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coundrel of a Chaebol Family RAW novel - Chapter (56)
재벌집 망나니가 되었다 55화(5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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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건 당연히 명인의 바둑판을 찾는 일이었다.
목적 자체가 그걸 위해서니까 당연한 것.
백설과 수아, 그리고 짐꾼 느낌으로 좆집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해안에 위치한 동굴로, 살짝 아슬아슬한 곳에 있긴 하지만 조심만 하면 문제 없다.
다행히 큰 트러블 없이 동굴을 찾았고,
나는 거기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바둑판 하나와 그 위에 쓰러져 있는 해골을 발견했다.
“와…. 진짜 있네. 대체 주인님은 이런 걸 어디서 찾으시는 거예요? 무슨 포털 같은 게 있나.”
“다 방법이 있지.”
만지고 싶지 않았지만 해골을 조심스레 옮겼다.
그리고 피가 말라 붙어 있는 바둑판을 살짝 쓸었다.
엄청난 먼지가 손에 묻어 나온다.
– 이놈!!!!
그때 귀를 터뜨릴 듯이 울리는 호통 소리.
“꺄악!!”
수아는 크게 놀라며 급히 총을 빼어 들고,
백설은 검을 뽑았다.
나머지 좆집들도 대경하며 주저 앉고, 그 와중에 이나은은 침착하게 터미네이터를 뽑았다.
다들 반응이 찰지구만.
“아아. 괜찮아. 무서워할 거 없어.”
“힉…. 주,주인님…. 저거, 호,홀로그램 아니에요! 귀,귀신…!!”
투명한 인간이 바둑판 위에 떠 있다.
– 기가 센 놈이로군.
“한국영 사범님, 먼 후배가 사범님을 뵙고자 찾아 왔습니다.”
– ?!!
.
.
– 우상귀 한 칸 젖히겠네.
흑돌을 들어 원하는 곳에 놓아준다.
그리고 나는 백돌을 적당히 늘었다.
– 끊겠네.
톡.
다시 흑돌을 그가 원하는 곳에 놓아주고 나는 백돌로 치받았다.
– 흠.
명인의 바둑판.
2024년 까지 전 세계 바둑계를 쥐락펴락했던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바둑 천재, 한국영이 깃들어 있는 바둑판이다.
당시 그가 세웠던 20년 연속 세계 대회 우승, 한국 기원, 일본 기원, 중국 기원에서 모든 타이틀 획득 등의 기록은 이전에도 당연히 없었고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다시는 없을 불세출의 바둑 천재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왜 이런 바둑판에 귀신으로 들러붙어 있느냐,
사연이 좀 안타까운데, 그때가 막 바둑 AI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인간의 바둑이 쓸모 없어졌다느니 더 이상 바둑은 예술이 아니라느니 하는 말들이 오가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바둑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변화에 순응했지만, 한국영 국수는 이를 부정했다.
그리고 인간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고 AI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고, 그는 점점 AI로 물들어가는 바둑계에 실망한 나머지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당시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는데, 이후 27년에 세계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정세가 혼란해졌고, 인류는 영영 그를 찾지 못했다는 설정이다.
‘알고 보니 아무도 찾지 않는 신안의 어느 섬에서 목숨을 끊었었지…. 자신이 가장 애착하던 바둑판과 함께.’
여담으로 ‘명인’이라는 용어는 일본 바둑계에서 사용하는 단어인데, 한국에서 쓰는 ‘국수’대신 이 단어가 붙은 이유는 게임 개발자 때문이다.
‘국수의 바둑판이라고 하면 뭔가…. 잔치국수가 떠올라서요….’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됐었지….
– 자네….
한국영이 형세를 보더니 침음성을 흘렸다.
뭔가 난처한 듯한 목소리다.
– 바둑 실력이 영 형편 없구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바둑 천재와 두고 있는데 당연하지 않을까요.”
– 아니, 그 이전에 기초가 안 돼 있잖아. 이건 바둑이라 할 수 없어. 9점을 깔아줬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밀린다고?
“….”
그야….
당연하지.
내가 해봤던 바둑이라고는 9X9 바둑판에서 하는 미니 바둑 뿐이었으니까.
국지적인 수 읽기는 쬐끔 할 수 있어도 전체적인 판세를 읽고 어디에 돌을 둬야 하는지 같은 건 잘 모른다.
– 하아…. 결국 이리 되고 말았는가. AI가 바둑을 집어 삼키고 말았어…. 바둑인의 실력이 이렇게 퇴보하다니….
“그건 비약입니다. 저는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고, 여전히 바둑인들은 잘 둡니다.”
– 흠. 그래? 자네, 몇 년도 사람인가?
“올해가 76년입니다 사범님. 2076년이요.”
그가 깜짝 놀랐다.
– 2076년??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고? 내가 죽고 나서 50년이나 흘렀단 말이냐. 허어….
“예. 그리고 바둑계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 바둑계가 건재하다라…. AI가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고작 인간에 불과한 자들이 어찌 바둑계를 이어간단 말인가. 수 읽기도, 형세 판단도, 무엇 하나 대적할 수 없었거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생전에는 그렇게 AI를 부정하던 양반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AI는 대부분 폐기되었습니다.”
– 응?
“27년에 중국이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거든요.”
– 뭣?! 아니 이런 고얀 짱깨새끼들을 봤나.
“전쟁 당시 AI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에 AI가 강하게 규제 받고 있죠. 핵 확산 금지 조약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부 필수적인 산업을 제외하면 상당 부분 위축되었고, 겸사겸사 바둑에선 아예 퇴출 됐습니다.”
– …결국 사람이 AI를 이긴 건 아니었군.
“뭐, 컴퓨터를 망치로 뚜드려 팬 거나 다름 없으니 이긴 거 아닐까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 그렇게 하면 뒤지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일세.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긴 합니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50년 간 여기에 갇혀 있다가 나를 만나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 …바둑을 두고 싶네. 이런 이상한 바둑 말고, 진짜 바둑!
됐다.
“그럼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저희 할아버지가 바둑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 프로신가?
“그건 아닙니다. 아마추어죠.”
– 흠…. 일단은 어쩔 수 없나.
조금 실망하는 눈치.
50년이나 짱박혀 있던 걸 꺼내준다는데 대놓고 실망을 표하다니.
태도가 글러먹었지만 할아버지 선물이니 참는다.
– 근데 잠깐만. 자네 아까 중국이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했나? 27년에?
“예.”
– 지금은 77년이고?
“76년이요.”
– …결과는 어떻게 됐나? 우리나라는?? 아니, 자네 설마 중국인은 아니겠지? 이런 고얀 짱-,
“중국은 내몽골 자치구를 몽골에게 뺏기고 티벳과 위구르는 독립, 황하 이북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황하 이남은 20 갈래로 쪼개졌고요.”
– 뭣??!
이 양반,
지금이 76년이라는 걸 들었을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 그게…정말인가?
“제가 왜 사범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세상 밖으로 나가면 바로 들킬 것을.”
– 허어…. 이게 대체…. 믿기지가 않는구먼…. 일본은 어떻게 됐나? 한중일이 사실상 바둑의 세계 그 자체인데 중국이 무너졌으면….
“일본은 3차 대전 중에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으로 인해 사실상 몰락했습니다.
– 엥?
“난카이 해구에서 10.1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로부터 5일 뒤 후지산 대폭발, 또 그로부터 2주 뒤에 8.9의 도쿄직하지진이 일어나서 상당히 오랫동안 국가의 기능이 마비됐습니다. 그 피해를 지금도 복구 중이고요.”
– ….
“….”
– ….
“….”
– …자네 대체…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겐가? 한국은 멀쩡하고?
“예.”
민주주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기업 독재가 들어섰지만, 그래도 제일 멀쩡한 나라 중에 하나다.
– 크흠…. 아무튼 알겠네. 나를 도와 꺼내준다면 내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도록 하지. 혹시 바둑 최강자가 되는 것에 관심 있나?
“저는 없는데 할아버지는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 이 바둑판을 선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 그래. 효자구나. 알겠네. 잘 부탁하네. 후배.
투명한 모습으로 나와 대화하던 한국영 국수가 바둑판으로 스르륵 흡수됐다.
나름 시끌시끌하던 동굴 내부가 다시 조용해졌다.
“…귀신이 정말 있었다니. 저 이제 어두운 곳은 못 갈 거 같아요 주인님.”
“세상에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존재만 있다는 건 편견이었군요….”
수아와 백설이 한 마디씩 건내고, 다른 애들도 마구 쑥덕거린다.
나는 바둑판을 챙기고 씁쓸하게 조각나 있는 유해를 가리켰다.
“유해도 챙겨. 같이 할아버지한테 드리면 되겠다.”
“네. 주인님. 근데…. 정말 이런 바둑판을 받고 좋아하실까요? 너무 낡았는데.”
“원하면 뭐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 분한테 선물의 크기가 뭐가 중요해. 내 성의가 중요하지.”
그리고 우리 고영만씨는 바둑 광팬이다.
바둑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한국영을 모를 수가 없다.
아무도 찾지 못했던 한국영의 마지막 일생과 유해, 거기에 대화도 할 수 있고 대국도 할 수 있는 바둑판이면 추석날 손자의 선물로는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주군. 이 섬도 사들여서 함께 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응? 이 섬을?”
“예.”
백설이 아련한 얼굴로 바둑판과 유해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장소…. 그리고 생을 마감했던 장소, 50년 간…. 있었던 장소.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럴 듯하네.
“수아야, 섬 주인한테 연락해서 내가 산다고 해. 대금은 나중에 치른다고 하고. 이자까지 쳐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