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56)
스륵.
겹쳐진 손이 떨어져 가며, 내 손을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 역시 멀어져간다.
“…”
글레시아가 만족한 듯 내 손에서 손을 떼어놓는 걸 보면서도 내 기분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확실히 나랑은 다르구나.”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당연히 네 손과 내 손은 다르다고. 남자랑 여자도 다른데, 하물며 검을 쥔 손이랑 창을 쥔 손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 궁금했어.”
순수하게 궁금했다는 것처럼 답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정작, 내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이걸 정말 순수하다고 봐야 하는 걸까.’
분명 순수하니까.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행동하는 거겠지만, 그녀의 행동을 당하는 내 입장에선 기분이 절로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뜬금없이 손을 달라고 해서 손을 내밀었더니, ‘궁금한데 잠시만.’이라는 말 한마디로 내 손을 야릇하게 어루만져댔으니까.
그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태연함을 가장하며 받아넘길 순 없었다.
같은 나이의 매력적인 여성이 내 손을 야릇하게 어루만지며 스킨쉽을 하는데, 거기서 무덤덤하면 남자가 아니었다.
도중 그 이상야릇한 그녀의 손길에 나는 바보같이 어색한 미소만 지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우리에게 보내는 시선이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는 것도 여실히 느껴졌지만. 다시 돌이켜보면서도 몸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착각하지 말자.’
지금 글레시아는 그런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면서, 내게 연심과 같은 마음은 없다. 괜히 혼자 설레고 싶진 않았다.
글레시아에겐 제대로 말할 필요가 있었다.
“글레시아.”
“응.”
“내가 만약 조금 전 네가 한 행동을 똑같이 해도 넌 받아들일 거야?”
“…손잡은 거 말하는 거야?”
“맞아. 네가 내 손을 확인한다고 잡았다고 해도 있잖아. 만약 역으로 내가 네 손을 갑자기 잡는다고 생각해봐. 그럼 너무 이상하잖아, 너라도 당연히 날 거부했을 테고.”
나는 그녀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싶었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글레시아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여러 피해자가 나올 테니까.
“딱히. 너라면 난 거부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 당연히 너도 날 거부했을….”
자연스레 말을 잇다가 멈칫했다.
‘…날 거부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역지사지로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려던 거였는데, 말문이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한천성. 너는 왜 내가 널 거부할 거라 생각해? 너는 지금 날 받아줬잖아.”
오히려 뭐가 이상하냐는 듯 반문하는 글레시아는 지극히 태연해 보였다.
사람 마음을 크게 뒤흔들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저렇게나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순간 믿기지 않았다.
“거부하지 않는다니… 글레시아. 넌 내가 네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 않다기보다는 애초에 우리가 처음 카페에서 만난 그 날 이미 얘기 끝났잖아. 내가 너랑 함께 있다는 시간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니까. 방금 내가 너에겐 한 행동을 네가 역으로 하려 했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담담히 받아들였을 거야.”
차분하게 말한 그녀는 순수한 시선으로 날 마주쳐왔다.
투명한 푸른 눈은 마치 그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고… 진심을 비추는 듯한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아….’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일단 마음을 가라앉혔다.
글레시아에게 내 마음이 흔들린다는 게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내게 연애감정이 없다는 걸 아는데, 그녀가 해오는 행동과 말투에서 혼자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자꾸만 드니까.
정말… 글레시아가 문제였다.
크게 오해할 말을 그녀는 내겐 끊임없이 해오고 있으니까, 그게 그녀가 순수하고 특이한 성격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분명히 글레시아가 날 좋아한다고 여겼을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일단. 글레시아,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담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부터 미리 밝혀둘게.”
“알았어. 말해.”
어떻게 그녀에게 주의를 줘야 할까, 듣는 글레시아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를 생각하면서도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네가 그렇게 행동해도 나는 괜찮지만, 네가 한 행동과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도 조금은 생각해줬으면 해. 아무래도 네 화법이나 행동은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으니까.”
“…오해할 여지.”
“그래. 오해할 여지가 너무 많아. 당장 조금 전만 해도 그래, 네가 내 손을 확인하겠다는 듯 손을 어루만진 거. 내가 정말 너에게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도 기분이 조금은 이상하지 않겠어?”
글레시아가 내 말에 멍하니 자신의 손에 시선을 주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조금은 안도했다.
‘역시.’
말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정말 글레시아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면, 그녀도 분명 기분이 이상할 것이다.
“확실히… 이상할 것 같아.”
“그렇지? 그러니까.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네가 이렇게 대하는 건 어떻게 보면 좋게 볼 사람도 있지만. 때론 오해를 낳는 법이니까.”
이런 행동마저 순수하다는 말로 모두 넘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야 글레시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글레시아의 말을 들으면 백이면 백 모두가 오해할 것이다.
‘그리고… 딱히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서로가 연애감정이 없다곤 하나. 내게 이런 행동을 한 글레시아가 다른 남자에게 그러는 건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글레시아가 말없이 날 바라보는데, 할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천성. 너도 만지고 싶어?”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내뱉자,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지고 싶다니?”
말하면서도 어감부터가 너무 이상했다.
“너는 지금 내가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받아주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꾸만 네 손을 잡은 걸 언급하는 것만 같아서. 혹시 너도 내 손을 만지고 싶은 건가 해서.”
담담하면서도 투명한 시선을 던져오는 글레시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오히려 이 순간 나는 글레시아가 정말 순수할까.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실 글레시아의 몸 속에 여우 백 마리는 족히 있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어떻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만한 말만 골라서 해올까.
그리고…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내게 되뇌고 있었다.
ㅡ글레시아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바보같은 설렘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데. 그것조차 이젠 의문이 들었다.
‘정말 나 유혹하는 거 아닌 거 맞지…?’
의문 속에서도 나는 꿋꿋이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네 손을 만지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글레시아. 너도 한번 내 입장을 생각해달라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내 손을 만질때 괜찮지 않았어… 내 기분은 정말 이상했으니까.”
결국, 솔직하게 풀어서 말하면서 이젠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한천성. 네 기분이 왜… 이상했는데?”
그러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 글레시아는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다른 사람이 내 손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데.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순 없으니까. 그냥 이상했지. 이상하다는 말에 부연설명이 필요해?”
“아니,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냥 네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했어.”
그 말을 끝으로 자연스레 글레시아가 음료가 담긴 잔을 들자, 내가 느끼는 묘한 기분은 조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억누르고, 아니라고 계속해서 생각해도 내 마음은 오히려 더 흔들렸다.
…그래서 결국 받아들이게 됐다.
‘인정하자.’
나는 지금 글레시아에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말투나 행동조차도 내겐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있다고.
도도한 행동과 말투에 글레시아 특유의 순수함이 깃들자, 그건 다른 사람에겐 볼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애써 그걸 부정하려 하기보단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착.
그리고 잔을 내려놓은 글레시아를 바라보며, 마음을 더 단단히 먹기로.
너무 쉽게 흔들리지는 않기로.
“한천성.”
“…어.”
답하면서도 시선을 마주쳐 간 그때. 그녀는 돌연 내게 손을 내밀어왔다.
새하얗고 고운 손.
갑자기 손을 왜 내민 건가 싶어 바라보자, 글레시아는 옅게 미소 지었다.
“내가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너에게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면 미안해.”
“…그건 괜찮아. 그래서 갑자기 손은 왜?”
“내가 네 손을 만진 것처럼, 너도 내 손 만져도 좋다는 의미야.”
조금은 밝게 말하며 새하얀 손을 슬며시 내게 내미는데.
“…”
그 손을 바라보면서도 무심코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조금 전 쉽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내 생각이 무색해질 만큼 바보같이 마음은 흔들렸다.
꿀꺽.
무심코 침을 삼켜가면서도 대체 무슨 바보같은 상황인가 싶었다.
글레시아가 진짜 날 좋아하지 않는 건 맞을까?
아무 사심 없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여러 의문 속.
나는 지금 글레시아의 행동이 유혹으로만 보였다.
그것도 순수함이 깃들여진 너무나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유혹.
저도 모르게 손을 움찔거린 그때.
내 마음을 제어했다.
무심코 지금 글레시아의 손을 만진다면, 애써 글레시아에게 말을 꺼낸 이유가 빛을 바래고 말 터. 그럴 순 없었다.
“글레시아.”
“응.”
“지금 이런 행동들 있잖아….”
제 말에 글레시아가 투명하게 시선을 마주쳐오는 걸 보자, 나는 다시금 마음을 새겼다.
글레시아에겐 제대로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
지금 내게 행동하는 이 모습조차 다른 사람이라면 치명적인 유혹처럼 느껴질 것이다. 누가 봐도 자신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유혹이 담긴 행동.
나는 지금 그걸 바로잡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에겐 하지 마.”
단호히 입을 열었다.
내 말에 멈칫한 글레시아가 시선을 마주쳐오자, 나는 거듭 말했다.
“네가 나에게 이러는 건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이러지 않았으면 해.”
“…왜?”
“나는 널 받아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리 말하며 글레시아의 손을 천천히 밀어내려던 그때.
“한천성 생도?”
때아닌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날 부를 사람이 누군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순간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했다.
##$##
***
에시아는 오늘따라 칼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오늘따라 뭔가 감정적인데.’
한천성이란 생도에 대해 말을 꺼내고 나선, 부쩍 칼리의 태도가 묘하다고 할까.
칼리답지 않게 감정적인데, 그런 칼리를 보자,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칼리의 변화는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전장에서 무뚝뚝하게 몬스터를 죽여나가는 모습보단 이렇게 감정적인 칼리가 훨씬 사람 냄새가 느껴지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슬슬 다음 장소로 향하려던 차.
칼리가 돌연 출구가 아닌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칼리?”
“…잠시만.”
제 말에도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하고 걸어가는데, 무심코 칼리가 어딜 보나 싶었다.
시선이 닿는 곳엔 창가 자리에 두 생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남녀 한 쌍.
심지어 서로가 입고 있는 생도복마저 다른데, 그런데도 나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의 느낌이 확 느껴졌다.
‘서로 좋아하면 클래스 차이도 넘는다고 하더니….’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긴 했었다.
동 클래스가 아닌데도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 하지만 그것도 한 클래스 차이였지, 두 클래스나 차이 나는 경우는 나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겐 하지 마.”
돌연… 남성 생도가 단호하게 입을 열자 무심코 시선이 갔다.
“네가 나에게 이러는 건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이러지 않았으면 해.”
거듭 이어진 단호한 음성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박력 있네.’
C클래스 생도가 A클래스 생도를 상대로 리드하듯 말을 건네고 있었다.
보통은 그러기 힘들 텐데. 남성 생도는 주저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말했다.
“…왜?”
그에 여생도가 조금 놀란 듯 답하자. 저도 모르게 이어질 남성 생도의 말을 기대하게 됐다.
“나는 널 받아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마치 자기에게만 기대라는 듯한 남자 생도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남자가 저렇게 박력이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