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coundrel of a Chaebol Family RAW novel - Chapter (243)
재벌집 망나니가 되었다 242화(24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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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니.”
“예에….”
고하얀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게 나를 맞이했다.
마치 영화 속 귀족이 연상되는 우아한 모습으로 차를 홀짝이며, 둥근 테이블 한켠을 눈짓한다.
“실무진 간 협의가 끝났어. 보고 받아서 알고 있지?”
“예.”
마치 그녀가 있는 공간만 다른 시간, 다른 음악이 흐르는 것 같다.
제목이나 이런 건 하나도 모르지만 대충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은 우아한 곡조의 클래식 음악이 연상 된달까.
그녀의 눈짓에 따라 홀린 듯이 반대편에 앉으니, 곁에 서 있던 여인이 차를 따라 준다.
또르르.
뜨거운 연기를 몽글몽글 내면서 그와 함께 퍼지는 차의 향기.
나도 모르게 고하얀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읽고, 사인만 하면 돼.”
“크흠, 그러죠.”
예의 상 차를 두어 번 마시다가 옆에 메뉴판처럼 놓여 있는 서류를 열어 확인했다.
대충 나의 절망적인 작명 센스를 대신하여 양측 실무진들이 보석의 이름을 확정하고, 생산 체계 구축 및 납품 계획, 제품 생산 계획 등이 써져 있었다.
“시나브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단어다.
근데 뜻은 모른다.
톡.
고하얀이 찻잔을 내려 놓으며 입을 열었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
“네가 만든 보석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 드는 느낌이거든.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몇 분이고 보고 있게 돼.”
그녀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었다.
내가 샘플로 준 RK-77로 만든 반지를 여전히 끼고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거지. 내가 이렇게나 여기에 빠져 있었구나-, 하고.”
“그렇군요.”
“화려한 외형에 어울리는 어감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누님이 그러시다면야.”
“무엇보다 그 흉측하고 해괴망측한 이름을 듣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하하.”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짓던 고하얀이 고민지를 욕할 때에 한정해서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너도 그년을 조심…아, 아니지. 조심할 건 없겠구나.”
“….”
“아무튼, 뭔가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제시해도 돼.”
“아뇨. 괜찮아요. 이름 짓는 게 제 특기인 것도 아니고요.”
고민지가 좀 아쉬워 하긴 하겠네.
‘그래도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납품 이름이니까. 고민지한테 준 건 그것대로 고민지로 남는 거지.’
나머지 절차도 문제는 없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공장에서 RK-77을 생산해 고하얀의 주얼 그룹에 납품하고, 그러면 거기서 상품으로 가공해 판매를 개시한다.
“어제도 말했듯, 선공개는 3월 중에 이 요트에서. 그리고 공식 발표는 4월 중이 될 거야.”
“예.”
고하얀은 시종일관 사무적으로 나를 대했다.
어제 일이 있어서 더 그러는 건지, 아니면 혹시 정이라도 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차가운 방벽을 두고 있는 것 같아 대하기가 좀 어려웠다.
‘하…. 고민지….’
그 망할 이름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그 여자를 대체 어떻게 응징해 줘야 이 거대한 사안의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나는 고하얀과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타이밍을 잡아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그, 누님. 어제 있었던 일은-,”
“너는 특별해. 고민지 그년도.”
“예?”
돌아오는 건 뜬금없는 대답.
온화한 미소에 감춰진 차가움이 나를 응시한다.
“내가 아무리 그 여자를 싫어한다 해도 인정할 건 인정 해야지. 나, 그리고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 만으로 평범한 사람과는 차별 된다는 뜻이야.”
“그…게 갑자기 무슨.”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리고 그걸 적극적으로 행한다 하더라도 크게 흠이랄 건 없다는 뜻이야. 너는 특별하니까. 민지 그 녀석도.”
“….”
그러니까,
대충 나랑 고민지는 특별한 인간이니까 일반적이지 않은 행위를 하더라도 흠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거 같은데…. 근친을 하든 뭘 하든 상관 없다는 건가?
‘일반 사회에서 근친은 배척되니까. 내가 혹시 그런 걸 걱정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아…감사합니다.”
정확히 무슨 의미로,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인 것 같으니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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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만 빼고.”
“아, 그건 물론이죠.”
“약은 신체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기억에 대한 상실과 착오, 착각을 불러 일으키거든. 있었던 사실을 왜곡해서 기억하거나, 혹은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지. 심지어는 성격 까지도 변화가 되고 말이야.”
“…?”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기억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잖아? 무의식이랄지 여러 쌓인 것이랄지. 피해의식이라든지.”
“….”
무슨…말을 하는 거지.
알아 듣기가 좀 힘드네.
아니 말은 알겠는데, 의도를 모르니까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든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하렴. 그리고 앞으로 얻을 것들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그러면 더 이상 약을 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겠지.”
“예에….”
뭔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고하얀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 후로도 그녀와의 대화는 대략 그런 느낌으로 진행 되었다.
중간 중간 내가 타이밍을 잡아 어제 일에 대한 것들을 되살려 보고자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차단 되었다.
‘하긴. 바로 다음날에 그러기엔 쉽지 않겠지. 누나도 충격을 받았을 텐데.’
아쉽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자.
너무 공세만 취하면 되려 상대방의 방어가 단단해질 수가 있다.
‘고하얀은 시간을 좀 들여야겠어.’
다행인 건, 그녀와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는 거다.
어쨌든 대화는 곧잘 하고 있고, 업무도 잘 진행된다.
그녀도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지, 처음 봤을 때처럼 병신 보듯 쳐다보는 건 아니다.
그저 어제 있었던 헤프닝으로 인해 잠깐 사이가 서먹해졌을 뿐이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업무는 여기까진가?”
“예.”
“어디 보자….”
고하얀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하루 하고도 반나절은 더 쉴 수 있겠어. 가끔은 휴식도 좋지.”
“…그러고 보니 바쁘시겠네요. 누님도.”
“응. 너무 바빠. 시간 내기 힘들 정도로. 이번에도…. 힘들게 낸 거야.”
“그렇…군요.”
그렇게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날리다니….
아.
고민지….
“그, 누님.”
“응.”
“어제 일 말인데요.”
“하아….”
고하얀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아까부터 자꾸 그 얘기만 하네. 좀 기다려 줄 수 없겠니?”
자꾸 같은 화제를 꺼내니까 화가 난 모양이다.
“아아. 그게 아니고요. 민지 누나가 보낸 영상 있지 않습니까.”
“….”
“…설마 진짜로 그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요. 막 AV로 등록해버린다거나 유포한다거나 하지는…말아주셨으면 해서.”
고하얀이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로 그러겠니?”
“그렇죠? 믿고 있었습니다.”
“쯧. 그 망할 여자 얼굴이 내 폰에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해. 바로 지웠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안심했다.
아무리 말을 안 듣고 말괄량이처럼 군다 해도 내 전용인데 남들한테 보여 줄 수는 없지.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의 치부를 스스로 뿌린 고민지는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음.”
고하얀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많이 친한가 봐? 그 초딩 같은 성격 견디기 쉽지 않을 텐데.”
“아…. 뭐, 어쩌다 보니….”
“그래. 겁 먹고 주눅 들어 있는 것보단 훨씬 낫지. 어제 일이 많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보기엔 훨씬 좋아. 예전보다.”
“…?”
겁?
이전의 고무열이 겁을 먹고 주눅 들어 있었다는 건가?
고민지한테?
‘뭐…. 기본적으로 사이코니까 그럴 법도 하긴 한데….’
“지금도, 이렇게 멀쩡하게 대화하고 있고.”
“그렇…죠?”
“예전의 너는….”
고하얀이 슬쩍 웃었다.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인데,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내 눈도 못 마주쳤잖아?”
“…?”
“가까이 가면 도망가기나 하고. 후후. 근데 지금은 이렇게 얼굴도 마주할 줄 알고 많이 컸어. 우리 무열이. 약 때문에 그런가?”
“예…?”
뭐지.
내가 고하얀 눈도 못 마주쳤었다고??
심지어 가까이 가면 도망을 가?
“프흥, 아냐. 아무것도.”
“….”
고하얀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부정 당하는 느낌이다.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그게 아닌데 이상한 소릴 하잖아.
원래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고무열이 급발진해서 고하얀이 먹을 음료에다 정액 타다 걸렸고, 그래서 사이가 안 좋아졌고…. 나도 처음 빙의했을 때부터 싸늘한 대꾸나 받았는데….
근데 갑자기 고무열이 고하얀을 피하고 있었다고?
그럼 뭐 고하얀이 날 싸가지 없게 대했던 건 계속 피하니까 빡쳐서 그랬던 건가?
‘아닌데. 뭐지 대체.’
머리가 혼란스럽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스윽.
그때, 갑자기 고하얀이 내 손등에 자기 손을 포갰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앞으로도 이렇게 잘 지내보자? 연락 자주 하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