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15
제118화
엘레노아에게 있어서 이제 와서 루시아가 군인이었다는 건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래, 분명 그랬다.
애초에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시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은.
“아…….”
누군가에게는 평생 숨기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루시아는 자신이 엘레노아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투성이라는 게 너무 죄스러웠던 거다.
그런 거짓말로 일관해왔던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상대 역시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변했다.
자신과 달리 겁쟁이로 끝나지 않고 새로 쌓아 올리기를 바랐다.
그녀는 오즈와 다르다.
오즈가 관계를 부수고 다시 쌓아 올리는 걸 보면서도 그녀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더라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군인.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부품 중 하나다.
그녀가 원한다고 해서 지금의 관계를 멋대로 청산할 수는 없었다.
“안돼…….”
에 잡입하기 전, 루시아에게 있어서 친구라는 건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왔던 울라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집안과의 교류, 직업상의 교류였다. 그래, 그렇기에 엘레노아가 처음이었던 거다.
“왜 하필…….”
그녀가 군인이 아닌 친구로서 대할 수 있었던 건.
밤에 침대에 앉아 시시콜콜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단하다는 듯이 떠들 수 있었던 건.
책상 앞에 앉아 함께 머리를 싸매며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군인이 아닌, 퍼니셔 가문의 집행인이 아닌, 단순한 또래 친구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하필이면 지금……!”
그녀가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이다.
서로가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로 이루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루시아는 좋았던 거다.
하지만 한층 성장해버린 엘레노아는 거짓말쟁이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본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그게 고통스러웠다.
상대는 진심을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직업상 거짓말을 계속 일관해야 하니까.
그녀는 군인이기에 지금의 거짓말을 밝혀서는 안 됐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런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다.
“너한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거짓된 관계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끝을 맞이해버렸으니까.
루시아는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 * *
뭐, 그래.
늘 그랬듯이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이런 식으로 꼬였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그냥 앞으로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할 뿐이다.
노아는 괜찮다.
이미 단단해질 만큼 얻어맞아 온 그녀로서는 이제 이 정도 일로는 멘탈이 나가거나 할 일이 없다.
“루시아?”
“노아, 나는…….”
다만 루시아가 문제였다.
그녀는 훈련을 받은 만큼 정신력도 뛰어난 편이었지만 이번 일은 그동안 쌓여온 게 단번에 터져버린 느낌이다.
그녀에게 있어선 모든 게 새로움의 연속이었을 거다.
무채색으로 집단에 스며들었던 그녀가 물들어버리고 말았다.
그건 군인으로서가 아닌, 퍼니셔 가문의 집행인이 아닌, 그저 루시아라는 사람의 삶이었던 거다.
그야 낯설기도 할 거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래, 친구에게 한 거짓말을 수습하는 법조차도 처음인 거다.
그녀에게 있어서 시작부터 거짓말이었던 관계를 다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이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게 가능하다는 걸 각인시켜버렸다.
크리소스에서 나는 엘레노아와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그렇다면 그걸 바라보고 있었을 루시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 점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 그게 아닌……. 나는……!”
군인으로서의 그녀와 루시아로서의 그녀가 내면에서 뒤엉킨 채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다.
그녀는 본능처럼 변명을 입에 담으려고 하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할 줄 몰라 버벅이고 있을 뿐이다.
“못 봐주겠네.”
중급 마법
[파이어 월]술식을 틀어 [파이어 월]의 범위를 필요 이상으로 넓힌다. 비효율적이고 불안정하지만 상관없다.
“우왓?!”
이 마법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마법이니까.
아직은 안 된다.
루시아에게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아니, 비단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건 루시아만이 아닐 거다. 시간이 필요한 건 엘레노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루시아가 지금까지 그녀를 속여왔다는 사실쯤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게 오히려 안 좋다.
그녀는 지금 루시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그로 인해 루시아는 더욱이 상처받게 될 거다.
지금은 중재가 필요하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루시…….”
그렇게 둘 사이를 마법으로 가로막은 채 일단 루시아를 먼저 진정시키려던 순간이었다.
“이 정도쯤은……!”
스칵!
불의 벽에 조금씩 흠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나 그 자체를 물들여버리는 황금색의 광채.
[이해자의 열쇠]다.“아니…….”
이 자식……. 너무 성장했잖아?
거대한 불의 벽이라는 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압감을 줬을 텐데 상관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성장했다는 사실을 피로하는 것도 좋지만 때와 상황을 조금 판단해줬으면 좋겠다.
“멈춰! 노아.”
“아무리 스승의 부탁이라고 해도 그건 싫어요!”
불의 벽 너머로 뻗어 나오는 황금색 광채가 점차 가까워진다.
“루시아가 괴로워하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저는 그걸 못 본 척 가만히 넘어갈 수 없어요!”
“환장하겠군.”
저 친절이 지금 루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하긴 알면 저러지도 않겠지.
“마리.”
앞으로 참격 5번이면 [파이어 월]이 허물어질 거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금 루시아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꼬이게 될지 예상하기가 힘들다.
“잠시라도 좋으니까 엘레노아를 막아줄 수 있을까?”
“코오오…….”
“자니?”
너는 이 상황에 잠이 오니?
아니, 그보다 방금 전만 해도 스테시아를 미친 듯이 몰아세웠으면서 잠에 빠질 수가 있다고?
이 자식 주사가 장난 아니다.
……마리에게 술을 먹인 건 분명 백양이겠지. 한 대 때려줄 테다.
“하아…….”
상황은 최악.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그것도 아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빠진다니 말이 되는가?
자, 일단 주변을 [관조]해 보자.
피와 술에 취한 듯 해롱거리고 있는 녀석이 둘.
공황 상태에 빠진 녀석이 하나.
일단 돌격하고 보는 멧돼지 같은 녀석이 하나.
어물쩍거리고 있는 의 요원들이 다섯.
방관하고 있는 도깨비 하나.
아, 그래. 다시 봐도 정말 환장할 것 같은 상황이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차악 정도밖에 없다.
“상황파악이 안 되면 일단 두 사람을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가.”
“예……. 예!”
얼타고 있는 의 요원 중 한 명의 멱살을 틀어잡고 말한다. 정예 요원인 루시아가 저 모양이라서 그런지 지휘체계 자체가 흐트러져 있다.
지시를 내릴 사람이 없다고 해도 비상시의 지휘체계가 있을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다.
정규군 소속이 아닌 개별 활동 중심의 부대라서 그런 걸까? 어쩌면 대외 활동을 하기도 하는 정예 요원을 제외하고는 군인으로서의 활동도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울라가 루시아의 지시로 현장에서 벗어나지만 않았어도 혼란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그 녀석은 루시아처럼 섬세하지 않으니 엘레노아에게 들킨 것쯤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을 테니까.
“자, 그러면…….”
저 멧돼지처럼 돌격하는 녀석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엘레노아는 여러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정신력의 문제일 뿐이지 아직 상황판단 능력은 뒤떨어지는 편이다.
지금 그녀가 미친 듯이 원하고 있는 걱정의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녀는 관종이기에, 거리를 두는 방법을 모른다.
그녀는 한 번 정한 일이 있다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주변조차 보지 않는다.
지금 그녀에게는 창백하게 질려 끌려가듯 자리를 벗어나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초급 마법
[리틀 봄]한없이 시야가 좁아진 엘레노아의 주의를 내 쪽으로 옮기기 위한 마법을 전개한다.
그래 봤자 초급 수준의 마법이다.
말 그대로 주의를 끄는 수준밖에 안 될 거다.
하지만 그 정도면 될 거다.
“열려라.”
“이 자식이?”
“친절의 온기!”
엘레노아의 대검이 더욱이 황금색 빛을 머금는다. 주의를 끌기 위해 날린 마법들이 그 황금빛과 만나 산산이 부서지고 흡수된다.
빌어먹을 조화의 힘.
심지어 초급 수준의 마법이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그대로 엘레노아의 힘으로 환원되어버렸다.
막상 적으로 마주하고 보니 상상 이상으로 거슬리는 힘이다.
엘레노아는 내가 전개하는 초급 마법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격한다.
“……그래, 최근 힘 좀 생겼다고 자신감이 늘었다 이거지?”
건방진 녀석 같으니. 이제 머리 좀 컸다고 위아래조차 없는 거냐?
스승이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아주 그냥 무시를 하고 있다.
중급 마법
“읏?!”
엘레노아의 맹렬한 돌진에 처음으로 제약이 걸린다.
[이해자의 열쇠]가 지닌 힘.그건 확실히 대단하다. 상대의 공격을 무시하고 상대의 근원을 끊어버릴 수 있는 조화와 단절의 힘은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주인공의 자격을 부여할 정도일 거다.
하지만 아직도 미숙하다. 그녀는 앞으로도 더더욱 성장할 테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그래, 오랜만에 스승다운 일 좀 해볼까?”
“어떻게……?”
고작 중급 마법에 막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엘레노아가 처음으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조화의 힘, 대단하긴 하지. 하지만 마법 자체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닌 그저 현상을 유도하는 현상 마법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거든.”
조화의 힘은 상대의 에너지 그 자체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힘으로 삼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명왕]의 화신체와 싸웠던 시점에서 눈치채야 했다.
그녀가 화신체에게 상흔을 새겼다고는 해도 화신체 그 자체가 무력화됐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조화의 힘이 흡수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에너지뿐이다. 순수한 물리력에는 대응할 수 없다.
순수한 물리력 앞에서는 그저 반짝이는 칼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다면……!”
물론 엘레노아에게는 조화의 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녀가 착실하게 쌓아 올린 그녀 자신의 힘, 마나가 있다.
“하아아아압!”
조화의 힘이 아닌 마나의 힘을 담아내기 시작한 엘레노아의 검이 푸른빛을 띤다. 저 정도 마나라면 중급 마법인 [스탈라그마이트]쯤은 가볍게 잘라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힘을 다루는 사람이 너무나도 미숙하지.”
엘레노아는 아직도 모자라다.
그저 특별함을 갖췄을 뿐.
그녀 자신이 쌓아 올린 경험은 한참이나 부족하다. 그런 그녀가 할 행동쯤은 눈에 선하다.
조화의 힘으로 안 된다면 다른 힘을 쓴다. 그래, 마나를 쓴다.
너무나도 1차원적인 생각이다.
“가진 능력이 좋아봤자 소프트웨어가 그 모양이니까.”
중급 마법
[워터 폴]마나의 힘은 단순히 예리함과 파괴력을 늘린다. 그래, 단순하다.
그렇다면 그 단순한 물리력이 물 같은 부정형의 힘을 벨 수 있을까? 뭐, 무협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경지에 오른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엘레노아는 아니다.
“그저 힘을 휘두를 줄밖에, 독선을 강행할 줄밖에 모르지.”
유연한 사고가 부족하다.
하긴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멧돼지처럼 돌격하지도 않았을 터.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백날이 지나도 크리소스를 재건한다는 목적을 이루는 건 불가능해.”
“…….”
폭포를 견뎌내고 있는 엘레노아의 눈빛이 조용히 열기를 머금는다. 도발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하긴 독선이라는 건 동시에 자기 신념이 확고하다는 소리기도 하다.
그녀의 눈빛에 깃든 건 분노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눈빛이다.
단순히 힘을 휘두르는 정도로는 안 된다.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거다.
“좋은 자세야.”
간만에 스승다운 일 좀 한 거 같다. 그럼 이번에는 스승다운 일이 아니고 나 다운 일을 할 차례다.
“그런데 내 말을 무시하고 날뛴 대가는 받아야지.”
“……네?”
방법을 모색한다? 좋다.
하지만 누가 그걸 기다려 주겠는가. 실전은 냉혹하다.
그럼 지금은 훈련인가? 아니다.
스승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건방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야겠다.
엘레노아가 방법을 찾기도 전에 새로운 공격 패턴을 준비한다.
처음이 현상을 유도하는 현상 마법, 두 번째가 마나를 이용해 폭포를 재현하는 속성 마법이라면 세 번째 수단은 물리 마법,
그래, 단순한 물리력. 펀치력이다.
“잠, 스승?!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 얼굴을 향해 주먹은……!”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는 녀석이 할 말은 아니지.”
물론 진짜로 얼굴을 때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부터 안 볼 사이도 아닌데 그런 기분 상할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있는 힘껏 복부를 올려쳤다. 어퍼컷, 아니 보디 블로라고 부르던가? 잘 모르겠다.
“커흑!”
아무튼, 쏟아지는 폭포를 막아서고 있던 엘레노아는 아래에서 들어오는 추가 충격에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폭포에 집어 삼켜졌다.
“물리력에 한참이나 약하구나. 앞으로 정진하도록 해.”
[스탈라그마이트]도, [워터 폴]도, 그리고 단순한 보디 블로도.현상 마법, 속성 마법, 물리 마법. 다 다르게 부르지만 일단 물리력을 사용한다는 점은 모두 같다.
그게 엘레노아가 앞으로 극복해내야 할 숙제이리라.
“자, 그러면…….”
들은 루시아와 스테시아를 데리고 무사히 이탈했다.
물에 젖은 엘레노아는 처량하게 바닥에 붙어 있다.
남은 사람은 둘.
만취해 잠들어 있는 마리와 그저 상태를 관망하고 있는 백양이다.
“안녕하세요오. 상황이 조금 어지럽지만 마침 잘 됐네요오. 안 그래도 오즈 님에게는 따로 전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사달이 난 것도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네.”
“네……?”
상황이 꼬이게 된 건 만취한 마리의 난입이고 그 원인은 눈앞의 도깨비가 술을 먹여서다.
이 녀석이 만악의 근원이다.
“하긴 뭐든 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냐.”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그보다 왜 그런 표정으로 다가오시는…….”
그래, 나는 이미 물리 마법을 행사하는 게 익숙해져 버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