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91)
91화. 포상(1)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지른 세단이 건물 뒤편 주차장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탁.
운전석에서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고, 동시에 보조석 문이 열리며 수행비서가 내려 각을 잡았다.
“이쪽입니다.”
수행비서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남자를 안내했다.
“흐음. 학교가 예쁘게 생겼네.”
뒷좌석에서 내린 남자가 세현예고를 한번 휙 둘러보며 감상을 전했다. 갑작스럽게 학교를 방문한 남자는 JK식품 노영국 사장이었다.
“아이고,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노영국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양진우 교장과 이사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이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장입니다.”
양진우 교장이 바지춤에 손을 쓱쓱 닦고는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노영국이 호쾌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하하. 저도 영광입니다.”
“저도, 너무나 영광입니다! 평소 멀리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김광진 이사장입니다.”
이사장도 탈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노영국이 이사장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시죠. 아이고, 어떻게 저희 학교까지 이렇게 귀한 걸음을…….”
양진우가 잰걸음으로 안내에 나섰고, 그 뒤를 이사장과 노영국, 수행비서가 따랐다.
잠시 후.
“우리 세현에요?”
“정말입니까?”
눈이 왕방울만 해진 양진우 교장과 이사장이 어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물론 적절한 자격요건을 갖춘 학생을 대상으로 할 겁니다.”
“아, 그야 물론이지요. 그러니까 세현재단에 지원을 해주신다는 거지요? 저희는 그걸로 장학제도를 만들고요.”
꿀꺽.
양진우와 이사장의 목울대가 동시에 움직였다.
오늘 아침, 노영국이 직접 세현예고를 방문한단 연락을 받았을 때, 둘은 긴장과 동시에 기대에 부풀었다.
전국대회 수상자를 배출한 건에 대한 축하라면, 전화로도 충분했을 거다.
그런데 굳이 학교에 방문하겠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놓쳐선 안 될 기회란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설 지경이었다.
JK그룹의 실세, 내부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뉴스에 조금만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든 노영국이 장차 노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란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 만날 기회조차 없는 황금 인맥.
안면만 익혀놔도 그게 어디냐 싶었는데, 노영국이 한 발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매년 억 단위 예산을 세현 재단에 지원하고 그 외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다니.
물론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출해야 할 장학제도의 요건이 까다롭고, 옥석을 가려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으나 그건 나중에 따져봐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꽃밭에 양진우와 이사장이 정신을 못 차렸다.
“준비 기간이 필요할 거라, 아마도 적용은 내년부터가 될 것 같군요.”
“아, 아. 물론이죠. 벌써 10월이고 올해는 다 간 거 아닙니까.”
“그럼 내년 고3에 올라가는 학생들부터…….”
거기까지 떠들던 양진우 교장과 이사장이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하. 그러니까 아무래도 첫 수혜자는 미술과 한수현 학생이 되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전국대회 대상 수상자니, 자격요건도 충분하고.”
슬슬 운을 떼며 눈치를 살피는 두 사람. 노영국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역시 한수현을 겨냥한 포상인 게 분명했다.
확신에 찬 둘은 한 번 더 한수현을 칭찬하는 동시에 노영국을 향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하하! 한수현 학생이 교내에서만 으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전국대회 1등이라니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학생도 뛰어나지만, 그런 학생을 발굴한 이번 대회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 대회를 후원한 우리 JK그룹은 또 얼마나 훌륭하고요.”
“하기는 예로부터 재력과 권력이 있는 뛰어난 분들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죠.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거장이 탄생할 수 있던 것도 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런 기업의 사회 공헌 정신! 노블레스오블리주! 참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가진 게 있다고 다 베풀며 사는 건 아니니까요. 암요, 훌륭하지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낯 뜨거운 칭찬이 퍼부어졌지만 노영국은 특유의 느물거리는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차를 비운 노영국은 잠시 후,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바쁘실 텐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그러셔야죠.”
“하하. 큰일 하시는 분인데 저희가 마냥 붙잡고 있을 순 없죠.”
구르라면 구르기라도 할 기세로 몸을 낮추는 양진우 교장과 이사장. 그런 둘에게 노영국이 마침 생각났단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가기 전에 한수현 학생을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주인공 얼굴을 한번 봤으면 하는데요.”
***
드르륵.
실기실 문을 열자 중년의 남성과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현이 몇 걸음 다가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수현이라고 합니다.”
“응. 수현 학생, 반가워요. 난 노영국이라고 해.”
노영국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쪽으로 앉지. 불편할까 봐 실기실에서 보자고 했어.”
“네…….”
수현이 미리 놓인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두 남자와 마주 봐야 하는 상황은 몹시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것이었으나, 양진우 교장이 신신당부하기도 했고 후원사인 JK그룹에서 자신을 왜 만나러 온 건지 궁금하기도 하던 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지?”
“네?”
그런데, 노영국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그 긴장된 분위기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림을 참 좋아하거든. 좋은 그림은 수집도 많이 하고. 취미로 한참 배운 적도 있어. 어쨌든 그래서 그림을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하거든.”
“아, 네…….”
“도무지 고등학생 솜씨라고 볼 수 없겠던데? 아니지, 어지간한 신인을 가져다 대도 수현 학생 그림이 훨씬 좋더라고. 가능성 있어.”
“네?”
“화가로 대성할 가능성!”
“아, 감사합니다.”
이런 류의 칭찬은 받아본 일이 없어 수현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노영국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지 이후로도 한참을 수현의 그림에 대해 칭찬하고 자신이 받은 감상을 전했다.
작가의 의도에 대해 넘겨짚었던 부분이라든가 사소한 디테일이나 작업 방식,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같은 질문 공세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흐흠. 그랬구나.”
그렇게 어느 정도 호기심을 풀어낸 노영국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흡사 스타와의 팬미팅 같은 분위기기도 했다.
“JK에선 문화예술 사업에 관심이 커. 음, 수현 학생은 아직 어려서 이런 얘긴 잘 모르겠지만, 그래. 쉽게 말해 미술시장을 키우고 활성화하는 게 우리의 목표거든. 그러려면 스타 작가가 필요하고.”
지그시 수현을 바라보던 노영국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JK가 한수현 학생에게 투자할 생각이야.”
“투자요?”
“내가 가능성을 봤거든. 수년 안에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해.”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일선화랑의 지원을 받고 있어요.”
몰아붙이는 노영국의 말에 수현은 자신이 일선의 지원을 받고 있단 말부터 꺼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강유진 관장과 일선화랑에 입은 은혜를 저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거다.
“어? 하하! 으하하하!”
그런데 노영국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
“아, 역시 아직 학생이기도 하고. 하하! 어쨌든 수현 학생이 어떤 성정을 가진 사람인지 알겠네, 알겠어.”
이유는 모르겠으나 노영국에 이어 그의 옆에 앉은 수행비서까지 빙그레 웃는 걸 보면 잘못된 대답은 아닌 듯했다.
“이건 양다리 같은 게 아니야.”
“네?”
“지조를 지키고 의리를 지키고 그럴 문제가 아니란 거지. 그래. 다다익선! 후원은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거야. 일선화랑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과 우리 JK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영역이 다르기도 하고 말이야.”
“네…….”
수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제안이니 구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어쨌거나 일선화랑의 지원과는 별개로 후원을 해준다는 얘기였고,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먼저 이번 대회 시상식에 이어 수상작들 전시회가 12월쯤 있을 거고, 곧바로 뭔가 하면 좋겠지만 수현 학생이 내년엔 고3이라 중요한 시기지?”
“……?”
무슨 얘기를 또 꺼내려고 중요한 고3 시기를 배려하겠단 말을 하는 걸까. 수현이 궁금한 얼굴이 되자 노영국이 수행비서가 건네준 서류를 쓱 넘겨보고 말을 이었다.
“그럼 98년으로 하지.”
“네? 뭘요?”
“재수를 할 리는 없을 거고, 98년이면 수현 학생이 대학 새내기일 거잖아? 스무 살이 주는 상징성도 있고 딱 좋겠어. 그때 첫 개인전을 하도록 준비하자고.”
“……개인전이요?”
“너무 촉박한가? 흐음. 이번 대회에서 보니 손이 제법 빠르던데. 뭐 고2, 고3 내내 입시 미술에만 매진할 것 같지도 않고. 그동안 일선화랑에서 그린 그림도 있을 테니, 아. 이 부분은 일선화랑 쪽이랑도 조율을 해야겠네. 실장님. 그쪽은 알아서 해주시죠.”
“네, 연락해보겠습니다.”
수현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사천리로 2년 뒤의 계획이 잡히고 있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싫거나 꺼려지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스무 살에 개인전이라니. 그것도 자비를 들이는 전시회가 아니라 JK와 일선화랑의 후원을 토대로 한 전시. 유례없는 이례적인 전시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국내 일정은 일선화랑과 조율해서 구체화되겠지만, 다른 건 지금 얘기해줄 수 있어. 그 개인전은 국내뿐 아니라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유럽에까지 건너가게 될 거야.”
“네?”
수현이 깜짝 놀라 소리 지르듯 대답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해외에서 전시를 여는 일은 극히 드물 때였다.
개인전으로도 놀랄 지경인데 아시아와 유럽 전시라니. 쿵쿵.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하! 여태 한 번도 놀라는 기색이 없더니, 이제야 제대로 된 반응을 한번 하네.”
싱글벙글 짓궂은 미소를 짓는 노영국. 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제 그림을 제대로 다 보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개인전에 해외 전시라니…….”
“아까 내가 말했지? 이래 봬도 그림에 꽤 조예가 깊다고 말이야. 물론 한수현 학생이 기대에서 벗어나 불성실하다거나 천재지변으로 그림을 못 그리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으로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어.”
“…….”
천재지변. 그 말을 듣자 수현의 머리에 떠오르는 걱정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내년에 터지게 될 1997년 외환위기.
한국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며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된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줄줄이 도산하고 한참이나 경기가 어려워지고…… 물론 JK는 그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은 몇 기업에 속했다. 오히려 드라마 수출로 한류 열풍을 일으켜 달러를 벌어들였으니까.
어쨌거나 그 시기, 예술 시장 역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갈 전시회가 가능할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가져도 되는 건가?’
안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제안.
그러니 한편, 부담을 덜고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왕 생각난 거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까운 이들이 그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자신이 도울 일이 없을까, 수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왜, 자신 없어?”
그런 수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노영국이 재촉하듯 물었고.
“아뇨, 감사합니다.”
다시 차분해진 수현이 싱긋 웃으며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국대회 시상식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