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48)
***
사람의 기분이란 건 참 신기하다.
아침 강의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하루 내내 착 가라앉아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이렇게 날아갈 듯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오해도 그렇고, 좋게 풀려서 다행이야.”
점심을 먹고 공원에 앉아 글레시아를 기다리는 지금, 괜히 웃음이 났다.
본래 아카데미 입학한 후 매일같이 수련장에 박혀 있을 생각이었지만, 뜻밖의 성장을 이룬 것도 이룬 것이며 칼리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 지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심지어 자금적인 면에서도 글레시아가 준 골드로 모처럼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으니까.
몸도 마음도 전부 평화로웠다.
그러다 몸을 풀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켠 순간.
“…”
“…”
공원에 들어선 글레시아와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어색하게 양팔을 내렸다.
또각. 또각.
시선이 마주친 후 성큼 내게 다가온 글레시아가 바로 곁에 앉는데. 그게 너무 당연해보여 신기하기까지 했다.
“글레시아.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괜찮았어.”
가벼운 인사말에 돌아오는 단답. 이젠 그것조차 익숙하다 싶으며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글레시아가 입은 A클래스 화이트 계열의 생도복이 참 예쁘다 싶으면서도, 사람이 옷에 따라 더 예뻐 보인다는 것도 다시금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오늘 어떻게 시간 보낼 거야?”
“어떻게라니.”
“아니… 어제 나랑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 그럼 나랑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따로 시간 보낼 계획 같은 게 있는 게 아니었어?”
설마 하며 묻자, 글레시아는 무척 투명한 시선을 던져왔다.
나와 시선을 마주쳐가면서도 조금의 주저도, 망설임도 없다. 티끌 한점 없는 그 푸른 눈동자엔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얜…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나랑 같이 있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믿기 힘들게도. 말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늘 나랑 만나서 뭘 하고 싶다든가, 다른 목적이 있다든가 하는 게 아닌… 그냥 나랑 같이 있고 싶다는 소리였다.
“한천성. 내가 너랑 같이 있으려면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역으로 내게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데.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글레시아의 화법은 너무 이상했다.
저렇게 태연한 얼굴로 시속 150은 가뿐히 넘길듯한 돌직구를 던지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아니. 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이유는 없어. 굳이 말하자면 그냥 내가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담담하면서도 차분히.
하지만 누가 듣더라도 오해할만한 말을 가볍게 내뱉는 글레시아를 보며 이젠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어젯밤엔 글레시아의 말에 솔직히 설레긴 했었는데. 이젠 그 정도의 설렘까지는 없었다.
“그렇구나. 그래, 그러면 우리 그냥 수련장이나 갈까.”
그녀가 날 보며 연애 감정이 조금도 없는데, 글레시아를 데리고 다른 곳에 가려 하는 게 생각하면 웃긴 말이었다.
가볍게 제안하자 글레시아는 미미하게 고갤 끄덕였다.
“좋아.”
“그래. 그럼 바로 가자.”
나는 주저할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우리의 목적지는 A클래스 수련장. 그리고 그게 나도 썩 나쁘다고 생각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지.’
A클래스 수련장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나도 꽤 좋게 느껴졌다.
더 좋은 시설,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는데다,
‘레온하르트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난 며칠 사이.
과연 녀석이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꽤 궁금했다.
…
철컥.
글레시아가 A클래스 수련장에 들어서자, 나는 차분히 걸음을 맞추면서도 감회가 새로웠다.
며칠 전 입학식날 들어섰던 것에 비해서도 지금은 꽤 자신감이 있었고, 어떤 괴물들이 수련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ㅡ!
ㅡㅡㅡ!!
거센 강풍이 몰아치며, 새빨간 불꽃이 대기를 강렬하게 불사 지른다.
그 외에도 공기가 터지는 충격파가 일어나 수련장 내부 한편을 강렬하게 장식하는데, 여러 모습을 보면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A클래스.’
C클래스 수련장에 들른 적이 많진 않지만, 단언컨대 C클래스 수련장과 A클래스는 공기의 밀도 자체가 달랐다.
A클래스 수련장의 공기가 더 무겁고 끈적하고. 이렇게 걸어가기만 해도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마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수련장에 있는 생도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다르게 느껴졌다.
하위 생도보다 명백히 그들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수련에 열중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앞으로 나아가고 발전하겠다는 의지. 일종의 위닝 마인드가 A클래스 생도들에겐 기본적으로 있어 보였다.
“한천성.”
“어.”
글레시아의 음성에 시선을 마주쳐가자,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수련하는 모습, 지켜봐 줄 수 있어…?”
돌연 부탁하는 어조로 말해오자, 나는 순간 눈을 깜박이면서도 이내 고갤 끄덕였다.
그게 뭐 어려운 부탁일까.
“그래. 그렇게 할게.”
제 말에 글레시아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술을 다물고 고갤 끄덕이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사람의 언어가 발달하는 과정인가.’
차츰 글레시아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가다 보니, 단답이나 가벼운 몸짓에서도 그녀가 생각하는 걸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게 가능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글레시아에게 적응해가는 거였다.
글레시아와 수련장 한편으로 향하던 차, 내게로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
“…”
흥미, 관심, 그 외엔 의문까지 담긴 시선까지.
레온하르트와 내 대련이 C클래스에만 소문이 퍼진 게 아니라는 것처럼. 어쩌면 내게 쏟아지는 시선은 당연했다.
A클래스 생도가 보기엔 나는 명백한 이레귤러.
올해 수석인 레온하르트와 대련을 치르고 무승부를 이뤄냈으니, 내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지 나도 이해는 갔다.
‘내가 A클래스 생도였다고 해도 믿기 힘들겠지.’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넘기던 차.
“한천성!”
날 부르는 밝은 음성에 불현듯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정말 반갑다는 듯 날 바라보는 레온하르트가 있었다. 곁엔 유미아를 착 달고 있는데, 보면서도 느낌이 확 달랐다.
‘분명히 더 강해졌어.’
그냥 마주 본 것만으로 녀석의 기도가 느껴졌다.
이후 우리쪽으로 다가오자, 우린 자연스레 걸음을 멈췄다.
“며칠만이네. 레온하르트.”
“그래. 며칠만이지. 한천성. 글레시아랑 같이 수련하러 온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런데 혹시 내가 여길 오면 안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답을 알면서도 괜히 묻자, 레온하르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갤 저었다.
“괜찮아. 수련장에 같이 오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 그래도 잘 왔어. 때마침 나도 네 소식이 궁금했었어.”
녀석의 말에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뭔가 나나 녀석이나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할까.
‘하긴.’
그때의 대련은 비단 내게 있어서만 큰 기연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레온하르트도 본래라면 몇 주란 시간 후에 도달할 3레벨에 대련으로 단숨에 도달했다.
특성의 진화란 모두가 바라는 일이니까.
“흐응. 다시 봐도 역시… 두 사람 잘 어울려.”
그러다 유미아가 무척 묘한 시선을 주자, 아차 싶었다.
‘어제 우릴 봤었지.’
누가 듣기에도 이상한 발언을 들은 사람은 레온하르트와 유미아. 딱 이 두사람이었다.
“유미아. 먼저 말하지만 그건 오해야.”
이번만큼은 당장 바로잡았다.
이 이상 나와 관련해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건 사양이었다.
“풋… 나는 난 그냥 글레시아랑 네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했을 뿐이야.”
시치미떼는 모습에 괜히 불안해지던 차.
“한천성, 그렇게 걱정하지 마. 네가 오해라고 말했으면 분명 오해가 맞겠지. 나나 유미아도 아무에게나 그런 걸 쉽게 말하고 다닐 성격은 아니야. 그렇지, 유미아?”
“…아, 응. 그렇지.”
레온하르트가 때마침 날 도와주자, 저도 모르게 녀석을 다시 보게 됐다.
‘진짜 착하단 말이지.’
사람이 착하다는 게 확 느껴지는 경우는 솔직히 잘 없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볼 때마다 착하다는 게 확 느껴질까.
그리고 착하면 흔히 눈치가 없거나 답답한 성격인 경우도 있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려 하면 바로 눈치채곤 그걸 바로 중재해주곤 하니까.
“레온하르트, 고마워.”
“아니야, 뭘. 그나저나 이제 두 사람 수련하려는 거지? 그럼 우리랑 같이 수련하는 것도 꽤 좋을 것 같은데. 어때?”
“그렇게 말해주면 나야 환영이지. 그동안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솔직히 말해 좀 궁금하고.”
레온하르트와 유미아.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자, 차후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될 존재였다.
나도 같이 수련하면 분명 더 도움이 될…….
“그건 안돼.”
내 생각은 글레시아의 단호한 음성에 끊겼다.
“어…?”
“글레시아?”
레온하르트와 유미아마저 놀란 듯 그녀에게 시선을 주자, 글레시아는 돌연 날 바라봤다.
그것도 이전까지와도 달리 뚜렷한 의지가 담긴 시선으로.
왜 내 멋대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냐는 듯 질책하는 것 같자, 나는 되려 그런 글레시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명백한 호의로 다가온 레온하르트, 태도가 삐딱하긴 해도 그래도 선을 지키는 유미아.
그들과 친해지고 같이 수련하면 당연히 좋을 거라 여겼지만.
“한천성.”
“…어, 글레시아.”
답하면서 순간 꿀꺽 침을 삼키게 됐다.
왜일까.
그녀와 마주하면서 이유 모를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불안감을 느껴야 할 무언가는 조금도 없는데, 불현듯 몸이 내게 경고하는 듯했다.
글레시아의 입에서 갑자기 이상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지금이라도 그녀가 말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 순간.
글레시아의 입술이 열렸다.
“어제 분명 오늘은 나랑 같이 있겠다고 했잖아. 네 시간을 나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으려고 해?”
모처럼 길게 말하는 글레시아의 모습이란 순수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내뱉는 말조차 하나같이 직설적이라, 순간 내가 해야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
무심코 입술을 열었지만, 그대로 사고가 뚝 끊겼다.
대체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까.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녀랑 둘만 있겠다는 말은 분명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지금 글레시아의 화법은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는 게 이상할 수준이었다.
“저기. 글레시아?”
“…말해.”
이전과 달리 쌀쌀맞게 답하는 글레시아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차갑게 답하면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
“아하하… 한천성, 미안. 우리가 두 사람만의 수련을 방해한 것 같네.”
“그러게. 두 사람끼리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눈치가 없었나 봐.”
그리 말한 두 사람이 빠르게 멀어져 가자,
“자, 잠깐.”
나는 뒤늦게나마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여겼지만,
덥석.
그 순간 오히려 내 팔이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