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81
제84화
올리비아 블루는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처음 교황청으로 피신 왔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왕국에서 쫓겨나다시피 교황청으로 도망쳐 왔었다.
싸움마저 포기한 채 왕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며 성직자가 됐다.
목숨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믿고 따르던 자들 역시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아는 뒤늦게 후회했다. 그녀는 그녀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용기를 냈어야 했다.
그들은 분명 그녀를 위해 모든 걸 걸었다. 그런데 그녀는 싸워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도망쳤다.
스스로가 비참하고 끔찍해서 올리비아는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아 님. 너무 몸을 혹사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은 쉬시지요.
-아뇨, 괜찮아요.
올리비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그녀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속죄가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걱정하면 걱정할수록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혹사시켰다.
-열심히 하는구나?
-……?
그리고 그녀는 길고 새하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 내린 민트색 눈동자의 소녀를 만났다.
-나랑 같이 놀러 갈래?
아리에타는 그때까지만 해도 천진난만한 소녀였다.
-싫어.
-왜?
-기도해야 하니까.
아마 자기 또래의 소녀를 만난 게 기뻤던 것인지 아리에타는 명백하게 그녀를 밀어내고 있는 올리비아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왜 기도하는 건데?
-내 죄를 용서받아야 하니까.
-으음…….
아리에타는 기도하고 있는 올리비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뭐 하는 짓이야?
-네 죄를 용서했어! 그러니까 이제 같이 놀러 가지 않을래?
올리비아는 아리에타가 싫었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이 싫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성녀님! 여기 계셨습니까?
-으엑……. 들켰당.
그녀는 아리에타가 원망스러웠다.
그녀보다도 힘겨운 고행을 이어 가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천진난만함을 잊지 않는 밝음이. 당시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밝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오만이었음을.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자신을 몰아붙이던 그녀의 무모함 때문에, 그런 자신에게 취해 있던 어리석음 탓에.
아리에타는 시력을 잃었으니까.
* * *
올리비아는 오즈의 눈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한없이 침체되는, 아니, 일부러 침체되어 가는 이의 눈빛이다.
오즈는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떠맡아 가며 자신을 희생하며 몰아세우려고 하는 거다.
모든 걸 잃었기에 더 많은 것들을 버릴 준비가 된 자들,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려야만 심적으로 편안해질 수 있는 자들이다.
“……구태여 힘든 길을 가려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재밌는 표현이네. 하지만 그래야할 필요가 있어서 어쩔 수 없어. 목적지를 바꾸려면 네 표현대로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가야 하니까.”
오즈는 부정하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그 사실에 인상을 찌푸렸다. 알고서도 저러는 거라면 적어도 그 길이 험난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누구도 바라지 않을 희생일 겁니다.”
희생. 그래, 희생이다. 오즈는 자신을 마모시키려 하는 거다.
흔히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고통에 익숙해지고자 스스로를 상처 입혀나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적어도 한 차례 그런 선택을 했던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라는 사람은 있지. 적어도 내가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그로 인해 다른 이가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그 길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알고 있다. 자신을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걱정하는 주위까지 망칠 수 있는 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하는 거야.”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성녀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을 겁니다. 당신이 하는 행동은……!”
“감정적이네.”
오즈는 평소와 달리 끈질기게 달라붙는 올리비아를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그제야 올리비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적어도 오즈의 앞에서는 아리에타의 이름을 들먹여서는 안 됐다.
그가 무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아는 이상, 그런 말을 들먹이는 건 명백한 실수였다.
“네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주제넘은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다면 됐어.”
오즈는 올리비아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그래도 일단 그 충고는 머릿속에 넣어 둘게.”
문이 닫히기 전에 들려온 그 대답에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즈라는 인간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너무 강했기에 상처가 아픈지를 모른다.
올리비아는 그런 오즈를 설득하는 방법을 몰랐다.
연약했던 그녀와 달리 오즈는 모든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그가 말한 것과 같았다.
‘나는 아직도 뭐가 옳은지 그른지 모르는구나.’
주제넘은 짓이었다.
* * *
올리비아의 기척이 사라진 직후.
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확인했다.
-데이트 준비 중에 한눈을 팔아도 괜찮은 건가? 오즈 왕자.
“데이트는 무슨…….”
아무래도 정보가 없어 막막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루시아의 목소리는 상당히 신경질적이었다.
“그보다 요즘 노아의 상태는 어때? 실제로 스트레스가 쌓인 거 같아 보여?”
-그걸 말이라고 해? 노아는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위태로운 상태야!
“그, 그래.”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쌓인 건 엘레노아만이 아닌 거 같다.
상당히 신경질적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아가 폭주해서 칼부림할지도 몰라.
“설마 그러기까지야 하겠어?”
그래도 주인공이다. 그런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 대상이 당신 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고 해도 그렇게 가볍게 받아넘길 수 있을까?
“…….”
지금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이번 말은 아무리 그래도 웃어넘기기가 힘들었다.
오싹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노아의 정신을 안정시켜 둬야 할 거야.
“그런데 뭐가 그렇게까지 노아를 몰아붙인 거지? 혹시 봉사 활동 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스승이라는 작자가 성녀랑 시시덕거리는 걸 두 눈으로 봤지.
“……딱히 시시덕거리지는 않았어. 만난 적도 3번이고.”
-횟수는 중요하지 않아. 오즈 왕자. 중요한 건 노아가 일하고 있을 때 누가 뭘 했느냐지.
틀린 말은 아니다.
설령 3번이 아니라 한 번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걸 눈에 담은 이상 불만을 품기에는 충분하다.
-더군다나 노아 생일도 흐지부지됐잖아. 기억하고 있어?
“…….”
솔직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노아의 생일을 챙기기에 문제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나 그 녀석이나 상처투성이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생일을 챙겼겠는가?
더군다나 생각할 것도 많았다.
나는 프루덴스 로아의 말과 앞으로 이어질 메인 스토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노아는 아마 ‘바깥의 존재’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고 있었던 시점일 거다.
-그러니까 오즈 왕자?
“……어.”
-이번에는 제발 평소처럼 이상한 짓 해서 실수하지는 마.
“일단 뭐, 노력은 해 볼게.”
-정말이지 불안해지는 말이로군. 통신은 끊지 말고 있어. 정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노아가 좋아할 만한 일을 지시해 줄 테니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등에 대검이 꽂히는 게 아무렇지 않다면 그러든지.
“…….”
우습다. 나는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 같은 방을 쓰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서 나쁠 건 없으니 통신은 끊지 말아야겠다.
-나는 가끔 당신이 혹시 멍청한 게 아닐까 생각돼…….
나도 가끔 그래.
* * *
올리비아와 루시아를 비롯해 여러 잡담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약속 장소에 먼저 나온 건 나였다.
애초에 여자애들은 준비하는 데도 오래 걸리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관심 종자인 엘레노아가 아닌가?
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앗! 스승, 기다렸나요?”
“어.”
-여기서는 아니라고 했어야지. 왜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옷차림부터 칭찬해야지!
시작부터 시끄러운 녀석 같으니.
아쉽게도 나는 그런 정석적인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
애초에 상대가 엘레노아가 아닌가? 이 녀석에게 정석을 요구해 봤자 돌아오는 건 예상할 수 없는 돌발 상황뿐일 거다.
“오늘은 뭐 하고 놀까요?”
“그냥 적당히…….”
-생각나는 게 없으면 주변이라도 돌아보자고 하지 그래?
“일단 주변을 한 번 돌아볼까?”
정말이지 실에 매달린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피노키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 그 자식은 실이 없던가?
잘 모르겠다.
그냥 너무 어렵다.
“오오……. 평소의 스승이라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자 했을 거 같은데 의외네요?”
“…….”
-이해도가 높은걸?
그러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엘레노아는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터무니없는 학습 능력이다.
“정말 의외예요. 어째서일까요?”
엘레노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어온다.
이건 그거다. 예전에 내 [관조]를 꿰뚫어 보고 눈을 가렸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한순간에 소름이 내달린다.
하지만 엘레노아의 손이 향한 건 내 눈이 아니었다.
“호오? 스승, 이건 뭘까요?”
“…….”
-…….
차라리 눈을 가렸으면 나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내 눈을 지내 귀 쪽을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시아와 연결된 통신구의 소형 이어폰이다.
“지금부터 저랑 놀 예정일 텐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건 조금 예의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엘레노아의 눈은 싸늘하다. 거울로 봤던 내 [관조]의 최대 활성화 상태보다 싸늘하지 않을까?
혹시 그거 [관조]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통찰력이 나오는 건데? 이제 더 이상 나를 스승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냥 하산하면 안 될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니는 가운데 엘레노아의 [만년설의 저주]보다도 차가운 목소리가 통신구를 향해 내리꽂혔다.
“똑똑~ 누구실까요? 대답해 보지 않을래요? 저는 노아라고 하는데요. 저희랑 같이 노실래요?”
-…….
루시아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을 거다. 그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소름 끼치는 상황 속에서도 통신을 끊질 않는 걸 보니 그녀는 확실히 프로다.
“뭐, 좋아요.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적당히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테니까 잘 듣고 계셔 주세요?”
엘레노아는 그 말과 동시에 소형 이어폰을 챙겨 들었다.
이제 와서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 내게는 그럴 용기가 없다.
“……스승?”
“아니, 아니야. 그, 그게 아니라, 이 주변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조언을 조금 받으려고…….”
“하핫, 재밌는 변명이네요. 스승.”
엘레노아는 밝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스승은 그 얼굴 말고는 잘난 게 없으니 여기서는 제가 앞장설게요.”
“그, 그래……. 그러면 고맙지.”
“그럼 가요!”
엘레노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게 웃으며 나를 이끌었다.
옷집, 식당, 광장, 분수대, 기타 등등 수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딱히 이렇다 할 일은 없었다.
의외로 엘레노아는 처음 말한 그대로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공포심도 상당히 줄어들었을까?
나는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교황청이라고 해서 음식도 다 밍밍할 줄 알았는데 괜찮았네요?”
“편견이지. 교황청 내부에서 준 식사도 괜찮았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그래도 감상을 공유하는 게 즐거운 법이니까요. 그리고 스승도 뭔가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았나요?”
“솔직히 그렇긴 했어.”
절제된 삶을 사니까 향신료도 적을 거라 생각되긴 했지.
“앗, 고양이다.”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걷고 있었더니 엘레노아가 돌연 길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고양이를 향해 뛰어갔다. 그녀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했었나?”
“그렇다기보다는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제 모습이 좋은 거죠.”
“……정말 솔직한 대답이구나.”
어떻게 예상을 빗나가지를 않니?
관종의 `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졌다.
“흐음…….”
엘레노아는 귀찮다는 듯이 몸을 뒤척이는 고양이를 집요하게 쓰다듬으며 괴롭히고 있었다.
고양이 역시 그런 엘레노아의 손길에 타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손을 맡겨 가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키울 생각은 아니지? 이미 집에 한 마리 키우고 있잖아?”
유난히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검은 고양이 말이야.
“으음……. 글쎄요? 그 고양이는 귀엽지가 않아서 고민되네요.”
“……루시아가 그 말을 듣는다면 분명 슬퍼할 거야.”
“스승이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고개를 들어 올린 엘레노아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린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이제 조금 괜찮아지셨어요?”
“뭐……?”
그녀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말했잖아요. 저희 둘 다 스트레스가 쌓인 거 같다고.”
“…….”
조금 놀랐다.
그녀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건네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왔다.
“저는 이제 괜찮아졌어요.”
엘레노아에게 통찰력이 있다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름 숨겨 보려고 노력한 부분까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스승은 어떤가요? 조금 괜찮아지셨나요?”
메인 스토리라는 목적을 제외한다고 해도 그녀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녀의 배려가 그랬다.
해바라기처럼 환한 미소를 피워 낼 수 있다는 게 그랬다.
그래, 설령 그녀가 [이해자의 열쇠]라는 특별함이 없는 평범한 소녀였다고 해도 분명…….
“……그래, 네 바보짓을 보고 있었더니 조금 괜찮아졌네.”
“그건 다행이네요!”
엘레노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