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Academy Spearman RAW novel - Chapter (87)
내가 어떤 말을 하든, 그녀는 저 차가운 눈으로 바로 나를 꿰뚫어 볼 것이다.
“그래서 수련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 거고, 의지가 앞섰던 거구나. 어제도 그렇게까지 무리해놓고서, 오늘도 수련했다는 거지.”
그러다 내 상태를 안다는 듯 말하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간파한듯했다.
“하아….”
다시금 짙은 한숨을 내쉬는 칼리의 모습에, 오히려 그녀가 화를 내는 것보다 나는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를 강하게 질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삭이려 하는 그녀의 태도에 미안함마저 느껴야 했다.
불현듯, 오늘 그녀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ㅡ그냥… 조금은 자신의 몸을 생각했으면 해서 그래. 노력하는 모습도 좋고, 수련에 매진하는 모습도 보기 좋아. 그런데 그게 몸을 망가트려 가면서까지 하면 안되는 거잖아.
ㅡ의지가 앞서는 모습은 보기 좋아, 게으르고 나태한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다만 그것도 정도가 있으니까. 한천성 생도. 지금 내가 뭘 말하려는 지… 생도도 이제 알겠지?
내 몸을 돌보라며 부드럽게 말해준 칼리는 분명 날 걱정하며 배려해준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지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어겼다. 그것도 조금도 부정할 수 없을만큼….
“한천성 생도. 손 내밀어 봐.”
차가운 음성에도 나는 조금도 거부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오른팔을 내밀면서도 몸을 극도로 제어하려 했지만.
덥석.
순간 내 손을 강하게 잡는 칼리의 손에 나는 그 순간 힘이 탁 풀렸다. 그러자 내 손에 자연스레 반응이 왔다.
맞닿은 그녀의 손에 온기를 느낄 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 거였다.
덜덜. 미미하게 흔들리는 팔.
그게 그녀의 손에 잡혀 있기에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내 손의 떨림이 칼리에게도 전해졌을 거라는 게….
“…진짜. 이런 몸 상태를 나에게 숨기려 했던 거야?”
“죄송합니다.”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를 마주쳐오는 칼리의 붉은 눈을 보면서도 내 몸은 이미 굳어버렸다.
“한천성 생도. 나는 오늘 강의에 빠져도 뭐라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잖아. 그게 대체 왜 그렇게 말했을 거라 생각해?”
“…몸을 추스르라는 의미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잘 알고 있네. 한천성 생도도 분명 나한테 알겠다고 답했으니까. 그런데도 지금 이런 상태라는 거지?”
그녀의 말은 정론. 그리고 또 정론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 상황.
“이렇게 또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혹사하고…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순서라는 게 엄연히 있는 법이잖아. 하다못해 내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녀에게 손이 잡힌 채, 그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의지가 앞서 나는 그저 내 앞밖에 바라보지 못했다.
칼리에게 상담을 했어도, 조언을 구했어도 되는 건데.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고, 어떻게든 닿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만큼 내 마음은 다급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말 한천성 생도를 어떻게 해야할까….”
혼잣말과 같은 중얼거림에 그저 입술만 머뭇거리게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칼리에겐 좋게 들릴 것 같지가 않았다. 칼리의 마음이 그저 풀리길 바라면서 미안했다.
“나도 한천성 생도의 심정을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아니, 내가 한천성 생도를 온전히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는 없겠지. 특성 4레벨에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었는데, 그게 어떻게 들뜨지 않고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 수련에 대한 갈망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또 수련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겠지.”
스륵.
그러다 제 손을 잡은 손길이 묘하게 바뀌자, 멍하니 시선이 갔다.
내 손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처음 강하게 잡았던 것과도 완전히 달랐다.
마치 나를 달래주듯. 내 손을 어루만지는 칼리의 손은 다정하게까지 보였다.
“내가 아무리 말리려 해도 한천성 생도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 그러니까. 한천성 생도.”
“…예. 교관님.”
뒤늦게 답하면서도 그제야 나는 그녀와 제대로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차갑기만 하던 칼리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와 같이 돌아와 있었다.
강의 밖에선 차갑지 않고, 배려심과 다정함을 지닌 칼리의 모습으로….
“이번 주말. 나랑 같이 있자.”
“…네?”
“나랑 같이 시간 보내자고. 한천성 생도가 무리하더라도 내가 전부 받아줄 테니까. 특성 4레벨에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건 확실히 루드미나 교관이 크게 들뜰 정도로 무척 큰일이라고 할 수 있어. 아카데미 역사를 돌이켜봐도 4레벨에 스킬을 터득한 생도는 전무후무한 일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도 정신이 없었나 봐. 내가 더 한천성 생도를 신경 써주고 봐줬어야 하는데.”
이어진 부드러운 음성에 눈을 깜박이면서도 나는 순간 그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다.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나를 이해해준 듯한 칼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지만.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칼리 교관님…?”
“응.”
옅게 웃으며 답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당장 내일 토요일엔 카리테와 만남이 있고, 일요일엔 글레시아와의 만남이 있었…
‘잠깐….’
그러고 보면 오늘.
글레시아랑 만나기로 한 날이 아니던가…?
칼리의 수련을 미룬 것 이상으로 나는 이번 주에 글레시아를 하루 더 만나기로 이미 약속을 잡아 놨었다.
“한천성 생도?”
“말씀은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배려해주시고 봐주시겠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고마워요. 정말 제가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혹시 밤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주말엔 선약이 있어서. 밤에 시간을 내주신다면…….”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몰랐다.
당장 오늘 하루가 벅차다 못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글레시아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어.’
말을 전하며 시간을 확인하자, 약속 시각인 6시까지 이제 고작 10분 남겨두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없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
저벅. 저벅.
아카데미 내 건물 사이를 걸음이 바빴다.
그러면서도 조금 전까지 마주했던 칼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ㅡ선약이 있다면 다음으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한천성 생도는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은 상태니까, 마음이 얼마나 달아올라 있을지 나도 십분이해하고 있어. 그럼… 그래, 주말 밤에 만나는 걸로 해.
내 말에 조금 멈칫하며 답해준 칼리. 그렇게 나는 ‘주말 저녁 9시’에 칼리와 수련하기로 약속 잡았다.
그리고 지금도 내딛는 걸음은 조금도 멈출 수 없었다.
‘늦었는데.’
마음 같아선 뛰고만 싶었지만, 몸이 완전히 정상이 아니라 차마 뛸 수가 없었다.
뛰다가 내가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으니까. 그래서 지금 최선인 빠르게 걸어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저벅.
“…하아”
가쁜 숨을 토해내면서도 그렇게 늦지 않게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나를 기다리는 듯한 글레시아의 모습을.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멍하니 입이 열렸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정말….
내 마음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이 상황에 누군가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내게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글레시아와의 만남이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누굴 만난다고 그럴만한 여유 자체가 없다고,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일과 스킬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저벅.
서서히 다가가면서도 심호흡했다.
“글레시아.”
조심스레 그녀를 부르자, 이내 내게로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라락.
특유의 짙은 푸른 머리칼을 찰랑대며 그대로 나를 직시하는데, 글레시아의 눈이 그대로 치켜 올라갔다.
“늦어.”
“…미안. 나도 늦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하면서도 그저 어색한 웃음만 나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6시가 넘어서 있었다. 고작 2분이라고 하나 내가 늦은 건 늦은 거니까.
자연스레 그녀의 곁에 자리하면서도 시선을 마주쳐갔다.
“또 기다리게 해서 미안.”
“…됐어. 그래도 이렇게 와서 다행이니까.”
“다행?”
“네가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오늘 약속은 네가 못 지킨다고 해도 나도 받아들이려 했어.”
…글레시아는 언제 눈을 치켜떴냐는 듯 눈을 가라앉히며 말해왔다.
그 말에 나는 무심코 묻게 됐다.
“소문이 벌써 퍼졌어?”
“층만 다르지 사실상 같은 건물에 있잖아. 그럼 소문이 돌면 단숨에 정말 빠르게 퍼지거든. 거기다 한천성. 너에 대해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생도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 더 빠르게 퍼지기도 해.”
이어진 말에 고개를 끄덕여가다, 내가 지나친 말에 순간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받아들이려 했다는 말.
그건 조금 이상했으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글레시아. 혹시 내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공원에서 계속 기다릴 생각이었어?”
“나도 생각을 정리할 겸 공원에서 기다리려 했을 뿐이야. 그리고 사실 양호실에도 찾아가 봤지만. 넌 이미 없더라고.”
담담한 그녀의 말에 서로가 엇갈렸다는 걸 느꼈다. 글레시아가 언제 양호실에 들렀는지 몰라도 나는 그 말만으로 고마웠다.
“그래도 고마워. 날 걱정해서 찾아왔다는 거잖아.”
“…걱정?”
“어. 날 걱정해서 양호실까지 찾아온 거 아니었어?”
말하면서도 작은 웃음이 났다.
직접 날 찾을 정도면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글레시아의 걱정이 기분 좋게 들렸다.
“그렇…지. 나도 널 걱정했던 걸지도 모르겠네. 우린 친구니까.”
“그래. 우린 친구니까.”
“응. 너랑 나는 이제 친구 사이니까.”
같은 말을 서로가 반복하는 게 우습던 차.
새삼 생각하게 됐다.
‘친구라.’
정말 친구 사이라면 나도 제대로 말을 전할 필요가 있었다.
“글레시아. 정말 친구니까 하는 말인데. 우리는 지금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응. 그게 왜?”
“다름 아니라… 조금은 그걸 유동적으로 바꾸고 싶어서. 물론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려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모자란 기분이야.”
글레시아를 소홀히 한다는 것보단, 지금은 나도 엄연히 집중을 해야 할 시기였다.
당장 카리테에게 신경 쓰는 것과 내 성장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나는 글레시아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기도 했고. 다음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
내 말에 아무 말이 없는 글레시아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서로가 보고 싶을 때 찾아가는 걸로 하자. 물론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얼마나 없는데?”
“당장 만나야 할 사람이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성장에 있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야. 사실 어제 의식을 잃었다는 소문도 어제 수련을 하다 그렇게 됐어.”
글레시아의 의문에 나는 다른 말을 전하지 않았다.
전에 내가 그랬고, 지금 글레시아가 말해줬듯.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고 명확히 관계를 확정 지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에게 무언가 숨기거나 변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한천성. 대체… 얼마나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거야?”
내 말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정말 사실을 전했다.
“사실. 최근 들어서 나는…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었어.”
내 소문이 정말 빠르게 퍼지는 만큼, 오늘 수련장에서 보인 내 모습조차 빠르게 퍼질 것이다. 그럼 내가 굳이 숨겨도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꺼냈는데.
“…!”
놀란 글레시아를 보자, 어쩌면 내 성급한 생각일지도 몰랐다.
크게 떠진 두 눈과 벙찐 표정은 글레시아가 정말 크게 놀란 것처럼 보였다.
“…스킬이라고?”
“어. 아직 완성하지 못했고, 시일이 걸릴 거라 생각하지만 단서는 잡았어.”
“정말… 스킬에 대한 단서를 잡은 거야?”
거듭 묻는 글레시아의 두 눈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불신이 어려 있었다.
순수한 글레시아마저 이렇게 거듭 물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반응이 일반적인 반응이란 걸 안다.
오늘 루드미나 교관이 보기 드물게 들뜬 음색으로 내게 말을 해온 것도 것이며. 정말 놀란 칼리의 모습까지.
‘그만큼 내가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건 믿기 힘든 사실이니까.’
나라고 해도 레온하르트가 4레벨에 스킬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고 하면 무척 놀랐을 거였다.
“대체 어떻게…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어떻게라고 해도…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정말 간절하게 원하고 또 바라자, 내게 천운이 따른 것 같으니까.”
“…간절히 원해서.”
뜨문뜨문 말을 잇는 글레시아의 모습에 내가 스킬에 대한 단서를 잡은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다시 느꼈다.
천운 혹은 기적. 그 무엇이라 볼러도 스킬에 대해선 정말 부족함이 없었다. 내게 스킬에 대한 단서가 나타난 건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글레시아. 당분간이나마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조금은 미뤄두기로 해. 나는 내 수련에 열중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