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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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서 있는 칼리를 보며 그대로 지면을 박찬다.
ㅡ!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은 칼끝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한번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무저갱에 떨어질 것만 같은 기이한 감각.
위기감. 경각심. 그 무엇이라도 불러도 좋을 감정이 차올라 내 마음을 강하게 휘감는다.
ㅡ! ㅡ! ㅡ!
지면을 가볍게 박차며 이동하듯 칼리의 주위를 맴돌듯 이동한다.
압도적인 전력 차, 그런데도 변수가 없는 직선적인 공격을 감행한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난 변수를 노린다.
저 검과 마주치는 건 무엇을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떠오르지 않는 지금. 그렇다고 내가 저 검을 피해 칼리에게 창을 찔러넣는 건 불가능.
단언컨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 최대한 정면으로 맞붙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
그럼에도 칼리는 주변을 맴도는 내게 시선을 줄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명백히 여유를 넘어선 자만, 오만이 깃든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 시선에 무심코 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언제 어느 때나 가져야 한다고 느꼈던 자신감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을 때. 그게 어떻게 겉으로 표출되며 발현되는지.
바로 칼리에겐 진정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저 눈빛만으로 상대에게 그 자신감을 전할 수 있다고.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조금은 꺾일 것만 같았다.
“한천성 생도. 이 속도로는 내 시선을 끌 순 없을 거야.”
그러다 툭. 칼리가 말하며 미소 짓는데,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핏 듣기엔 내 속도가 느리다고 말하는 듯하지만, 그건 지금 날 아래로 보는 게 아니다.
ㅡ더 빨리.
더 민첩하게 움직여 자신의 시선을 끌어보라는 듯 그녀는 지금 날 자극하는 거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걸 바로 받아들였다. 생각을 가다듬고 창대에 집중한 마나를 조금 분산시켜 다리에 더욱 집중시켰다.
당장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닿지 않으면 의미 없다.
자연스레 한 번, 한 번의 지면을 디디는 발놀림에 신경 쓰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더욱 빠르게, 상대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내 움직임에 더욱 신경 쓰게끔.
이전과 같이 연격을 퍼붓는다는 형식의 공격은 꿈도 꿀 수 없다.
어떻게 저 진동이 깃든 검을 상대로 내가 마주칠 수 있을까.
지금은 흘려내듯 베어가는 형식의 공격을 감행해야 했다.
그리고 그 첫수.
슉!
공기를 베어가며 나아가는 창은 이전과도 전혀 달랐다.
아무런 저항 없이 대기를 가르듯 나아가는 창은 올곧았다. 푸른 마나에 휩싸인 창은 거대한 반월을 단숨에 그려내었고, 그 창끝이 향하는 곳엔 칼리의 머리가 존재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움직인다.
ㅡㅡㅡ!
극한으로 집중하며 진동하는 그 검이 향하는 궤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궤도를 어떻게 벗어나려 하지만, 내 창은 역시 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채채채채채챙!
검과 창이 마주친 순간. 마치 수십 번을 마주친듯한 기이한 마찰음이 단숨에 귓가를 강타했다.
거의 본능에 가깝게 지면을 박차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덜덜!
창을 쥔 양손이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걸 억지로 힘주어 제지하며 다시금 지면을 박찬다.
ㅡ!
이번엔 아래를 휩쓸듯 몸을 회전하며 동시에 창을 칼리의 발목을 베어가듯 강하게 베어간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선 채. 진동하는 검을 가볍게 아래로 내리는 칼리의 모습을.
ㅡㅡㅡ!!
채채채채채채챙!!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마찰음과 함께 창을 쥔 손에 큰 부하가 따라왔다.
지금 나는 큰 회전으로 인해 강한 힘이 담긴 자세. 그리고 변수를 두기 위해 순간의 발디딤은 무척 불안정했다.
당연히 안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고, 그로 인한 마주침의 결과는… 처참했다.
쨍! 째앵…!
내 손을 떠난 창이 허무하리만큼 지면을 나뒹굴며 기이한 소릴 울려간다.
그리고 그 여파가 남아있는 양손은 너무나 크게 흔들렸다.
“…”
주저할 새도 없이 창을 집기 위해 바로 몸을 날리면서, 아무런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더는 헛웃음도, 긴장으로 물든 마음도 그 모든 게 사라져갔다.
‘내가 기고만장했던 걸까.’
내가 이 대련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을까.
핸디캡을 주듯 엘리미앙의 배려로 부하를 아직도 주고 있는 걸까.
아니, 그 모든 게 전혀 아니었다.
지금 이 모습이 내 진심이자 전력이었다.
차라리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고작 단 두 번의 마주침으로 난 완전히 깨닫고 말았다.
스륵.
창을 다시금 들어 올리면서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정말…. 정말이지 바보 같았다.
나는 어제의 대련에서만 해도 분명 마음먹었었다.
마음이 꺾여도 괜찮다고, 져도 괜찮다고.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대련에서 내가 칼리를 당연히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당연히 모두 알고 있다.
턱도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아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현실’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녀와 내 차이가 아니라. 현실을.
그저 너무 처참하고도 처참한… 이 현실을.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약한지조차도… 지금에서야 제대로 직면한 기분이었다.
스륵!
더욱 강하게 창대를 움켜쥐면서도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억눌렀다.
‘이게… 지금의 나야.’
현실을 받아들이려거 무뎐히 애썼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커먼 특성, 내가 지닌 창술의 한계. 그 결과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내 가슴에, 그리고 내 시야에 파고든다.
내가 쥔 철창이란 너무나 투박하고… 허무하리만큼 덧없는 냉병기에 지나지 않았다.
압도적인 특성. 그 외에도 상성이 맞지 않는 특성을 지닌 상대에겐 한없이 무력하고 또 무력하다.
어제 레온하르트와의 대련처럼 극적인 결과, 분투와 선전으로 무승부라는 기적과 같은 결과는…그저 기적일 뿐이었다.
모든 상황이 운 좋게 맞물려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 결과.
“한천성 생도.”
그러다 들린 소리에 멍하니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검에 깃든 진동을 지워내는 칼리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무기를 놓친 날 비웃지도 않았고, 대련의 느낌이 어떻다는지. 그 무엇도 그 눈에 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날 응시한다.
“…자책하지 마.”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순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를 자책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일 뿐.
“그리고 자신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다시 이어진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칼리는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대련은 한천성 생도에겐 그렇게 중요한 무언가가 아니야. 대련하기 전엔 한천성 생도에게 내가 검으로 마주쳐서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저 내 일방적인 특성의 과시와도 같았지. 그러니 이 대련에 의미를 두려 하지도, 찾으려 하지도 마. 나는 단지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레전더리 특성을 지닌 생도와의 대련을 받아들인 한천성 생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할지. 그리고 정말 괜찮을지도…”
말을 잇는 칼리는 끝에서 미안한 기색을 담았다.
마치 이 대련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써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마도 공학 물품을 착용할 때만 해도 부풀었던 내 마음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른 이를 탓하는 것도 우습고, 내 특성에 대한 한탄을 가지는 것도 그저 바보 같았다.
그냥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나는 이제 받아들였을 뿐이다.
또각.
검을 내린 칼리가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며… 나는 차분히 숨을 골랐다.
“단언할 수 있어. 지금 한천성 생도는 강해. 올해 입학한 생도 기준으론 한천성 생도를 대련으로 이길 수 있는 생도는 거의 없을 거야.”
직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말에,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뭐가….’
대체 내 무엇이 강하다는 걸까.
조금 전 그녀와의 대련은 합을 겨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냥 계란으로 바위를 두드린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성 레벨의 차이.
그리고 서로가 지닌 특성의 차이.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칼리는 특성을 쓰지 않고도, 나를 아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을 테니까.
생각하는 도중에도 칼리는 내게 다가왔다.
또각.
“……”
그리고 내 앞에 서게 된 그녀는 여전히 미안한 시선으로 날 올려다봤다.
미미한 서로의 키 차이.
그로 인해 시선을 마주치며 엇갈리는 시선 사이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당장 대련의 패배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 레온하르트에게 내가 마음속으로 졌다고 느낀 것과도 전혀 다른 무언가가 내 마음을 크게 두드렸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해도 칼리에겐 절대 닿지 못하리라는 확신. 그게 마음 속 깊이 느껴졌다.
현실이란 벽이 내게 성큼 다가온 듯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너무 현실을 가볍게 여겼던 게 아닐까.
특성의 차이, 그리고 좁힐 수 없는 벽은 시간을 넘어 느껴졌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노력하고 시간을 쏟아붓더라도… 절대 도달하지 못할 벽을 이제야 마주한 기분이었다.
“한천성 생도. 지금은 그 어떤 생도라고 해도 절대 내게 닿지 못해. 한천성 생도도 그건…잘 알잖아?”
이어진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우습게도 나는 칼리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한낱 생도가 교관에게 위로를 받다니,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일일까.
그리고 현실을 마주하겠다고 그렇게 말해놓고서, 직접 현실을 마주하자 마음이 조금 꺾이다니.
내 자신이 한심했다.
스륵. 멍하니 제 얼굴을 쓰다듬으면서도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한천성 생도. 미안해. 내가… 미안해.”
그러다 그녀가 기어코 사과까지 해오자,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교관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더 당황스러워요. 전혀 사과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칼리가 날 신경 써주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사과하는 건 말이 안됐다.
그녀가 사과할 일이 전혀 아닌데 사과를 한다니.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너무 과했어. 나도 무슨 생각으로 특성까지 발현해서 생도와 겨루려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큰 후회가 들어. 생도가 아무리 강인하고 강한 마음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인데. 내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만 들어.”
연신 자신이 과했다고 말하는 칼리의 모습에 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오직 검으로만 날 상대했어도, 사실 이 대련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특성을 사용한 지금. 나는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됐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칼리를 보며 내가 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짝!
순간 창을 쥐지 않은 손으로 내 뺨을 큰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후려쳤다.
“한천성 생도!?”
때아닌 자학에 칼리가 크게 놀라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고통에 되려 웃을 수 있었다.
“전 괜찮습니다. 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전 괜찮아요. 제가 이 대련에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칼리 교관님이 얼마나 대단한 지도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왕 질거면 크게 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보같은 마음속.
이제야 제대로 말이 나오는 듯했다.
…현실을 마주하고 피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칼리 같은 말도 안되는 힘을 지닌 교관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생도 중에서도 특별한 특성을 지닌 생도는 더러 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처럼 마음이 꺾인다면, 그저 꼴사납고 우스울 뿐이다.
“칼리 교관님. 다시 한번 대련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더 대차게 깨질 필요가 있다.
조금 꺾여버린 제 마음을 자각하며, 나는 오늘 수십 번도 더 꺾여야할 필요가 있는 거였다.
“한천성 생도…….”
멍하니 내 이름을 부르는 칼리의 모습에, 나는 다시금 마나를 활성화했다.
잠시 날 바라보던 칼리가 옅게 미소짓고는 서서히 거리를 벌리자,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마주하는 거야.”
내가 지는 것을.
그리고 이 현실을.
이제 나는 고작 시작하려는 첫 단계에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제 시작일 뿐.
다시 일어서 마주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는 거였다.
‘그러니.’
지금 얼마나 꺾이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성장 과정에 있을 뿐이니까.
“지금 한천성 생도의 눈빛. 꽤 마음에 들어.”
들려온 칼리의 말에 무심코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