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coundrel of a Chaebol Family RAW novel - Chapter (216)
재벌집 망나니가 되었다 215화(216/243)
+++
행사장으로 가니 고민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미 자리에 착석한 상태였다.
온 사방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우리가 앉는 공간 만이 마치 뻥 뚫린 듯이 고요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고, 경호라던가 비서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들어와 있긴 하다.
“어서 오렴.”
흥칫뿡 같은 유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고민지와, 반갑게, 그리고 뜨겁게 나를 맞이하는 고민영.
그 외에도 다른 고모들과 누나들이 있고, 대망의 할아버지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할아버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방계 쪽으로 많은 여사님들이 있지만, 이곳 직계가 있는 곳에는 들이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할아버지, 고모님들.”
“그래. 어서 앉거라. 곧 시작한다.”
“예.”
대충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내 옆은 고하얀이었다.
“왔니.”
“예. 누님.”
그녀는 자그맣게 미소 지어 보이더니, 곧 자기 얼굴 앞으로 왼 손을 들어 올렸다.
나한테 손등이 보이는 방향인데, 약지에 낀 반지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거…!”
“그래. 내가 전에 말했던 반지. 어때, 예쁘지?”
“오오…확실히 실제로 보니까 다르네요.”
그녀가 한 층 짙게 웃는다.
“맞아. 모든 주얼은 다 매체를 통해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괴리감이 커.”
본인의 분야가 나와서 신이 났는지, 고하얀은 말을 쭈욱 이어갔다.
전문적인 지식도 있어서 나름 유익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슬슬 지루해졌다.
그때,
“뭐야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반지까지 끼고.”
고하얀의 엄마이자 내 고모인 고하영이 은근슬쩍 몸을 내밀며 나와 고하얀을 살폈다.
고하얀은 흠칫 놀라더니, 곧 내게서 몸을 돌렸다.
“사,사업차…. 얘기하다 보니 이렇게 됐을 뿐이에요.”
“흐응, 사업차?”
왜인지 고하영은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마치 고양이 같다.
“그러고 보니~, 나도 조카랑 사업 얘기 할 게 좀 있는 거 같은데?”
“예? 저랑이요?”
“그래애~.”
뭐지.
내가 지금 고하영이랑 할 만한 게 뭐가 있지.
고려 그룹이야 워낙 잡다한 회사도 많고 하다 보니까 찾아 보면 분명 뭔가 있긴 하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이번에 일 많이 벌리고 있잖아. 그런데 대출이 하나도 없더라?”
“아.”
그러네.
대출….
보통 규모 있는 기업을 꾸려가다 보면 거의 반 필수로 끼게 되는 게 대출을 비롯한 금융 상품이다.
근데 나는 대출이 하나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한창 리얼 프로덕션 가지고 놀 때 했던 엄청난 양의 공매도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다 청산됐으니 내 대출은 0원이다.
온리 현금.
지금 하는 모든 사업을 오직 깡 현금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그렇다고 주식 상장해서 돈을 빨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좀 강하게 표현하면 기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금융 쪽을 담당하는 고하영의 입장에서는 ‘쟤 너무 느리게 가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조카라면 내가
싸게
해줄 수도 있는데~.”
“….”
금리 얘기하는 거겠지?
“아…. 감사합니다. 고모. 그런데 아직 제가 대출이 필요하지는 않아서요.”
“후후. 그래? 대출 없이 안전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그런데 좀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으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새겨 듣겠습니다.”
“야, 뭘 새겨들어. 하더라도 엄마한텐 빌리지 마.”
“어머? 얘가 무슨 소리하는 거니?”
갑자기 고하얀이랑 고하영이 티격태격 싸운다.
애한테 무슨 대출 권유를 하냐는 둥의 고하얀이랑,
엄연한 기업가니까 금융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는 고하영.
솔직히 왜 티격대는지 모르겠네.
둘 다 맞는 말인데.
“괜히 빌렸다가 못 갚기라도 하면 그 날로 인생 하직이야.”
“하! 얘 좀 봐. 내가 설마 조카한테 그러겠니?”
“그러고도 남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고하영도 뭔가 있나 보네.
딸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근데 고민지는 고민영한테 꼼짝도 못하는데 이쪽은 다르네. 화목?하다고 해야 하나.’
역시 같은 고씨라도 집구석 마다 분위기가 좀 다른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고선아-고선율 쪽도 슬쩍 봤다.
고선율이 딸이다.
“….”
“….”
음….
비슷, 하게 생긴 여자 둘이 아무 말도 없이 폰만 만지작대고 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고선율은 무심하게 폰으로 시선을 돌렸고, 고선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폰을 쳐다봤다.
어쩜….
엄마랑 딸이 저렇게 똑같은지.
쿠웅.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전면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2076년]그리고 그 글자는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다.
‘시작이군.’
드디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결산과,
새해의 목표를 다짐하는 신년계획발표가 시작된다.
주위를 온통 어둡게 만들었던 홀로그램이 마구 변형하면서 영상을 만들어낸다.
대충 2076년에 어떤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고려 그룹이 무엇무엇을 해서 무슨무슨 결과를 만들어냈다 류의 내용이었다.
V3VHT2Y0cjEwSWV0clZ2dDdlV3ZEdWlvNVdoVHRsUlprdVRlSjNkUnFUY29sU3NsdTRQRFoyT2ZQL2pSQXlTTg
그 와중에 놀라웠던 건, 고려 이코노믹 연구소에서 발표한 2076년 전 지구 추정 총생산인데, 그 총합이 무려 120경 원에 달했다.
‘2020년대 지구 총 생산이 대충 10~13경 원 정도 됐던 걸로 아는데.’
뭐 내가 있던 곳과 이 세계관의 지구는 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놀라운 수치다.
대충 계산해서 10배 가량 늘어났다는 건데, 3차 세계 대전으로 무지막지한 부를 날려 먹고 온갖 나라들이 분열과 합병을 반복했던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저만큼이나 성장했다니.
‘심지어 지금 원화는 디노미네이션을 거친 원화….’
지금 원달러 환율이 67대1이다.
미국이 3개로 분열하면서 달러 패권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원화가 엄청나게 강세인 상황.
중국이 20개로 분열되고 일본은 연속된 자연재해와 중국의 치명타를 맞아 반쯤 몰락했으며, 산둥-한반도로 이어지는 해안 벨트에 수억 명이 터질 듯이 모여 살아 치안이 지랄 나고 빈부격차 극의극을 치닫는 동북아시아가 그나마 살기 좋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다 여기서 나오는 거다.
수치상으로만 총생산이 높을 뿐이지, 사실 지구 경제는 파탄 상태인 거다.
종종 좀비 경제라고도 표현된다.
‘그 와중에 아시아 총 생산이 80경이면 그냥 죄다 빨아먹고 있는 거네.’
나머지 40경 중에 3개의 미국이 약 28경, 유럽이 7경, 남은 5경 가량을 그외 전 지구가 나눠 먹는 상황.
뭐 인구가 인구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차이가 좀 심하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시아가 미국보다 3배가량 강하다거나 유럽에 비해 10배 강하다는 식의 단순한 계산은 도출할 수 없다. 지들끼리 싸우면서 갉아먹어서 그렇지, 미국이나 유럽이 다시 예전의 미국, 예전의 유럽으로 합쳐지면 그 시너지는 몇 배 씩 날 게 뻔하다.
그러면 아시아라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게 되는 거지.
그리고 지난 하나의 중국 사태때 두 개의 유럽 연합이 동시에 견제를 걸었던 걸 생각하면, 어쩌면 이미 물밑에서 단결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대로면 밀릴 게 너무 뻔하니까.
유럽은 지금 아시아는 둘째 치고 3개로 분열된 미국의 4분의 1수준으로 몰락했다. 더 이상 자기들끼리 싸우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겠지.
‘최악의 경우는 3개의 미국과 2개의 유럽연합이 전부 하나로 뭉치는 거지.’
마치 예전의 나토처럼.
근데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3차 대전 중 나토 안에서 온갖 배신과 음모가 난무했던 걸 보면 글쎄….
‘근데 아시아만 80경이면 고려 그룹은 대체 얼마를 벌고 있는 거지?’
두루뭉실하게 ‘아시아를 지배하는 그룹’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깡으로 80경을 전부 흡수하는 건 아닐 거 아냐.
‘한 20경? 그 정도만 돼도 지배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전 지구 총생산,
아시아 총 생산,
그리고 경쟁자인 유럽과 미국의 상황 등을 간략하게 살피면서,
‘올해 우리가 이렇게 잘해왔어요.’
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짝,짝짝짝,
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힘차게 손뼉을 친다.
그 정돈가 싶긴 하지만,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우리들의 결과를 보니,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지금까지도 웅장한 배경음과 여러 장치들을 활용해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 올렸는데, 이번에는 그게 더 성대했다.
[ 고영만 회장, 프로 바둑 기사 입단. ]“?”
황당할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장이 떠오르더니, 곧 평양 사방에서 폭죽이 올라와 터지기 시작했다.
“허허허.”
할아버지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박수를 쳤다.
그런 할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한 박자 늦게 박수를 치는 고모들과, 그에 이어 손뼉을 치는 누나들. 그리고 얼떨결에 열심히 치는 나에 이어서 곧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박수가 전이됐다.
그리고 갑자기 할아버지가 일어나자, 마찬가지로 도미노처럼 고모- 누나 – 나 – 나머지 순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아니 이게 맞아? 프로 바둑 입단했다는 게 다른 거 다 제쳐둘 정도로 중요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