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78)
“그 대신 만나기 전에 약속을 정했으면 좋겠어. 나도 내 일정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매일 맞춰줄 순 없어. 대신 약속을 잡으면 어떻게든 내가 너에게 시간을 맞춰볼게.”
말을 덧붙이면서도 미안했다.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뒷말을 붙여야 했으니까.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럼 한천성. 말이 나온 김에 묻는 거지만 이번 주는 언제 나랑 다시 만날 수 있어?”
자연스레 물어오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일단 내 개인 수련일정은 모두 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럼 남는 건 글레시아와의 약속인데… 그걸 미룰 순 없었다.
당장 어제 내가 지각해서 하루 더 만나겠다고 한 마당이니까.
“금요일이랑 일요일 빼고 다 가능해.”
글레시아를 만나는 날을 빼고 모두 답하자, 카리테가 조금 놀랐다.
“그 외… 다른 날 전부 가능하다는 거야?”
“그래. 널 도와주겠다고 말했으니까.”
답하면서도 거침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어중간하게 도와줄 거였다면, 오늘 다비드와의 수련조차 미루지 않았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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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를 빠져나온 두 사람.
어느새 그들은 만남의 끝을 고하고 있었다.
“한천성. 우리 토요일엔 다시 만날 수 있는…거지?”
몸을 돌린 카리테가 조심스레 묻자, 천성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만날 수 있지.”
그런 천성의 답에 카리테는 다시 안심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게, 토요일에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카리테에겐 크게 느껴졌다.
“알았어. 그럼 오늘… 정말 고마웠어.”
“아니야, 나야말로 고마워. 그럼 나는 가볼게. 카리테, 조심해서 들어가.”
마지막엔 카리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각자 다른 길로 향했다.
서서히 노을이 져가는 시간임에도 수련장으로 향하는 한천성에 비해, 카리테는 자신의 기숙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건 무의식적으로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에 기숙사로 향하는 거지만, 사실 카리테의 정신은 이미 한참 전부터 붕 떠 있는 상태였다.
한천성과 대화하는 내내 너무나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고, 그게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또각.
그러다 머지않아 카리테는 제자리에 멈춰섰다.
조금 전까지 들리지 않던 환청이 다시금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한천성이 정말 순수한 의도로 접근했다고 생각해?
-보나 마나 네 몸이 목적일 게 뻔하잖아
-네가 다른 여자에 비해 쉬워 보여서 다가온 거겠지.
악의로 가득 찬 환청에 멍하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천성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진다는 것도, 평소보다 더욱 질이 나쁜 환청에 마음은 다시금 흔들렸다.
‘이게 정말 내가 정신적 문제로 겪는 환청일까….’
정말 내가 그런 최악의 상황마저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조차도 내가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 대화하는 내내 한천성에게선 정말 어떠한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순수하게 날 위해주는 것처럼 느꼈고. 모처럼 만에 느껴진 따스한 선의와 호의가 나는 그저… 좋았다.
아직도 내게 다가와 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신경 써주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고마웠으니까.
한천성이 내게 다가온 의미에 대해선… 별달리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 믿고 싶었으니까.
이 세상엔 한천성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런 날 이해해줄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었다.
그리고 지금. 정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정말 아무런 목적도 없었을까.”
그와 헤어지고 불안이 마음에 깃든 지금. 내 마음속엔 작은 의심이 피어올랐다.
-에실데른 가문을 보고 접근한 거잖아.
-네 몸을 보고서 접근한 걸지도 모르고.
-네가 대체 뭐가 좋다고 지금 저렇게 다가와 주겠어.
-가족조차도 널 외면했는데,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아무 흑심 없을 거라 생각해?
-대체 넌 얼마나 더 크게 상처받으려고 그렇게 쉽게 믿어?
귓가에 울리는 환청은 더욱 심해져 갔다.
“……”
악의로 가득 찬 환청 속에서, 나는 그 말들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또각.
다시금 걸어가면서도 조금은 가벼웠던 마음은 다시금 무겁고 침잠하게 가라앉는다.
그리고 의혹이 그 위에 덧씌워지듯 자리한다.
‘한천성은 대체 왜 내게 다가온 걸까.’
오늘 처음 마주한 나에게 그렇게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다른 생도처럼 보고 지나치거나 날 피하려고 해도 그건… 그저 평범한 거니까.
혹은… 연민, 동정과 같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내게 다가왔을지도 몰랐다.
“…생각하지 마.”
질끈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계속해서 마음이 불안에 휩싸여간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렇게 체념하고 싶지 않았다.
“믿고… 싶어.”
이렇게 믿어서 훗날 더 크게 상처받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설령… 한천성이 다른 의도로 내게 접근한 거라고 해도 괜찮았다.
한천성이 내게 다가온 오늘만큼은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그가 내게 해준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그가 정말 날 위해서 해준 말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그는 가벼운듯하면서도 진지한 음성으로 내게 거듭 말해줬었다.
할 수 있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확신 어린 음성으로 내게 말해줬었다.
그 모든 게… 아무런 목적 없는 말이라 할 수 없다고 해도.
지금은 믿고 싶었다.
“…”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
그렇게 불안,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카리테는 거듭 한천성의 말을 떠올렸다.
ㅡ포기하지 마.
ㅡ카리테, 넌 충분히 가능해.
그러자, 카리테. 그녀는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짙게 가라앉던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
다음날 목요일 아침.
천성은 여느 때처럼 아카데미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샤워하고, 생도복으로 갈아입는다.
더 부지런한 생도라면 일찍 나가 생도 식당에서 아침도 먹을 수도 있지만. 잠의 유혹과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천성은 아침은 거르고 있었다.
“…하으.”
멍한 의식 사이로 하품이 새어 나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가끔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오늘처럼.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느새 다음 날이 되어 있고, 언제나처럼 아카데미로 향하기 위해 생도복을 입는 하루하루의 나날.
시간은 정말 왜 이렇게 빠를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수련을 너무 해서 그런가.”
그러다 괜히 그런 말이 새어 나왔다.
카리테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여러 잡념에 휩싸였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만큼 나도 더 크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를 더 도와줄 방법은 없는지, 혹시 생각하지 못하고 잇는 건 아닌지. 그렇게 몇 번이나 생각해봤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란 역시 크지 않았다.
카리테가 원할 때 어제처럼 만나주며, 불안하지 않게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뿐.
그러다 결국 수련에 집중하며 결국 생각을 지워나갔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제대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벅찼으니까.
스륵.
등에 멘 철창의 무게에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진짜 창술사 다됐네.”
픽 웃으면서도 이런 내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철컥.
문을 열고 기숙사를 나가자, 때마침 기숙사를 나서는 여러 생도가 보였다.
‘항상 이맘때쯤 다비드 녀석이 나오던 것 같았는데.’
그리고 머지않아 다비드를 찾을 수 있었다.
부스스한 주황빛 머리칼, 잠이 덜 깬 표정으로 하품하는 녀석의 모습을.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녀석이 픽 웃었다.
“뭐야. 한천성. 너 이제 이 시간에 나오기로 한 거야?”
성큼 다가온 다비드에 나도 자연스레 걸음을 맞췄다.
“그래. 일찍 일어나는 게 낫더라고.”
“잘 생각했네.”
“일찍 일어나야 칼리 교관님 강의도 집중해서 듣지 않겠냐.”
“…진짜 우등생은 사고하는 것도 다르다니까.”
“내가 우등생은 무슨….”
실없는 말을 주고받던 차, 다비드가 돌연 묘하게 날 바라봤다.
그 시선이 뭔가 이상하다 싶던 차.
“한천성. 어제 또 일 벌였다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어젯밤에 잠시 카페 들렸었는데, 생도들 사이에서 또 너에 관한 얘기가 나오던데?”
때아닌 다비드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아무리 내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하다지만, 어제만큼은 내가 뭘 했다고 생각진 않았다.
‘그냥….’
카리테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수련장에서 수련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잤다.
간단한 한 줄로 내 하루를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니까.
“하여튼, 내가 한천성 너. 입학식날부터 딱 알아봤다니까.”
“갑자기 알아보긴 뭘 알아봤다는 거야?”
“너, 여자 밝히는 거.”
다비드가 픽 웃으며 말하자, 나는 그제야 카리테에 대해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비드. 네가 또 오해하고 있나 본데, 전혀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고?”
“그래. 너 지금, 카리테에 대해서 말하는 거잖아.”
아예 선수 치듯 말하자, 다비드가 신기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이름 부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 봐. 한천성, 너 솔직히 말해 봐. 어제 내 수련 도와주겠다는 것도 깨더니,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다비드가 능글맞게 묻자, 바로 절레절레 고갤 저었다.
“정말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순수하게 다가가 카리테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고, 잠시 대화를 했을 뿐이니까.”
“진짜 순수하게라… 흐음. 내가 보기엔 그냥 네가 또 작업 치는 것 같은데.”
거듭 장난치는 녀석의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분명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맞다.
애초에 이 세상 어딜 가도 현실에선 보기 힘든 미녀가 넘치고, 바로 눈앞에 있으니까. 관심이 안 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때를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가져도 될 때와 아닐 때.
그리고 카리테는 엄연히 아닐 때 속해있는 여성이었다.
그녀가 예쁘고 매력 있든 말든 간에 그녀에 한해선 나는 조금의 사심도 없었다.
“하아. 다비드 네 말처럼 나도 카리테에게 작업치려고 한 거면 좋겠네.”
“응?”
“아니,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아무튼,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야.”
말을 얼버무리면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카리테에게 다가선 거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나는 지금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못할 다음 주에 찾아올 위기에 대비해야만 했다.
정말 카리테의 목숨이 달린 것만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 중요한 시기의 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될 거지만, 나는 지금 내 수련에 관한 시간조차 거의 카리테에게 줄 생각이었다.
“뭐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지금 네 표정 보니까. 작업치려고 다가간 건 아닌가 보네.”
“정말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니, 그냥 다른 생도 사이에선 네 말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그러다 이어진 다비드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대체 나에 대해… 어떤 말이 도는데?”
“그냥 뭐… 네가 만나는 여자마다 다 작업치려고 한다, 꼬시려 한다는 말이 좀 돌던걸? 루나야 오해로 밝혀졌다지만, 그 외에도 글레시아도 그렇고 넌 엮이는 일마다 꼭 여자가 끼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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