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94
제97화
엘레노아는 유스티티아의 발랄한 자기소개를 보면서도 웃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녀가 정녕 디센트라의 언니라면 그녀에게 있어서 엘레노아는 원수라고 할 수 있었다.
디센트라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건 물론이고 그녀를 직접 끝낸 것 역시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도대체 어떻게 웃어 보일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엘레노아 공주님이셨네요. 머리가 짧아져서 한순간 못 알아봤지 뭐예요? 하하핫!”
“저, 저는…….”
엘레노아는 죄악감을 느꼈다.
그녀는 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여렸다. 그 여림을 관종 행위로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아, 아니, 디센트라는 저 때문에…….”
“괜찮아요.”
유스티티아는 눈물을 글썽이는 엘레노아의 표정에서 많은 것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애초에 힘이 있는데도 저는 가족들이 죽어갈 때 마계에 있었는걸요?”
“하지만 저는…….”
“일단 일부터 해결할까요?”
유스티티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엘레노아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더니 이내 검을 움켜쥐었다.
아직 눈앞에는 적이 있었다. 그것도 를 없앤 장본인이.
“흠. 디센트라, 디센트라라……. 들어본 것 같은데…….”
스카의 몸을 빌린 딜레이드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테지만 머리 한구석에 넣어뒀던 일이었다.
“아하! 그래, 그쪽의 파란 계집이 처리한 녀석이었던가?”
스카는 기억났다는 듯 그렇게 소리쳤다. 그에게 있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였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르다.
스카는 분위기를 통해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용한 거다.
어차피 엘레노아는 정신조차 피폐해져 별다른 반박도 못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가신 건 눈앞에 새로 등장한 유스티티아뿐.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대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디센트라라는 여성의 끝을 낸 건 다름 아닌 그대가 지키고 있는 여성이라네.”
스카는 짐짓 슬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엘레노아는 그런 스카의 말에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디센트라는 그때 ‘바깥의 존재’에게 집어 삼켜져 끝내 괴물이 돼 있었다. 엘레노아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괴물 안쪽에는 아직 그녀의 영혼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그녀가 괴물이 됐건, 아니건 그 끝을 낸 건 결국 엘레노아라는 소리였다.
“그렇군요…….”
유스티티아는 그 말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담담함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엘레노아는 그런 유스티티아의 모습에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스카는 그런 유스티티아의 모습에 살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 순간.
스칵!
“뭐……?”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요.”
유스티티아는 망설임 없이 스카의 한쪽 팔을 날려 보냈다.
스카는 당혹감조차 느끼지 못하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이간질이 실패할 거라는 것 역시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 그게 오히려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가정에 넣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이 너무 빨랐다.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채 정리하기도 전에 그녀는 행동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빨랐다. 그녀는 분명 엘레노아가 말하기 망설이는 걸 보았고, 스카의 입으로 진실을 들었다.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정확한 사건의 전말을 고민하기는커녕 행동부터 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였나?”
“아뇨.”
스카는 팔을 베어버린 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는 유스티티아에게 나직이 말했다.
스카의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까지 파악한 걸까?
아니면 사건의 전말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유스티티아의 대답은 달랐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왜……!”
스카는 대답하면서도 검을 휘둘러오는 유스티티아의 검을 한 손으로 가까스로 쳐냈다.
재생이 느리다. 아니, 일시적으로 봉쇄된 것처럼 재생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힘이 하나 더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간을 들인다면 대응할 수 있을 거라는 점.
하지만…….
“큭!”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스카는 그 잠깐의 사이 유스티티아의 검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원래 상태였다면 그나마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겠지만 거대한 대검을 다루는 스카의 육신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거 같았다.
작전은 실패.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은 작전이었지만 너무 허망한 결과였다.
“도대체 왜지?”
딜레이드는 스카의 육신에서부터 연결이 끊어지는 걸 느끼며 재차 질문했다. 그 망설임 없는 행동의 이유를 듣고 싶었다.
“제가 복수를 원했다면 조금이라도 고민했을지 모르죠.”
유스티티아는 스카의 다른 팔까지 날려버리며 선언했다.
“하지만 저는 용사거든요!”
그녀는 약자의 편.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게 누군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다.
홀로 품지 않아도 될 죄악감에 물들어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를 숙이는 자가 있지 않은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죠.”
유스티티아는 스카의 육신에 검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제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아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겠죠. 그게 복수가 될지 인생의 증명을 위해서일지는 제각각이겠지만요.”
“그렇다면 왜……?”
딜레이드는 흐릿해져 가는 스카의 시야 너머로 물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다면, 한 사람 정도는 타인을 우선해서 살아갈 수 있는 법 아니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아가기로 한 거예요.”
[용사] 유스티티아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때 그렇게 맹세했다.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면 한 명쯤은, 그녀만큼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 검을 들어 올리기로.
힘겨워하는 그들을 위해 짐을 함께 들어주기로.
“참으로 불편한 삶이로군…….”
스카는 유스티티아의 맹세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 *
스카와 엘레노아와의 싸움 도중 돌연 용사가 난입했다.
그리고 용사가 시스투스화 된 스카를 쓰러트렸다.
여기까지가 루시아를 통해 들은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나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다.
“생각할수록 돌아버리겠군…….”
스카는 아마 ‘바깥의 존재’에게 정신을 침식당한 일종의 화신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제라드와 마찬가지…… 아니, 의식을 완전히 사로잡힌 꼭두각시가 된 이상 그보다도 더 위협적인 적이었을 거라는 건 틀림없다.
거기에 [명왕]까지 합세했으니 그가 상당한 괴물이 됐을 터다.
듣기로는 용사가 기습적으로 한쪽 팔을 날려버렸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기습이 없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엘레노아가 데드 엔딩으로 직행할 뻔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번 변화가 없었다면 엘레노아는 100% 확률로 죽었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그 시점에는 용사밖에 없었다.
의 실력자들은 모두 디스크레의 지원을 하고 있었을 테니 틀림없다.
분명 다행인 일. 평소 내 행적을 생각해보면 천운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용사가 왜 여기 왔지?”
그녀의 행적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왜 그녀가 교황청에 온 걸까?
“아무래도 마왕성의 전투에서 저주를 받아온 모양이더라고.”
“그게 무슨…….”
이게 또 이렇게 꼬인다고?
원작에서는 애초에 엘레노아와 용사가 엮일 일이 없었다.
용사가 나오는 이벤트 스토리는 주인공이 개입하지 않는 별개의 사이드 스토리로 진행됐으니까.
애초에 만날 수도 없었다.
3장 시점에서 엘레노아는 에 있었고 4장 시점에는 를 향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의 흐름이 크게 변했다. 엘레노아는 를 향하기 전에 먼저 교황청에 올 수밖에 없었다.
흐름은 계속 변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게 용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주인공인 엘레노아 시점으로 진행되던 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
[황금의 용사] 유스티티아의 원래 행적이 이 시점에는 교황청을 향하게 됐을 거라는 점이다.엘레노아의 행적은 변했지만 용사의 행적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만날 일 없는 두 사람이 얽히게 된 거다.
“머리가…… 아파…….”
“두통 연맹에 온 걸 환영해 오즈 왕자. 이걸로 세 명째로군.”
“다른 한 명은 누구지?”
“백양.”
“그렇군…….”
오즈와의 해후를 마치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자신감을 잃을 거 같다.
“그럼 일단…….”
“곧바로 움직일 생각인가?”
루시아가 퀭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가운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 중요한 게 남았다.
“……배부터 채우고 싶은데.”
“아, 그것도 그렇겠군…….”
나는 눈을 뜨고 지금까지 물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못했다.
양심이 있다면 누구 하나는 나를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
* * *
병실을 빠져나온 직후.
나는 상황이 최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식사 기간이 지나서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건가?”
“네, 죄송합니다. 마도왕의 후계자님. 아무래도 날이 덥다 보니 음식을 놔뒀다가는 그게 또 상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요컨대 나처럼 시간에 못 맞춘 애들이 집어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릴까 배려해줬다 이건가?
이건 배려가 맞나?
“냉장고에 넣…… 아니, 됐다. 없다면 어쩔 수 없지.”
교황청에 냉장고 역할의 마도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음식이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아직 곳곳에 이번 습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남아 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음식을 남겨둘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늘 부족한 상태였을 거다.
나를 위한 특별대우가 있을지라도 그걸 식사 시간이 지나고 음식을 남겨둘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 깨어날지 알고?
“어떻게 하겠어? 오즈 왕자. 밖에 열려있는 식당이라도 찾아보겠나?”
“과연 지금 같은 상황에 멀쩡히 문을 연 식당이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하나둘 정도는 있을지 모르지.”
“흠…….”
열려있을지도 모르는 식당을 찾아내는 것과 그냥 다음 식사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밖에 나선다고 해서 식당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나를 노리고 있는 암살자들이 근처에 널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 하나하나에 대응하면서 식당을 찾는 것보다는 그사이에 내가 탈진해서 쓰러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교황부터 만나볼까?”
“나는 가끔 당신이 심각한 워커홀릭이 아닐지 걱정이 돼.”
“별일이군. 나를 걱정해주다니.”
“누가 당신을 걱정한다고 했지? 당신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는 내 앞날이 걱정된다는 소리거든?”
“너는 나중에 꼭 나 같은 상사 만나라.”
“……이미 만나고 있어.”
그것도 그렇네.
생각해보면 디스크레 그 자식이 쉬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늘 바쁜 상태로 돌아다니면서 교수 업무에 정보 통괄 및 전달까지 하는 걸 보면 정말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루시아의 퀭한 눈동자가 어쩐지 심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관조]를 활성화한 이후로 이 자식을 상대로 눈을 피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좀 피하고 싶다.
“일단 움직이지.”
슬쩍 눈을 피하며 자리를 옮긴다.
병실에서 식당, 이윽고 교황이 머무르고 있는 집무실까지.
슬슬 체력이 달린다.
배는 아까부터 계속 고픈 상태인데도 사람들 시선이 있어 차마 그걸 티 낼 수도 없다.
“혹시 간단한 거라도 좋으니 먹을 것 없나?”
“……그 정도인가?”
퀭한 눈의 루시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나는 귀족적인 연기를 잘하고 있었던 걸까? 이런 반응이면 그동안 이미지 관리한 보람이 있다.
“하긴 당신은 평소에도 제법 많이 먹는 편이었으니…….”
“그만큼 움직이니까.”
나는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편이다. 연습부터 시작해서 정보 수집, 선도부 일까지 있다.
더군다나 오즈가 되며 부유해지지 않았는가? 스테이크 2인분을 시켜서 먹고 남긴다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거다.
“뭐, 내가 가진 거라고는 군용 식품밖에 없는데 말이야. 아니, 맛은 없어도 영양이 많으니 오히려 지금 오즈 왕자에게 더 좋으려나?”
“설명은 됐으니까 그냥 내놔.”
“음……?”
루시아가 싱긋 미소 짓는다.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한 이 분위기, 좋지 않다.
“오즈 왕자는 이런 전시 상황에서 얼마 없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낼 수 있는 사람이지?”
“……이년이?”
절로 튀어나오는 욕.
하지만 루시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주머니 사이로 내게 에너지 바를 보여온다.
약 올리는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얼마를 원하지?”
“세상 모든 게 돈을 통해 거래되지는 않지. 알고 있잖아?”
정보. 이 자식은 루치아 도미네와의 대담 내용을 자신에게 가르쳐달라는 소리다.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워커홀릭이라는 거냐……?
“그래, 딜.”
“잘 생각했어 오즈 왕…….”
툭.
그렇게 교섭이 성사되려는 순간.
루시아가 주머니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내게 건네려던 시점, 같이 딸려 나온 게 눈에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들어보니 어딘가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래, 아르바이트 처에서 횡령하다가 나한테 걸렸던 파르페 끝에 올라가는 고양이 모양의 쿠키다.
“……아니, 이걸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나?”
내가 음식은 상하니까 오래 보관하지 말라고 했지?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정성스레 진공포장까지 해놓고서 아니라고?
그보다 이쪽 세계에도 그런 기술력이 있었던 거냐?
그리고 그런 기술력을 이용해서 이런 귀여운 짓을 저지른 거냐?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이, 이건 그날 오즈 왕자에게 받은 게 아니라 그……. 윽…….”
조금 전만 해도 퀭한 얼굴이었던 루시아는 순식간에 새빨개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활기가 돌아와서 보기는 좋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럼 루시아? 너는 이런 상황에서 내 가벼운 입을 막기 위해 얼마나 낼 수 있는 사람이지?”
“…….”
루시아는 말없이 에너지 바 5개를 내게 내밀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이게 진짜 교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