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quirrel Seeking For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6)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06)화(106/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06화
유리카가 그의 귓바퀴에 살짝 입 맞추며 덧붙였다.
“그럼 부끄러우니까 난 이만 간다. 이따 봐.”
그러고는 정말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침하게 뛰어나가 버렸다.
요한은 막사에 남아서 한숨을 후, 내뱉었다.
커다란 손에 그녀와 닿았던 촉감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막사 안에 유리카의 향기가 아직도 가득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넌…… 진짜 어쩜 그럴까.”
요한은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유리카는 정말 별것 아닌 말들로 그를 천국까지 올려 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이상하게 마법사가 아니라 보통 인간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가 서글프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리고, 그저 사랑과 기쁨만 충만해졌다.
앞으로 다 잘될 것 같다는 그런 오묘한 확신 같은 것도 들었다.
정말 역설적인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수와 함께 있는데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그가 전쟁터에서 내내 모모를 생각한 건 사실이었다.
그 애를 오래전부터 여자로 좋아한 것도 맞았다. 그래서 하이라드 공작 성에서 내내 함께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꾼 것도 사실이고.
권력이고 뭐고, 하이라드의 후계자고 뭐고, 그냥 그 다람쥐만 붙들고 평생 공작 성에서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직접 성인이 된 그녀와 마주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알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녀가 웃으면 세상이 멈추는 것 같았고, 그녀가 슬퍼하면 세상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건 분명히 전쟁터에서 막연하게 그리워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요한은 옅은 한숨을 한번 쉬었다.
어떻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렇게 간절할 수가 있을까.
유리카를 생각하던 그는 밖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메데스트 가문의 하녀가 막사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곳은 메데스트의 막사였다.
주인이 떠난 남의 막사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하이라드의 막사로 돌아왔을 때였다.
“저기, 공작님.”
막사 입구에서 부관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손님? 누군데?”
요한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유리카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 외에 크게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수도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고위 귀족이었다.
당연히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정치적으로 함께 움직이자는 귀족들에서부터 사업을 함께하자는 상인들, 그리고 황가에 대응할 세력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반골들까지.
물론 요한에게는 모두 다 흥미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게…….”
대충 최소한의 대화만 한 뒤 돌려보내려던 요한은 부관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리베나 세브스 백작 영애입니다.”
* * *
리베나가 황가의 막사에서 일어난 이후, 그다음에 일어난 사람은 황후였다.
아직 황제는 젊었고, 그러다 보니 황후 역시 아무래도 사교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찾는 사람도 많았고 사전 약속도 많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아직 남아 있는 메리엘과 테오도르를 보면서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희는 계속 여기 있을 셈이냐?”
그 말에 먼저 대답한 사람은 메리엘이었다.
“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약혼 발표 직후잖아요. 아무래도 지금 사람들 사이에 끼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요.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고요.”
황제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로이먼드가 좋다고 하니 허락은 했지만 메데스트의 공녀가 썩 황태자비 자리로 적절하다고 여긴 건 아니었다.
며칠 전 로이먼드가 비밀 서재에 들어가고 싶다는 부탁을 했을 때는 불안하기까지 했다.
어느 순간부터 황가는 고위 귀족들과 혼인을 하지 않았다.
고위 귀족들과 연합하지 않아도 황족의 권위가 강력했기에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전쟁 후 나타난 하이라드 공작의 존재는 황제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심지어 그 하이라드 공작이 메데스트의 둘째 공녀에게 빠져 있다니.
고위 귀족가의 연합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으로, 메리엘을 로이먼드의 짝으로 인정해 준 것이었다.
특히나 메리엘은 마음씨가 곱고 선량하여 적어도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 로이먼드를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외척 세력이 커지는 건 좋은 일은 아니지. 그저 얌전히 살아 주었으면 좋겠군.’
그런 의미에서 메리엘이 막사를 지키고 있겠다는 건 꽤 괜찮은 상황이었다.
“이 기회에 황제 폐하와 친해지면 그것도 또 좋고요.”
메리엘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황제는 즐겁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흐뭇하게 웃던 그의 시선이 테오도르에게 향했다.
“너는?”
테오도르는 선량한 얼굴을 십분 활용하며 얌전히 대답했다.
“저야…… 금족령 중이니까요. 폐하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로 오늘 같은 날 구경을 나오게 되었으나, 보는 눈이 있으니 다른 활동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역시 황제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마침 테오도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황후도 자리에 없었겠다, 황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하긴, 굳이 책잡힐 일은 안 하는 것이 좋지. 너도 나와 함께 네 형이 얼마나 많은 짐승들을 잡아 오는지 구경이나 하자꾸나.”
테오도르는 눈을 휘어 보이며 사근사근하게 대꾸했다.
“걱정이 많이 됩니다. 형님은 아주 뛰어난 무장이시지만, 그래도 맹수라도 만나 부상이라도 입으면…….”
“누군가 구해 주겠지. 주변에 기사들도 많지 않느냐.”
황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목숨이 아까운 건 기사들도 마찬가지일 듯하여…….”
테오도르의 걱정스러운 말에 황제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왜…… 사냥 대회에서 황족의 목숨을 구해 주면 원하는 포상을 준다는, 그런 조항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그렇군요. 있습니다. 본 기억이 납니다.”
테오도르가 잽싸게 말했다.
사실 그 조항은 리베나의 사주를 받은 관공서 직원이 끼워 넣은 것이었다.
별문제가 되는 내용은 아니라서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게다가 워낙에 조항 자체가 두루뭉술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즐기자꾸나.”
황제는 씩 웃으면서 샴페인 잔을 들었다.
* * *
“용기가 가상해.”
요한은 리베나의 앞에 앉아 다리를 꼬며 선득한 얼굴로 말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봐. 여기까지 찾아오고.”
리베나는 요한과 이토록 가까이 마주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테오도르와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풍기는 위압감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평범한 마법사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대단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런 맹수와도 같은 자가 유리카 앞에서 그토록 온순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의 섬뜩한 보라색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막사 전체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목숨이 아까우니까 찾아왔지요.”
리베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대답했다.
“제가 하이라드 공작저의 막사로 들어온 것을 본 사람이 많습니다. 살인자로 몰려 약혼녀를 난감하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저를 곱게 내보내셔야 할 겁니다.”
애석하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필사적으로 요리조리 잠적하며 피해 오던 리베나가 대놓고 그의 막사에 찾아왔다는 것은 이미 계산이 다 서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공작님.”
리베나의 말에 요한이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글쎄. 너희한테는 쉬운 일 아니던가?”
“그렇지도 않죠. 신전이 예상하지도 못한 시기에 완전히 몰락했으니까요. 저희가 연구해 오던 수많은 약물들은 신관들의 손에 그대로 폐기되었답니다. 황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리베나는 붉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요한이 풍기고 있는 위압감이 엄청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래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공작님, 저와 거래 하나 하시죠. 이건 테오도르 황자님도 모르는 제안입니다.”
요한은 리베나를 마치 미친 사람 보듯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대놓고 반목하던 사이 아니던가.
요한이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나가라고 하려는 찰나였다.
“말씀드렸다시피 거의 대부분의 약물들이 다 폐기되었습니다. 제가 혹시 몰라 세브스 백작저로 가지고 나온 이 약물 한 병 빼고는요.”
리베나가 품 안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냈다.
심각해진 요한의 얼굴을 보며 리베나가 싱긋 웃었다.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약입니다. 은근히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약병을 바라보는 요한의 보랏빛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리베나는 유혹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유리카 공녀님을 늘 공작님 곁에 둘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