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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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성 생도…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어?”
칼리의 말에 순간 천성의 사고가 멈췄다.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된 것처럼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지금 이건 쉽게 답하고 넘어갈 무언가가 아니었다. 내가 내뱉은 말… 그건 칼리에게 있어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닌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백지로 변해버린 머릿속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벙찐 그때.
칼리는 순간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미안해. 내가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만났을 리가 없는데. 한천성 생도. 방금 내가 한 말은 잊어줘.”
“예. 알겠습니다.”
어색하게 답한 그때. 칼리는 그 눈빛을 흐리며 이전과는 명백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린 거라고.
…
이후 두 사람 간의 식사 시간은 식기를 오가는 작은 소리만이 존재했고, 정적 속에 식사만 이어졌다.
갑작스레 공기가 무거워지며, 어색하고 불편함이 느껴진다.
칼리가 이전의 모습과 달리 어색해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이자, 천성도 선뜻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순 없었다.
“…”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내뱉은 ‘그 말’.
그건 지금 칼리에게 있어선 금기와도 같았다. 그리고 대다수는 꺼낸 적도 없을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었을 때 칼리가 느꼈을 충격의 내성조차 아예 없을 터.
그 말은 그녀가 전장에 있었던 과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칼리를 대신해 ‘죽었던’ 이름 없는 자가 버릇처럼 꺼냈던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칼리를 완전히 바꾼 말이기도 했다.
과거 특성 우월주의에 빠져있던 그녀가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서, 노력을 중시하고 특성이 낮은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도 같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칼리 앞에서 그대로 그 죽은 자가 했던 말을 내뱉은 거였다.
그것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ㅡ.
“…”
지금도 말없이 식사에 집중하는 칼리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게 됐다.
“칼리 교관님.”
“…어?”
이전과 달리 어색하게 답하는 칼리를 바라보며, 나는 이대로 이 만남을 끝내면 안될 것 같다고 느꼈다.
‘식사가 끝나는 순간 그대로 칼리와 헤어지겠지만.’
그렇게 이 자리가 끝난다면 나는 그녀에게 그저 큰 상처를 입힌 것과 같았다.
여태껏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칼리의 마음속에 존재한 상처를 건드린 상태로 헤어지게 된다는 건. 내가 싫었다.
나는 그렇게 칼리와의 만남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
내 시선을 받은 칼리의 두 눈은 이전과 달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 자신조차 감정의 동요가 혼란스럽다는 듯. 그럼에도 그녀는 교관으로서 지금 날 마주하고 있었다.
내 말에 집중해서 들어주기 위해서.
“입학시험 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 입학시험 때…? 아니야, 뭘. 나야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명백히 부자연스럽게 답하는 칼리를 보며 나는 옅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입학시험 때 칼리 교관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은 제게 있어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현실을 직면하고 있었음에도, 사실 제 마음은 그리 강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커먼 특성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닐지도 불확실한 마음이 더 강했었죠.”
“…그래? 아, 그랬었구나. 그럼 다행이네.”
계속해서 그녀에게 금기와도 같은 말을 섞자, 날 바라보는 칼리의 눈빛은 더욱 가라앉았다.
그녀는 이제 아예 내 시선을 조금씩 피하고 있었다. 그 태도에서 난 여실히 보였다. 지금 내 말을 껄끄러워하고 외면하려 한다는 걸.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더 말해야 했다.
“그때 제게 해주셨던 칼리 교관님의 말은 별거 아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제겐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제가 현실을 직시하고 앞을 나아가는데 교관님의 말은 큰 도움이 됐거든요. 어제 대련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에도 교관님의 말씀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어요.”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전처럼 그녀를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감정이라던가, 설렘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전하듯 말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 말은 진심이었다.
입학시험을 치를 때 나는 분명 자신감 있게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보인 활약에 반응해준 건 오직 칼리뿐이었다. 다른 시험관은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듯 내게 아예 말조차 걸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난 칼리로 인해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입학시험의 결과에서 B클래스라는 높은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 후에도 내 행동에 깃든 자존감, 자신감엔 칼리에게 인정받았다는 게 알게 모르게 떠올랐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관심을 가져줬으니까. 날 인정해줬으니까.
그 누구도 그 이전까지 내 특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노력이란 말을 꺼낸 사람은 없었던 거였다.
그렇기에 칼리가 내게 건넨 그 말들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
내 말에도 칼리는 그저 작은 숨을 내쉴 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로선 지금 내 말을 멈출 수도 없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잠자코 듣는 걸 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새삼 느껴졌다.
내가 꺼냈던 ‘그 말’이 얼마나 칼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지.
사실 그 이름 없는 자가 칼리와 연인관계였다던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에 있었다는 건 전혀 아니었다.
칼리는 자신으로 인해 그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남자가 내뱉은 말.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구해주었다는 그 현실은 그녀에겐 너무나 큰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말에도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현실을 직면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렇게 절 성장시켜나갈 수 있다고 말이죠.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절 유일하게 인정해주신 교관님의 말씀은 정말 큰 도움이 됐기에… 그래서 저도 교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긴말을 끝마치며 나는 다시금 옅게 웃었다.
내 말에 칼리는 그제야 묘한 반응을 보였다.
“…”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녀는 모처럼 시선을 마주쳐왔다. 그러면서도 순간 멈칫하는 모습이 내겐 선명히 보였다.
칼리를 대신해 전장에서 죽어 갔던 이름 없는 자가 바랐던 것. 그녀는 그 사고로 인해 자신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며 노력이란 것을 중시하게 됐다. 특성의 고하를 따지지도 않고, 사람의 본질을 바라보려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칼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말로 인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이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그녀는 그 후로 마음을 완전히 바꿔 다르게 행동하지만, 주변에선 오히려 가진 자가 노력이란 말을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칼리 역시, 그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난 칼리가 단지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러한 행동과 마음은 다른 이에게 제대로 닿아야 제대로 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게 내겐 조금이나마 닿았다고 답해주려는 것.
“…….”
내 말에 멍하니 바라보는 칼리를 바라보며 나는 내 할말이 끝났다고 여겼다.
“그럼 교관님.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식사 대접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말을 끝마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면서도 기분은 묘했다.
그런 날 바라보는 칼리의 시선은 여전히 오묘했다.
그녀가 내 말을 좋게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로.
‘혹시… 주제넘은 말이었을까.’
무심코 건드리게 된 그 마음의 상처를 내가 조금이나마 봉합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뒤늦게 민망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진짜 낯간지러운 말들을 잘도 내뱉었구나.’
그녀에게 내뱉은 말을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잘도 했다고.
저벅.
그렇게 지나쳐가며 마주친 교관들께 깍듯하게 인사 건네며 이동하던 그때.
“자, 잠깐만. 한천성 생도!”
돌연 다급한 칼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툭.
그에 나도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
호기심.
그리고 관심.
입학시험 때만 해도 ‘칼리’가 느낀 한천성에 대한 감정은 고작 그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성은 창술, 등급은 확인할 것도 없이 커먼. 그런데 3레벨을 달성했다고 말하니까. 자연스레 느껴졌다.
한천성이란 특이한 이름의 생도가 정말 수많은 노력을 했으리란 것을.
커먼 특성임에도 3레벨을 찍는 건 매해 입학하는 생도 중에서도 정말 극소수만이 달성한 레벨이었으니까.
다만 그 후로 그렇게 그 생도에게 큰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런데 불현듯 입학식 날 치러진 대련에 대해 소식을 듣게 됐다.
수석 생도인 레온하르트와 자신이 시험을 봤던 한천성이란 생도가 대련을 벌였다는 너무나 믿기 힘든 소식.
…난 처음 그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분이 나빠졌었다. 상위 클래스 생도가 하위 클래스 생도를 상대로 흔히 벌이는 ‘더러운 짓’이라고 느껴졌으니까.
매해 아카데미엔 그런 더러운 짓은 꼭 벌어지곤 했다.
상위 클래스 생도가 하위 클래스 생도를 도발하고, 하위 생도가 그 도발을 견디지 못하고 대련을 신청한다.
그리고 이어진 더러운 대련의 결과는 언제나처럼….
하위 생도의 처참한 패배로 끝난다.
그 후 하위 생도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멸시. 대련 후에 생도가 느꼈을 참담한 심정까지.
그 모든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아니까.
대련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난 단숨에 그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대련의 결과가 무승부라는 것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사실 여부를 거듭 확인하며, 직접 수련 담당 교관을 찾아가 대련에 상세한 내용마저 듣고 나서야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하게 됐다.
ㅡ진정한 노력의 결실을 본 생도가 있다.
‘한천성’이란 특이한 이름 세 글자를 다시금 선명히 떠올리게 됐으며, 직접 C1클래스 담당 교관을 찾아가 아예 담당 클래스를 바꿔 달라고 나는 무리와 같은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끝내 억지로 나는 C1클래스를 담당 교관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후. 직접 첫 강의를 하며 생도를 마주하고, 식사를 이어가며 여러 대화가 오갈 때까지.
나는 한천성이란 생도에 대해 더 놀라게 됐다.
25살이란 짧은 인생 속에서도 이렇게 놀란 적이 얼마나 됐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생도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 생각의 깊이, 행동력 그리고 결단력까지 다른 생도와 무엇하나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듣게 된 ‘그 말’에 나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ㅡ현실을 직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어떻게.’
어떻게…한천성 생도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그 남자가 습관처럼 내뱉던 특유의 말을 이 생도가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걸까.
그것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후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했는지, 나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멍했으니까.
너무나 뜻밖의 말을 들어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평정을 유지하며 생도의 말을 들어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생도의 말은 점차 내 귀에 들어왔다.
너무나 혼란스럽고, 큰 충격을 느꼈음에도 이상하게 한천성 생도의 말은 제 귓가에 살며시 속삭이듯 뜻이 전해져 왔다.
ㅡ그래서 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현실을 직면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렇게 절 성장시켜나갈 수 있다고 말이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절 인정해주신 교관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됐기에… 그래서 저도 교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마주치게 됐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흐트러진 모습인 걸 아는데. 시선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교관님.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이렇게 식사 대접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제대로 들린 생도의 잔잔한 음성.
내가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 텐데. 생도는 옅게 미소 짓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떠나가는 생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뭔가… 뭔가가 이상했다.
이대로 한천성 생도를 보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
…….
“자, 잠깐만. 한천성 생도!”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나는 입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