠들었잖아.”
“나도 그때야 부랴부랴 그리긴 했어. 근데 맘에 안 들어.”
“맞아. 스케치가 늦으니까, 완성도는 떨어지고 망했어. 그냥 망했다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김민준과 같은 시험장에서 강아지란 주제를 받은 아이들로 보였다.
“하, 그래도 잘 그린 애도 있었잖아.”
“그러니까. 결국에 내 실력이 부족했던 거겠지. 차이를 확실히 느끼고 가네. 아, 싫다. 진짜.”
“에이, 아직 결과가 나온 건 아니잖아. 난이도에 따라 심사 기준도 달라지겠지. 너무 실망하지 말자. 설마 1차를 통과 못 하겠어?”
“하아. 몰라. 너, 그 애 그림 봤어? 다 같이 망했으면 몰라도, 그렇게 잘 그린 게 섞여 있으면 변명할 거리가 없어지는 거라고.”
“흐잉. 맞아. 걔 엄청 잘 그리긴 하더라. 중앙예고 애였지?”
그리고, 투덜대는 애들의 얘기로 짐작해볼 때, 극악의 난이도로 치러진 52반 시험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애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 김민준이겠지.’
수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주제가 발표되고 시험장은 혼란스러웠을 거다.
스케치부터 난항이니 멘탈이 흔들려 시험을 망친 애들도 많았을 거고.
마지막 1분까지 최선을 다했어도 부족했겠지. 종료 후엔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을 거다. 그리고 김민준, 눈치 빠른 그 애는 충분히 그 분위기를 감지했을 거고.
하지만 모른 척하며 즐겼겠지.
다른 애들이 절망하는 것도, 자기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모른 척.
그저 순진한 얼굴로 감독관에게 다가가 강아지 안부를 물으며 입양을 하겠다는 둥, 딴 세상에 속한 애처럼 굴었을 거다.
이 아수라장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나는 평범한 너희와는 달리 이 시험이 무척 즐거웠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강아지를 데리고 여기저기 쏘다녔을 거다.
누군가 웬 강아지인지 물으면 아까처럼 활짝 웃으며 내가 받은 시험 주제였다고, 꽤 즐거운 그리기였다고 망설이지 않고 답했을 거고.
어쩌면 과한 상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삼는다면 결론은 하나.
‘예나 지금이나 관종이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운도 좋았네.’였다.
김민준은 과거에도 유독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을 잘 그렸다.
짧은 시간 안에 대상의 특징을 캐치해 그려내는 능력이 뛰어났던 건데, 동체 시력이 좋은 덕이 컸다.
순간에 집중해 이미지를 잘 담아내니 크로키 실력은 발군이었고, 동아리 활동에도 그런 특징으로 눈길을 끌곤 했다.
오늘 시험장에서도 그런 장점이 제대로 발동했을 테니 화제가 됐다고 해도 놀라울 게 없었다.
‘나도 궁금하네. 어떤 그림을 그려냈을지.’
수현이 알기로 김민준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급성장했다.
재능과 다소 위험해 보이는 능력들.
사람들은 겉보기에 화려한 면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수현이 경계하고 높이 평가하는 건 끈기와 노력이었다.
“아쉬웠어. 같은 반이었으면 네 그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수현은 자신이 그림을 궁금해하던 김민준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내내 겸손한 말투로 수현을 칭찬했지만, 김민준 역시 벌써 상당한 실력을 키운 느낌이었다.
‘어쨌든 2차에선 만날 수밖에 없겠네.’
다음 시험엔 그 애의 말대로 같은 시험장에서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김민준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도 궁금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남의 것을 가져가는 버릇이 벌써 시작됐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과거처럼 남을 이용해 성장할 애라면 싹을 잘라내야겠지.’
멀리 세현예고 스쿨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수현은 그쯤에서 생각을 멈추고 가볍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재밌군요.”
“기대 이상이에요.”
“이러니 이 괴팍한 방식을 버릴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주말이 지난 월요일 오후.
전국대회 심사위원단 20명이 3천 장의 종이를 쫙 깔아둔 체육관을 흐뭇하게 거닐며 감상을 쏟아냈다.
“그냥 미술대회는 흔하죠. 이 정도 난관과 고난이 있어야 사람들이 기억하고 권위 있는 대회다, 치켜세워 주는 겁니다.”
항의가 거칠긴 했으나, 1차 시험에 다양한 주제를 출제한 보람이 있다며 몇몇 심사위원들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어중이떠중이들을 떨구는 데도 이만한 방법이 없어요. 획일화된 주제를 던져줬으면 암기한 걸 그대로 그려낸 애들이 많았을 겁니다. 우리 대회가 그런 애들을 뽑는 대회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런 좋은 정체성을 잘 지켜가야 해요. 그래야 나중 해외에서도 유명한 대회로 성장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죠.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 나중엔 글로벌한 대회로까지 성장시켜야죠!”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심사위원들은 길쭉한 막대기로 그림들을 휙휙 밀어냈다.
탈락이 확실한 그림들은 왼편으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그림들은 오른편으로.
“와, 이건 고등학생이 그렸다고 보기 어려운데요?”
“그러게요. 아주 프로 작가처럼 그려놨네요. 색깔이 확실해요.”
“이야, 이 그림 선 좀 보세요. 에너지가 팍팍 느껴지네요.”
“어휴, 저건 좀 치웁시다. 어디 기본도 안 된 애들까지 몰려와서는.”
감탄하다가 혀를 차다가, 심사위원들은 빠르게 감평을 이어갔다.
얼핏 보면 비슷한 의견을 내며 사이좋게 심사하는 듯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우린 저쪽으로 갑시다.”
“흠흠. 그래요.”
아까부터 큰 소리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황 화백과 이하 세력들이 불편한 듯 남 화백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양반, 아직도 자기가 협회장인 줄 아나 봅니다.”
남 화백의 측근이 퉁명스럽게 투덜거렸다.
“아주 끈질겨요. 끈질겨. 노인네, 그만하면 적당히 놓을 줄도 알아야지.”
“하하. 목소리들 낮춰요. 벌써부터 힘 뺄 필요는 없으니.”
“아니, 남 화백님. 지금 태평하게 지켜볼 때가 아닙니다. 저쪽 움직임이 아주 수상하다니까요?”
“그런 거면 더 그냥 두세요.”
남 화백이 서늘하게 웃었다.
“정황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묵히고 영글게 뒀다가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하긴 그렇죠.”
“하하. 지금은 일부터 합시다. 이번 대회, 꽤 재밌어 보이지 않습니까?”
남 화백이 측근들을 독려하며 심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3주 후, 1차 합격자가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