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77)
77화. 2차 관문(1)
드르륵.
스티브가 아뜰리에 문을 열었다.
“어머, 너무 시끄러웠구나?”
강유진 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문을 건너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정리될 테니까 들어가 있어.”
“흐음. 도움이 필요하신 거면 제가 얼마든지…….”
185cm의 장신. 체격도 제법 듬직한 외국인 남자가 능숙한 한국말을 쓰며 위압적인 표정을 지어 보이자 방문객들은 무척 당황한 숨소리를 냈다.
“흠흠. 이거 아무도 없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아하하. 여기 입주 화가들이 작업 중이었나 보군요.”
“그러면 그 아이도 여기 있는 거…….”
“민 화백님!”
그러면서도 방문객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뜰리에 이곳저곳을 넘겨다보자 강유진 관장이 날카롭게 일침했다.
“어쨌거나 더 나눌 이야긴 없을 것 같습니다. 이편, 저편 끌려다니며 휘둘릴 생각도 없고요. 이만 돌아가세요.”
“하아. 강 관장. 너무 화를 내진 말고, 그럼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그래요. 아직 시간은 있으니.”
“끄응.”
그리고 방문객들은 몇 마디를 더 툴툴대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하나둘 물러났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다음, 수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을 내다봤다.
“아이고. 수현이, 너도 있었구나.”
강유진 관장이 팔자 눈썹을 만들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다…… 들었니?”
“여기가 방음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진 않아요.”
“그래, 저 할배들 가는 귀가 먹었는지 목소리도 커서 말이야.”
피식. 강유진이 웃더니 스티브와 수현에게로 다가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깐 차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할까?”
***
강유진 관장의 집무실.
“안 그래도 이번 전국대회 규모가 커진 걸 두고 이런저런 추측들이 많았는데, JK가 나선 사정이 있던 모양이야.”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내어준 강유진이 전국대회의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JK그룹이 후원사로 나서며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점이나, JK가 향후 경매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라는 이야기.
이미 오유나를 통해 들었던 부분이라 수현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한 점은.
“그래서 아까 온 분들은 누구신데요?”
좀 전 강유진을 설득하려 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남자들의 정체였다.
“음. 한국미술계의 원로들이라고 해야 하나? 다들 한가락씩 하는 분들이야. 교수에 협회장에, 한국 화단을 상대하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분들이지.”
강유진이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며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이번 전국대회 심사위원들이기도 해.”
“네?”
“허어?”
강유진의 말에 수현과 스티브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아까…….”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렇게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 수 있단 말이, 대회 참가자인 자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구나 싶었던 거다.
“어휴. 여튼 이번 대회가 아주 복잡하게 된 것 같은데, 자세히 알아봐야 좋을 일은 아니고.”
강유진의 표정이 복잡했다.
하기는 고작 열여덟인 애들을 앉혀놓고 업계의 썩은 부분을 얘기해야 한다는 게 스스로도 기막히고 여러 생각이 들겠다 싶긴 했다.
“걱정마세요.”
수현이 씩 웃어 보였다.
“대회 규모가 커진 만큼 주목도도 높아졌을 건데,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지야 않겠죠. 그리고 제대로 된 그림이 평가받지 못할 대회라면, 제 쪽에서도 사절이에요.”
“그래. 그거 정말 좋은 자세다, 수현아.”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수현을 보며 강유진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희가 아직은 고등학생이지만, 성인이 되면 좋든 싫든 마주할 일이긴 해. 이렇게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쁠 건 없단 생각도 들고. 하아. 답답하고 열받지만 어쩌겠니. 우리가 세상을 다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숨을 내쉰 강유진이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도 진짜는 가려지지 않는 법이니까. 수현아. 흔들리지 말고 네 그림을 그려. 내가 해줄 얘긴 지금으로선 이 정도가 전부네.”
“네. 이해해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대회 전날 밤이 천천히 흘러갔다.
***
“한수현 파이팅!”
다음 날 아침.
수현은 강유진 관장의 배려로 편안하게 대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그래, 도시락이랑 간식이랑 물이랑 다 챙겼지?”
“네, 여기요.”
엄마처럼 챙겨주는 강유진 관장을 향해 수현이 활짝 웃어 보이며 챙겨 받은 꾸러미들을 들어 보였다.
2차 시험은 1차보다도 한참 길었다.
시험이 치러지는 건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려 10시간.
그보다 2시간 앞선 8시가 집결 시간이니 총 12시간을 시험장에서 보내야 했다. 간식이며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고.
“그래.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 하자!”
“네. 걱정 마세요. 끝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마치면 저녁 8시고, 정리하고 나오면 어영부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일 텐데?”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강유진. 수현이 얼른 대답을 정정했다.
“아, 시간이 너무 늦으면 다음 날 아침에 연락…….”
“얘가, 얘가.”
당황하는 수현의 말을 강유진 관장이 뚝 끊었다.
“여기서 혼자 그 짐을 다 들고 가겠다고?”
“…네?”
“지금 내려준 이 장소로 다시 와. 시간 맞춰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케이?”
“아, 네…….”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어야지. 확인 안 했으면 큰일 날뻔했네.”
강유진 관장이 안쓰럽단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독립적인 건 좋은데, 가끔은 지나치게 독립적인. 그래서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는 수현이 안 그래도 한 번씩 마음이 쓰였는데, 오늘도 이런 모습을 보니 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커온 걸까 새삼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그래. 잘 다녀와.”
꾸벅. 인사를 마친 수현이 뒤돌아 시험이 치러질 건물을 올려다봤다.
경기도 외곽, JK 그룹 중앙 연수원이 오늘 전국대회 본선이 치러질 장소였다.
“한수현! 왔어!”
연수원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도착한 세현예고 애들이 수현을 반겼다.
학교에서 내어준 스쿨버스를 타고 온 애들이 반, 수현처럼 자가용을 타고 온 애들이 절반쯤이었다.
“같이 왔음 좋았을 건데.”
차윤희가 아쉽단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오랜만에 아버지랑 데이트한 거 아니었어? 내가 거기 끼면 쓰나.”
수현이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차윤희가 질린단 얼굴을 했다.
“아니, 우리 아빠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내가 상을 타오건 1등을 하건, 아. 1등은 한 적 없나? 어쨌든 별로 관심도 안 뒀는데 이번엔 어쩐 일로 아는 척을 하잖아.”
차윤희의 아빠인 차수혁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 중 한 명이었다.
자기 작품 활동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 차윤희는 아빠를 그저 멀리서 동경하듯 지켜보기만 할 때가 많았고.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 뭔가 자신 있게 치고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드물게 아버지의 관심을 받아 기쁜 얼굴이었다.
“잘됐네. 결과도 좋게 내보자. 작가님 깜짝 놀라시게.”
“그래야지. 헤헷. 아, 우리 저쪽으로 가야 해.”
그리고 차윤희를 비롯해 일찍 도착한 애들이 미리 탐색해뒀는지 1층 로비에 붙은 종이를 가리켰다.
“저기 종이에 그려진 화살표 보이지? 저 화살표를 따라가면 중앙 강당이래. 그리로 오라더라고.”
“아, 투표 장소가 거기야?”
“응. 그렇대. 얼른 가자. 9시까진 투표 마쳐야 한대. 그래야 개표하고 발표한다고.”
2차 주제를 선정하기 위한 투표.
1차 통과자 300명이 전원 참석해야 하니 복잡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주최 측에선 혼잡하지 않게 준비를 잘해두었다.
꽤 큰 강당에 6개의 기표소를 만들어두고, 50명씩 나누어 줄을 서게 해 밀리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와. 저기 좀 봐.”
그리고 강당 입구엔 대형 현수막이 몇 개 프린트되어 벽에 걸려있었다.
2차 시험 응시자들이 미리 받았던 100개의 오브제와 그림들이었다.
“숨 막혀.”
“그러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진다.”
“하아.”
참가자들은 벽에 걸린 100개의 오브제 중 두 개를 골라 투표를 진행해야 했다.
대부분 마음에 결정을 내린 상태로 시험장에 왔겠지만 막상 오브제들을 보니 긴장되고 부담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야, 그거 들었어?”
“진짜?”
“말도 안 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헐. 그럼 우리 뭘 찍어야 해?”
“그걸 막 상의해도 되는 거야?”
“왜 안 돼? 다들 하는데, 우리만 당할 순 없잖아.”
웅성웅성.
한쪽에 몰린 애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더니 그 얘기가 파도를 타고 점점 참가자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얘기인즉슨 중앙예고 애들이 투표를 조작하기 위해 타 학교 학생들과 담합을 했고, 그 결과 무조건 ‘나무’에 표를 던져 시험 주제로 선택되게 작전을 짜두었다는 것.
“쟤들 2주 동안 나무만 미친 듯이 팠대.”
“종류별로 다 그려봤다는데?”
“그러다가 안 나오면 어쩌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자기들이 몰표를 주고, 또 모르는 애들 중에서도 나무를 뽑을 애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 이걸 가만히 둬야 해? 시작부터 불공평한 거잖아.”
“몰라. 어쨌든 나무는 절대 뽑지 마. 죽 쒀서 개 줄 일 있어?”
“그러니까. 나무는 안 돼. 절대 뽑지 말자.”
“하이 씨. 불안해. 쟤들 그래서 몇 명이나 되는데? 이거 뒤집을 수 있을까?”
흥분한 애들이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왜 하필, 투표 직전 기표소 앞에서 터져 나온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강당에 줄을 선 애들 대부분이 몹시 불안해하며 동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뜬금없이 나무라니, 뭐지?’
수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투표를 조작할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라 놀랍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건.
‘담합이며 조작을 하려면 좀 더 어렵고 차별화될 소재를 고르는 게 낫지 않나?’
나무는 100개의 오브제 중 아주 평범한 축에 속했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애들이라면 질리게 그려봤을 소재.
그러니 나무가 시험 주제로 나온다고 해도 누구에게도 해가 될 것도 득이 될 것도 없어 보였다.
‘흐음…….’
어쨌거나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흔들리기 쉬운 타이밍.
수현은 혼란에 빠진 아이들을 잠시 지켜보다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곧 투표가 시작됐고, 수현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두 개의 오브제에 도장을 찍은 후, 투표용지를 차곡차곡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9시 30분.
모두를 경악하게 한 아이러니한 결과가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