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89
제92화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오즈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로가 역력한 얼굴임에도 오즈는 즐거워 보였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는 오즈였고 오즈는 나다.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게 남았다는 건 녀석도 아는 거다.
“그리고…….”
나와 오즈는 같다.
하지만 달랐다.
녀석과 나는 궁극적으로 같은 목표를 향했지만 오로지 나만이 걷고자 한 길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떨까?
“다가올 위기를 막아내고 싶어.”
나와 오즈의 목표.
내가 오즈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하고 싶다고 느낀 것.
공유하는 목표가 뭐가 나쁜가?
우린 같은 사람인데.
“역시 살아남고 싶었어.”
오즈의 운명이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지금도 살고 싶다.
이미 기간테스에게 당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와중에도, 명백한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음에도.
그런 상황 속에서도 결코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즈는 내 말을 듣고 있을 뿐이다. 그 지쳐버린 자의 탁한 하늘색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그 모습 역시 오즈였다.
“네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내가 이어가고 싶어.”
나와 녀석은 같다.
모습의 얘기가 아니라 성향이, 인간성이, 같았다.
그러니까 녀석이 실패하는 게, 이대로 포기해버리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오즈다. 녀석의 꿈은 곧 나의 꿈이 된 거다.
“……그래?”
역시 내 입으로 직접 말하고 보니 조금 창피하다.
그렇게 껄끄러워 시선을 회피하고 있더니 녀석이 다시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돼.”
“뭐……?”
오즈는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
지쳐버린 자의 얼굴.
누가 살렘의 친자식 아니랄까 봐 녀석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살아남고 싶어?”
“그래.”
“이 세상에 다가올 위기를 막아내고 싶어?”
“그래.”
“그래. 그러면…….”
지금까지 지었던 부드러운 미소와는 다른 분명 지쳐버린 자의 미소였다. 녀석은 할 수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걸 쏟아냈다.
녀석은 이제 지쳐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거다.
오즈와 나, 두 사람의 목표는 이제 내 것이 됐다. 그리고…….
“신에게 도전해서 아리에타를 되찾아오고 싶어?”
“그래, 지금은 그 모든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녀석만이 품었던 목적도 이제는 내 것이 됐다.
이젠 그 모든 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다.
그 말을 끝으로 오즈는 다시 고개를 든 녀석은 아까 보여줬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여기서 꾸물거리지 말고 이젠 네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러 가. 응원할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내 어깨를 두드리던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게 무슨……!”
나는 넘어졌다.
아니 넘어진 게 맞나?
넘어졌다기에는 오즈를 보고 있던 시야가 너무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녀석과 녀석이 있던 방이 하나의 점이 될 정도로 멀어지고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
[필살기 – 신성에 도전하는 자가 해금됐습니다.]그런 문자열이 보였다.
* * *
사락.
방에 혼자 남은 오즈는 다시금 의자에 앉아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 그의 할 일이었다.
“으음…….”
그렇게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는 작업을 반복하던 오즈는 이내 휴식 시간이라도 가지려는 건지 기지개를 켜며 허공을 바라봤다.
『Restart?』
허공에는 재도전 여부를 물어보는 문자열. 오즈는 그 문자열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거봐 아인. 내가 아니라고 했지? 다시 시작하는 일은 없을 거야.”
『Restart?』
“그래,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어. 계속 이어질 테니까.”
『Continue?』
* * *
정신이 부상한다.
제일 먼저 느낀 건 극심한 고통.
비명이 튀어나올 정도의 고통이지만 그게 반대로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 준다.
그보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바람 새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엄청 아프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발견한 건.
“오즈 왕자?”
“올리비아…… 블루…….”
예상외의 인물.
아리에타나 엘레노아도 아니고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건지 모르겠다. 몰골을 보아하니 나만큼 심한데 나를 지키고 있었던 걸까?
도대체 이 녀석이 왜?
혹시 나를 좋아하나?
“성녀님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만……. 그 눈빛을 보니 후회되는군요.”
나는 아파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아파서 대답하지 못한 거다.
결코 쪽팔려서 그런 게 아니다.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움직이셔야 합니다. 제 죽음이 개죽음이 되는 건 싫거든요. 더군다나 당신과 함께 죽는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말이 심하다. 내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로 해.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그런다고 진짜 말로 하네?
막상 진짜로 들으니 주눅이 든다.
“하지만 성녀님은…… 아리에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래…….”
“도대체 당신 같이 독선적이고 어중간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어디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저건 이도 저도 아닌 행동을 반복하던 내게 말하는 불평이다.
“저는 아리에타를 믿습니다. 그러니 저는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당신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신뢰네.”
그래, 애초에 그 정도의 신뢰가 없었다면 아리에타를 위해 이런 사지로 뛰어들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움직일 수 없을 거 같더라도 움직이십시오. 살아남아서 두 번째 기회를 도모하십시오.”
올리비아는 휘청거리며 말했다.
이미 그녀도 한계에 가까운 것일 터다. 아마 상처만 해도 나와 그렇게 큰 차이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면 그녀가 아닌 나여야 한다는 소리다.
제법 무거운 기대다. 그러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아직은 아니야.”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읊조린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도망치기에도 이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아까 있었던 일들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꾼 꿈처럼 흐릿하다.
그래도 단 하나.
잊지 않은 게 있다면.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고.』
내 목적이 뭐였는지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으니.』
올리비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기도는 닿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내 신성 마법을 본 적이 없으니까.
『방관이 초래한 결과를 보아라. 세상은 황혼을 넘어 밤에 잠겼고 새벽은 밝아오지 않으니.』
그녀가 아는 영창이라고는 신술을 사용하기 위한 찬송가밖에 없었을 테니 놀랍기도 할 거다.
『그대가 정녕 세상에서 눈을 돌린 채 은둔을 선택한 거라면.』
한동안 당혹감에 물들어있던 올리비아는 이내 방패를 곧게 세우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작은 내가 감히 그 자리를 넘보겠노라.』
그 늠름한 등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게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니 나는 비록 작을지언정 그들을 위한 등불이 될 테니.』
내가 준비하고 있는 마법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걸까?
“비켜라!!!”
기간테스가 나와 녀석 사이를 막고 있는 올리비아를 공격한다.
지금 상태의 올리비아라면 분명 저 일격에 당한 순간 죽을 거다.
그건 올리비아 역시 알고 있을 거다. 그래도 그녀는 물러나지 않는다. 목숨을 걸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을 거다.
『지금 이 자리.』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방황하는 존재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는 것.
등불이 되는 것.
『당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노라.』
감추고, 속이고, 덮어씌우는 세상에 익숙해질 시간을.
세상을 이해하고, 규명하고, 걷어내고, 찾아낼 수 있는 선택을.
누군가가 맡긴 투쟁의 불꽃을.
이걸로 다시 한번.
초월급 신성 마법
제로섬. 아니, 이번에는 이쪽의 원사이드 게임이 될 거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마나를 쏟아붓는다.
아낄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걸 사용하지 않는다면 빛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닿을 수 없을 테니까.
“자 컨티뉴다.”
눈부실 정도로 뻗어 나오는 푸른 빛줄기. 그건 마치 태양처럼, 별빛처럼 푸르고 찬란하다.
신성력을 이용한 치료는 정화를 주축으로 한 재생력을 이용한다.
정화의 성질이 주가 되기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치료를 주목적으로 한 힘은 어떨까?
마나의 성질은 변화다.
이번에는 단순히 신성력의 성질을 따라 하는 게 아닌, 내가 만든 오리지널의 성질로 변화시킨다.
푸른 신성에 깃든 건 치유.
신성력을 이용한 회복과 달리 후유증이 남을 수 있겠으나 지금 전장에 선 자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푸른 백광이 이 전장에서 상처 입고 지쳐간 모든 아군을 점차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빈사의 상태였던 올리비아는 기간테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지쳐가고 있던 들은 활기를 되찾았고 파도처럼 이어지던 망자들의 파도는 어느새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블루. 아까 말하는 걸 잊었는데 말이야.”
기간테스의 공격을 막아낸 자신의 몸 상태에 당황하고 있는 올리비아를 향해 말한다.
“나도 너 싫어.”
내 앞에 굳건히 버티고 있던 올리비아를 옆으로 밀어낸다.
전방을 주시하며 중심을 앞으로 쏟고 있던 그녀로서는 내 기습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오즈 왕자……?”
“그러니까 네 자리 찾아서 꺼져. 지금부터는 내가 할 테니까.”
녀석이 당혹감에 물든 표정으로 옆으로 빗겨나가는 걸 확인한 뒤 정면을 바라본다.
기간테스 더스크가 나를 향해 다시 기어 오고 있었다.
녀석은 심각한 위기를 느꼈는지 이제는 자신의 뒤를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움직였다.
너덜너덜한 양쪽 팔을 이용해 몸을 힘껏 집어 던진 기간테스가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거리를 좁혀온다.
“설욕전을 시작해보자고.”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 전개한 [신성에 도전하는 자]. 이 신성 마법에는 사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이 마법은 회복기지 공격기가 아니다. 망자들의 무리를 주춤거리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게 손아귀 수준의 괴물들은 아니다.
애초에 두 마리 토끼 전부를 잡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내가 한 선택은 전장의 모두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거였다. 사실 그보다는 다른 성질은 내가 잘 모른다.
난 아직 이 신성 마법의 원리를 완전히 구명해내지 못했다.
애초에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이상한 거다.
이건 오즈가 평생을 걸어 쌓아온 노력의 결정체가 아닌가?
담겨 있는 노력과 재능의 단계가 아득히 멀다.
“그워어어어어!!!”
기간테스는 나를 향해 함성을 내지르며 몸을 내던졌다.
그 목소리에는 이제 예전만큼 힘이 없었지만 나 그 의지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만 하리라.
“그르르르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럴 틈도 없이 이대로 네놈을 산산조각 내주마!!!”
“너한테 그럴 여력은 있고?”
기간테스는 이제 뒷일 따위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내 위로 던졌다. 아마 저 높이라면 녀석도 그냥은 안 끝날 터다.
나는 모든 마나를 [신성에 도전하는 자]로 돌린 상태다.
그렇기에 몸은 순식간에 회복됐어도 마법을 전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등불이라는 건.”
하늘로 떠오른 기간테스는 나를 향해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의 압박감보다도 나를 더욱 가열차게 담금질하는 게 있었다.
[별하늘의 로브]에 새겨진 건 피로 얼룩졌던, 수많은 기대를 버리지 못해 불완전연소한 삶을 버텨온 자의 뜨거운 손바닥.누군가가 내게 맡긴 불씨가 등을 기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보기에는 따뜻해 보여도 막상 손을 대면 뜨거운 법이지.”
“그륵?!”
별다른 술식을 그려내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누군가가 살아온 투쟁의 삶이 있었다.
초월급 마법
[프로메테우스]신성을 흉내 낸 기름에 투쟁의 불씨를 붙인다.
[신성에 도전하는 자]의 빛에 [프로메테우스]의 불씨를 붙인다.“타올라라.”
[신성에 도전하는 자]를 통해 뻗어 나오던 청백색의 빛은 이내 불씨를 담고 맹렬히 타오른다.언젠가 본 적 있던 불의 화신.
전신을 불꽃으로 휘감아 압도적인 열을 쏟아내던 붉은 재앙.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색이 다르다.
타오르는 불꽃은 푸르게, 유려하게, 불의 화신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신성을 불꽃을 담는다.
[성화(聖火)]푸른 불꽃은 이내 떨어지던 기간테스의 몸을 집어삼키더니 더욱 거대하게 타올랐다.
교황청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여명을 알리는 등불.
그 빛이 하늘을 타고 올라가 의 문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