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19
제122화
고양이 모양 가면을 뒤집어쓴 엘레노아는 오즈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준 사이 건물 내에 잠입한 상태였다. 평소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그녀치고는 제법 얌전한 방식이었다.
[이해자의 열쇠]가 지닌 단절의 힘. 그녀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단절시켰다.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녀의 존재감을 잡아낼 수 없었다.
다만…….
“허허……. 침입자가 누군가 했더니 또 노아 학생이군요.”
“큿……. 엔 교수님. 가면이 아무 소용이 없네요. 도대체 어떻게 저라고 눈치챈 건가요?”
“귀여운 가장이군요. 하지만 그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까지는 가리지 못한다는 게 흠입니다.”
그녀가 지금 확실히 존재하는 이상 마법적인 방범 장치까지 따돌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해야 존재감을 지울 뿐이다.
과거 폭주상태처럼 그녀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하하, 곤란하네요. 하긴 제가 워낙에 예쁘다 보니 눈에 띄어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만요.”
“그 자신감 어린 태도. 언제나 보기 좋습니다. 노아 학생.”
엔 드로드는 하는 말과는 달리 지팡이를 꺼내 들며 엘레노아를 겨냥했다. 상대는 학생.
살상력이 높은 마법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자체적인 페널티를 떠안았다고 해도 엔 드로드는 엘레노아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교수님. 아무래도 제가 조금 바쁜데 자리를 비켜주실래요?”
“저런, 그렇다면 빨리 밖으로 안내해드려야겠군요. 여기는 학생 출입 금지입니다. 노아 학생.”
“하핫!”
엘레노아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미 한 차례 그는 엔 드로드에게 제압당해 바깥으로 던져졌다.
그때는 그의 온정 덕에 철창신세는 면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엘레노아가 생각하기에도 두 번은 기회를 주지 않을 거 같았다.
‘내 약점…….’
오즈는 물리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약점이 아니다. 순전히 그녀의 실력만이 드러나는 대목이라는 소리였다.
그녀에게는 [이해자의 열쇠]라는 터무니없는 히든카드가 있다.
단지 그 힘이 순수한 물리력 앞에서 퇴색된다는 것뿐이다.
그래, 그게 그녀의 실력이다.
‘정말 눈물 나오네.’
엘레노아는 아직 약하다.
열쇠의 힘을 쓴다고 해도 그건 온전히 그녀의 힘은 아니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 그녀 자신이 약한 것쯤은 알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최근 여러 일을 통해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부족함을 실감하게 되는 이 상황이 진절머리가 날 거 같았다.
“스승은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음? 스승이라면……. 아아, 오즈 학생을 말하는 거군요. 좋은 말을 들었군요. 노아 학생.”
“저는 교수님을 당해내지 못해요. 제가 품고 있는 힘도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채울 기교조차 없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엔 드로드는 엘레노아의 자신감 없는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저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물러난다는 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교수님은 교수님이고 저는 학생이죠. 당연한 일이에요.”
“그렇습니다. 노아 학생. 이번 실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낙담하지 말고 정진하다 보면…….”
“그렇다면 교수님은 저를 죽일 수 없어요. 그렇죠?”
“예……?”
엔 드로드는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엘레노아의 눈에 깃든 투지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길 생각이다.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이길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교수님, 저는 죽을 각오로 길을 뚫을 거예요.”
“맙소사…….”
자신의 목숨으로 딜을 걸고 있다.
엔 드로드는 엘레노아의 광기까지 느껴지는 발언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엘레노아는 대검에 자신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마나를 쑤셔 박으며 당당하게 발을 내디뎠다.
“지나갈게요. 교수님.”
탓!
엘레노아가 대검을 부여잡은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마치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일반인이 달려드는 속도였다.
그래, 그녀는 모든 마나를 공격에 쏟아부었다.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육신을 강화할 모든 마나마저도 공격에 한정 지었다.
“이런…….”
중급 마법
[스탈라그마이트]엔 드로드는 그런 엘레노아를 향해 마법을 전개했다.
중급의 땅 속성 마법. 하지만 그가 전개한 마법은 조금 달랐다.
단순한 돌의 창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단단했으며 바닥에서만이 아니라 복도 공간 전부에서 솟아 나올 정도로 광범위했다.
“하아아아압!”
콰직!
엘레노아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돌의 창을 대검으로 베었다.
방어에 쏟을 마나까지 모조리 공격으로 돌린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윽?!”
엔 드로드는 그런 엘레노아의 모습에 마법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는 반발력이 있는 법이다.
그녀의 검이 바위의 창을 베어낼 때마다 전신의 뼈가 삐걱거리더니 종래에는 손아귀에서 피가 터졌다.
자신의 보호를 제외한 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엘레노아는 흡사 폭탄으로 만들어진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엔 드로드는 엘레노아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엘레노아의 모습을 보건데 그건 힘들다.
몸의 안위를 포기한 채 달려드는 저 불굴의 의지를 제압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허어…….”
엔 드로드는 결국 모든 마법을 거둬들였다. 그는 차마 학생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다.
“교수님이 착하신 분이라서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허허 말이나 못 하면…….”
엔 드로드는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엘레노아를 붙잡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으며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완패다.
하지만 기분 좋은 패배다.
단순히 장난이었다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녀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각오를 품은 자에게 길을 뚫린 거다.
그럼 그건 패배의 치부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결투였던 거다.
“앤 교수님? 먼저 와 있으셨군요. 방법 마법이 작동한 것 같았는데 혹시 침입자와 마주치지는 않으셨습니까?”
“…….”
엔 드로드는 뒤늦게 찾아온 교수들을 보며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엘레노아의 피가 흩뿌려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평온한 발걸음으로 걸어가 그 피를 밟아서 감췄다.
“교수님?”
“조금 큰 고양이가 숨어들어와 있더군요. 아무래도 마법의 감도가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수정하는 게 좋겠군요.”
* * *
강하다.
디스크레는 역시나 강하다.
조금 강해졌다고 해서 자신을 가져도 될 정도로 나는 성장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싸워왔던 SSR등급에 캐릭터들은 모두 페널티를 짊어지고 있었다.
알렉시오스는 신체 능력이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아리에타는 애초에 전투 능력이 큰 편이 아니었다.
유스티티아는 저주로 인해 판단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 모두 상황이 좋게 맞아떨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운이 없다고 한탄했지만 정말 운이 없었다면 그들의 전력을 감당했어야 했을 거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상대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알아두고, 계획을 세운 끝에야 겨우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다.
“터무니없네.”
불꽃은 닿지 못한다.
광범위하게 휘둘러지는 불꽃을 디스크레는 유연하게 회피한다.
피하지 못하게 완전히 가로막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녀석의 필살기인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실체를 지워 흘려낸다.
대화를 통해 의혹을 심었을 텐데도 그 정신력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단단하다.
“하긴 애초에 쉬울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래, 너희가 괴물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디스크레의 힘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통찰력과 어떠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는 정신력.
이게 어떠한 페널티도 짊어지지 않은 SSR등급 캐릭터의 힘.
아니……. 오즈 녀석이 SSR등급이라고 평가한 가능성의 괴물.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불꽃의 화력을 높인다. 애초에 내가 제압한다는 생각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거다.
그 상냥함이 오만이라는 건 프루덴스 로아와의 싸움에서 이미 깨달았을 터다. 나는 감히 누군가를 봐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는데.
나는 길잡이가 되고 싶었고 선인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생각으로 임하는 건 네게 실례겠지. 디스크레.”
디스크레는 분명 흔들렸다. 내 악담이나 다름없는 말에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을 봤다.
내 말에 대한 해답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 이 순간을 보고 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최선의 일을 의심 없이 밀고 나가는 거다.
“죽일 생각은 없어. 하지만…….”
초월급 신성 마법
[신성에 도전하는 자]“죽일 정도로 몰아붙여야겠지.”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꽃에 연료를 바꾼다.
불꽃에 더해진 건 치유의 빛.
“타올라라.”
[성화(聖火)]의 불꽃.이걸로 죽을 정도로 아프더라도 죽지는 않을 거다.
“이제 한 번 보여줘.”
페널티 없는 너희들의 순수한 힘의 결정체가 어떤 건지.
내가 목표로 삼아야 할,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할 노력의 결정체를.
내 성장에 불을 붙일 기름이 어떤 건지를.
내게 확인시켜 줘.
* * *
“우와…….”
의 신축 건물 지붕 위. 주변을 정찰하고 있던 울라는 솟구치는 푸른 불꽃에 질린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대는 진심이다. 저기 진심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단장님도 힘들겠네.”
저런 전력 앞에서 손대중하는 건 불가능하다.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저걸로 디스크레 퍼니셔는 완전히 발이 묶였다.
오즈와의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쪽을 신경 쓸 수 없다.
“그럼 저 아이는…….”
울라의 시선에 들어온 건 청은의 머리카락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
사건의 발단이 된 소녀.
엘레노아 폰 크리소스.
“내가 처리해야겠네.”
울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는 스코프에 비치는 엘레노아를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안타까워.”
죽이지는 않는다. 디스크레에게 적용되는 페널티라는 건 결국 집단 전체에도 적용된다는 거다.
아니, 애초에 이 에서 멋대로 상대를 사살한다는 전제조건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애초에 목숨을 포기한 사람뿐이다.
탄환이라고 해봤자 마취총일 뿐.
하지만 엘레노아를 저지하는 건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너라면 루시아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울라는 안다.
그녀는 루시아와 친구였지만 그 관계는 한없이 가볍다는 걸.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기에 친구가 됐을 뿐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친구라는 건 그 정도 존재다. 만나면 친구가 되고 헤어지면 기억 한편으로 치워둔다.
그리고 길을 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런 관계다.
하지만 루시아 퍼니셔는 다르다.
그녀는 울라와 달리 그런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모른다.
“뭐, 다음이 있겠지. 우리도 젊으니까 언제든지 다음 기회가 있을 수 있어.”
그렇기에 울라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그리 무겁게 다가올 수 없다.
물론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고 있지만 공감할 수는 없다.
그저 살아가는 법이 다를 뿐이다.
절실함을 모를 뿐이다.
“미안해 엘레노아.”
울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걸로 끝이다.
엘레노아는 잠에 빠져들 거고 눈을 떴을 때는 선도부의 철창신세.
못해도 3일은 잡혀 있을 테니 그 정도 시간이면 루시아는 이미 에서 자퇴한 후일 거다.
그렇게 신분 하나를 버린 루시아는 늘 그렇듯이 새로운 장소에 섞여 들어가게 될 거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번처럼 좋은 친구가 나타날 수도 있다.
울라 스틸레나는 낙관론자.
잘 될 거라 믿는 게 편하다. 그렇게 생각을 포기하는 게 편하다.
탕!
거대한 총성과 함께 엘레노아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니…….”
하지만 울라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실패했다.
최고의 저격수인 그녀가 빗맞혔을 리는 없다. 상대가 피한 기색도 없다.
분명 맞췄다. 하지만…….
“그거 알아요?”
탁 트인 공간 한복판으로 엘레노아의 다부진 목소리가 울렸다.
한순간 휘청거렸던 엘레노아는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는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제국에서 제 신변을 보호해주고 있었다면 알고 있겠죠?”
엘레노아는 어깨를 찌르고 있는 마취총의 탄환을 뽑았다.
하지만 그녀는 잠들지 않았다. 분명 코끼리도 잠재울 만한 약이 들어 있는 탄환이었는데.
“저는 왕궁을 탈출한 그 순간부터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엘레노아는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 한순간도 편안히 잠들 수 없는 격정의 순간을 거쳐왔다.
잊혀질까 두려워 주기적으로 자신을 사람의 시선에 노출시키면서도 끝내 제국까지 탈출한 거다.
“저게 뭐야……?”
“두렵죠. 두려워서 잠들 수가 없는 거예요.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질까 두려워서, 내가 아는 세상이 또다시 변해버렸을까 두려워서.”
약은 분명 돌고 있었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핏발이 선 눈동자로 울라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잘 수가 없더라고요.”
잠들지 않는다. 잠들 수 없다.
공포에서 비롯된 그 의지가 약효마저도 무시하고 엘레노아의 정신 상태를 각성시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젠 제 세상을 되찾으러 왔어요.”
엘레노아는 잠들지 않는다.
그녀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잠들 수 없다.
그러니까.
루시아와 함께 지낸 별거 없던 평범한 일상들.
그 세상을 되찾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