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63)
363
총통직을 사임함에 따라 제3제국 2대 총통의 직위는 괴링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세계는 새로운 2대 총통의 탄생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괴링이 총통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총통직에서 사임한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총통, 총통 각하!”
“아직은 이르십니다!”
“부디 저희를 더 이끌어주십시오!”
“독일에는 아직 총통 각하가 필요합니다!”
내가 총통직 사임을 발표하던 날, 베를린의 거리란 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내게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요청했다.
비단 베를린 외에 함부르크, 뮌헨, 쾰른, 뉘른베르크, 쾨니히스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전역에서 시위가 열렸다. 내 총통직 사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자랑이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시위가 열리지 않은 도시가 없는 수준이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작은 마을들에서조차 사람들이 나와 총통직 사임 반대 시위를 열었고, 심지어 뉴스를 전하던 아나운서가 갑자기 총통직 사임에 자기 역시 반대한다는 선언까지 하기도 했다.
“총통 각하.”
“나 이제 총통 아니라니까. 총통은 자네 아닌가. 편하게 부르게.”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
“총통 각하도 아시다시피 국민의 반대가 거셉니다.”
“나도 뉴스 보고 있으니 알고 있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부디 국민의 염원을 귀 기울여 조금만 더-”
어휴 진짜.
괴링조차 하루가 멀다고 내게 달려와 다시 총통직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그를 쫓아냈지만, 괴링은 내가 하는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보게 괴링. 내 나이도 벌써 80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 늙은이더러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독일 국민이 총통 각하를 원하니-”
“됐네. 지금은 모두들 야단법석을 떨어도 아무런 대응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결국엔 국민도 현실을 받아들일 걸세.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자네는 이제 독일의 총통이야. 이젠 자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지. 독일의 운명이 자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자각하란 말이네.”
말을 마친 나는 서둘러 괴링을 쫓아냈다. 하여간, 은퇴하고서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위치라니. 인기가 너무 많은 것도 곤란하다.
시위는 한 달 내내 이어졌다.
사람들은 연일 목청껏 내가 돌아올 것을 염원하는 구호를 외쳐댔고, 아예 내가 총통직 복귀를 선언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겠다며 버티는 사람들도 한 무더기였다.
이러한 광경이 일주일 내내 이어지자,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무장친위대가 철통같이 경호 중인 방송국 안에서 나는 전날 준비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지금, 이 순간 방송국 밖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최근 요 며칠 동안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총통직에 복귀하길 원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에 대한 기대와 관심, 사랑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쿨럭.
방송실 내부가 건조해서 그런지 잔기침이 나왔다. 딱히 긴장한 것도 아닌데 입이 자꾸만 말랐다. 다시금 내가 늙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시작에는 끝이 있듯이 깨끗하게 훌훌 털고 일어서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저는 이미 32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이끌어왔습니다. 32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이지요.
저는 독일을 바로잡고, 땅에 떨어진 위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가정과 국가에 헌신해왔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제 할 일을 다했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이 늙은이가 자리를 지키고만 있다면 후대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보내시는 지금이야말로 저는 제가 떠날 때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독일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임으로 임명한 헤르만 괴링 총통을 제 뒤를 이어 독일을 이끌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디 여러분들께서는 그에게 지지와 응원, 많은 관심을 보내주십시오. 그래야 그가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도 소처럼 일할 친구긴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오늘과 내일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성명문 낭독을 끝낸 뒤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를린 교외에 마련한 내 안식처로.
내가 방송국에서 ‘앞으로 복귀할 생각 없음’을 발표한 이후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하지만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사람들도 느껴서인지 서서히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지난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총통은 은퇴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적응해야 할 때.
시위에 나오는 이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을 거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은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시위는 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은퇴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독일은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은퇴를 선언하고 얼마 뒤, 나를 여호와처럼 열렬히 따르던 측근들도 줄줄이 사임했다. 괴벨스, 리벤트로프, 헤스, 힘러 등등.
괴벨스와 리벤트로프는 원래 괴링과 관계가 별로이니 괴링 밑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은퇴하고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나처럼 유유자적한 은퇴 라이프를 즐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얼굴에 다 드러나 있거든.
힘러와 헤스는 괴링과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이 둘도 나이가 나이고, 내가 은퇴했는데 자기들도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며 은퇴했다.
힘러가 차지하고 있던 SS 수장직은 하우서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하우서도 얼마 못 가 고령을 이유로 은퇴했고 그렇게 디트리히가 SS 수장직을 차지했다.
총통일 때는 매일같이 업무가 이어졌지만, 은퇴한 뒤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맡았던 업무는 이제 괴링의 몫이었고 내가 할 일은 이대로 여유롭고 유쾌한 은퇴 라이프를 마음껏 만끽하는 것뿐이었다.
은퇴하고 두 달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책과 TV를 보며 지냈다.
가끔 산책하러 나가거나 영화관에 영화를 감상하려 외출하곤 했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총통일 적에 순방을 여러 번 다니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업무의 연장선이었기에 순전히 관광을 즐길 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은퇴한 노인일 뿐이니 마음껏 관광을 다닐 수 있었다.
관광도 많이 다니면서 동시에 장례식도 자주 참석했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듯이 시간을 거스르는 인간은 없다. 누구나 늙고, 수명이 다하는 죽는 법.
그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전우’들이 땅에 묻히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여러 감정이 들게 했다.
“몸은 좀 어떠시오?”
“아이고, 총통 각하. 여기까지 다 행차를 해주시고-”
“더 이상 총통 아니래도 그러네. 거, 사람 참.”
구데리안은 식도정맥류 파열로 수술을 받았다. 병상에 누운 그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볼살이 들어갔고 눈은 퀭한 그와 마주하니 그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담당 의사의 말이 실감 났다.
“안 그래도 어제 에리히가 다녀갔습니다.”
“아, 그 얘긴 들었소.”
구데리안의 절친인 만슈타인은 어제 그를 병문안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원수가 쓴 책은 내 재밌게 읽었소. 군인이 아니라 작가를 해도 되겠던데.”
“과찬이십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린 것일 뿐인데요.”
구데리안의 회고록 ‘한 군인의 회상(Erinnerungen eines Soldaten)’은 처음 발간된 때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비단 독일 내에서만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과거 적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매일같이 수백 부가 판매되고 있었다.
지금도 인쇄 부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중이라고 하니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총통 각하께서 쓰신 나의 투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건 그렇고 총통 각하도 새 회고록을 쓰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나오는 즉시 베스트셀러는 따놓은 당상일 텐데.”
“그러잖아도 요즘 심심해서 시간도 때울 겸 쓰고는 있소이다.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되는군요. 완성되면 저한테도 한 부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걱정 마시구려. 완성되는 즉시 원수에게 가장 먼저 보여줄 터이니.”
“하하하하하!!!”
구데리안이 내 두 번째 책을 읽는 일은 없었다.
나와 만나고 다음 날, 구데리안은 영원히 숨을 거뒀다.
기동전의 선구자이자, 독일 기갑의 아버지로서 독일의 2차대전 승리에 크나큰 공헌을 세훈 그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대로 사망했다.
구데리안이 죽자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했다. 나 역시 괴링과 함께 구데리안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읽었다.
카이텔, 레더, 룬트슈테트, 베버, 팔켄하우젠 등 쟁쟁한 영웅들도 저마다 비슷한 시기에 눈을 감았다.
제3제국의 성공신화를 세우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이들은 그렇게 하나둘씩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
세계는 조용했다. 실제 역사에서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흔들어놓았던 68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68운동이 중점적으로 일어났던 프랑스에서는 조금 비슷한 기류가 흐르긴 했다. 라발이 죽고, 실제 역사에서도 프랑스의 대통령이 됐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 원수직에 오를 무렵 프랑스 각지에서 정부의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대학생 등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는 독재 완화를 외치며 행진했고 미테랑은 시위대의 요구를 즉각 받아들여 라발이 제정한 여러 조치를 해제할 것을 발표했다.
의외로 정부가 순순히 요구를 받아들이자, 시위대는 얼마 못 가 해산되었다.
괴링은 미테랑의 이러한 결정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미테랑의 발표 어디에도 반독일스러운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시위의 성격 역시 독일과 추축국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태클을 걸 이유도 없었다.
미국은 끝내 유인 우주선 개발에 성공해 달에 자국인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비록 역사보다 2년 늦은 시기였지만 그래도 5년 안에, 달에 착륙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미국인 최초이자 인류사에서 세 번째로 달의 표면을 밟은 사람이 되던 날, 공교롭게도 독일에선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우리의 투쟁.
나의 투쟁에 이은 내 두 번째 자서전이었다.
나의 투쟁을 쓸 때와 다르게 역사가 변해도 너무 변한 관계로 처음엔 뭘 쓸지 고민했다.
국제정세가 달라졌기에 내가 알던 역사-천안문 사태와 소련 해체, 9.11 테러, 러우전쟁 등등-를 쓸 수 없게 되었으니.
그래서 현재의 정세를 고려해 미래에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내용으로 채워 넣었다.
나의 투쟁에는 넣지 못한 우주 탐사, 가정용 컴퓨터, 그것도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노트북, 스마트폰-와 인터넷, 드론 같은 각종 전자기기의 발달과 실용화에 관한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관련 분야에 종사 중인 전문가들이 본다면 오만 잡다한 것을 다 쑤셔 넣은 잡탕 같은 내용이라고 질색하겠지만 책은 잘 팔렸다.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금은 모두 국고로 보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돈 걱정하며 살 일도 없으니 내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었다. 그렇다면 사회를 위해 쓰이는 게 맞겠지. 죽어서도 돈을 들고 갈 건 아니지 않은가.
즐겁고 한가한 생활은 쭉 이어졌다.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했다.
미국을 들러 그랜드 캐니언과 러시모어 산을 구경해봤고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와 사자가 뛰노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전차, 장갑차, 그리고 전투기와 폭격기를 직접 조종해보기도 했다. 머리가 굳어서 그런지 조종법을 배우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꿀맛 같은 은퇴 라이프를 즐기던 와중에
내게도 그 날이 찾아왔다.
***
1972년 4월 30일.
“총통 각하.”
“아직도 그 소리인가.”
나는 괴링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괴링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참 많이 늙었다. 이마며 눈 밑이며 뭐 하나 주름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제도 오지 않았나?”
“어제부터 있었습니다.”
“나랏일은 어쩌고.”
“…….”
“뭐 됐네.”
나는 방안을 쓱 둘러봤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방 안에 있는 이들 중에 내가 모르는 얼굴은 없었다.
괴링, 괴벨스, 힘러, 헤스, 리벤트로프, 슈페어, 되니츠, 갈란트, 마우리스, 롬멜, 모델, 하우서, 디트리히, 파이퍼 등등.
어지간한 학교 강당만 한 방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이들이 방 안에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참 할 일도 없구만. 고작 이 늙은이 하나를 보겠다고 오다니. 할 일들이 그렇게나 없나.”
“…….”
“목이 마르군.”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간호사가 물이 든 컵을 건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콜라 없나?”
“하지만-”
“시원한 콜라가 마시고 싶네. 콜라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30초도 지나지 않아 시원한 콜라도 배달되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콜라였다.
“괴링.”
“예, 총통 각하.”
“내가 써준 그 메모는…… 아직 가지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는 총통직에서 사임하면서 괴링에게 메모 한 장을 남겼다.
메모에는 차마 세상에 밝힐 수 없는 당부들이 적혀 있었다. 괴링과 그 후임 총통들에게 남기는 내 당부.
나는 독일이 역사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여러 당부를 남겼다.
미국과 적대보단 공존을, 전쟁보다는 협상을 먼저 생각해라.
다만 미국이 독일의 권역을 건드린다면 그때는 독일의 권리를 우선시해서 판단해라.
성별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기용해라. 절대 할당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인성이 개차반인 놈을 인재랍시고 등용하지는 말고.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관심과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돈만 무작정 퍼주지는 말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들과는 친하게 지내라. 사이 틀어지면 골치 아플 테니. 대신, 이민은 어지간해선 받지 마라. 그게 독일에 좋을 거다.
독일 국민, 모두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죽는 일은 없도록 해라.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종교가 인간의 권리까지 제약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마라.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이 메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져선 절대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독일이 지금처럼 지속하는 한, 내가 쓴 메모가 세상에 공개되는 일은 없으리라.
방금 잠에서 깼는데 또 졸음이 밀려왔다. 이젠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2배, 아니 3배는 더 많았다.
“이보게.”
다시 잠이 들기 전, 문득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모두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대강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말씀하시지요.”
“자네들이 보기엔 어떤가? 이만하면…… 열심히 노력한 거겠지……?”
모두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는 대포의 포성처럼 하나같이 우렁찼다.
“……물론입니다!”
그 우렁찬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그래. 그럼 된 거야…….”
눈꺼풀이 자꾸만 감겼다. 방 안의 공기가 탁하게 느껴져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바람이 불어 커튼이 휘날렸다. 휘날리는 커튼 사이로 빛이 방에 침투했다. 하늘에 뜬 태양이 내뿜는 강렬한 빛이었다.
빛에 눈이 부셨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빛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서 마치 온 세상이 백색으로 물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