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quirrel Seeking For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63)화(63/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63화
저거, 분명히 짙은 스킨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은데.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따가 다람쥐로 다시 변해서 진정시켜 준다는 말인데?”
“아아.”
민망한 건 나뿐인지 요한은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하이라드 공작저에 있을 때 매일매일 해 줄게.”
르나트가 다시 신수로 변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한 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서적에 스치듯이 서술된 대로, ‘짙은 스킨십을 해야 한다.’라는 다소 난감한 일을 하는 대신 앞발 한 번만 대고 마력을 흡수하면 되니까.
“옛날 생각나고 엄청 좋겠다.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
나는 요한이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못 박아 둔 다음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오, 저 탑은 그대로 뒀네?”
예전에 요한이 갇혀서 지내던 외진 탑은 그대로 있었다.
내가 놀라서 묻자 요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대로 두다니?”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상징하는 곳이라 진작에 없애 버렸을 줄 알았지.”
어느새 그의 얼굴에 걸렸던 음험한 기운은 사라지고 친절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내 말에 그가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걸 왜 없애. 내게는 소중한 공간인데.”
“응?”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그렇게 소중했나 싶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요한이 속삭이듯 말했다.
“널 처음 만났잖아.”
“아…….”
순간 나도 모르게 귓가가 확 달아올랐다.
요한처럼 생긴 미남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나도 설렐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아까부터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다. 별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는데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요한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작은 발로 오르던 저 탑의 벽이 얼마나 소중한데 어떻게 없애.”
음…….
“네가 도토리를 들고 노크하던 저 창문은 평생 가보로 간직하려고 해.”
어…….
“네가 맨 처음 인간화를 성공했던 날 덮었던 이불 역시 바로 찾아서 전시해 놓았어.”
아…….
“요즘에도 하루에 한 번씩은 올라가고 있어.”
흐음…….
“그럴 때마다 너무 설레지.”
“아하하…….”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의 스산하고 퇴폐적인 남자는 어디 가고 이상한 또라이만 남아 있었다.
우리 다정하고 상냥한 요한…… 확실히 어딘가 모자라게 컸구나.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함께 공작저 주변을 산책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둘이서 하이라드 공작저를 돌아다닌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사실은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다람쥐의 모습으로 테젠에게 도토리를 던졌을 때를 생생하게 회고하니 요한이 한숨까지 섞어 보이며 작게 웃었다.
“큰일이네.”
요한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내게 해 준 것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어떻게 갚지.”
“요즈음 미안한 건 난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
“솔직히 처음엔 뻔뻔하게 은혜 좀 갚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요즈음엔 내가 너무 과도하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서…….”
“정 미안하다면 민폐는 나한테만 끼쳐.”
요한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며 속삭였다.
“그게 나를 마음껏 이용하는 것에 대한 내 조건이야.”
그, 그게 그렇게 거창하게 조건까지 달 일이었나.
어딘지 모르게 잠긴 목소리가 묘하게 설레는 게 참 이상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일방적으로 요한에게 도움을 청하고 내 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니 딱히 시간을 때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이전과는 뭔가 상황이 달랐다.
하이라드 공작저라는 그의 영역에 들어오니 뭔가 자꾸 요한의 페이스에 말리는 기분…….
그리고 그렇게 꽤 오랫동안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저기, 공작님.”
저 멀리서 꽤 신사적으로 생긴 노인 하나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집사?”
아…… 새로운 집사구나.
나는 신기한 눈으로 요한의 새 집사를 바라보았고, 집사는 내게 예의를 갖춰 인사한 뒤 말했다.
“다급하게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집사가 건넨 짧은 서신에는 황가의 인장이 박혀 있었다.
‘황족이 왜……. 그리고 저렇게 짧은 건 보통 방문 서신일 텐데?’
그런데 황가에서 요한에게 저렇게 급하게 방문 서신을 보낼 일이 뭐가 있지?
내가 뭐라고 물을 새도 없이, 서신을 펼쳐 든 요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 * *
하이라드 공작저의 사용인들은 요한과 유리카를 멀리서 지켜보며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니, 저 유리카 메데스트라는 공녀는 오늘 처음 하이라드 공작저에 온 것 아닌가?
어쩜 저렇게 모든 지리를 다 아는 듯 거침없이 공작저를 누비고 있지?
하이라드 공작저의 사용인들은 요한이 귀환하며 한 차례 다 물갈이가 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예전의 요한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요한이 아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며, 밤마다 외진 탑을 오를 때 빼고는 매일같이 섬뜩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요한은 꽤 합리적이고 유능하여 모시기에 편한 주인이었으나 워낙에 생김새에서 오는 압박이 심하여 늘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심지어 진정 약물을 최소한으로만 먹고 있는 요즈음은 항상 서늘한 기운을 뚝뚝 떨어트리고 다녔다.
티는 내지 않지만 안에서부터 큰 고통이 넘실거릴 테니 가만히만 있어도 기분이 나쁠 것이 뻔했다.
속없는 하녀 몇몇은 ‘저런 냉랭하면서도 선득한 표정이 멋있지.’라든가, ‘늘 아파서 예민한 상태인 건장한 미남도 나름 매력 있지 않아?’ 같은 소리를 해 댔다.
물론 그런 소리는 뒤에서만 할 뿐이지, 앞에서는 감히 정해진 말 외에는 하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요한이 풍기는 분위기가 위압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표정은 뭐란 말인가.
유리카라는, 수도에서 썩 소문이 좋지 않은 저 양녀 앞에서 저렇게 요사스럽게 웃고 있다니.
“분명히 저 가짜 양녀가 여우라고 하지 않았어?”
“누가 봐도 공작님이 여우신데?”
작정하고 미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저 얼굴은 사용인들이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실 사용인들은 유리카에게 큰 호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카가 수도에 막 올라온 순진한 냉미남 요한을 홀릴 대로 홀려 버렸다.’라는 소문이 수도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뭐…… 직접 보니…….
“지금 홀리려고 작정한 사람은 공작님이야…….”
“왜 순진한 여자 하나가 맹수의 서식지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드냐…….”
실제로 그동안 유리카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리카가 자신의 안전을 신경 쓰느라 웬만하면 메데스트 공작저를 벗어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사용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유리카를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기의 요부라는 소문과는 다르게 너무 귀엽게 생겼는데!
게다가 저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표정, 누가 봐도 명백히 미안해하는 얼굴…….
“미안하면 오래 머무르면 되지.”
그 미안함을 이용하여 잔뜩 꾸민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요한이었다.
게다가 유리카는 예전에 하이라드 공작저에 온 적이 있는지, 친숙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하이라드 공작저의 역사를 모르는 사용인들은 모두 다 예전에 무슨 인연이 있었나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산책하는 동안 멀리서 지켜보던 사용인들은 결론을 내렸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어쨌든 유리카는 소문대로의 악녀는 아닌 것 같다는 것.
오히려…….
“와, 이 그네가 아직도 여기 있네. 테젠이 초반에 나한테 관심이 많았을 때는 정말 자주 태워 줬었는데.”
“아하. 테젠과의 기억이 있는 그네구나.”
요한은 유리카가 무슨 말을 해도 산뜻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유리카가 빙그르르 돌아서자마자 그 그네가 폭삭 내려앉았다.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것이 누가 봐도 요한이 마법을 쓴 것이었다.
“오, 여기는 손님이 올 때마다 테젠이 앉아서 나를 자랑하던 바로 그 벤치!”
“그렇구나. 몰랐네.”
유리카의 시선을 피해 벤치가 조용히 무너졌다.
“어머, 이건 테젠이 나를 닮았다며 킬킬거리던 흉측한 동상!”
책을 읽고 있던 쥐 모양 동상이 소리 없이 부스러졌다.
“이건 테젠이 하녀들을 시켜서 밤을 따서 내게 던져 주던 밤나무!”
유리카가 다른 길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밤나무가 천천히 쓰러졌다.
그렇게 유리카가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계속할 동안 공작저의 정원 절반이 사라졌다.
그쯤 되자 사용인들은 결론을 내렸다.
‘저 이상한 공작이 유리카와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옥이 펼쳐질 거야.’
유리카가 이 공작저에서 사라지면, 공작저 자체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요부든 마녀든 최선을 다해 저 조합을 돕는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그 평화로우면서도 평화롭지 않은 산책이 이어지고 있을 때…….
집사가 테오도르의 방문 서신을 들고 요한을 찾았다.
지금 당장 공작저로 오겠다는 짧은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