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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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그런 의미에서 한천성 생도?”
“…예. 교관님.”
갑작스러운 부름에 멍하니 답하자, 칼리는 돌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강의가 끝난 후. 생도는 교관을 따라오도록.”
…
이후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칼리의 강의는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말. 전장에 대한 위기감.
그 모든 걸 생도에게 각인시켰던 칼리의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었고, 진행된 강의조차 대다수 생도가 듣기에도 이해하기 쉽게 진행되었다. 칼리 역시, 첫 강의이니만큼 실전을 겨룬다거나, 어려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진 않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 감정을 통제하는 법. 의외로 마음에 관련한 것에 대해 칼리는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가 다가왔다.
툭툭.
교단에 선 칼리가 가져온 교보재를 가볍게 정리하곤, 그대로 첫 강의의 끝을 고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생도들 모두 강의 듣느라 수고했어, 나머지 시간은 자유야. C클래스에 생도에게 할당된 수련장에 가서 자기 계발을 해도 좋고, 아니면 자기만의 수련을 해도 좋아. 휴식을 취해도 상관없어. 아니면 생도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것도 이 아카데미에 적응하는 하나의 방법이겠지.”
강의를 끝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정작 내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따라오라고…….’
강의가 끝났지만, 이 공간에 있는 생도 중 오직 나만이 자유가 아니었다.
칼리가 날 대놓고 지목하고 끝나고서 따라오라고 말했으니. 그에 관한 거부권조차 없다는 소리였다.
대체 내가 그 분위기에서 어떻게 거부했어야 할까.
흘깃.
칼리가 끝에서 내게 살며시 작은 시선을 주곤 교단을 떠나자, 내겐 마치 그 모습이 일종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ㅡ알아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툭.
그 순간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린 다비드가 싱긋 웃자 멍하니 시선이 갔다.
“한천성. 칼리 교관님이 뭐 때문에 그런진 몰라도 오늘 하루 고생 좀 해라.”
“…그래. 그래야지.”
멍하니 답하면서 다비드가 몸을 일으키자, 나 역시 몸을 일으켰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도구를 정리하면서도 기분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저벅.
그런 내 시야엔 곧바로 자리를 떠나 다비드가 머지않은 여생도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게 보였다.
“에일리! 이후에 뭐할 거야? 난 아카데미 둘러보면서 식당에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면 너희 일행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어! 괜찮아. 그럼 같이 가자.”
“고마워.”
나랑 달리 이미 친해진 생도가 있는 듯한데, 그걸 보면서도 내 기분이 이상하기만 했다.
‘이게 맞는 건가.’
칼리에게 찍혔다는 느낌은 없는데, 갑자기 나만 이 강의실에서 고립된 듯한 이 이상야릇한 기분을 형용할 수 없었다.
나도 본래라면 다비드와 저렇게 같이 어울려야 할 테니까.
저벅.
생각하면서 나는 강의실 아래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곰곰이 따져보면 당장 이 상황이 그리 나쁜 건 아니다.
내 강의를 칼리가 진행한다는 것도 무척 좋은 일이고, 그녀와 따로 연이 생기게 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칼리가 날 부정적으로 바라본 건 아니니까.
‘좋게 생각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입구를 나서려던 그때.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흘깃 고개를 돌리자, 누가 보더라도 눈에 확 띄는 핑크 트윈테일. 루나 베르몬트, 그녀가 보였다.
“흥!”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어제처럼 코웃음 치며 고갤 돌리는데. 그걸 보면서도 이젠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밀리아. 우리 바로 아카데미 식당가자. 나 배고파!”
“알았어. 그래도 루나야. 같은 생도인데… 그렇게 삐딱한 태도는 좋지 않아.”
바로 곁에 있던 흑색 단발의 여성. 밀리아가 조금 미안한 눈빛으로 루나를 제지하자, 무심코 궁금했다.
‘밀리아가 저렇게 말하면 루나의 태도가 바뀔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시선을 주자.
“…몰라, 난 그냥 밀리아 너랑만 친하게 지내도 괜찮은걸. 딱히 다른 생도랑 친해지고 싶지 않아.”
“루나, 정말….”
그에 밀리아가 곤란하다는 듯 답하자, 나는 픽 웃으며 그대로 고갤 돌렸다.
밀리아가 말해도 저 정도라면, 루나는 지금 누가 말해도 안 바뀐다는 거였다. 그래서 새삼 감탄이 새어 나왔다.
‘레온하르트. 넌 대체 어떤 싸움을 해온 거냐.’
원작에선 저 루나가 인기 많은 히로인이었다니.
대놓고 츤츤거리는 모습을 과거 나도 좋게 본적은 있다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강의실을 빠져나오자, 벽에 기댄 칼리가 보였다.
교보재를 가슴 언저리에 올린 채, 바로 내게 시선을 주는데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한천성 생도 좀 늦어?”
“죄, 죄송합니다. 교관님.”
“괜찮아.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는 말고. 딱히 내가 생도에게 나쁜 짓을 하려거나 질책하려는 건 전혀 아니니까. 그냥 같이 밥이나 한번 먹고 싶었어, 어제 대련에 대해서 나도 전해 들었거든.”
싱긋 미소 지은 칼리가 천천히 앞장서서 걷는데, 바로 걸음을 맞추면서도 순간 얼떨떨했다.
‘뭐야. 이 갭차이는…?’
강의실에서 보던 칼리의 모습과 지금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 들지도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고 할까.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듯했다.
“아, 맞다. 한천성 생도. 혹시 내가 다른 생도와 어울릴 시간을 방해한 건가? 미리 선약이 있었다든가….”
그러다 칼리가 조심스레 물어오자, 바로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선약을 잡아놓진 않았어요. 괜찮습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가볍게 답하며 걷는 칼리가 은은히 미소 짓는데, 무심코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홍염과 같은 붉은 머리칼 아래 오똑한 콧선하며 커다란 눈망울까지. 이렇게 가까이서 보자 의외로 그렇게 무서운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냥 예쁜 사람.’
그것도 무척 예쁜 사람이라고 느껴질 뿐.
거기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조차 긍정적이었다.
호의, 선의 그렇게 불러도 좋을 감정이 가벼운 태도, 말투 하나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저벅. 또각.
서로 다른 걸음 소리와 함께 걷기 시작하자, 곧바로 다른 생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C2, C3 클래스들도 하나둘 강의가 끝난 건지 생도가 거의 쏟아져나오는데, 나온 사람들은 우릴 보곤 그대로 멈칫했다.
아무래도 교관 특유의 검은 정장을 걸친 칼리를 놀란 것처럼 보였다.
마주친 생도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인사하자, 칼리는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괜찮아. 그렇게까지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여유가 깃든 그 음성을 들으면서도 새삼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칼리의 곁에서 이렇게 걷고 있다니. 거기다 밥까지 얻어먹는다는 게 뭔가 현실 같지 않았다.
‘…진짜 믿기지 않네.’
사실 칼리는 그랜드 로열 아카데미. ‘그로아’에서도 꽤 비중이 높은 캐릭터였다.
비록 레온하르트의 히로인 역은 아니었지만, 왜 히로인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다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
노력을 중시하고 활약상이 높다. 거기다 예쁜 미인이기까지 하니 어쩌면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했다.
소설 속에선 무심한 듯 가볍게 주인공에게 관심을 표하는 모습들이 은근한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사실, 나도 꽤 좋아했던 캐릭터 중 하나였…….
“한천성 생도?”
그러다 들린 음성에 멈칫했다.
“…네. 교관님.”
“생도에겐 혹시 내가 많이 불편해?”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내가 보기엔 한천성 생도는 그렇게 말이 없는 성격처럼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흘깃 내게 시선을 돌리며 장난스레 미소 짓는데.
두근!
순간.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지금 그 소설 속 칼리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것도 내게 먼저 관심을 표하면서.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있는 거였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빠르게 머리를 굴리곤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느꼈던 칼리 교관님의 성격은 조금 차분하신 편이신 것 같아서. 제가 말이 많으면 싫어하실 것 같았습니다.”
내가 침착하게 답하자, 칼리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야. 강의 도중이니까 그런 거지. 교관이 생도에게 우습게 보일 순 없잖아? 그리고 제라드라는 생도가 첫 강의부터 날 너무 우습게 본듯해서 기강 좀 잡으려 한 거야. 다시 말하지만. 강의 외엔 생도에게 어떠한 강요를 하진 않아. 강의할 때처럼 딱딱하게 굴지도 않고… 뭐, 강의를 들었던 한천성 생도가 보기엔 내가 그런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끝에서 말을 흘리며 묘한 시선을 주자, 같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괜히 몸이 경직되는 듯했다.
‘왜 이렇게 매력적으로 말하는 거야.’
듣는 내가 다 설레는 말을 연달아 해오니까, 낯설 정도였다.
이 아카데미에 무사히 들어왔다는 실감보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이 현실로 느껴지니까.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쁨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
저벅. 또각.
같이 걸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은 흔들렸다.
이후 아카데미를 빠져나오자, 꽤 세련된 아카데미 식당이 보였다.
당연히 그곳으로 향하려던 차.
“한천성 생도. 거기로 가지 않을 거야.”
돌연 칼리가 고갤 저으며 살며시 제지해왔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데, 저도 모르게 느껴졌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교관이 하나둘 걸음을 옮기는 건물. 바로 교관 전용 식당이라는 걸.
그렇게 생도가 들어서는 식당이 아닌, 교관 전용 식당으로 칼리가 나를 이끌자 함께 걸어가면서도 신기하기만 했다.
“…쟨 뭐야?”
“그러게 진짜 뭐지?”
“생도복을 보아 C클래스 생도 같은데.”
“그런데 교관이랑 같이 간다니….”
그러다. 생도 전용 식당 앞으로 줄을 선 생도로부터 여러 말이 들려오자, 괜히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다.
그야 기분이 들뜨지 않는 게 이상했다.
ㅡ특별대우.
누가 보더라도 나는 지금 칼리에게 특별대우를 받으며 교관 전용 식당에 들어서게 되는 거니까.
“꽤 기대해도 좋을 거야. 생도 식당과는 음식의 질이 차원이 다를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감사할 필요까진 없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생도에게 궁금한 게 있으니까. 일종의 대가라고 생각해.”
칼리의 가벼운 답을 들으면서 교관 전용 식당에 들어서자, 감탄부터 새어 나왔다.
“…와.”
어디 드라마, 아니 영화에서나 보던 호화로운 중세 식당. 그것도 뷔페형식인데 보면서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제 생도 식당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간편하게 한 끼 때운 것과는… 가히 차원이 다른 고급 음식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대련하길 잘했어.’
레온하르트와의 대련은 내게 무엇보다 큰 기연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 눈덩이가 구르고 굴러서 내게 이런 행운까지 가져다준 거니까.
“훗… 그렇게 놀라워?”
내 모습이 귀엽다는 듯 묻는 칼리를 보면서 가슴은 더 세차게 두근거렸다.
미녀와의 점심.
그것도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가 이렇게 살아 숨 쉬며 앞에 존재하는데 어떻게 내가 설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