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coundrel of a Chaebol Family RAW novel - Chapter (60)
재벌집 망나니가 되었다 59화(60/243)
+++
할아버지께 드린 선물은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드릴 당시의 반응으로 보나, 지금 내 상황을 보나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 때로는 너무 잘 하는 것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슨 의미냐면,
“다들 봐라! 이게 내 손주가 준 선물이다! 우리 고무열이가, 나 주겠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거라고.”
최대한 조용히, 다른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고 돌아가겠다는 나의 계획이 한 순간에 어그러졌다는 뜻이다.
“이게 평범한 바둑판이 아니야. 지난 50년 간 말이다, 무려 오.십.년.간. 아무도 찾지 못했던 한국영 사범의 바둑판이다. 내 직접 감식까지 다 해봤어. 여기, 이,이이 여기 있는 게 바로 한국영 사범의 피다. 피!”
9월 30일 수요일, 추석 당일.
할아버지는 오너 일가 + 방계+@ 인원들이 모인 커다란 연회장에서 내가 선물한 바둑판을 높게 들어 올린 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필이면 자리 배치 상 우리 오너 일가(직계)는 복층 구조의 2층에 식탁을 두고 모여 있었고, 나머지 수십 명의 방계+@는 1층 홀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1층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2층 난간에 서서 바둑판을 들고 있는 거고.
덕분에 나는 엄청난 주목을 받아야 했다.
1층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2층의 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뭔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
엄청나게 느끼한 치킨을 껍데기를 벗겨서 그 껍데기만 왕창 먹은 그런 느글거림이 느껴진다.
으으….
“…아버지, 그만하고 이만 앉으셔요. 다들 배도 고플 텐데. 무열이도 얼굴이 빨개졌잖아요.”
한참을 떠들어대던 할아버지를 말린 건 고모 고민영이었다.
그녀는 그저께 보았던 그 우아하면서도 위압감 있는 모습 그대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 그래야지 참.”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가 대충 추석 덕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도 거의 10분이 넘는 시간이었다.
“하이고. 이것도 다 일이다 일.”
말을 끝내고 돌아온 할아버지는 아주 조심스럽게 비서에게 바둑판을 넘겨 주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내 요새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다 보니 뭐 말이 끝도 없이 나오는 구만 하하하!”
“그렇게 좋으세요? 아빠 그렇게 웃는 거 정말 오랜만인데.”
방금 말한 사람은 고하얀 누나의 엄마인 고하영으로, 역시나 20대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 좋다마다! 내 손자가 이렇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진정하고 가만히 있겠나? 그건 말이 안 돼.”
“원래 돌아온 탕자가 더 이쁨 받는 법이야.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니.”
그리고 지금 말한 사람은 고선아라는 사람으로, 나의 또 다른 사촌 누나인 고선율의 엄마다.
대충 이쯤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남자라고는 나와 할아버지 밖에 없다.
고모들의 남편은 어디 있냐고?
무려 1층에 있다.
방계들과 함께.
즉, 지금 이 자리에는 완전히 찐 직계만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위까지 차별하고, 심지어 그걸 아내와 딸들이 아무렇지 않게 납득하는 가문이라니 대체.
‘너무나 비인간적이군.’
심지어 할아버지의 또 다른 부인들도 전부 1층에 있다.
그 자손들 역시 마찬가지….
정말 철저한 차별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여기 사람들의 면면들을 보다 보니 파편처럼 조각 나 있던 이 약쟁이의 기억이 이어졌는데, 고무열의 아빠가 할아버지의 유일한 직계(지금은 사망한 본처와의 후생) 아들이었다. 그리고 고무열은 그 아빠의 독자고.
즉, 고무열은 고려 그룹 유일한 직계 아들의 유일한 직계 아들이라는 뜻이지.
근데 고무열의 아빠는 죽었으니….
‘내가 고려 그룹 직계 중 유일한 남자 자손…. 씨발. 이거 그냥 대놓고 견제 트리거잖아.’
할아버지 한테 선물해서 과한 관심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이거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고모와 사촌 누나들 입장에선 그동안은 고무열이 마약이나 쳐 빨면서 개망나니짓을 해왔기 때문에 유일한 남자 자손이고 뭐고 안중에 없었을 거다. 고민지가 했던 말대로 대충 감금해두고 자기들끼리만 경쟁하면 되니 아주 좋은 상황이었겠지.
근데 그 약쟁이 조카가 뜬금없이 약을 끊고 뭔가 발버둥을 치고 있다?
거기에 할아버지한테 웬 바둑판을 선물했는데 할아버지가 그걸 또 너무 좋아해서 막 떠들고 다닌다?
‘아….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네.’
할아버지 때문에 대놓고 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은연중에 견제가 들어올 거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지금 내겐 오너 일가의 견제를 이겨낼 만한 힘이 없다.
아니 뭐 쥐뿔도 없고 이제 막 주식으로 2조 정도 만질까 말까 하고 있는데 현금성 자산으로만 수십조~수백조씩 들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겨. 심지어 그것도 공개적으로 드러난 재산으로만 따진 거니까 실제로 운용하는 자산은 훠얼씬 많을 거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잖아.
‘각자 무력도 따로 가지고 있을 테고….’
내가 괜히 최대한 숨 죽이고 있다가 모임 끝나자마자 인천으로 튀려 했던 게 아니다.
‘와 진짜 어쩌지.’
“조카.”
“…예??”
“무슨 식은땀을 그렇게 흘려. 덥니?”
생각하는 와중, 고민영이 손수건을 꺼내 손을 뻗는다.
스윽.
“아.”
부드러운 손길로 내 땀을 닦아내는데, 묘하게 정성스럽다.
배운 사람이라 그런가? 몸짓 자체에 기품이 들어있는 느낌.
“응? 손주 덥나?!”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 괜찮아요. 고모 감사합니다.”
“저 차실장! 여 온도 좀 낮춰라. 애 덥단다.”
“예. 회장님.”
아니 안 더운데….
“더운 게 아니라 긴장한 거 아냐? 귀엽게 눈알만 떼굴떼굴 굴리고 있잖아.”
“긴장? 우리 무열이가 그럴 사람은 아닌데.”
“이렇게 만나는 건 되게 오랜만이잖아. 다들 한 성깔 하는 여자들인데 긴장할 수도 있지. 귀여워라.”
고하영씨와 고선아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조카에 대한 애정(?)을 나누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뭔가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재벌가의 그 숨 막히는 밥상머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지금쯤이면 ‘호호호’웃으면서 칭찬을 빙자한 돌려까기로 서로를 긁어대야 하는 타이밍 아닌가. 내가 너무 드라마를 많이 봤나.
“느그들이 뚫어져라 쳐다보니 아가 이리 되는 거 아니냐. 쯧쯧쯧.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고.”
“…아버지가 제일 심한 거 알고 계세요?”
“와. 내가 아빠한테 그런 소릴 다 듣네.”
“호들갑은 자기가 제일 심하면서 왜 우리한테 그러세요.”
감히 고려 그룹 회장한테 한 마디를 지지 않는 여자들.
“할애비가 손주를 이뻐하는 거하고, 느그들이 이뻐하는 게 같나. 손주랑 조카는 이 무게감이 다르다 이 말이야. 안 그냐 무열아.”
“어머? 이게 무슨 차별적인 발언이에요?”
“우리 다 아들 없는 거 알고 하시는 말씀이죠?”
“애가 방황 좀 한다고 고작 푼돈 쥐어주고 쫓아낸 게 어디의 누구셨더라? 무게가 다르다고요 아빠?”
마지막 말에는 정곡을 찔렸는지, 그 고려 그룹의 회장이 흠칫 하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는데….
“그…. 니 지금도 뭐 갖고 싶은 거 없나? 이 할애비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원래 받은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기다. 그게 바로 장사하는 사람의 마인드라는 거지. 이 마인드가 틀려 먹으면 대성하지를 못해요.”
“조카! 돈으로 한 5천조만 달라고 해. 이 양반 쌓아둔 게 아주 끝이 없어서 그 정도는 떼어 내도 돼.”
“예?”
“그거 가지고 되겠니? 기둥 뿌리 하나 뽑으려면 주 하나는 달라고 해야지.”
“그거 가지고 되겠어? 제대로 뽑아 먹으려면 평양을 달라고 해야지.”
“뭐가 됐든 땅 받아서 자기만의 왕국 하나 만들게 하면 되지. 우리 조카는
떡
좋아하잖아
떡
. 떡국 차리면 되겠다. 후후후.”
“…미쳤냐?”
“마! 느그들 지금 뭐 하는 기고! 밥상머리에서. 에잉 쯧쯧쯧. 부회장이란 것들이 이렇게 말만 많아가지고. 쫌 느그들 딸 맹키로 우묵하게 좀 있어봐라.”
“아빠 사투리 튀어나오는 거 봐. 촌스러워.”
“얘네들이 뭘 우묵하게 있어요. 그냥 딱히 할 말 없으니까 깨작거리는 거지.”
“시끄럽다 안카나! 콱마!”
식탁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처음엔 분명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나름 분위기 있는 느낌으로 시작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여느 가정에서나 볼 법한 기분 좋은 시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그냥 화목한 가정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
말이 안 되지 않나?
걸려 있는 돈과 권력이 얼마인데 화목하다고?
그게 가능해??
“시끄럽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식사하렴.”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지는 가운데 고민영이 나를 챙겼다.
고압적이고 전체적으로 싸늘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뭔가 따뜻했다.
“다들 조카 덕분에 들떠서 그런 거니까.”
“저 때문에요?”
“그래. 네가 다시 일어서 준 덕분에 이리 활기가 도는 거 아니겠니.”
그럴…수가 있나?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면 또 뭔가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고무열과 이 가족들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