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수학여행(1)
“이게 정말이에요?”
눈이 휘둥그레진 수현이 되물었다.
“백현대, 한국대, 세인대, 국내 탑5 안에 드는 미대 이름이 다 들어있는데요?”
윤 실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마음 편하게 작업에 열중하라는 배려로 생각하면 됩니다. 어쨌든 서류는 차근차근 검토해보고 연락해줘요. 지원금이나 혜택들은 계약서에 날인하는 대로 바로 적용될 거고, 아. 수현 학생이 아직 미성년자라 법정대리인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것도 시기를 정해 따로 알려줄게요.”
윤 실장은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주의사항을 일러주고는 깔끔하게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났고, 수현도 얼떨떨한 기분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모든 환경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었다.
당장 공모전 상금 천만 원이 이달 말에 주어질 참이었다.
내년부터 일선화랑의 후원과 별개로 교내 장학금이 지급될 예정이었고, 세현예고 졸업 후엔 그게 JK 산하 재단 장학금으로 대체될 거라 했다.
그리고 98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전시가 약속됐다. 이후 2년에 한 번 개인전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과 마케팅을 지원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대학 입시 특전에, 입학 후 작업과 주거를 할 수 있는 주택을 임대 해준다고 했고.
‘꿈인가?’
‘이게 정말, 진짜야?’
돌아가는 길, 수현은 차창을 멍하니 내다보며 아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가족들은 먼저 집으로 갔고, 수상자와 친구들이 조촐한 파티를 열기 위해 일선화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강유진 관장의 배려로 12인승 밴에 친구들과 올라탔고, 수상의 흥분으로 아까부터 차 안은 시끌벅적 떠들썩했는데, 애들의 얘기가 하나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한수현, 그래서 넌 뭔데?”
아까부터 반복해 물었는지 박선화가 토끼 눈을 하며 수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어? 뭐가?”
“먹고 싶은 거. 지금 배달시킬 거거든. 피자랑 치킨은 시켰고, 떡볶이는 잠깐 들러서 사 가려고. 다른 거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 아이스크림 살까?”
“어, 아이스크림 좋네.”
“오케이! 그럼 아이스크림까지. 아 탕수육 먹고 싶은 사람! 우리 중국집에도 배달시킬까?”
까르르. 애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싱긋 웃어 보인 수현이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이 주어진 현재.
수현은 더욱 분발해야겠지만, 당분간 이렇게 찾아오는 잠처럼 달콤한 휴식을 누려볼 생각이었다.
***
“일어나!”
다음 날 아침.
박선화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수현을 흔들어 깨웠다.
“아으. 왜. 오늘 토요일인데.”
일선화랑에서 파티를 열고 애들과 수다를 떨다가 자리에 누운 게 12시.
꿈도 꾸지 않고 깊이 든 잠이 어찌나 달던지 수현은 자꾸만 더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휘릭!
박선화가 거침없이 수현의 이불을 걷어냈다.
“아, 일어나라고!”
“왜에!”
“약속했잖아! 오늘!”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간고사도 시상식도 끝나, 이제 곧 10월 말.
2학년의 절반 이상을 투자한 전국대회가 마무리된 후, 엄청난 포상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피날레를 장식할만한 특별한 포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수학여행.
고교생활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학여행이 바로 다음 주였다.
“아, 우리 서둘러야 해! 오늘 옷도 맞추고 반지도 해야 하고!”
“반지? 우리 반지 해?”
수현이 부스스 일어나며 멍하니 물었다.
“뭐야, 어제 약속했잖아. 너랑 나랑 차윤희랑 스티브까지 다 같이 하기로.”
“그거 독수리 오형제 같다고, 이왕 그럴 거면 한 명 더 들어와서 다섯 명이 만들어지면 하자고 말했던 거 같은데…….”
“아, 몰라! 여튼 일어나! 빨리 씻고 나가자. 전국대회 땜에 여름방학에 놀기로 했던 것도 다 취소하고 한참 못 놀았잖아. 나 진짜 엄청 오래 기다렸다고!”
박선화의 성화에 수현이 결국 침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대회를 준비하는 것보다 몇 배로 바빠진 것 같은 며칠이 후루룩 지나갔다.
주말엔 아이들에게 끌려가 우정 반지를 맞추고, 커플티 같은 우정 티셔츠를 사고, 여행에 필요한 소품이며 준비물 같은 것들을 쇼핑했다.
그걸로도 충분히 질렸는데 월요일이 되자 박선화와 차윤희의 호들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저절로 깨달아졌다.
“무조건 미술과가 일등 해야 해!”
“그럼그럼! 근데 우리 반에선 누가 나가?”
“야, 음악과 남자애들 춤춘다던데?”
“에이, 그래봐야 무용과에 비비지도 못할 건데.”
“아냐, 한승훈이랑 김영찬이 나온대. 걔들 음악가 킹카잖아.”
“와, 그럼 우린 누가 나가야 해?”
“노래도 안 되고, 춤도 밀릴 것 같은데, 아! 차라리 남자애들 여장하게 하는 건 어때?”
“어? 여장?”
“박준영이랑 진도윤이랑 여장시키면 반응 좋을 것 같은데? 모델 워킹! 그런 거 시키자!”
“오, 좋은데? 나 집에 가발 있어!”
“난 드레스 있어! 화장품도 가져올 수 있고!”
“오, 매니큐어도 칠해야 하는 거 아냐? 디테일이 생명인데!”
“아, 뭐래! 왜 우리 일을 너희가 정해?”
“야! 너희는 희생정신도 몰라? 우리 반이 1등 해야 할 거 아냐!”
선물처럼 발표된 특별 이벤트, 고교 수학여행.
목적지는 제주도, 일정은 3박 4일이었다.
굵직굵직한 타임테이블은 지난주에 이미 배포된 상태.
아이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일정은 둘째 날 저녁에 있을 레크리에이션, 즉 반 대항 장기자랑 대회였다.
반 회식 비용이 걸린 대회였으니 성의 없이 지나갈 마음인 애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작년엔 연영과 애들이 1등하고 미술과가 2등이랑 5등, 6등을 했대. 우리가 선배들보단 잘해야 하지 않겠냐?”
“아, 근데 2등도 잘한 거 같은데.”
“무슨 소리! 숫자로 봐도 미술과는 3개 반, 연영과는 1개 반 아니야. 근데 미술과가 지는 게 말이 돼?”
“그런가?”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음악과도 3개 반이잖아. 4, 5, 6반 다 음악과고 인원도 우리랑 비슷한데.”
“에이, 음악과 애들은 우리처럼 끈끈하지 않잖아. 걔들은 체육대회 성적도 매번 별로였고.”
평소엔 자기 일에 열중하거나, 미술과 안에서의 이슈에만 반응하던 애들도 체육대회나 소풍, 수학여행 같은 때가 되면 더욱 결집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월드컵, 올림픽 한정 애국심이 발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음악과, 무용과, 연영과 애들의 존재감을 갑자기 느끼면서 그들과의 경쟁 구도에 화르륵 불타오르는 것.
어쨌거나 이미 깔아진 판.
애들은 제대로 놀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날부터 장기자랑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한 불꽃 튀는 연습이 입시보다 치열하게 시작되었다.
‘그때도 다들 이렇게 흥분했었지.’
수현이 고개를 저으며 과거 일을 떠올렸다.
한참 전이니 대부분의 기억은 퇴색되거나 지워졌지만, 이 수학여행의 에피소드는 제법 또렷하게 수현의 머리에 남아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패싸움.
그때 미술과 애들이 연영과 애들과 크게 한판 붙었던 거다.
“하…….”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사건이긴 했다.
아드레날린이 왕성하게 분비되던 시기라 그랬을까.
별것도 아닌 말이 촉진제가 되어 화르륵 양쪽에 불이 붙었고, 둘의 싸움이 넷으로, 여덟으로, 다시 열, 열댓 명의 싸움으로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경쟁도 좋지만, 이번엔 제발 좀 조용히, 즐겁게만 지나가면 좋겠는데…….”
수현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다 툭 혼잣말을 내뱉었다.
“근데 그때 걔들은 왜 그랬던 거야?”
***
과거 수학여행, 미술과와 연영과의 다툼이 시작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둘째 날, 관광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여덟 개 반이 운동장에 모여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게 됐다.
신문지를 접어가며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는지 버티는 게임이나, 풍선 터트리기, 이인삼각 같은 걸 시작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강사가 마지막으로 문화상품권을 건 줄다리기를 시켰는데, 하필 결승전에서 미술과와 연영과가 붙게 됐던 거다.
“자, 양쪽 반, 남학생들은 빼고 여학생들만 30명씩 숫자 맞춰서 서자!”
진행을 맡은 강사가 각 팀의 경기 인원을 정해줄 때부터 슬슬 불만이 터져 나오긴 했다.
“이러면 우리만 불리한 거 아냐?”
“맞아. 우린 그냥 30명이고, 쟤들은 3반 중에 30명을 고르는 거잖아. 힘 센 애들 위주로 고르는 거면 우리가 불리하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몇몇이 떠들었고, 마냥 유순할 리 없는 미술과 애들도 목청을 높여 떠들었다.
“아, 뭐래. 억울하면 지들도 3개 반 만들든가.”
“아니면 기권하든가. 뭐 어쩌라고.”
이 정도 신경전이야 늘상 있던 일이었는지 강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양쪽을 재촉했고,
잠시 후.
“와아아아!”
“으아아아!”
3판 2승제란 룰이 별 쓸모도 없게 미술과가 내리 두 판을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꺄아아!”
“우리가 이겼다!”
“오예!”
미술과 애들은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리고,
“흑. 아 짜증나.”
“흐아앙. 나 손 까졌어.”
“아파? 괜찮아?”
“됐어, 잘했어. 우리 잘한 거야.”
연영과 애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씩씩대다가 서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중 선을 넘는 애가 있었다.
“야, 울지 마! 미술과 애들은 다 떡대라서 그래!”
“…….”
“…….”
순식간에 썰렁해진 분위기.
그러나 그 애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 따윈 알고 싶지 않았던 건지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 야, 쟤들 어깨 좀 봐라. 저게 어디 여자애들 아니, 사람 어깨냐? 어우. 애초에 조소과 애들까지 있는 미술과를 너희처럼 가냘픈 애들이 어떻게 이겨.”
그게 도화선이었다.
“하,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와씨. 아까 떠들던 애 누구야?”
“그 여드름? 몰라. 난 연영과에 그런 멍게 같은 애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방으로 돌아온 미술과 애들은 분기탱천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나 조소과 여자애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야, 조소과가 어때서. 힘 세면 뭐 어때서!”
“그래! 내 어깨 넓어지는 데 지들이 우유라도 한잔 보태준 거 있어?”
“아주, 웃기는 애들이야. 하, 얘들 이거 그냥 둬야 해?”
여자애들이 씩씩대자 박준영을 필두로 남자애들 몇이 일어섰다.
“우리가 얘기하고 올게.”
“어?”
“뭘?”
“연영과 남자애들이랑 우리가 먼저 얘길 좀 해보고, 화해를 하든 사과를 받든 하겠다고.”
“아, 몰라. 우린 화해 안 해.”
“나도. 꼴도 보기 싫어, 걔들. 그냥 이따가 밤에 장기자랑에서 밟아버리자.”
“맞아. 찍소리도 못하게 하자고. 장기자랑도 어깨로 했단 소린 못할 거 아냐.”
애들이 흥분하며 만류했지만 박준영과 몇몇 남자애들은 사절단을 꾸려 연영과 숙소로 향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야, 저 새끼 뭐야!”
“손에 뭘 들고 있는 건데!”
남자 숙소에서 험악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술과 남자애들과 연영과 남자애들이 언성을 높이며 아까 일에 대해 한참 갑론을박을 벌일 때, 아까 막말을 했던 연영과 남자애가 가방을 열어 쓰윽 모기약을 꺼내더니 미술과 애들에게 냅다 분사해버리고 말았던 것.
“저 새끼 왜 저래!”
“야, 말려!”
“하 씨. 미친 새끼!”
“아, 나가!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그렇게 화해를 꿈꾸며 연영과로 향했던 사절단이 임무에 실패하고 처절하게 돌아오자 미술과 애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레크리에이션 시간.
“지금 뭐라고 했어!”
“너희 지금 욕했냐!”
“와, 씨. 진짜 한판 붙어볼래?”
장기자랑이 한창 진행되던 강당에서 미술과와 연영과의 대격돌이 일어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