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7
제29화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몸은 오한이 들 정도로 떨리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변사체로 발견되기 싫다면 한시라도 빨리 티아 학원장에게 기숙사를 고쳐 달라고 해야 한다.
비에 젖어 축축해진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옷장을 향한다.
다행히 여기까지 비가 스며들지는 않았는지 교복은 무사했다.
“그래도 고급품이라서 그런지 그 값을 하는구나.”
지금은 몸 전체가 젖어 있기에 갈아입을 수 없겠지만 나중에 몸을 말리고 갈아입으면 될 거다.
“루시아한테 샤워 시설을 빌려달라고 해 볼까?”
는 나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내가 미쳤나? 이런 일로 테네브리스한테 손을 내밀게.”
몸이 젖으니 마음까지 젖어 가는 느낌이다. 왜 자꾸 별것도 아닌 일로 빚을 만들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심신이 너무 지쳐 있다.
더 늦기 전에 티아 학원장을 찾아가야겠다.
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니 마침 잘됐다.
아직 시간이 이르지만 아마 돌아와 있을 거다.
어차피 젖은 마당에 우산은 필요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부로 느끼며 학사를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학원장실.
“학원장.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일단 문 앞에 서서 노크한다.
“…….”
안에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이럴 때는 다음에 오는 게 좋겠지만 나는 물러날 수가 없다.
계속 비를 맞으며 지낼 수도 없지 않나?
춥고 고달파서 안 된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이거 보이십니까? 어제 학원장이 박살 낸 천장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기숙사는 당연히 수리해 주시겠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무용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티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랐다.
말랑말랑해 보이던 그녀의 뺨에는 드물게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상처. [용제]가 상처를 입었다.
그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진 채였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엿 될 뻔했네.
“그냥 다음에 오겠습니다.”
……가끔은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도 감성적이라서 괜찮다.
* * *
중간고사가 시작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기가 먼저다.
실기를 시작했을 때는 환자가 잔뜩 발생할 수도 있기에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번 주와 다음 주는 계속 바쁠 예정이다.
“이번 중급 마법학 시험은 필기만으로 이루어지며 실기 시험 같은 경우에는 기말고사 때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아이라 교수가 시험에 대한 개요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나한테 익숙해졌는지 내 쪽을 향할 때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이걸 익숙해졌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뭐……. 수업에 지장이 없어졌으니 상관없겠지.
“으음……. 그, 그러니까 제가 드렸던 기출 문제들은 다들 미리 확인하셨죠?”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아이라 교수는 지금 나를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었다.
혹시 나한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관조]를 활성화해 봤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하는 말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거기서 응용문제가 나올 거예요.”
요컨대 일반 학생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문제를 비틀어서 냈다는 소리였다.
“작년에는 문제가 어렵다고들 하셔서 이번에는 학생들의 평균을 생각해서 만들었어요.”
작년에 어렵다는 소리를 들어서 이번에 한 번 더 들을 생각이라는 것 같다. 아마 그녀가 말하는 평균에는 나라는 존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쳐 버리고 만 것이겠지.
“지금 2학년에 있는 여러분의 선배들도 무난하게 풀었으니까 이번에는 더 잘 풀 수 있겠죠?”
은근슬쩍 나한테 작년 학생들의 수준을 어필하려고 해도 조금 그렇다. 그거 알아서 어쩌겠어?
그보다 정말 작년 선배들이 풀 수 있던 문제 맞아?
문제로 학생들을 존엄성을 죽여 버리겠다는 소리 같은데.
“꾸준히 공부하셨으면 다들 풀 만할 거예요.”
꾸준히.
그래, 벼락치기로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라는 소리다.
평생을 걸쳐 갈고닦은 지식과 한순간의 번뜩임을 쏟아붓지 않으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부분 점수도 있으니까 중간에 못 풀 거 같은 문제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풀어 보시고요.”
어쩌면 문제 하나를 온전히 풀어낼 수 있는 학생이 나 말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 그럼……. 파이팅! 다들 믿고 있을게요.”
아이라 교수가 소극적인 자세로 주먹을 움켜쥐고는 학생들을 위로한다.
사실 그녀가 믿고 싶은 건 학생이 아니라 기적일 거다.
그녀로서는 내가 시험 난이도와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확인하는 감독관으로 보이는 게 분명하다.
“시험지 배포할게요.”
아이라 교수와 그녀를 보조하는 조교들이 학생들 앞으로 시험지를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문제의 양이 엄청나다.
시험지가 8장이라니 무슨 타임 어택이라도 하게 할 생각인가?
“시험 시간은 한 시간이에요.”
진심으로? 이거 한 시간에 풀 수 있는 거 맞아?
나 말고는 문제만 읽어 봐도 한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시작하세요.”
아이라 교수의 선언과 동시에 학생들이 다급하게 시험지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속도로 학생들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반응에 느긋하게 시험지를 펼쳐 봤더니 알 수 있었다.
“…….”
시험지에는 1번부터 끔찍한 문제가 있었다.
중급과 상급의 마법 사이에는 2차원과 3차원이라는 차이가 있다.
중급 마법이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고 표현한다면 상급 마법부터는 건축을 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시험지에는 한없이 많은 그림이 쌓이고 쌓여 3차원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한데……. 이거 중급 마법학 시험 아니었나?
아무리 적게 잡아도 중급 마법학 3 정도는 돼야 나올 문제 같은데?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이라 교수가 전력을 쏟아부어 만들어 낸 마법의 정수다.
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를 얻을 수 있겠지만 고작 중급 마법학 시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이 문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 보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아마 몇 번씩이나 마나를 탕진하면서 밤을 지새웠을 게 분명하다.
그래, 마나가 없어질 때까지, 즉 M이······.
문제나 풀자.
* * *
[침식도 20%]필기시험이 얼추 끝났다.
난이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집중력을 끌어 올리다 보니 [침식도]가 가볍게 20%를 돌파하고 있었다.
어째 점점 더 정신의 저항이 적어지는 거 같아서 불안하다.
아이라 교수가 만든 문제를 머릿속으로 되짚으며 길을 걷고 있던 도중이었다.
“오즈 왕자다…….”
“아, 저게 그…….”
“가까이 가면 안 돼. 살해당할지도 몰라.”
오늘따라 불온한 시선이 많다.
시험의 난이도가 올라간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경계의 눈빛이 너무나도 많다.
평소에도 감시의 눈이 많았던 만큼 주목받는 상황에는 익숙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건 처음이다.
높아진 [침식도] 때문인지 기분까지 더러워질 정도였다.
“아, 오즈 님, 여기 있으셨군요?”
“음? 저를 찾고 계셨습니까? 아리에타.”
더 이상 학생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으면 돌아 버릴 것 같아 [마나의 지배자]의 스택이나 낮추러 가려던 찰나 아리에타와 마주쳤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들을 대동한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산뜻한 애플민트의 향이 정신을 안심시켜주는 것 같다.
“네,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바쁘시지 않다면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리에타는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들은 상당히 험악한 표정이다.
[침식도 23%]건방진 놈들이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관조]를 활성화한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선도부 학생들을 훑어보자 올리비아가 앞으로 나섰다.“무례를 사과하겠습니다. 오즈 왕자. 하지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1학년 선도부 중에는 우리 후임들이 섞여 있으니까요.”
아, 혹시 아리에타와 파티를 맺은 게 나라서 화를 내고 있는 걸까?
하긴 성직자로서는 성녀와 함께한다는 게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질투받는 걸 수도 있겠다.
“음? 그러고 보니 아리에타? 저번에는 분명 파티를 맺을 상대가 없다고 하시지 않으…….”
“오, 올리비아?”
“……예, 성녀님.”
아리에타의 다급한 목소리에 올리비아가 앞으로 나왔다.
저게 바로 권력인가?
허울뿐인 직책에 있는 나와 비교해 보니 부럽기 그지없다.
“오즈 왕자, 그건 착각입니다. 이번 학년 중, 교에서 파견 나온 성직자들 중에는 성기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전부 지원 계통 학생이었다는 소리죠.”
그런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얼간이들의 기세가 제법 무섭다.
저게 지원 계통의 성직자들이 맞는 걸까?
“그러고 보니 저기 저 녀석은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분명 머리만 한 메이스를 휘두르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그건 분명 호신용이었겠죠.”
“아니, 머리만 한 크기였는데.”
“호신용입니다.”
“거기 너, 저번 실습 때 나한테 달려들었다가 얻어맞은 놈 중 하나 아니었나?”
“그만하시죠. 오즈 왕자. 이만 본론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선도부로써 당신에게 볼일이 있는 겁니다.”
혹시 올리비아가 지금 나한테 짜증 내고 있는 건가?
그 정도로 곤란한 본론이야?
그러고 보니 아리에타가 껄끄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뭐라도 잘못했던 건가?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반대로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즈 왕자, 도대체 이번에는 누굴 죽일 생각인 겁니까?”
“……?”
진짜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누굴 왜 죽인다는 건가?
나는 이렇게 보여도 지금까지 한 명도 죽인 적이 없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거다.
“아리에타, 혹시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리에타가 면목 없다는 듯이 뺨을 긁적이며 한 발 더 다가온다.
“그…… 오즈 님이 최근 밤마다 마법을 연습하시는 걸 불안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많아서요.”
아, [마나의 지배자]의 스택을 낮추려고 하던 걸 말하는 것 같다.
“그냥 연습일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다 보니까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
“그……. 혹시 제가 그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래, 그렇게 들으니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말로 시기가 공교로웠을 뿐이다.
[마나의 지배자]에 천장이 생길 거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제일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아……. 설마? 서, 성녀님?”
변명을 고민하고 있자 올리비아가 뭔가를 생각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아리에타를 불러 세웠다.
뭔가 씁쓸한 눈빛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오즈 왕자는…….”
“아……. 그, 그래도 그건…….”
“하지만……. 그러니 너무 캐묻지 않으시는 게······.”
올리비아와 아리에타의 귓속말이 진행될수록 그녀들이 나를 향하고 있는 표정이 점점 더 씁쓸해져 가고 있었다.
뭔데,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
너희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거야?
“오즈 왕자. 당신과 권왕 사이의 일은 잘 알고 있습니다.”
“…….”
어,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다들 알만한 유명한 일화라도 있던 걸까?
지금까지 나한테 그걸 설명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까지 유명한 얘기라면 왜 나는 몰랐던 걸까?
내가 친구가 없어서인가?
“나와 알렉시오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 이런……. 주제넘은 말이었군요. 용서해 주시길…….”
순수한 의미로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송구스럽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고. 화낸 거 아니니까 말해 봐.
지금까지 나를 노려보고 있던 성직자들도 아차 싶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뭔데? 너희들까지 진짜로 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당신의 뜻을 무시하려던 건 아닙니다.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당신에게도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겠죠.”
내 뜻은 무시 안 하는데 내 말은 무시하기로 한 건가?
왜 자꾸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납득 하는 걸까? 나랑 관련된 일이라면 좀 같이 알면 안 돼?
“성녀님도 두 분 사이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
올리비아의 말에 아리에타를 잠깐 쳐다봤더니 그녀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뭘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야기가 끝나 버렸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오즈 님.”
“아니, 그…….”
“시험 때 봬요. 저도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힘낼 테니까요.”
“아, 예.”
그 말과 동시에 아리에타를 포함한 성직자 일동이 떠나가려는 것처럼 몸을 돌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결국 아무도 말 안 해 주는 거야?
내가 오즈 특유의 오만한 연기를 하는 중만 아니었으면 뭐라고 한 마디 해 줬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권왕이라 하니 생각났습니다만.”
“뭐가 말이지?”
“저번에 권왕을 포위하고 있을 때 그가 오즈 왕자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걸 이제 말해 줘? 내 목숨에 직결될 수도 있는 문제 아니야?
제발 부탁이니까 나랑 그 새끼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다들 분위기 파악하고 입을 다물겠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 분위기 파악이 안 된다.
답답해 미쳐 버릴 거 같다.
“‘자신은 이미 예전과는 다르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과연…….”
예전이 어땠는지 몰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예전에 오즈한테 얻어맞은 적이라도 있는 건가?
심하게 맞았나?
그래서 사람들이 언급조차 꺼릴 정도인 걸까?
“아무쪼록 조심하시길.”
산 넘어 산.
그래, 사실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 없는 문제긴 했다.
그 노골적인 적개심을 생각해 보면 알렉시오스와는 결국 결판을 내야 하긴 했으니까.
* * *
모든 필기시험이 끝나고 마지막 파티로서 진행되는 실기 시험이 시작됐다.
규칙은 대부분 저번 실습과 동일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개인이 아닌 파티로서 펼쳐진다는 점이 그렇다.
망토에 걸려 있는 방어 마법 역시 각자 포지션에 따라 강도가 달랐고 내게는 상급 이상의 마법 사용 금지 대신 마법의 위력 자체에 페널티가 걸렸다.
그래서인지 일정 위력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조절하는 팔찌 형태의 마도구가 추가로 지급됐다.
아무래도 각자의 포지션을 수행하는 게 목표이니만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만······.
마도구의 디자인이 쓰레기다. 무슨 사술이라도 쓸 것처럼 생겼다.
그보다 위력적인 면에서 볼 때 페널티도 강해졌다.
아리에타도 입가를 가리는 토끼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SSR등급의 실력자들 모두가 페널티를 받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 아리에타의 마스크는 저렇게 귀여운데 왜 내 팔찌는 왜 이 모양이지?
티아의 악의가 느껴진다.
“후후후, 스승과 성녀님이 있는 이상 저희가 질 일은 없겠죠?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네요.”
“결국, 평가는 포지션별로 나뉘니까 네가 잘해야지.”
“시선만 모인다면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엘레노아는 오늘도 굉장히 솔직하다. 그 노골적인 욕망이 놀랍다.
저 정도로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니 오히려 내 쪽이 창피해질 지경이다.
“……내년에도 1학년으로 남고 싶다면 상관없겠네.”
“필기시험 잘 봤으니까 그럴 걱정 없거든요? 스승은 저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네요.”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번 시험은 어쩐지 잘 본 것 같다고들 말하더라고.”
막상 잘하는 놈들은 대부분 망한 것 같다고 기만해 온다.
나는 그럭저럭 봤다.
적어도 마법 관련 수업에 한해서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정말로 잘 봤거든요?! 정 의심되신다면 내기라도…….”
엘레노아가 투덜거리던 찰나.
“어……?”
그녀의 등 뒤를 기점으로 시야가 한순간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공간 방벽 Lv. 1]콰앙!
한 박자 늦게 펼친 [공간 방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공간 방벽]의 약점인 연격에 해당하는 공격이다.“흡!”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을 번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백양이 펼친 얼음의 방패가 불꽃을 막아 내며 증기를 뿜었다.
[공간 방벽]이 무너진 즉시 백양이 얼음의 방패를 들고 상대의 기습 공격을 막아 냈다.루시아의 훈련이 완벽했는지 백양의 대응 역시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아, 진짜 싫어요오!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오!”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고 있는 백양이 두려움의 비명을 내지른다.
백양 역시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다.
아무렴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상대가 아닌가?
그야 잊는 게 더 힘들었을 거다.
그나저나 [관조]가 있었음에도 기습을 당했다.
내가 방심했던가?
“드디어 찾았다······.”
아니, 방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상대의 접근 속도가 [관조]로도 미처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을 뿐이었다.
“오즈.”
내가 예상할 수 없었던 건 하나.
상대가 자신의 파티원까지 내팽개친 채 혼자서 돌격해 올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틀렸다.
[SSR 권왕]알렉시오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과소평가였다. 상대는 이미 그 존재 자체가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복선 회수가 너무 빠르지 않냐…….”
시험 시작하자마자 조우라니 이건 무슨 경우냐 도대체.
그렇게 올리비아를 원망해 봤지만 사실 일단 예상은 했던 일이다.
알렉시오스는 줄곧 내게 시비를 걸어왔으니까.
오히려 마주치지 않았던 지금까지가 운이 좋았던 거다.
[권왕]은 분명 압도적인 강자다.그야말로 내 [관조]가 그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양측 모두 페널티가 전보다 심해졌다는 것.
“방패 제대로 들어 올려. 백양.”
“······저희가 권왕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요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는 파티를 편성해서 진행하는 게임이다.
캐릭터 하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란 소리다.
“여기서 잡아야지.”
[침식도 23%]그러니까 이번 조우는 어떤 의미로 천재일우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