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82
제85화
엘레노아에게 들키긴 했으나 루시아는 통신을 끊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해졌지만 그녀의 임무가 오즈와 엘레노아의 감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은 괜찮았다. 그래, 분명 처음은 괜찮았다.
둘이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시시덕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쯤이야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적이 스트레스를 풀게 하는 것 아닌가?
그래, 자신은 일에 파묻혀 지내는데도, 지금도 보내져 온 정보를 취합하고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데도, 그런 와중에 둘이 바보처럼 놀러 다니는 걸 구경하고 있어야 하는데도. 그래, 괜찮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키울 생각은 아니지? 이미 집에 한 마리 키우고 있잖아?
-으음……. 글쎄요? 그 고양이는 귀엽지가 않아서 고민되네요.
-……루시아가 그 말을 듣는다면 분명 슬퍼할 거야.
-스승이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둘이 루시아를 가지고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루시아도 웃어넘길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다르다. 스트레스가 쌓인 건 두 사람만이 아니라는 소리다.
“빌어먹을 연놈들 그냥 다 죽어 버렸으면…….”
루시아는 갑자기 그 모든 상황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둘이 데이트하는 것까지 이쪽에서 신경 써야 하는 걸까?
도대체 왜 그녀가? 그녀는 바쁘다. 오즈와 엘레노아처럼 정신 나간 것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것도 피곤한데 다른 일도 있다.
“진짜……. 나도 좀 쉬고 싶은데. 둘이서만 치사하게…….”
스트레스 때문인지 둘이 함께 놀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감정이 가벼워지고 짜증이 몰려온다.
“루시아! 안녕~ 그동안 내가 없어서 외롭지는 않았니?”
그때 루시아가 잠복하고 있는 장소에 돌연 경박한 느낌의 소녀가 소란스럽게 들어왔다.
부스스한 갈색 단발에 검은 색안경을 쓴 소녀.
“……울라.”
[SR 응시하는 올빼미]울라 스틸레나
울라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루시아의 등에 가볍게 달려와 매달렸다. 딱히 무겁지는 않았다.
그냥 은근슬쩍 성추행하려는 그녀가 거슬릴 뿐이었다.
“권왕을 감시하고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에 잠입해 있는 전원에게는 각각 부여받은 임무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각 나라의 주요 인물에 대한 감시였다.
루시아 같은 경우 같은 반인 엘레노아와 오즈가 그랬고 울라 같은 경우는 알렉시오스가 그랬다.
“당연히 너 보려고 왔지.”
“근무지 이탈은 중죄야, 울라. 그대로 손들고 투항해.”
루시아는 울라의 말에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총을 겨눴다.
그건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다져진 두 사람 사이의 신뢰였다.
“여전히 까칠하구나~ 역시 고양이는 도도함이 있어야지.”
“그러는 너도 몸만 가벼운 게 아니라 행동까지 가볍잖아? 아니면 머리까지 가벼워졌나?”
“웃어 루시아. ‘냐하하하’하고.”
“……내가 고양이 수인이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웃지는 않거든?”
“이렇게 웃으면 캐릭터성이 부각될 거라고 했던 건 너였잖아.”
“그런 어렸을 때의 일을 언제까지 기억하는 거야?!”
“영원히 기억할 거거든? 냐하하!”
울라는 유들유들한 태도로 루시아를 약 올리다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노리는 건 총을 쥔 손목.
울라는 마치 사냥감을 습격하는 맹금류처럼 달려들었다.
“으악!”
그리고 그대로 루시아에게 반격당해 땅을 굴렀다.
“너무 뻔해 울라. 도대체 언제까지 같은 수법을 쓰는 거야?”
“으음, 오늘따라 성격이 더 까칠한데 무슨 일 있었어?”
“……딱히 아무것도.”
바닥을 굴러다니던 울라는 루시아의 짜증스레 굳어진 얼굴을 보더니 그대로 몇 바퀴 더 굴러가 통신구가 있는 쪽을 향했다.
-스승 이거 봐요. 이상한 걸 팔고 있어요.
-육회네.
-이대로 먹는 걸까요?
-반쯤 익힐 수도 있고 뭐……. 스테이크 같은 거야.
통신구에서는 여전히 두 사람의 잡담이 들려오고 있었다.
울라는 그 통신구와 루시아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질투?”
“…….”
루시아는 그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경멸 어린 표정으로 울라를 내려다봤을 뿐이었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울라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제 슬슬 진짜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말해. 울라, 권왕은 어쨌어?”
바닥을 굴러다니던 울라는 그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놓쳤어.”
“놓쳐? 네가? 그게 무슨…….”
울라는 안에서도 특히나 눈이 좋았다.
단순히 멀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멀리 있는 대상을 뚜렷하게 분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상대를 놓칠 일은 거의 없었다.
거리가 말 그대로 순식간에 킬로미터 단위로 멀어진 게 아닌 이상에야 놓치기가 더 힘들었다.
“그도 그럴게, 갑자기 도깨비 숲으로 들어가 버렸는걸?”
“도대체가…….”
감시 대상 중에 돌발 행동을 하지 않는 놈이 없다.
루시아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게 남아 있었다.
“그럼 단장님에게도 합류에 대한 허락을 받은 거야?”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정말로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했겠어? 내가 짬밥이 몇 년인데?”
“…….”
루시아는 사실 진심으로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울라의 행동은 연기가 아니다. 그녀는 평소에도 적당하고 유들유들한 태도로 사람에게 임했다. 그편이 오히려 잠입 대상의 의표를 찌를 수 있기에 내버려 둔 것뿐이다.
“그럼 정말 아쉽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일 관련 말이야.”
“하나도 아쉽지 않으니까 보고할 게 있으면 빨리해. 시간을 얼마나 허비한지 알아?”
“냐하하하.”
“……그렇게 웃지 말라고 했지?”
루시아는 불시에 엄습해 오는 자신의 흑역사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것 같았다.
“명계의 문을 찾고 있다면서?”
“그래…….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서 문제지.”
“나는 찾았는데?”
“뭐……?”
여전히 바닥에 자기 안방처럼 누워 있는 울라가 색안경을 슬쩍 올려 자신의 눈을 드러냈다.
밤에도 사물을 뚜렷하게 분간할 수 있는 올빼미 수인의 눈이 루시아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친 순간 루시아가 울라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전황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는 중대 사항이다. 그런데도 저러고 있었다. 실로 미친놈이 아닌가?
“켁! 윽, 진정해 루시아.”
“빨리 대답하지 못해? 지금 그 일로 우리가 얼마나 갈려 나가고 있었는지 알아?!”
“하, 하늘…….”
“뭐?”
루시아는 자신이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울라의 멱살을 놨다.
울라는 숨을 몰아쉬더니 이번에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상공 1,000m 부근에 있었어.”
“그게 가능하다고?”
“애초에 완성된 문도 아니었고 최종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열리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일단 하늘에 문이 있던 건 확실해.”
“설마…….”
문이 열릴 경우는 두 가지.
사기로 오염된 장소이거나, [명왕]의 흔적이 있는 장소다.
성역인 교황청에 사기로 오염된 장소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흔적을 찾고 있었던 거다.
의 문은 [명왕]의 흔적 근처에서밖에 열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리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고 넓게 흔적을 남겼었다.
하지만 문은 상공 1,000m의 위치에서 열리고 있었다.
하늘 어딘가에 흔적이 있다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런 게 있으면 발견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만약에.
무려 상공 1,000m 높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가까이 있다고 여겨질 정도라면.
“……빌어먹을.”
그 넓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울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어?”
“지금은 단장이랑 너. 이제 나머지는 네가 전해 줘야겠지?”
울라의 유들유들한 태도에 루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 전투는 단순히 습격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분명 전면 전쟁이 될 거다.
“…….”
그런 심각한 표정의 루시아를 보며 울라는 분위기를 환기해 보고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냐하하하.”
“내가 그렇게 웃지 말라고 했지! 이 나쁜 자식아!”
역효과였다.
* * *
외출을 끝마치고 일단 교황청을 향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숙소로 직행했겠지만 엘레노아와 놀며 시간을 소모한 만큼 일을 해야 한다.
-문이 열릴 장소를 찾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졌다.
문의 위치는 찾았다. [관조]를 활성화해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문은 분명 그곳에 있을 터다. 그런데 이걸 찾았다고 할 수 있나?
루시아가 말하는 규모대로라면 결국 문의 범위는 이 교황청 전체가 될 확률이 높다.
앞선 전제 조건과 달라진 게 없다.
문이 열리는 걸 사전에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됐을 뿐이다.
“하아…….”
“한숨이라니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오즈 님.”
“…….”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리에타가 있었다.
최근 [관조]를 활성화한 상태가 많아서인지 이런 예상외의 출현에 평소보다도 깜짝 놀라게 된다.
성역 내에서 아리에타의 위치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알았지만 놀라운 건 어쩔 수 없다.
“아리에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수행 중이셨습니까?”
“음……. 성역에서는 피로가 쌓이지 않으니까요.”
아리에타는 늘 보여 주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하는 말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피로가 쌓이지 않기에 무리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돼 있다.
그녀가 성녀로서 짊어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정신적인 피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무리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리에타.”
“그걸 오즈 님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하나도 없네요.”
“…….”
아리에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독설을 날려 온다.
본인은 저게 독설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오즈 님은 제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예, 아리에타. 정말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럼 제가 휴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어요?”
“예……?”
지금은 바쁘다. 당장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 문의 규모와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번만큼은 오즈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살인을 저질렀다.
나를 습격해 온 자들이라지만 단지 익숙해지기 위해서 그들을 일부러 죽이기까지 했던 거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분명 다잡았는데.
“조금이라면…….”
어째서인지 아리에타에게는 거역하기가 힘들다.
단순히 [침식도]가 높아져서가 아니다. [침식도]는 내가 억지로 살인을 자행한 시점에서부터 현저히 낮아진 상태다.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오즈와 동화된 상태가 아니라는 거다.
“그럼 늘 가던 장소까지 손을 잡아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럼에도 나는 아리에타의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리에타와 이따금 만나 티타임을 가졌던 정원에 도착했다.
밤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신성력의 백광이 주변을 밝혀 주고 있었다.
“음……. 스스로 차를 타 보는 건 오랜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하겠습니다. 아리에타. 무리하지 마시고…….”
“싫어요.”
위험해 보이는 모양새에 티 포트를 뺏으려고 했더니 아리에타가 오히려 티 포트를 들어 올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쓸데없는 고집이 있다.
“제가 타고 싶어요. 대접해 드릴 테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지금은 아리에타의 휴식을 위한 자리지 않습니까?”
“으음…….”
아리에타가 티 포트를 흔들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게 고민할 만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중대 사항이리라.
“그럼 절반씩?”
“굳이 말입니까?”
“네, 굳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차를 타 주자는 소리다. 번거로운 조건이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 자리는 아리에타의 휴식을 위한 자리다. 그 정도 고집은 들어줘도 상관없으리라.
그보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을 텐데…….
“오즈 님.”
“예?”
“저번에 했던 말이 있었죠? 태초의 천사에 관한 얘기.”
“아…… 예, 있었습니다.”
어색한 자리를 어떻게든 해 보려고 꺼냈던 말이다. 그때 아리에타는 횡설수설하다가 끝내 잘 모른다는 대답을 냈었다.
“사실 태초의 천사에 대해서 수행 중에 몰래 알아 왔어요.”
그 말에 아연실색한다.
나는 아리에타가 교황청에 돌아와서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교황청의 상징이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녀의 기적을 보여 주며 교단의 선전을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신의 사도로서의 수련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이곳이 신성력이 넘쳐나서 쉽게 지치지 않는 교황청이 아니었다면 아리에타는 진즉에 쓰러졌을 터다.
그렇게 바쁜 그녀가 내가 분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꺼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무리를 거듭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정보를 찾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성경을 살필 수도 없다. 그러니 그 사소한 정보를 위해서 발품을 팔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거다.
“모처럼 오즈 님이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니까요. 그게 아무리 사소한 잡담이었다고 해도, 저는 그게 기뻤거든요.”
아리에타가 그렇게 말하며 내 찻잔 위로 차를 따라 준다.
그녀가 좋아하는, 늘 그녀에게서 나는 애플민트의 향이다.
“사소한 질문에 대한 사소한 답이 되겠지만…….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들어 주지 않겠어요?”
“……예.”
나를 위해 한 노력을 허사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