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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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글레시아와 헤어진 후 기숙사로 돌아가는 지금, 전신은 어디 하나 할 것 없이 욱신거렸다.
C클래스 수련장엔 없는 A클래스 수련장의 수련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수련하자, 몸은 급속도로 피곤을 호소해왔다.
그렇게 오래 수련한 것 같지 않은데 느껴지는 피로도는 차원이 달랐다.
“…”
저도 모르게 하품하면서도 석양으로 인해 붉게 물드는 아카데미 건물에 시선이 갔다.
웅장한 아카데미의 규모.
본래 세상으로 따져도 이만한 규모의 아카데미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심지어 올해 입학한 생도가 이용하는 아카데미 건물을 제외하고, 다른 해에 입학한 상급생이 머무는 아카데미도 건물도 나란히 석양에 물들어 있자, 장관이라 말해도 부족함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픽 웃음이 났다.
“내일부터 주말이지.”
그로아의 주말엔 강의가 없다. 교관도, 생도도 모두가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려 한다.
그래서 보통 주말은 생도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주말에도 수련하는 생도가 있다지만, 시험 기간이 아니면 대부분 주말만큼은 편히 휴식을 취하곤 했다.
주인공인 레온하르트의 경우. 워낙 인기가 많은 녀석이라 주말도 여러 인물과 보내며 에피소드가 나온다지만….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니까.’
되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주말 하루는 편히 쉴까.”
지금은 내 몸이 꽤 잘 버텨주긴 하지만, 그래도 휴식은 필수적이었다.
무리하게 수련한 것도 있고, 일요일 글레시아와의 약속을 제외하면 주말에 신경 쓸 것도 없다.
칼리의 개인 수련실은 다음 주에 일정을 제대로 맞추기로 했으니까.
저벅.
생각하며 걸어가던 차. 시야 한 편에 서서히 빠져나오는 생도들이 보였다.
그건 일반적인 생도들이 드나드는 아카데미 건물이 아닌, 무척 고급스러운 또 하나의 아카데미 건물.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골드 계열의 생도복을 걸친 생도들이 하나둘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거리가 꽤 있음에도 그들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S클래스….’
황족을 비롯해 정말 높은 영향력을 지닌 고위 귀족의 자녀로만 구성된 클래스가 바로 S클래스.
최소 등급 특성이 유니크로 제한되어 있고, 일반 생도들은 차마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화사한 금발의 남녀 한 쌍.
시야에 들어오는 S클래스 생도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그들은 현 제국의 황족이었다.
오빠 쪽은 ‘데르센 루아벨라’여동생 쪽은 ‘레시아 루아벨라’.
꿀꺽.
무심코 그들을 보면서도 침을 삼키곤 바로 시선을 떼어냈다.
오래 보다가 괜히 트집이라도 잡히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일찌감치 연을 맺지 않는 게 정답이었다.
“저들을 상대하는 건 레온하르트만 가능하니까.”
다른 히로인 같은 경우야 당장도 나와 같은 클래스인 루나같이 우연히 접할 수 있다지만, 황족만큼은 그 경우가 달랐다.
레온하르트가 아니면 저들과 제대로 대화할 수 없을 터.
저벅.
기숙사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나도 황족만큼은 연을 맺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황녀인 ‘레시아’같은 경우 데르센이 심각할 정도로 아끼기 때문에 레온하르트와는 매번 마찰을 겪는다.
‘…’
황녀인 레시아도 레온하르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레온하르트 역시 레시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그들 사이엔 마찰이 일어난다.
데르센 단 한 명 때문에.
“…이것도 뭐, 주인공이 겪어야 할 시련 중 하나겠지.”
툭 중얼거리며 픽 웃음이 났다.
그래도 녀석이면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레온하르트도 황녀와 엮이게 되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저벅.
그렇게 걸음을 옮겨가던 그때.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저벅.
생각에 빠져 있어 몰랐지만, 뒤늦게 내게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다수였다.
저벅. 저벅….
찰나 내게 다가오는 존재들을 피해 바로 기숙사로 향할까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제발 내가 생각한 그들이 아니길 바라면서…
“어머.”
하지만 언제나 좋지 않은 바람은 딱 들어맞았다. 나를 바라보며 놀란 금발의 여성.
황금을 품은 듯 화사한 금발 아래 순수하면서도 따스한 인상을 품은 가히 ‘극상’의 미녀 레시아 루아벨라.
가까이서 본 그녀의 외모에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하지만… 그걸 티를 낼 순 없었다.
바로 그녀의 곁엔 당연하다는 듯 데르센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그 외에도 여러 귀족의 자제들이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일종의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입을 열면서도 내 음성이 떨리지 않게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아카데미 생도 사이엔 신분에 따른 존댓말이 없다. 담담히 입을 열면서도 등에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역시 네가 한천성이 맞군. 다름아니라. 우리 레시아가 널 무척 궁금해 했거든. 이렇게 마주친 김에 잠시 시간을 내줬으면 하는데. 괜찮겠지?”
‘괜찮겠지?’라는 데르센의 말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그 말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확신조차도…
그에 삐걱대듯 레시아에게 시선을 주면서도 고갤 끄덕였다.
“예… 괜찮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띤 레시아 황녀를 마주하면서도.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잘됐군. 그럼 우리와 차라도 한잔하도록 하지. 다른 이들은 이만 떠나보도록, 같이 이동하면 레시아가 불편해할 것 같으니.”
“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데르센의 말에 고위 귀족들이 하나같이 큰 예를 표하며 몸을 물리는데. 그 모습만으로 제 마음이 더 얼어붙는 듯했다.
그들이 그렇게 자리를 비운 그때.
데르센은 내게 시선을 주곤 당연하다는 듯 성큼 걸음을 옮겼다.
저벅.
그 걸음에 자연스레 발을 맞춰가면서도 속은 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미치겠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루나가 날 오해하고 헛소문이 퍼진 그 순간보다도 오히려 지금이 더욱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응당 레온하르트에게 벌어져야 할 이벤트였다.
그런데 어떻게 황족과 내가 엮이게 되는 걸까. 다시 생각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한천성?”
“…예.”
“제법 좋은 차를 대접할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레시아도 그렇지만, 나도 너에 대해 꽤 궁금하던 차였거든. 이렇게 우연처럼 마주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러십니까… 저도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그래도 정말이지 놀라워. 커먼 등급인데도 올해 수석인 레온하르트와의 대련에서 무승부를 이뤘다지? 나를 제치고 올해 수석이 된 레온하르트가 일부러 져줬을 리도 없고, 더욱 너에게 흥미가 가.”
데르센이 차분히 말을 잇지만, 그 곁에 있는 나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해 내가 머뭇거리자.
“하하… 이거 참. 다른 이들처럼 너무 딱딱하게 날 대할 필요는 없어. 너나 나나 어차피 같은 생도가 사이가 아닌가?”
데르센이 제법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그 말이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선 귀족도 당연하다는 듯 평민을 무시하는 마당에, 황족인 데르센이 평민을 대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더구나 데르센의 특성은 레전더리 등급으로 올해 입학한 생도 중 레온하르트와 더불어 ‘유이’하게 레전더리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커먼 등급.
아무리 창술이 등급 이상으로 강하다고 해도, 등급에 대한 선입견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특성과 신분. 그 무엇이든 내가 사소한 말실수라도 하는 순간 나는 그대로 끝이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그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아쉽군. 나도 더는 강요는 할 수 없겠지.”
가볍게 고갤 끄덕이는데, 나는 데르센의 눈빛에 깃든 차가움이 보였다.
그는 지금 나를 테스트하듯 가볍게 떠본 거였다.
그리고 나도 그걸 알고 있기에 되도록 태연하게 답하려 했다.
지금 이 상황은 데르센이 레온하르트에게 건넨 것과 거의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으니까.
“저기. 이름이 한천성인 건가요?”
그러다 너무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자, 멈칫하며 곁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엔 레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구태여 성이 한 씨고 이름이 천성이란 바보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나는 이 세상에 와선 성이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한천성이라니. 정말 신기한 이름이에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라서… 레온하르트 생도와의 대련에 관한 소문부터 이름까지. 모두 신기하게 느껴져요.”
그녀가 날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 짓는데,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녈 바라보려던 걸 억지로 제어했다.
“자주 듣는 말입니다. 다른 분에 비해서 제 이름이 특별하니까요.”
“뭐, 그것도 그렇군. 그래서 오늘도 수련하고 돌아오는 길인가? 생도복이 꽤 더럽혀져 있는 듯한데.”
데르센이 바로 나와 레시아 대화를 끊듯 묻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에게 시선을 주곤 고갤 끄덕였다.
“예. 수련에 열중하느라… 제 모습이 조금 그렇습니다.”
“그럼 차를 마시기 전에 시녀에게 그대의 시중을 들라 할 테니, 복장을 갈아입는 게 좋겠어.”
데르센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말하자, 나는 바로 받아들였다.
“예. 알겠습니다.”
애써 태연히 답해가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비유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지금 양쪽에 시한폭탄을 달고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둘 중 누구에게 잘못하더라도 내 아카데미 생활이 끝날듯한 절대적인 위기감.
‘이럴 거면… 차라리 수련장에 좀 더 머물걸.’
그게 아니면 아예 이들을 보자마자 생각도 하지 말고 몸을 돌렸어야 했는데. 호기심에 그들을 잠시 바라봤던 게 후회됐다.
“그래서 한천성. 창술 특성이라고 들었어. 나도 과거에 꽤 창을 다뤄본 적이 있지.”
“정말입니까?”
“그럼. 창은 냉병기의 왕이 아닌가? 비록 창술이 그 어떤 특성에도 유의미한 힘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창이란 무장만큼은 시간 내서 배울 가치가 있더군.”
데르센이 불현듯 묘한 말을 해오자, 그 말에 관심이 가긴 했다.
황족이니만큼 당연히 유년시절이 범상치 않았겠지만, 창술마저 배울 줄 몰랐다.
“저도 창술 배워 본 적 있어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듯 레시아의 말에 무심코 시선을 주면서도….
내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도저히… 쉽게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 아니, 그건 이미 확정된 미래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