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원로들의 밤(1)
“오셨습니까!”
“이리로 앉으세요. 자리 비워뒀습니다.”
“하하. 여긴 너무 집중되는 자리 아닙니까. 아무 데나 앉으면 뭐 어떻다고.”
“에이, 그럴 수 있나요. 앉으세요. 음식들이 꽤 괜찮습니다.”
며칠 후, 저녁.
서울 그랜드 호텔 2층 한정식 레스토랑.
안쪽에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장에 전국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20명의 원로가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방은 길쭉한 10인용 테이블이 두 개 마주 보고 놓여있었는데, 마치 오늘 모인 이들의 관계도를 알고 배치해둔 것 같기도 했다.
심사위원단은 자연스럽게 두 패로 갈려 테이블에 착석했다.
한쪽은 실세 중의 실세, 황정식 화백의 라인이었고, 반대편은 떠오르는 신흥 강자, 남성남 화백의 무리였다.
“아, 그나저나 이번 신인 작가전 전시가 말썽이었다죠?”
황 화백 측근 중 한 명이 누가 봐도 의도적인 화제를 들으란 듯이 던졌다.
“어휴, 말도 마세요. 어디서 그런 천박한 인사들이 나왔는지.”
그리고 짠 듯이 말을 받아주는 또 다른 측근.
“이래서 출신이 중요하고, 어떻게 작품을 해왔는지도 중요한 겁니다.”
“맞습니다. 한국미술계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지. 낙선전이니 뭐니,어디서 보란 듯이 판을 벌입니까? 이거 참 낯이 뜨거워서. 게다가 시기도 신인 작가전이랑 딱 맞췄다면서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목소리를 높이며 한 번씩 남 화백 무리에 시선을 주는 황 화백 쪽 사람들.
자신들이 주축이 돼 진행한 신인 작가전과 그 결과에 불만을 가진 젊은 작가들을 비판하는 얘기였다.
하필 여기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불만을 품고 낙선전을 연 작가 몇몇이 남 화백 쪽 라인인 걸 알기 때문이었고.
“아, 남 화백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그러자 남 화백 쪽 측근들도 질세라 신인 작가전 얘기를 끄집어냈다.
“이번 신인 작가전, 대놓고 뒷돈을 받았다죠? 돈 주고 사는 상이었다고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맞습니다. 공정한 심사에 앞장서야 할 이사장이 제일 앞장서서 뇌물을 받아먹었다니, 분위기를 더 설명할 필요도 없죠.”
“흠흠. 그래도 확실치 않은 얘긴 조심해야지 않겠습니까?”
남 화백 쪽 측근들도 쿵짝이 잘 맞았다. 몇몇이 대회의 비리를 언급하자 다른 한 명이 근거가 정확한지 물었고, 기다렸다는 듯 최측근 하나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에이, 엊그제 대한일보에 기사도 났는데 못 보셨습니까? 뇌물을 받은 결정적인 증거인 녹취록이 있다고 하던데요? 분기탱천한 작가들이 우르르, 주최 측에 항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저런. 그러니 대한민국 미술계가 썩었단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 미술계가 정말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쯧쯧.”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은 분명 아니었다. 상대방이 듣길 바라며 까 내리는 말들.
“…….”
“…….”
다만 양측은 씩씩대며 노려볼 뿐 결정적인 선은 넘지 않았다.
이런 갈등이야 신인 작가전 이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고, 골이 깊어진 지도 한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판의 주도권을 잡는 게 중요한 날. 잽을 날리는 정도로 충분했다.
“크흠.”
어색한 침묵 사이로, 황 화백의 헛기침이 끼어들었다.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
“아이쿠, 벌써 7시 반입니다.”
“흐음. 그래요?”
황 화백이 굳게 닫힌 연회장 문으로 시선을 옮기자, 다른 심사위원들도 그대로 따라 문 쪽을 바라봤다.
황 화백 라인과 남 화백 라인.
이들이 굳이 불편한 상대를 감수하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이유.
오늘의 핵심이자 주인공인 인물이 아직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길이 막히나 봅니다. 퇴근 시간 아닙니까.”
“워낙에 바쁘신 분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격려차 들른다고 하셨으니 얼굴은 뵐 수 있지 않을까요?”
한가락씩 한다는 심사위원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이는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야 호텔에 닿았다.
이번 전국대회 후원사로 나선 JK그룹 노상만 회장의 장자, JK식품 노영국 사장이었다.
“하하! 이거 손님을 불러놓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들 식사는 입에 좀 맞으십니까?”
벌컥.
연회장 문이 열리더니 노영국이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40대 중반의 젊은 사장.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 부리부리한 눈에 큼지막한 코. 두껍고 단단한 상체는 흡사 운동선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구, 이런. 술이 부족한가 보군요. 황 실장. 여기 그 술 좀 내오지.”
“네네,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테이블을 쓱 훑어보고는 곧바로 값비싼 술을 내오라 지시하는 노영국. 그가 원로들에게 다가가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어휴, 이게 얼마 만입니까?”
“와, 황 화백님은 더 젊어지셨는데요? 야, 이 티셔츠는 어디셔 사셨습니까? 패션 센스가 정말 엄청나십니다.”
“아이고, 강 화백님. 지난 전시 정말 잘 봤습니다.”
표정이며 말투만 봐도 능구렁이를 100마리쯤은 품은 듯 보였다.
실제로 노영국은 수에 밝고 실리를 추구하며, 명분에 매이거나 체면을 중시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판단이 빠르고 성과를 중요하게 여겨 통이 큰 듯 보이나, 실패 앞에선 누구보다 가차 없었고.
‘사람 참 호방하군.’
‘예의 바르고 시원시원하고.’
‘이런 인사와는 좋은 연을 맺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자리에 함께한 원로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노영국을 보며 활짝 웃었다.
식품 사업으로 시작한 JK는 80년대 후반 탄력을 받더니 90년에 들어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 노영국이 어찌 보면 시시할 전국 청소년 미술대전에 관심을 보이고 전폭적인 지지에 나서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심사위원단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우리 노 사장님도 자리에 앉으셔서 같이 드시지요.”
“아이고, 호텔 음식이라 그런가. 입에서 살살 녹더라고요.”
“호텔도 어디 그냥 호텔입니까? 대한민국 최고, 일류호텔 아닙니까. 5성급 호텔.”
“하하. 그나저나 큰일 하시느라 바쁘신 분이, 이런 작은 대회에 신경을 써주시고, 격려차 식사 자리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초승달 눈을 만들며 듣기 좋은 소리를 떠드느라 바쁜 원로 화가들.
노영국이 그런 작가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눈길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대회라니요. 우리 JK가 주목했으니, 이젠 가장 중요한 대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노영국의 말에 무조건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원로들.
노영국이 상석에 앉아 원로들에게도 앉으란 눈짓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사이 새로 나온 고급 청주가 테이블에 넉넉하게 올랐다.
“아시다시피, 올해 전국대회엔 우리 JK 그룹이 후원사로 나서게 됐습니다. 물론 그간, 메세나를 통해 훌륭한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특정 대회에 그룹 이름을 걸고 나선 건 처음이지요.”
원로들이 고장 난 인형처럼 다시 고개를 반복해 끄덕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JK 그룹은 올해부터 문화예술 사업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전국대회 후원은 큰 사업의 한 부분이지만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 될 테고요.”
이번엔 대부분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
JK그룹이 식품과 마트, 유통, 호텔과 관광으로 영역을 확장한 후, 영화 산업과 미술 산업. 특히 경매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만큼 아는 이가 드물었다.
카더라하는 소문도 허술한 몇 줄 정도였고, 내막을 조금이나마 아는 이는 황 화백과 남 화백 정도였다.
“JK그룹은 국내 화단에만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아시아 시장이고 결국 글로벌 마켓을 염두에 둘 거니까요. 그러나 이 원대한 꿈은 한낱 장사꾼인 제힘으론 이룰 수 없습니다.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아트마켓을 제패하려면 여기 계신 훌륭한 화백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노영국이 원로들 한명 한명과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몇몇 원로들은 감격한 얼굴로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후발 주자에겐 모름지기 스타가 필요한 법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훌륭한 기성작가님들이 여럿 계시지만, 이번 일관 성격이 맞지 않아요.”
“…….”
“…….”
숨소리도 내지 않고 노영국의 말에 집중하는 원로들. 노영국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슈를 만들고 시선을 붙잡으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적인 신인 작가가 필요합니다. 우리 JK가 전국대회에 큰 자금을 투자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건 그런 신인 작가의 탄생을 기대하기 때문이고요.”
웅성웅성,
그제야 노영국의 심중을 제대로 이해한 원로들이 바쁘게 사견을 주고받았다.
JK그룹이 후원사로 나선 배경이 이렇게나 엄청난 것이었다니.
이건 단순한 후원이 아니었다.
스타가 될 재목을 발굴해 향후 JK 그룹이 경매시장에 나서게 될 때, 간판으로 삼겠다는 계획.
‘과연 노 사장이구나.’
남 화백과 황 화백의 머리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빠르고 바쁘게 돌아갔다.
사실 JK 그룹이 경매시장에 눈독을 들인다는 건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부동산이나 금보다 그림에 비용을 투자하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은 이미 오래된 관행이었으니까.
주목할 점은 JK그룹이 꽤나 큰 규모로 이 사업을 벌일 분위기란 점이었고, 그렇다면 스타트를 끊을 첫 주자가 어느 라인에서 나오느냐였다.
그에 따라 누가 강자가 되고 누가 도태될지 정해질 테니까.
그리고 남 화백보다 좀 더 노련한 황 화백은 이 순간 비실비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 동물 같은 직감으로 이 자리를 지켜왔지.’
황 화백은 스스로가 대견해 미칠 지경이었다.
JK그룹이 전국 대회 후원사로 참여하며 대회 규모가 부쩍 커졌을 때, 황 화백은 그걸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적어도 누군가는 예년과는 다른 성과를 원할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중앙예고 강성실 미술과장을 불러다가 쓸만한 학생을 찾아보라 은밀히 일러두었다.
본래 이런 일은 자신의 애제자였던 세현예고 최형욱이 적격이었지만, 헛발질로 고꾸라진 지금은 쓸모가 없었다.
어쨌거나 강성실은 이름대로 성실하게 괜찮은 애를 준비시켜뒀다고 달려왔고, 이대로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자신이 다시 한국 화단을 휘어잡는 실세가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독립예술가협회 협회 놈들. 감히 나를 물 먹였지?’
황 화백이 최근 있었던 불쾌한 몇몇 사건을 떠올렸다.
어쩌면 조만간 은원도 확실히 갚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타요? 안 그래도 이번 대회에 눈에 띄는 학생이 있더군요.”
황 화백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노영국 사장을 바라보았다.
연회장 안 모두의 시선이 황 화백의 입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