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진실게임(1)
“흑돼지가 입에서 살살 녹더라.”
“맞아. 진짜 맛있더라. 근데 흑돼지가 똥돼지라며?”
“아, 맛있게 먹어놓고 왜 똥 타령이야.”
“그러니까. 아,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아까 보니까 지하에 젤라또 전문점 있던데 안 가볼래?”
“오, 진짜? 그건 또 언제 봤대?”
“야야. 30분 후에 인원 체크 다시 한댔어. 시간 잘 맞춰서 다녀와.”
“오케이. 걱정 마!”
첫날 일정은 비교적 단순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모여 근처 천지연 폭포로 이동해 잠깐 숲길을 걷다가 근처 바다를 둘러보고 흑돼지 전문 식당에서 저녁 식사.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는 자유시간을 즐기다 취침하는 게 끝이었다.
물론 소등 시간은 소등 시간일 뿐, 거기 맞춰 잠이 들 애들이 있을 리 없었고, 아까부터 방별로 왔다 갔다 하며 간식도 먹고 게임도 하자는 약속이 오가고 있었지만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
수현과 차윤희, 박선화도 지하 편의점에서 과자며 음료수 같은 걸 잔뜩 사서 아까 배정받은 방, 406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우린 어쩔까?”
차윤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가?”
“아, 실은 아까 오유나 쪽 애들이 같이 놀겠냐고 물어보더라고.”
“오유나가?”
수현이 되물었다.
한성모터스 오너 후계자 오양호의 셋째 딸. 미술과에서 손꼽히는 금수저 중 한 명인 오유나는 2학년에 올라오면서부터 수현과 조금씩 친해진 애였다.
전국대회가 끝나면 제대로 놀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벌써 2학기도 중반이 지났고.
어쨌든 수학여행에 와서 수현을 찾은 걸 보니 그 약속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수현이 널 부르러 온 거였는데, 아까 너 씻을 때라 내가 대신 들었거든. 오유나가 너랑 꼭 놀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했대.”
“아, 그래.”
“걔들 지난번 정원동에서 벽화 그릴 때 봤던 애들이라 어색하진 않겠는데 막상 뭘 하고 놀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보드게임 같은 거 하려냐? 내가 오유나랑 얘기해볼까?”
“응. 그러든가. 우리 방에서 가깝더라고. 걔들은 413호래.”
어깨를 으쓱 올린 차윤희가 이번엔 박선화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남자애들도 왔었어.”
“남자애들? 누구?”
“박준영이 아까 애들 몇이랑 와서 박선화, 널 찾던데?”
“날?”
“어. 너 아까 집에 전화하러 갔을 때 왔더라. 박준영이 너랑 같이 자유시간에 놀러 오라고 하더라고. 어쩔 거야?”
“뭘 어째. 건방지게 누구한테 오라가라야?”
“안 오면 지들이 오겠다던데?”
“허, 웃겨. 몰라. 난 관심 없으니까.”
수상할 정도로 과민 반응하며 손을 휘휘 젓는 박선화를 차윤희가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 수현이 나왔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패거리들과 함께 수현의 방, 406호 앞에 서 있던 오유나가 수현을 반겼고.
“오, 여기서 다들 뭐 해? 들어가자, 들어가!”
박준영과 그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수현과 차윤희, 박선화를 안으로 밀어붙였다.
“뭐야, 왜들 이래?”
“너희는 왜 들어오는데?”
“아, 추워. 들어가서 얘기해.”
“그래. 들어가자. 우리도 간식 잔뜩 가져왔어. 같이 놀자아.”
그렇게 뜻하지 않게 오유나 패거리와 박준영 일당, 그리고 수현네 애들까지 열다섯 명이 6명이 쓰는 방에 다닥다닥 붙어 앉게 됐다.
‘흐음.’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수현이 예상한 대로 몇몇 애들이 보드게임을 가지고 와 펼쳤고, 추억의 부루마블 몇 판, 다시 모든 인원이 참여할 수 있는 윷놀이를 했다.
“윷이야!”
“한 번 더!”
“걸이요!”
“잡고 한 번 더!”
“개다!”
“골인이네!”
세팀으로 나뉘어 벌이는 윷놀이는 재밌긴 했다.
역전에, 또 역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에 손에 땀이 쥐어졌고, 흥분한 애들이 삽질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그렇게 목이 쉬도록 놀던 애들은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 진실게임을 하기로 했다.
“여기 주머니 안에 든 쪽지를 각자 한 장씩 뽑는 거야. 쪽지에 Q가 적힌 사람이 상대를 지정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솔직하게 대답하거나 대답하기 싫으면 엉덩이로 이름 쓰기!”
“에?”
“무슨 엉덩이로 이름을 써.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괴롭게.”
“그럼 노래시킬까?”
“노래라고 괜찮을까?”
“아, 그냥 아까 부루마블 카드에 있던 벌칙 카드 쓰자. 거기서 뽑은 벌칙으로 하는 걸로.”
“그럴까? 좋아. 어쨌든 시작!”
이게 뭐라고 긴장한 얼굴로 쪽지를 뽑는 애들.
“이성진! 이번 중간고사에서 가장 못 본 과목이랑 점수는?”
“차윤희, 솔직히 전국대회에서 최우수 탈 줄 알았다, 몰랐다?”
“이예슬. 오유나랑 다니면서 열 받은 적 있었다, 없었다?”
처음엔 비교적 순한 질문들이 나왔으나, 분위기가 과열되며 차차 과감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난 박준영한테 질문할래.”
오유나의 측근 중 한 명이 짓궂은 표정으로 박준영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준영. 너, 여자애들 고백을 계속 거절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어?”
여물 뺏긴 소처럼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하며 큰 눈을 끔뻑이는 박준영.
그러자 애들이 몰아붙였다.
“맞아! 대답해라! 박준영 이 기만자!”
“너, 고백 신기록이라도 세우려는 거야? 지금까지 몇 명한테 고백받았어!”
“미술과, 음악과, 연영과, 무용과 통틀어 난리라며. 근데 왜 안 사귀는데? 너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득달같이 달려드는 애들을 보고 박준영이 질린단 얼굴로 벌칙 카드를 집으려 할 때,
“안 되지!”
질문을 던졌던 오유나의 측근이 벌칙 카드를 통째로 뺏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이번 건 그냥 말해. 남자답게! 시원하게! 대체 너 왜 그러는데? 진짜 소문처럼 인기를 즐기려고 그러는 거야?”
“소문? 즐겨? 내가? 뭘?”
그러자 황당하단 얼굴로 억울해하던 박준영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그게 아니라. 사실은…….”
그렇게 박준영의 입에서 막 진실이 떨어지려던 그 순간.
딩동.
406호의 초인종이 울렸다.
“……!”
“……!”
순식간에 조용해진 아이들.
“우리 너무 시끄러웠나?”
“누구지? 선생님인가?”
잔뜩 쫄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는 아이들.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무리 자유시간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방에 모여 늦은 시간까지 노는 걸 들키면 좋은 얘길 들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똑똑.
문이 열리지 않자, 이번엔 똑똑 노크를 하는 누군가.
“박준영 있어?”
가만히 들어보니 선생님은 아닌 듯 했다.
“누가 찾아온 것 같은데?”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쪽에 앉아있던 수현이 몸을 일으켜 벌컥 문을 열었고.
“어?”
“……어?”
문 앞에는 뜻밖에도 무용과 강연아가 서 있었다.
“혹시 안에 박준영 있어?”
그리고 다짜고짜 면회를 신청하는 강연아.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강연아의 친구로 보이는 애들이 두근두근 떨린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잠깐만.”
수현이 뒤돌아 박준영을 불렀다.
“준영아. 여기 누가 너 찾아왔는데?”
“날? 누가?”
아무것도 모르는 박준영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일어났고, 그 애의 얼굴을 발견하자 강연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대단하네.’
수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연영과 이희찬의 고백을 거절한 날, 박준영에게 교제 신청을 한 것도 한 거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을 당하고도 수학여행에서 한 번 더 다가올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여긴 박준영의 숙소도 아니다. 아마도 강연아는 물어물어 박준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온 게 틀림없었다.
“…….”
곧 박준영이 문 쪽으로 걸어왔고, 거기 서 있던 강연아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리고 박준영의 시선은 다시 빠르게 박선화를 향했다. 수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와, 이쯤 되면 확실한데? 그러니까 박준영이 박선화를 좋아하는 거지? 지금도 눈치 보는 거고?’
얽히고설킨 러브라인을 목격한 수현의 심정은 과거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집에서 정주행할 때보다 간질간질,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장면을 직관하다니.
그러나 묘한 대리만족을 주는 청춘드라마를 감상하던 수현의 미소는 다음 순간 단번에- 지워지고 말았다.
‘쟤는 또 왜 여길 와?’
복도 끝으로 이희찬과 그의 친구들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희찬은 강연아를 찾으러?’
수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뜬금없이 이희찬을 칭찬하고, 연영과 애들과 안면을 터, 겨우 미술과에 대한 호감도를 올려놨는데, 강연아가 박준영을 찾아온 이 결정적인 장면을 들킨다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을 닫을 수도, 강연아를 들여보내고 문을 잠글 수도 없는 일.
아니야,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냥 강연아를 확, 데리고 들어갈까?
수현의 내면이 그렇게 파란을 일으킬 때였다.
“어……?”
누군가를 발견하고 번쩍, 반갑게 손을 올린 이희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지더니 휙. 손을 내리곤 뒤돌아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망했다.’
수현의 얼굴이 하얘졌다.
‘본 거야.’
강연아가 미술과 방에 찾아온 걸 보고 표정이 굳어진 게 틀림없었다.
‘어쩌지? 가서 오해라고 말해줘야 하나?’
수현이 갈등하다 고개를 저었다.
강연아와 박준영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란 말을 뜬금없이 전해준다는 건, 이희찬이 강연아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
우연히 목격했더라도 고백은 이희찬의 사적인 부분인데, 그걸 알고 있노라 내색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때처럼 패싸움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그냥 줄다리기에서 져주는 방법을 고민해볼까?
아,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그냥 믿어봐야 하나?
그래도 연영과 애들이랑 전보다는 친해졌으니까 이번엔 막말을 하거나 싸움을 걸거나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수현의 얼굴이 시시각각 일그러졌다.
그리고,
“너 진짜 너무하는구나?”
수현의 등 뒤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좀 전까지 볼을 붉게 물들이고 서 있던 강연아가 시뻘게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 잠깐 얘기하려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박준영에게 따지는 강연아.
그러나 박준영은 초연한 얼굴로 그런 강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얘들은 또 왜 이래?’
수현이 이희찬을 보고 당황하는 동안, 박준영은 강연아의 면회를 거절한 모양이었다.
구경하던 애들은 그야말로 얼음처럼 굳어버렸고.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 여기가 선약이거든. 친구들이랑 같이 놀기로 약속했는데, 네가 왔다고 갑자기 나갈 수는 없잖아.”
박준영은 차분한 얼굴로 자기 상황을 설명했다.
조곤조곤한 투지만,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는 말. 그러나,
“그럼 내일은? 내일은 나한테 시간 내줄 수 있어?”
오기인 걸까. 강연아는 물러나지 않고 매달렸다. 그러자,
“아. 답답하네, 진짜.”
여태 관심 없다는 듯 음료수나 홀짝이던 오유나가 갑자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박준영, 얘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 지금 막 그걸 고백하려던 참인데, 네가 온 거고. 언더스탠?”
“뭐?”
“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들이닥친 거라고. 우리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별일 아니면 좀 가줄래?”
강연아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나 오유나의 폭탄 발언에 누구도 그 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진짜야?”
“헐. 박준영, 너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었어? 누군데?”
“맞다. 우리 진실게임 중이었잖아. 박준영이 대답할 차례였고. 그러니까 누굴 좋아하는지 그 말을 하려던 거였어?”
“그래서 누군데? 박준영, 너 누굴 좋아하는데?”
흥분하며 박준영을 부르는 애들.
차마 대답을 들을 순 없겠던지 강연아가 복도를 박차고 뛰어나갔고,
“연아야!”
“같이 가!”
“아, 어떡해, 강연아.”
강연아의 친구들이 우르르 쫓아갔다.
삐이익-.
그때까지도 문 앞에 서 있던 수현이 조심스럽게 406호 문을 닫았다.
이러다가 내일 연영과뿐 아니라 무용과랑도 패싸움이 벌어질 수 있겠는데…….
수현이 영혼이 사라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청춘과 사랑이란 이름의 전쟁은 이제 막 서막이 오른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