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quirrel Seeking For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9)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09)화(109/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09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멧돼지의 사체가 황가의 막사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으르릉…….”
멧돼지를 해치운 호랑이가 보란 듯이 앞발을 멧돼지의 몸에 두고 고개를 들었다.
깜짝 놀라서 황제를 지키기 위해 달려들던 황실 기사들도 그대로 멈춰 섰다.
거리상으로는 당연히 호위 기사들이 가까웠지만, 호랑이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던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상황을 정리한 사람은 황제의 바로 옆에 있던 황실 기사단장이었다.
“폐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황제 역시 즉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나는 괜찮다. 다른 부상자는 없나?”
그사이 리베나는 놀란 척하며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을 땅에 조용히 쏟아 버렸다.
간신히 제조한, 상처 입은 맹수를 흥분시키는 물약이었다.
그녀는 요한에게 신전에 남아 있던 물약을 모두 폐기시키고,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건 반만 사실이었다.
인간을 조종하거나 해칠 수 있는 물약은 리베나 혼자 제조할 수 없었다. 구하기 힘든 고급 재료들은 신전에 남겨 두었다가 파기해 버렸으니까.
조사한다는 핑계로 신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로이먼드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을 다루는 물약은 상황이 좀 달랐다.
리베나는 평생을 메데스트 가문의 비밀에 관해 연구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정확히 말하면 수인의 저주에 걸린 메데스트 가문에 대한 실험이었다.
그러니 인간 외의 짐승에게 영향을 주는 약물들은 어느 정도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절대 그 사실을 들켜선 안 돼.’
일단 증거를 은폐하기는 했으나, 애석하게도 상황은 리베나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분명히…… 분명히 테오도르가 황제를 구했어야 했는데!’
멧돼지에게 상처를 낸 사람이 테오도르이니 누구보다도 빠르게 마법으로 멧돼지를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라니,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였다.
‘메데스트 가문의 짐승들이 가진 반사 신경이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호랑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메데스트의 인장이 새겨진 분홍색 리본이 함께 나부꼈다.
황실 기사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사냥 대회가 너무 오랜만이라 이런 변수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겨도 오랜만의 행사라 유야무야 넘어갈 거라는 리베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게 꼭 그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아니, 예상대로 요한도 반응하지 못한 상황인데 엉뚱한 호랑이가 끼어들어 버린 게 아닌가.
“일단 모두가 놀랐으니 여기서 행사를 마무리 짓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른 귀족가의 막사에서 티타임을 가지다가 급히 달려온 황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단장의 말대로, 오랜만의 행사라 준비가 좀 미흡한 듯합니다.”
눈앞에서 거대한 짐승이 달려드는 것을 목격한 황후는 로이먼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사냥 대회고 뭐고 얼른 끝내자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로이먼드는 상황이 다 끝나고 나서야 사슴 두 마리를 들고 곧바로 달려왔다. 그 역시 놀라서 얼른 황후의 말에 동의했다.
“예, 폐하. 많이 놀라셨을 테니 여기서 행사를 파하는 게 좋겠습니다. 흥도 모두 깨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황제도 많이 놀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커다란 멧돼지가 자신에게 돌진하는 경험은 아주 끔찍했을 것이다.
리베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냥 대회가 파한다는 것은 오늘 일을 꾸밀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다는 뜻이었다.
안타깝지만 테오도르의 금족령이 풀리는 건 실패했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리카 공녀가 데려온 호랑이 덕분에 목숨을 구했군.”
황제는 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메리엘이 빙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까 황족의 목숨을 구하면 청을 들어주신다는, 그런 조항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테오도르 황자님이 말했었던 것 같은데.”
리베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테오도르가 그 조항에 대해 언급한 모양이었다.
“아…… 그랬지.”
황제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의 입으로 무심코 ‘호랑이 덕에 목숨을 구했다.’라고 말한지라 그냥 넘어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분명히 그런 조항이 있었지…….”
상황 정리를 지시하고 있던 로이먼드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아, 맞습니다. 사냥 대회를 위한 특별 조항 8조 10항이었던 것 같은데요.”
로이먼드는 성군이 될 자질이 넘치는 나머지, 이럴 때에도 쓸데없이 유능했다.
“호랑이가 황가의 막사 전체를 구한 건 사실이니 그 조항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메리엘이 로이먼드가 똑똑하다며 박수를 치며 감탄해 보이자, 로이먼드는 뿌듯하다는 듯 씩 웃었다.
로이먼드까지 끼어들자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황제는 이제 멧돼지 위에 아예 올라타서 승리한 표정으로 우쭐대고 있는 호랑이를 흘끗 보고 말했다.
“일단 행사가 끝나고 나서, 내 호랑이에게 약속한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물론 그냥 체면치레로 대충 말한 것이었다.
어차피 호랑이는 말을 못 하니 제대로 된 청을 올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며칠 지난 뒤 메데스트 공작저에 고기나 좀 보내 주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사냥 대회는 곧바로 정리되었다.
들판에 마련된 막사에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던 귀족들 역시 놀라서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던 탓이었다.
황제의 막사에도 멧돼지가 달려드는 판에 자신들이라고 안전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사냥 대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슴 두 마리를 잡은 로이먼드의 실적이 그나마 가장 좋았다.
빠르게 우승자 선언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대단한 성과가 없다 보니 사람들의 뇌리에는 별로 남지 않았다.
리베나는 그 꼴을 보며 한숨을 한번 쉬고 혼란을 틈타 몰래 수하를 불러 쪽지 하나를 건넸다.
수하는 비밀스럽게 쪽지를 받아 들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 후 리베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며 빠르게 해산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한편 수도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남몰래 싱긋 웃는 사람이 있었다.
‘요한이 그 찰나를 놓칠 리가 없잖아.’
바로 유리카였다.
‘다 계획되어 있던 거지.’
리베나의 수족이 몰래 황제가 누군가의 청을 들어줄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을 때부터, 유리카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정확한 계획은 몰라도, 황제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호랑이를 믿은 것이다.
오스카 메데스트는 원래부터도 반응 속도가 빠르고 전쟁터에서도 신출귀몰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호랑이의 모습일 때에는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냥 대회에 오는 길에, 호랑이에게 계속 말했다. 황제가 위험에 빠지면 무조건 구해 주라고.
호랑이는 심드렁한 얼굴이었지만 일곱 번인가 반복해서 말하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었다.
‘자, 이제.’
유리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제 옆에 앉은 요한의 어깨에 기댔다.
‘한 단계만 남았네.’
황제가 특별히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지도 않았다.
요한보다 로이먼드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판을 짜는 것도 좀 얄미웠고.
사냥 대회가 이렇게 빠르게 끝나면서 요한을 대놓고 견제하려는 황제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건 좀 통쾌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다음 귀족 회의 날 봐요, 폐하.’
지금쯤 아무 생각이 없는 황제를 아주 난감하게 할 날이 곧 다가올 테니까.
원래 유리카는 귀족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메데스트의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메리엘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날은 직접 갈 생각이었다. 황제에게 당당히 요구할 것이 있었으니까.
“요한,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요한이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로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가 좋으면 다 좋다는 얼굴이었다.
이제 시들시들해지고 있는 꽃 팔찌를 소중하게 어루만지기도 했다.
유리카는 가만히 웃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저기, 근데 요한.”
이제 중요한 일은 다 끝났으므로, 사소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참이었다.
사소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일이었지만.
“응? 왜?”
유리카의 목소리가 다소 이상한 것을 알았는지 요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리카는 살짝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까 리베나가 네 막사에 왔었다며? 둘이서 무슨 얘기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