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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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말이 있다.
마라톤과 같이 긴 달리기를 하며 몸이 극도로 힘든 상황 즉 한계에 다다른 상태를 유지할 때. 어느 순간 힘들다는 것과 고통을 잊게 되며, 무아지경에 빠져들듯 뛰는 것만을 반복하게 될 때.
평소라면 명백히 무리였으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 걸 해내는 경우가 비슷한 예였다.
통증과 불안. 그 모든 것이 둔해지거나 혹은 사라져간다.
그저 ‘무언가’를 행하는 것만으로 막연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어 그것을 계속하게 되는 걸 지칭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마라톤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
‘기대 이상.’
레온하르트는 창을 쳐내거나 받아내면 낼수록, 그러한 감정이 크게 들었다.
한천성이란 생도의 강함.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강하다’는 생각이 제 머릿속에 박혀들 듯 자리했다.
창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분명 내가 창술이란 특성을 얕잡아봤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
창을 받아치고 막아내는 것이 한계였다. 이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 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대련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아무리 생각해도 한천성은 내 예상을 훨씬 크게 넘어선 무언가와 같았다.
채앵!
다시금 왼쪽 어깻죽지를 노려온 창을 쳐내면서도 결국, 전진할 수 없었다.
창을 쳐내며 나아간다.
처음엔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휙! 슈욱!
내가 쳐낸 창이 다시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쏘아져 온다.
회수와 동시에 재차 창이 쇄도해오는 간극은 거의 없는 수준. 심지어 대련이 진행될수록 그 속도는 더욱 빨라져 갔다.
단지 그뿐이라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었을 테지만.
‘전혀 나아갈 수 없어.’
한천성이 휘두르는 창은 변수로 가득했다.
강한 힘을 담아 때론 창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떨 땐 너무 가볍게 느껴져 검으로 받아치는 것조차 기이했다.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내가 이대로 나아가려 하는 순간, 나는 저 창에 그대로 꿰뚫릴 것이다.
그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제자리에 멈춰선 채. 창을 쳐내거나 막아서는 합을 맞추는 지지부진한 대련이 지속된다.
‘조급해하지 마.’
그럴수록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조급하게 행동해, 저 창에 단 한 번의 일격이라도 허용하게 된다면 그 순간 끝이었다.
창은 단 하나의 상처를 허용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어깨든, 다리든, 옆구리든, 그 어디든 저 창에 꿰뚫리는 순간 내 몸은 크게 뒤로 밀려날 터.
생각만 하더라도 그 이상의 대련은 불가능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창의 파괴력이란, 찔리는 순간 거기서 끝이었다.
과감한 공수를 전환하며, 이 대련을 단숨에 그대로 끝내고 싶은 유혹을 억지로 참고 또 참는다.
지금도 빠르게 쇄도해오는 창날을 바라보며 막아내고, 집중해서 검을 휘둘러 간다.
채채채채챙!!
창을 휘두르는 방법이 다시 변해 더욱 살벌하게 쇄도해오는 창. 그것을 부드럽게 쳐내듯 검을 마주쳐갔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이 대련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자… 어느새 내 마음은 잔잔함으로 물들었다.
ㅡ창천일검(蒼天一劍).
푸른 하늘을 담는 단 하나의 검.
불현듯 내 특성이 떠올랐다.
단 하나의 검으로 푸른 하늘을 담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치.
내가 알게 된 특성인 창천일검. 그 이치란 검을 어떻게 다룰 수 있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뜬구름 잡는 듯한 말귀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지식만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지금.
그 이치의 작은 편린이 내게 조금이나마 보이는 듯했다.
검으로 무언가를 베어내고, 어떻게 찔러간다가 아니다.
검을 휘두르는 마음가짐의 차이.
ㅡ푸른 하늘과 같이 평정을 찾는 것.
그러자, 나는 이 대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챙! 챙!
시간차가 없는 창의 가벼움을 흘려내듯 빠르게 쳐내면서, 입가엔 옅은 웃음이 맴돌았다.
‘좋다.’
지금 이 대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당장 내게도 또 나를 상대하는 한천성에게도. 그러니 굳이 대련을 빨리 끝내려 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서로가 성장하는 게 그대로 느껴지니까.
바로 내 특성이, 그리고 한천성의 특성이…….
ㅡㅡ!
연신 빠르게 찔러오는 창날을 바라보면서도, 그에 맞춰 검을 휘두르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왜 검을 휘둘러야 하고, 이치를 생각해야 하는지 두루뭉실했는데. 합을 맞춰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즐거움이 있었다.
동시에 제 검에 깃든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넘실대는 게 눈에 사로잡혔다.
내 특성인 창천일검이 여태 수련보다도 더욱 크게 나아가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일종의 여유마저 느낄 수 있었다.
창날을 쳐내거나 막아내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사고가 넓어졌다.
한천성.
C클래스, 특성의 등급은 커먼 창술.
그는 객관적인 정보만 본다면 그리 대단치 않아야 했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엔 대단했다.
직접 창을 맞대며 검을 휘두르는 나는 한천성의 특별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특성이 전부가 아니야.’
특성으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사상이 아주 당연시되는 세상. 이 세상에선 거의 모두가 그러했다. 당장 우리 가족들부터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까지. 특성을 중요시하며 그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사람이란 각자 할 일이 있으며,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갑자기 세상이 정해준 특성의 등급으로 사람의 가치를 한정해선 안되는 거였다.
비록 내가 레전더리란 무척 뛰어난 특성을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특성이 전부라 생각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천성이란 생도를 편견 없이 볼 수 있었다.
C클래스와 커먼에 한정되어 바라보며, 그가 보인 강함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는다.
커먼 특성이라 보기 힘든 비정상적인 강함. 그것에 의문을 가지는 대신 나는 이 정도의 강함에 그만한 노력이 깃들어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강함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아래로 보지도 않는다.
그러자, 지지부진하게 끌리던 대련에 조급해하던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갔다.
조급함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채운 감정들은 좋은 방향의 감정들이었다.
즐거움, 행복, 쾌감, 희열, 무엇이라 불러도 좋은 긍정적인 감정.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듯 마음에 한 점의 의문도, 주저도 사라져간다.
돌연, 소리가 들려왔다.
“하악… 하악…”
그것도 너무 가쁜 숨소리가 들려 왔다.
채채챙!
그러나 그건 빠르게 쇄도한 창을 쳐내며 울린 소리에, 금세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뒤늦게 한천성에 시선을 주자, 나는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한천성이 지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전신은 지금 땀에 흠뻑 젖어있었으며, 완전히 흐트러져 있어 보였다.
검은 머리칼아래 흐릿해진 두 눈빛마저 모두 제 눈에 들어왔다.
‘상태가… 정상이 아니야.’
한계.
누가 보더라도 한계이자,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가쁜 숨소리를 내쉬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
마치 이상을 호소하듯 한천성의 몸은 모든 면이 이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천성은 여태껏 이 모습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는 건가?’
맹렬하게 쇄도해온 창에만 집중하고 있어 나는 한천성이 어떠한 모습으로 창을 휘두를지 생각지 않았었다.
채앵! 채앵!
강하게 찔러오는 창을 나 역시 강하게 받아치면서, 또다른 이질적임이 보였다.
한천성의 전신에 깃든 미미한 푸른빛의 기운.
그건 특성 레벨이 다음 레벨을 암시하는 일종의 징조와도 같다.
축복의 빛이라 불리는 모두가 꿈꾸는 현상이었다.
채채채채챙!
돌연 속도가 급격히 변한 창을 마주쳐가면서도 마음 한편엔 갈등이 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대련이 어떻게 끝나든, 이제 그 결과에 연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미 이 자체로 내겐 이미 큰 의미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천성의 몸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대로 대련을 멈출 수도 없었다.
대련을 멈춘다면, 지금 한천성의 전신에 깃든 축복의 빛은 한천성을 완전히 감싸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그건 그에게 있어 큰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그 해결책을 깨닫게 됐으니.
계속 검과 창을 마주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단 하나의 답은 바로 이 대련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야 하는 것.
지금 저 축복의 빛이 완전히 개화해 한천성이 특성 레벨 4에 다다르든. 그게 아니든 답은 그것뿐이었다.
내 검으로 이 대련을 끝내야만 했다.
지금 창을 내지르는 한천성의 몸은 이미 삐걱대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 몸에 극심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간 상태. 나도 수련에 열중해봤기에 저 상태가 어떠한 느낌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저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그러니.’
내가 끝내야 한다.
직후.
ㅡ!
대련 내내 수비에 치중하던 레온하르트의 검은 단숨에 급변했다.
***
“……”
한천성의 시야는 흐릿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엔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
창을 내지르는데도, 어떻게 내지르는지.
창을 베어가듯 크게 휘둘러도 어떻게 휘두르는지.
지금 그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무아지경으로 창을 휘두르며 대련을 진행할 뿐. 한천성은 명백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몸도, 정신도. 그 모두가 그의 한계를 넘어선 거였다.
그래서 한천성은 지금 붕 떠 있는 것만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고, 내 몸이 통제를 벗어난 것만 같은 묘한 기분.
몸에선 정말 어떠한 감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마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그저 반사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창을 찌르고, 베어가고, 그게 막히면 또다시 찌르고 베어가고….
그렇게 무한히 마주쳐간다.
채채채채채챙…….
귓가를 강타하는 강렬한 쇳소리가 이젠 당연하게 느껴졌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검과 창이 마주치며 일어난 불꽃이 연신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러다 갑작스레 몸에 감각이 돌아왔다.
채애앵! 채애앵!!
이전보다도 더욱 강렬한 쇳소리와 함께 창을 쥔 두 손이 크게 밀려나며, 멍한 시야가 단숨에 선명히 시야를 되찾는다.
“큭!”
그와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강대하기 그지없는 푸른빛의 현현(玄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