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12)
EP.12 시작(2)
이곳은 게임 속 세상이되 현실이다.
벨런스 개망겜 〈세이비어〉와 유사한 세계이다.
현실에선 없을 탑과 던전, 마력과 고유능력이 있고.
개인의 무력으로 도시 하나 뒤집는 것도 가능한 게임 속 세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이기도 하다.
기울어져 가던 중국의 수도에서 3위계 몬스터 하나가 나타났다고 수백만 단위의 사람이 죽어버리고, 그 넓은 땅덩어리가 독에 절어 방치되기도 한다.
일상을 영위하던 도시에 던전 하나 잘못 터지면 사람 수백이 우습게 죽어나가기도 한다.
일개 몬스터의 영향으로 대륙 하나가 마경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그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했다가는 화를 입는 날이 올 것이다.
이곳은 게임처럼 루트가 딱딱 정해져 있는 곳이 아니니까. 내 선택 하나가 무수한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세상이니까.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는 법.
각자의 삶이 있을 사람들은 한낱 NPC 따위로 여기는 짓은 크나큰 착각이며 무례한 생각이다.
오늘 아침에 분명 반성했다.
이 생각은 미래의 내게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했고, 앞으로는 게임 따위의 지식을 가지고 섣부르게 단정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을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뭐라 단정 짓기 힘든 개체니까.
“…사탕 먹을래?”
상념을 끊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내 옆자리에 앉은 홍연화가 머뭇거리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아귀에는 사탕이 있었다. 흔히 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포장이 인상적이었다.
이거 엄청 비싼 사탕 아닌가.
[감사합니다]사탕을 받았다. 일단 주머니에 넣어두려 했는데, 홍연화의 시선에 순간 몸이 굳었다.
뭔가 긴장한 듯한… 조마조마해하는 그런 시선이 받아든 사탕으로 향하고 있다.
‘음…’
그래도 선물로 받은 건데 주머니에 쑤셔 박긴 애매하다는 생각에 포장을 까서 입에 물었다. 당연하게도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자 초조해하던 홍연화의 안색이 일순 환해졌다. 누구나 알아차릴 법한 극적인 변화였다.
‘…….’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마치 이룰 수 없는 기적을 목도한 이들 같다.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백아린이 두 눈을 끔뻑거렸다. 멍하니 벌어진 입이 얼빵해보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신기하기 그지없다.
홍연화는 잠깐이지만 내가 가장 큰 선입견을 품고 있던 사람이다.
원작에서와 달리 마냥 성격이 불같고, 성급하고, 더럽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마냥 지레 겁먹고 피해야 할 상대가 아니란 것도 알겠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용서를 구하며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란 것도 알겠다.
알겠는데…
“맛있어? 내가 특히 즐겨 먹는 종류야.”
“진짜? 미리 사둔 게 좀 많은데, 내가 몇 개 보내줄까?”
왜 저 앞에 백아린을 내버려 두고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인지.
왜 옆에 앉아놓고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작게 움찔거리는지.
왜, 조마조마한 얼굴로 내게 사탕을 쥐여주고, 받아먹자 얼굴이 환해지고, 맛있다고 하니 눈을 반짝이며 더 챙겨줄까 물어보는지는… 역시 모르겠다.
사람 좀 만나고 다녔으면 현재 홍연화가 벌이는 기행의 이유를 알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와 함께 그나마 말을 트던 인터넷 친구가 떠올랐다.
▶아가판서스 : 밖에 좀 나가고 해라
▶나 : 싫어요
▶아가판서스 : 무슨 1년 내내 집구석에 있는 거냐. 햇빛 좀 받고 바람도 좀 씌고 해라. 어? 사람도 만나고.
▶나 : 싫어요
▶아가판서스 : 아이고 떼쟁아. 진짜 걱정해서 하는 조언이야. 평생 인터넷에서 살건 아니잖아.
▶나 : 생각해볼게요
아가판서스. 어쩌다 보니 조금이나마 연락하게 된 인터넷 친구.
밖에 나가라, 사람 좀 만나라, 맨날 집구석에 있으니 그렇게 사교성이 없는 거다, 나오면 내가 밥 사준다 등등…
무슨 보호자라도 된 듯 이리저리 참견해오던 사람이었다.
그 친구의 조언이 지금에서야 불쑥 다가왔다.
‘밖에 좀 돌아다녀 볼걸…’
사람이랑은 만나기 싫다고, 혼자가 제일 편하고 좋다며 집에 틀어박힌 업보가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
– 드르륵
그때 강의실의 앞문이 열렸다. 공간지각 덕분에 미리 알고 있었다.
현재의 공간지각은 지름 100m에 색상이 포함된 버전. 이젠 일상생활에 지장은커녕 오히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다.
눈이 안 보이고, 몸뚱이가 연약하단 이유로 여러 배려를 받는 것에 양심에 찔릴 지경이다.
이 정도면 일반인보다 훨씬 좋은 시각 조건이다.
사실상 패션 장애인 아닐까. 장애 호소인이랍시고 동정의 시선을 받으면서, 실상은 일반인보다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홍연화에게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데도, 엄청 잘 느껴진다고 말했지만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홍연화의 입장에서 나는 언제 죽어도 시원찮을 약골인 걸까.
어쨌든, 덕분에 이쪽으로 쏠려있던 관심이 단번에 앞문으로 향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 길게 뻗은 다리를 몇 번 놀리니 단상 위에 올라서는 건 금방이었다.
들어온 이는 초록색 눈동자가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이 세상에서 마법사 비스름한 사람은 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지, 저 여성도 큼지막한 로브를 두르고 있다.
교탁 앞에 선 그녀는 한차례 강의실 내부를 훑고는 방긋 웃었다.
앞문이 열린 시점부터 수군거림은 사라졌다. 그녀가 내뿜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입춘반의 담당교수 겸 기초정령 강의를 맡은 신인 교수 리아나 벨루스라고 합니다~”
범상찮던 기세와 다르게 해맑은 목소리가 강의실에 퍼졌다.
교수가 이름을 밝히자 주변이 작게 웅성거렸다.
정령사, 은퇴, 아프리카 마경이라는 키워드.
나도 아는 인물이다.
리아나 벨루스. 아카데미 마경 필드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조연격 인물로, 협회 공인 등급이 최상급으로 기억한다.
최상급 영웅쯤이면, 3위계 몬스터랑도 전투가 성립되는 세계 단위 실력자다.
3위계쯤 되면 도시 하나 터지는 건 일도 아니니… 얼마나 괴물 같은 실력자인지 조금이나마 감이 온다.
“영웅 등급은 상(上)의 297위! 이래 봬도 상위 0.1퍼센트 안쪽으로 들 실력자랍니다!”
아직 최상급은 아닌가?
하긴, 아프리카 마경에 가는 시점은 빨라야 2학년은 넘어야 한다. 2년이면 바뀔 만도 하다.
교수의 소개에 생도들의 눈은 반짝거렸다.
최상급이 아닌 상급. 하지만 그것에 실망하는 미친놈은 없었다.
공간과 조율의 탑주들이 운영하는 협회에서는 몬스터 토벌 등등의 성과에 따라 초인의 등급을 분류하고 있다.
최상급, 상급, 중상급, 중하급, 하급, 최하급의 여섯 등급.
그중 최상급은 세계를 통틀어 300명이 안 되고, 상급은 30,000명이 채 안 된다는 설정으로 기억한다.
전 세계 영웅의 수가 500만 언저리였던가.
그중에서도 상급 초인이며 순위도 300위 안쪽.
시요람의 교수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자격이다.
“아침부터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겠죠? 이미 다들 학사일정 공지는 봤겠지만, 절차에 따라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신인이라고 밝힌 것치고는 능숙하게 생도들의 반응을 이끌고 있었다.
“요번 학기는 일명 ‘자유학기’라 칭해지죠? 의미 그대로 전공과 부문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듣는 기간입니다.”
“공지로도 봤지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제가 설명을 해드리는 거죠!”
이해가 가지 않는지 질문하는 남자 생도에게 너 말 잘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킨 리아나 교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요컨대 근접전투를 전공으로 삼은 학생이 마법 관련 강의를 들어도 별문제 없습니다.”
자유학기.
본래 지구에서도 어디서 들어본 용어다.
말 그대로 전공에 상관없이 온갖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자유학기가 만들어진 이유야 여럿 있다.
나처럼 잠재력만 보고 입학했지만, 아직 제대로 진로를 좁히지 못한 부류를 위해서.
또 설령 진로를 정했다고 하여도 혹시나 못 찾은 잠재력이 있을지 점검하는 것도 있고, 그래도 다양한 강의를 접하며 안목을 늘리라는 취지도 있다… 는 설정이었다.
요컨대 다양하게 찍먹해보라는 뜻.
팔방미인이라는 고유능력을 보유한 내게 있어선 기꺼운 일이다.
“자유학기 기간에는 오전에 학년에 따른 공용강의를 듣고 오후에 등급별 전공 강의를 듣게 됩니다.”
교수의 설명은 원작 설정 그대로였다.
오전 중에는 반별로 공용 강의가, 오후에는 입학 성적에 따른 전공 강의를 받는다.
시요람은 입학 성적에 따라 생도를 ‘기초’ ‘숙련’ ‘심화’의 세 분류로 나눈다.
기초, 숙련, 심화를 순서로 수업의 수준이 높아진다.
자기가 기초반이라고 화낼 것도 없는 것이 실력만 있다면 시험을 통해 상위 반으로 올라갈 수 있다.
또 기초라고 하여 대충 때우는 수준이 아니다. 다른 반에 비해 기초인 거지 강의의 수준은 최고 수준인 건 맞다.
특례입학자는 기초반부터 시작한다. 잠재력만 보고 추천으로 데려온 생도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이들을 숙련이나 심화로 밀어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휴… 이걸로 공지는 끝!”
기다란 학사일정 및 시험일정, 성장의 탑을 입장하는 시기와 1학년이 알고 있어야 할 교칙 등을 몇십 분간 쉬지 않고 설명한 리아나 교수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중간중간 질문도 들어왔기에 시간이 더욱 지체됐다.
“1학년의 자유학기는 특히나 강의가 빡빡한 걸로 유명하죠? 열심히 버텨봅시다! 다음 학기부터는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금세 안색을 회복한 리아나 교수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첫날이니만큼 다들 뭘 할지는 알고 있으시겠죠?”
강의 첫날. 보통 오리엔테이션이라 부르던가?
아무튼 이런 종류의 이벤트는 다 무작위라 원작에서 뭐라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걱정하진 않았다.
원작에선 텍스트 몇 줄로 끝나는 간단한 이벤트에 불과했으니까.
딱히 원작 설정에 의존하지 않아도, 공용이나 전공 강의도 아닌 담당교수의 첫인사 시간에 특별한 건 하지 않을 테니까.
기껏해야 자기가 맡은 강의 개요라던가, 능력의 재측정 후 점검, 아니면 자기 현역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주던 게 대다수─
“첫날엔 뭐니 뭐니 해도 자기소개죠! 자, 제일 앞줄 맨 오른쪽에 앉은 생도부터 나오세요!”
‘시발?’
.
.
.
자기소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성명이나 경력 등을 말하여 알리는 일…
처음에야 당혹스러웠다. 원작에서 자기소개라는 이벤트는 없었으니까. 내가 자기소개라는 걸 해본 적이 없거니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소개하는 게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상적인 절차가 아닐까.
알다시피 인맥이 무척 중요한 이 업계에서, 자기소개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집구석에만 처박혀있던 내가 감히 판단할 자격이 없었다는 것.
“하율아, 어디 아파?”
[아뇨, 괜찮습니다]그러니 두려워할 것 없었다. 배가 아플 필요는 하나도 없다. 그냥 교탁에 서서, 대충 이름이랑 특징만 말하면 된다.
간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을 표하는 홍연화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답하며 공간지각을 조율했다.
이러는 사이에도 자기소개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전투 전공의 카츠키 유세이. 검에 관한 고유능력을 갖추고 있다. 혹시 무학에 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권해도 좋다.”
연회 당시 날아와 나를 처박아 기절시킨 카츠키 유세이.
“보조 전공 엘리아 스레이드라고 합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이미 사귄 친구가 많은지 특히나 박수소리가 거세던 엘리아.
“전투 전공 백아린입니다~ 새로 사귈 친구 실시간 구하는 중!”
어마무시한 가문을 등에 업은 것치고는 가벼운 태도로 생도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끌어낸 백아린 등.
별 탈 없이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아직 서먹해 보이지만, 중간중간 장난도 들어갔고, 무엇보다 레이나 교수가 직접 나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생도 대부분의 자기소개가 끝나가고 있었다.
“전투 전공 홍연화.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까 이쪽 눈치를 힐끔거리던 태도는 어디 가고 시큰둥한 기색으로 자기소개를 마친 홍연화.
즉, 순서가 끝내 내 옆자리의 홍연화까지 당도했다.
“자, 다음! 이하율 생도!”
부드럽던 분위기가 순간 뚝 멎었다. 다양한 감정과 함께 강의실 내부로 침묵이 깔렸다.
‘후우…’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선이 쏠린다. 아까는 그래도 숨기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명분이 있는 지금은 대놓고 본다.
터벅터벅 강의실을 내려갔다. 단상 한편에 서 있던 리아나 교수가 눈을 반짝였다.
기대감 어린 시선이다.
…자기소개에 뭔가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리아나 교수 본인이 즐기려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올랐다.
교탁 앞에 섰다. 공간지각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목이 느껴졌다.
“……”
순간 목이 턱 막혔다.
시선이 쏠리는 것. 겪어봤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전철과 버스 안에서, 게이트 터미널에서, 생필품을 사러 들른 상업지구에서도, 환영회에서도.
시선은 쏠렸었다. 관심이 몰렸다. 환영회에서 무수한 악수 요청도 받아봤다. 같이 술 마시겠느냐며 권하는 것을 변명을 들먹이며 잘 피해 갔다.
지금은 도망칠 수 없다. 부산스러운 분위기조차 아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는 적막 가운데 내가 말해야 한다.
형용 못할 압박감이 전신을 눌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마른침을 꼴딱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안─’
“─녀, 컥! 끅, 꺼윽…! 켁, 켁켁…!”
“하율아!?”
“켁, 켁…!”
아 시발.
침묵의 저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