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71)
이전에 비해 확연히 느려진 답변. 순간 그녀에게 우린 친구가 아니라고 부정당할까 싶어. 빠르게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날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뭐야? 혹시 급한 일이야?”
일단 그녀가 날 찾아온 이유부터 파악해야 했다.
“급한 일은 아니야. 그냥 오늘은 내가 너랑 만나는 날이니까.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너를 볼 생각에 찾아온 거였어.”
“나를 볼 생각에 찾아왔다고…….”
그녀의 말에 이번엔 내가 놀라게 됐다.
‘정말… 자기 말에 대해 조금도 자각이 없는 건가.’
나는 글레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못 박았다.
ㅡ우린 친구 사이라고.
그런데도 나를 대하는 글레시아의 화법은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느낄지, 글레시아가 정말 느끼지 못했을까 이젠 순수하게 그런 의문이 느껴질 정도로….
“…와. 되게 직설적이다.”
“그러게.”
지금도 우릴 지나쳐가는 여생도가 딱 오해한듯한 모습이었다. 불현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글레시아를 바라봤다.
“날 이렇게 보러 와준 건 너무 고마운데. 그래도 미안해서 어쩌지. 나도 오늘은 선약이 있어. 칼리 교관님이랑 반드시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거든….”
날 보러왔다는 글레시아를 거절하는데, 왜 내가 마음의 가책이 느껴지는지 몰랐다.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을 전하면서도 미안했다.
“그래? 선약이 있는 거라면 알았어. 내가 갑자기 찾아온 거니까. 그럼… 우리 6시에는 보는 거지?”
내 말에 글레시아가 멍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그런 글레시아의 모습에 괜히 내 마음이 더 미안해졌다.
지금 그녀의 얼굴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내가 어울려주지 않아서… 아쉽고 또 서운하다는 듯한 눈빛.
“6시엔 만나야지. 저번에 만났던 공원에서 보자. 그때까지 나도 끝낼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한천성, 그때 봐.”
그렇게 날 지나쳐가는 글레시아를 바라보며 고갤 끄덕였다.
또각.
서서히 사라져가는 글레시아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면서도 기분은 묘했다.
순수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이렇게 묘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게…….
직접 경험하는 나조차도 잘 믿기지 않았다.
***
천성을 지나쳐 아카데미를 빠져나온 글레시아.
그녀는 인적이 드문 공간에 도달하자 걸음을 우뚝 멈췄다.
스륵.
아카데미 벽에 기댄 글레시아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옅게 흐트러진 푸른 머리칼 아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조차. 글레시아가 지금 애써 누른 감정의 잔재와 같았다.
“…….”
감정을 추스르는 게 생각보다도 쉽지 않았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민망함이란 감정들이 끝없이 제 가슴 속에서 휘몰아친다.
그러면서도 그 속엔 작은 기쁨도 뒤섞여 있었다.
그래. 그건 분명 기쁨이었다.
“친구….”
멍하니 한 단어를 중얼거리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친구라는 말은 정말 평범한 단어, 아무것도 아닌 단어인데,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없진 않지만, 이번엔 느낌이 너무 달랐다.
칼리 교관과 선약이 있다고 말한 한천성과 함께 있지 못하는 건 너무 아쉽지만, 그건 한천성에게선 당연한 거니까.
다만….
그가 해준 말이 이상하게 내 가슴을 계속 간지럽혔다.
“나랑 한천성은… 친구였구나.”
그동안 나는 한천성과 전혀 다른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어느새 나를 친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을… 듣는 순간엔 놀랐어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다.
나랑 한천성은 친구라고.
그건 그저 겉으로만 친구라고 말해온 사람들과도 전혀 달랐다.
나랑 어울려준다는 마지못한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날 대하는 한천성의 태도가 조금도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정말… 진짜 친구라는 느낌이 있었다.
“…”
제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도 괜히 마음이 흔들렸다.
‘날 친구라고 봐줬구나.’
나는 여태 돈으로 한천성과의 관계를 사려 했었는데. 한천성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전장에 관련된 말을 듣자, 나는 당연히 언니를 떠올렸었다.
지금도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을 자랑스러운 언니를, 그리고 내가 언니에게 닿기 위해선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었다.
내 특성을 진화하며 더욱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천성을 찾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계산적이었던 나와 달리, 한천성은 진심으로 날 대해줬으니까.
친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며 내게 어울려주지 못해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서운함에도 나는 담담히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겼다. 내가 그렇게 서운해할 일이 아닌데.
“나는 왜 이리도 바보 같을까.”
무심코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
나는 그와의 관계를 돈으로 사려 했다.
한천성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던 카페에서도 그랬었고, 그 이후에도 언제나 그랬다.
그야 내가 줄 수 있는 건 돈이 최선이라 여겼고,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난번 밤의 마주침 이후, 나는 한천성에게 돈을 준 적은 없었다.
일요일 만남에서 디저트에 대한 값을 지급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칼리 교관님의 선의로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한천성조차 내게 따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가볍게, 장난스레 말하며 나를 바라봤었다.
내가 골드를 건네줬던 그 순간조차 한천성은 정말 받아도 되는 건지 고민했었으니까.
그 모든 게 신호와 같았다.
…그가 날 그렇게 계산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신호.
“한천성은 나랑 있으면서도 돈으로 날 대한 적이 없었는데.”
그걸 정작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친구…….’
나는 어느새 한천성과 친구라는 사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
입술을 머뭇거리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간지러웠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든 듯한 기분. 그건 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좋을지도….
***
철컥.
칼리의 개인 수련실에 칼리와 함께 들어서면서도 감회가 새로웠다.
분명 지난주 금요일에도 왔음에도, 칼리의 수련실은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그게 마도 공학 물품이 주는 기이한 기분인지 몰라도,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차오르는 기분. 나는 그게 꽤 좋았다.
“한천성 생도. 그렇게 기대돼?”
표정에 감정이 드러났는지, 칼리가 픽 웃으며 묻자, 나 역시 미소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정말 기대돼요.”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글레시아와의 대화가 칼리의 귀에도 선명히 들렸는지, 그녀가 훨씬 부드러운 태도를 나를 대해줬으니까.
갑자기 일이 잘 풀린 지금, 내 마음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며 마음 편히 수련에 임할 수 있다는 건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럼 한천성 생도 잠시만 기다려줘. 바로 마도 공학 물품 가져올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서서히 수련실 한편으로 이동하는 칼리를 보며 지난 말을 떠올리게 됐다.
오는 내내 여러 대화를 나눴고, 수련실 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
수련실 이용 요일은 월, 금으로 정했다. 칼리에게 직접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나 혼자 수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중 월요일 대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각.
칼리가 머지않아 내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익숙한 루비 귀걸이 한 쌍이 보이자, 나는 무심코 마음이 한층 더 설렜다.
‘엘리미앙의 배려.’
마도 공학 물품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경험해봐서 아니까.
그러다 불현듯 직접 내게 착용시켜주던 칼리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서로의 숨이 맞닿을만한 거리에서 내게 접촉을 해오던 그녀.
또각.
또각.
칼리는 지금도 그때와 같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한천성 생도. 잠시 실례할게.”
그리고 들려온 말에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륵…
조심스레 내 머리칼을 스치는 칼리의 손길은 무척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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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다.
몸이 무겁다.
포기하고 싶다.
손에 쥔 창을… 그대로 내려놓고 싶다.
칼리와 대련을 시작한 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느껴진 감정들이었다.
아니, 보다 마음속에서 차오른 감정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의지를 불태우고, 그녀와의 대련에 훈련에 열중하고 싶어도… 내 몸이 내 의지를 배반하려는 느낌이었다.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고, 이제 그만하라고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감각.
“…”
그럼에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태해지려는 마음,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한천성 생도. 잠시 휴식하자.”
돌연 검을 아래로 향한 칼리가 나를 배려해주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도 억지로 의지를 다잡았다.
“조금 더… 할 수 있습니다. 대련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그녀의 배려에 마음을 내려놓고, 창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그런데.
나는 이걸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이래선 안됐다.
호의와 선의에 기대 내 마음을 내려놓으면, 어렵사리 강하게 마음먹은 이 마음은 단숨에 약해질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게 느껴졌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금.
내가 한 걸음 더 아니,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말 괜찮겠어?”
“예. 괜찮…습니다.”
힘겹게 답하면서도 조금 차오른 마나를 쥐어짜 창에 둘렀다.
ㅡ!
미미한 푸른빛이 내 창대를 휘감는 걸 바라보며 아주 작은 숨을 들이마셨다.
제 말에 다시금 검을 들어 올리는 칼리를 바라보며 그대로 지면을 박찼다.
잡념을 지워나가며 단 하나의 생각만을 마음에 억지로 주입한다.
‘창을 내질러.’
그렇게 찌르고. 나아간다.
내 의지를 배반하려는 몸을 억지로라도 부추긴다.
슈욱!
그러자,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창날의 끝.
그 속도는 처음과 비교하면 조금도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챙!
창날을 교묘하게 마주친 검신으로부터 강렬한 불꽃이 튄다.
그리고 곧바로 내 창날이 크게 튕겨 나가지만, 상관없었다.
받아 쳐낼 것을 생각하고 내지른 창이었으니까, 그래서 바로 반탄력을 이용하듯 몸을 회전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빠르게 창을 내지른다.
ㅡ!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