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1)
EP.1 아니 내 눈이
– 끄아아악!
– 죽어라…! 더러운 악귀 놈─!
[ HP 12/3155 ].
.
-네놈들이 왜 여기에…!
-그딴 짓을 벌여놓고 덜미를 잡히지 않길 바란 거냐?
[ HP 2/3155 ].
.
-잠깐…!
-끝이다아─!
[ HP 0… [ HP가 0에 도달했습니다. ] [ 플레이어가 사망합니다. ] [ Bad End 34 – 「진상眞相의 던전」에서 사망. ] [ 데이터를 정산합ㄴ…..“갸아아악…“
깜빡깜빡.
까만 화면 속에서 게임 오버를 알리는 글씨를 보며 머리를 싸맸다. 목덜미가 저절로 당겨와 시야가 붕 떠버린다.
세이비어, 라는 이름의 로그라이크 비스름한 게임에는 ‘세이브’라거나 ‘로드’ 따위의 기능은 없었다.
한 번 캐릭터가 죽으면 끝이다.
‘내, 내 100시간이 이렇게 끝난다고…?’
가차없이 들이밀어진 현실에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심장에서 주체하는 감정이 전신으로 퍼졌다.
끝내 제 화를 못 이기고 손을 붕붕 휘두르다가 책상에 꽉.
“끅…”
아찔한 통증에 흐려지던 시야가 핑 돌아왔다.
아, 아파아아…
몽롱하던 정신이 단번에 돌아오는 물리치료.
팔꿈치를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저절로 허리가 비틀렸다. 한동안 파닥파닥 의미 없는 발버둥을 치다 중간에 현타가 와서 의자에 축 늘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봤다면 거진 한 달간 정신적 피해를 볼만한 추태였다.
“하아…”
뻐근한 팔꿈치를 어루만지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기분 나쁘게 시리 여전히 bad end 딱지를 표시하고 있는 모니터 속. 싸늘하게 식어가는 캐릭터가 보였다.
12회차 캐릭터 〈혼종소환사〉
다수의 소환수를 다루는 소환과 흑마법 휘하의 사령술의 조합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쪽수로 밀어붙이던 전략이다.
유효한 전략이었다. 지난 회차들과 비교해봐도 훨씬 쉽게 메인스토리를 격파해갔다. 잘하면 이번 회차에 해피엔딩을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난 11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캐릭터다.
무적을 자신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챕터 몇은 가뿐히 넘기리라 자신할 만큼 성장했는데…
개같이 망해버렸다. 그냥 거저 주는 던전에 들어갔다가 함정이벤트에 걸려 개같이 죽어버렸다.
심지어 지난 회차보다도 빨리 죽어버렸다.
흑마법 루트를 탄 게 실수였나?
초반에 주변인 호감도가 나락에 처박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당초 중반 회차부턴 전부 솔로잉이었다.
그 업보가 방금 막 엄습했다.
주연 캐릭터들이 손을 잡고서는 내 캐릭터를 담가버렸다. 주도면밀하게 나를 던전으로 유인하고는, 거기서 몬스터 범람에 휩싸인 내 목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흑마법 좀 익히자고 빈민국 소속의 NPC를 포식했을 뿐인데. 주연 캐릭터에게 끼친 피해는 아무것도 없는데…
더불어 루트 자체가 소환사다 보니 본신의 무력이 약해 기습에 너무 손쉽게 당해버렸다. 조금 자체 스텟을 높여두었다면 이리 허무하게 끝나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스텟을 올리기엔…’
본신의 스텟?
캐릭터 자체 스텟에 몰빵했던 11회차 〈금강전사〉도 버티기야 오래 버텼지만, 결국 다구리를 당해 뚜드려맞고서 몬스터밥이 되었다.
베드엔딩 창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사색에 잠겼다.
‘…아냐. 전부 틀렸다.’
한동안 이어지던 고민 끝에 해답이 번뜩였다. 저 멀리서 해답이 손을 붕붕 흔드는 것이 보였다.
“소환사라니, 생각부터 틀려먹었어.”
생각해보니 소환사라는 트리부터 잘못됐다.
소환사라니? 졸병이나 소환해놓고 뒤에서 구경만 한다니?
겁쟁이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썩어빠진 마인드니까 함정이벤트에 꿱 죽어버리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 11회차 〈금강전사〉 루트는 성공적이었나? 아니다. 이 새끼도 역류이벤트에 파묻혔을 때 대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기존의 방식으로 돌파가 불가능할 때는, 그 외의 변수를 찾아야 하는 법.
딸각-
배드엔딩 창을 치우고 새 게임을 클릭했다.
아직 즐길 거리야 많았다만, 조금 더 특색있는 플레이를 원했다.
[ 캐릭터를 생성합니다(13회차) ] [ 플레이어의 이름을 입력해주십… ]딸각- 딸각-
아래로 넘긴다.
이름, 특성, 출신…
‘여깄다.’
[ 제약 ]등가교환 혹은 줄건 줘, 라고 이해하면 되는 시스템.
캐릭터에게 제약 하나를 부여하는 대신 그에 걸맞은 특수한 이점을 가져간다.
여타의 게임이나 만화 같은 데서 흔히 볼법한 설정이다.
예전엔 제약으로 가능한 것들이 하나같인 괴상한 것들이라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막 입문한 뉴비로써는 건드리기 망설여지던 요소였지만, 이젠 충분히 경험이 쌓였다. 12회차 정도면 나름 고인물 초입 정도는 되지 않을까.
게임을 처음 할 때는 바닐라로 맛보고 나서야 DLC 같은 추가설정을 즐긴다는 개인 취향도 있었기에 제약은 뒷전으로 밀어둔 요소였다.
사실 제약이라는 요소를 봤을 때부터 생각해둔 것이 몇 있었다.
마우스 휠을 굴려 미리 정해둔 제약을 찾았다.
선택할 수 있는 제약은 최대가 셋.
▶제약(Ⅰ) : 「감각봉인의 저주」
─선택한 감각을 반영구적으로 봉인합니다.
─선택 : 시각, 미각, 후각
눈이 멀고 맛을 못 느끼고 냄새도 못 맡는다.
▶제약(Ⅱ) : 「단명의 저주」
─단명할 육체를 타고납니다.
천수를 누리기 전에 죽는다. 즉, 단명한다.
▶제약(Ⅲ) : 「침묵의 저주」
─말하는 것에 고통이 따른다.
의사소통에 기본인 대화조차 어려워진다.
“흠.”
숨 막히는 라인업이다. 현실이라 생각해보면 난 저런 조건 가지고는 못 살 거 같다.
내 행복의 지분이라 해봐야 유튜브(시각), 음식(미각), 풀 내음(후각)의 삼권분립 체제인데, 그 전부를 앗아가면 그냥 콱 죽어버리는 편이 편할 것이다.
거기에 대화도 거의 못 하고, 그냥 참고 살아도 얼마 못 가 자연사라니.
물론 게임에선 감각 스텟이 일부 폭락하고, 캐릭터 간에 상호작용 횟수 폭락, 생명력 감소가 전부지만 말이다.
지금까지가 제약이었고, 이제부터가 특별한 이점이다.
▷능력(Ⅰ) : 「공간지각空間知覺」
─압도적인 공간인지 능력을 보유합니다.
눈깔을 버리는 대신 공간을 직접 느껴 행동한다.
▷능력(Ⅱ) : 「마력친화魔力親和」
─마력에 대한 규격 외의 친화력을 보유합니다.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찔러도, 마법을 사용해도, 무언가를 제작한다 해도. 세상만사에 마력이 요구되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마력친화 성질을 얻는다.
▷능력(Ⅲ) : 「팔방미인八方美人」
─여러 방면에서 평균 이상의 자질을 보유합니다.
솔로잉을 지향하는 만큼 고점은 떨어져도 모든 부문의 저점이 상승하는 만능계열의 능력을 챙긴다. 숙련도만 쌓는다면 혼자 싸돌아다니며 뭐 못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네.’
잠시 제약과 능력을 검토한 뒤 고개를 주억거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한 번에 해피엔딩을 보자는 생각은 접었다. 몇 번 시도해보고 재설계를 거쳐야겠지.
그래도 어떤 성능을 보여줄지 기대감에 두근두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점으로 얻는 능력들은 모두 ‘고유능력’ 칸에 포함된다.
게임 설정상, 보통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고유능력은 하나가 국룰이다.
그런데 제약을 달고 생성한다면, 플레이어 캐릭터는 남들 하나 가지고 태어나는 고유능력을 3개씩이나 선천적으로 달고 태어난다.
이전 회차, 고유능력 하나만 달고 시작한 캐릭터들로도 꽤 진도를 나갔었다.
〈금강전사〉만 해도 세계관 최강자급 실력자와 3 대 1로 붙어도 승기를 잡을만한 스펙에 도달했었다.
그렇담 세 개를 달고 시작하는 캐릭터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기대감에 콩닥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마우스 커서를 옮… 겼…… …
…
“음…”
뭘까 이 기분은.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잖아.
목덜미를 쓱 문지르자 축축한 땀이 묻어나왔다.
진짜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를 의식하자 엄습하는 오싹함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뭔가 불길해. 뭔가 이상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커서를 간신히 옮겼다. 그러자 이상한 감각이 멀어져갔다.
“…뭐야.”
커서를 게임시작에 옮기면 다시 부들부들, 파르르… 때면 다시 정상으로.
몸뚱이? 아니 직감적인 무언가가 게임을 시작하지 말라고 게거품을 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내일할까?”
어차피 급한 것도 아닌데.
사실 너무 급하게 선택한 감도 없잖아 있잖은가.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중얼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일이 월요일이지만, 어차피 개백수라 출근도 없다.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고 샤워실에서 빠르게 씻고 나왔다.
아직도 몸이 허한 것이 오늘은 일찍 잠드는 것이 좋을 듯싶다.
커튼을 치고 침대맡에 바닐라 향 디퓨저를 놓은 뒤 침대에 몸을 묻었다.
불안함에서 벗어나고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이 감기고 코끝으로 바닐라 향이 아른거리자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곧 의식이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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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게임 속 세상에서 눈이 떠졌다.
근데 시발 앞이 안 보이잖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