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13)
EP.13 시작(3)
긴장하면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니 평소에는 잘만하던 행동에서 이상한 실수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방금 내 경우가 그랬다.
지금까지 홀로그램으로 잘 대화해놓고서, 왜 방금은 주둥이로 내뱉으려 했나.
홀로그램으로 하는 대화에 잘 적응해놓고, 왜 입을 열려고 했나.
이전엔 잘 받아넘긴 관심과 시선이면서, 이번에는 왜 이렇게나 긴장한 건가.
나도 모른다.
그냥 실수다… 이거 말고는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
멍창하기 짝이 없는 실수였다.
[특례입학으로 들어온 이하율이라고 합니다. 제 자격에 대한 의문을 결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홀로그램을 출력하자 박수세례로 보답 받았다.
반응은 중간은 됐다.
막 환호성이 터지는 격한 반응도 아니고, 싸늘한 침묵이 깔리는 최악의 반응도 아니었다..
– 맹인이라는 게 맞았네. 감지계열이라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가…
– 거기다 벙어리라니…
– 흐윽…
대신 묘한 시선이 꽂혔다. 어처구니없어하고… 뭔가 안타까운 것을 보는듯한 시선도 있었다. 수군거림은 덤이다.
질시와 시기라면 대충 흘리고 말 텐데, 저런 종류의 감정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내 자리로 향했다.
“…….”
“큼큼… 자자, 자기소개는 이걸로 끝!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사이인 만큼, 얼굴 붉힐 일 없도록 합시다. 다음은…”
칙칙한 분위기를 리아나 교수가 헛기침과 함께 끊고는 말을 이었다. 화제를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가 물씬 풍겼다.
얼굴 붉힐 일 없도록- 이라는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이미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첫인상이란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데, 완전히 망쳐 버렸다.
내 모습이 저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생각해봐라.
겨우 자기소개하려고 단상에 섰다가 갑자기 사레들려 캑캑대는 이상한 놈으로 보이겠지.
고작 자기소개하나 제대로 못 하는 놈으로 생각하겠지.
비참한 심정이다. 자신이 한심하여 자괴감을 느꼈다.
“하율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속으로 삼키고 있는 거 아니지…? 아프면 무조건 말해야 해…“
조금 전에 내가 컥컥 거리자 헐레벌떡 뛰쳐나왔던 홍연화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백해진 인상이 붉은 머리카락과 크게 대비되었다.
병자를 보는 듯한 시선에 더더욱 고개가 무거워졌다…
이상한 오해가 쌓인 듯하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에 책상에 엎드렸다.
“하율아, 그렇게 아파…?
아니 그거 아니라고요.
.
.
.
리아나 교수가 퇴장한 뒤 이론 중점의 공용 강의가 이어졌다.
오전에 들은 공용 강의는 ‘신계역사학’과 ‘마력운용기초’다.
신계역사학은 대충 200년 전부터의 역사를 가르쳤고, 마력운용기초는 마력에 대한 역사와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배웠다.
역사학은… 원작 지식 덕분에 조금이나마 아는 부분은 있었는데, 마력운용기초는 좀 어려웠다.
내가 아는 것은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육성시키는가에 불과하지, 캐릭터의 마력운용을 어떻게 하는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기초 중에서도 기초부터 진도를 시작하여 나도 간신히 따라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도를 나가는 속도가 워낙 빨랐다. 다들 아는 내용이니 훑어보기만 하는 모양.
문제는 ‘다들 아는 내용’을 나는 모른다는 것.
원작에서야 스킵해서 ‘지식 +1’ 이나 ‘오늘의 강의를 마쳤다’ 등등 한 줄로 표기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현재 내겐 상식이 부족하다.
태어났을 적부터 이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과, 이능이 없던 지구에서 살던 사람인 나와는 상식 간 차이가 있다.
그 상식 간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선 이론 수업을 꾸준히 들어야 한다.
그것 말고도 성적을 위해서라도 들어야 하고.
원작에서야 어지간한 사고를 치지 않는 한 퇴학당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도 그럴지는 모르는 거니까 성적을 관리해야 한다.
아리송한 부분이 많았기에 기숙사에 가면 따로 복습해볼 생각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1시 남짓이다.
강의를 8시에 시작했으니 강의 하나당 2시간 30분을 잡아먹은 걸까.
슬슬 점심시간이다. 나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분명 칼로리 바를 넣어뒀는데…
“점심 같이 먹을래? 맛집 추천받은 곳 많은데.“
[점심이요?]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귀에 들어온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짐을 챙긴 홍연화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아린 님이랑 안 드세요?]“백아린? 걔는… 나중에 같이 먹지 뭐…”
나는 눈을 감고 있음에도, 홍연화는 내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리고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밥…’
감각봉인의 저주 때문에 미각이 없다.
여러 실험을 해봤다.
단맛, 짠맛, 신맛 등등의 맛은 전혀 안 느껴진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란 말도 들어서 실험해봤는데 매운맛도 못 느낀다.
그나마 느끼는 건 탄산이 톡톡 튀는 느낌? 그것마저 이질감이 들어 먹는 것이 거북했다.
사실 ‘저주’라는 카테고리에 묶이는 시점부터 그런 상식을 따지는 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혀 자체에 감각이 없는 건 아닌데… ‘맛’에 관한 건 그냥 전부 봉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이곳에 온 이후로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몇 번 없다.
혀가 멀쩡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기분이 나빠져서 그랬다.
[저는 뭐든 좋아요.]기분은 뭣 같지만, 그래도 미각이 없어져 어지간한 건 다 퍼먹는 누렁이가 되었다.
이전에도 딱히 편식하진 않았지만, 굳이 찾지 않는 음식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맛도 뭣도 없으니 영양소만 충족되면 정말 ‘뭐든지’ 먹을 수 있다.
“그, 그래? 뭐든지라아아… 잠시만…?“
그런 마음으로 말하자, 홍연화는 어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한동안 끙끙대며 고심하더니, 조심스레 이쪽을 쳐다보았다.
“제육… 먹을래?”
[좋아요]* * *
학습관 곳곳에는 생도에게 학식이 무료로 제공되는 식당이 있다.
돈은 받지 않는 주제에 퀄리티도 높고 종류도 매일 바뀌어서 많은 생도가 애용하는 장소라는 설정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밖에서 따로 먹는 생도들도 있기에 부지 곳곳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이번에 찾은 음식점도 그랬다.
점심은 근처 제육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 홍연화와 함께 해결했다.
버스 탈것도 없이 십분 걸으면 나올 가까운 위치였다.
나와 홍연화는 각각 제육정식을 하나씩 시켰다.
메뉴가 나오기 전, 맞은편에 앉은 홍연화는 여러모로 쭈뼛대는 태도로 대화를 터왔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영문을 모르겠는 태도였다.
가정사라든가 하는 무거운 이야기 말고, 평소에 뭘 좋아하느냐, 혹시 이런 프로그램 보느냐, 과일 좋아하느냐 등등…
왜 물어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름 성실하게 대답해주었고, 메뉴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적당히 때울 수 있었다.
갓 나온 제육볶음을 보는 홍연화의 두 눈이 반짝였다. 제육 옆에 나란히 놓인 순두부찌개도 함께였다.
제육과 찌개가 함께 포함된 제육 정식이었다.
침을 꿀떡 삼킨 홍연화가 수저를 들자, 나도 함께 수저를 들었다.
순두부찌개를 크게 한 숟갈 떴다. 전등 빛에 반짝이는 새빨간 국물은 저절로 침을 고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수저를 들어 입에 넣었고, 따듯한 물맛이 났다.
“…….”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기계적으로 수저를 놀렸다. 적당히 속도를 낸 덕분에 홍연화의 속도에 맞출 수 있었다.
예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손을 놀리기 힘든 것을 배려하는 것인지 식사 도중에는 별로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어땠어?”
[맛있었어요.]식사를 끝낸 후. 물을 홀짝이던 홍연화가 건넨 질문에 적당히 대답했다.
“그래?“
내 대답을 들은 홍연화가 재차 물을 홀짝이는데, 공간지각으로 움찔거리는 입꼬리가 훤히 느껴졌다.
…괜히 거짓말을 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맛을 못 느낀다고 말할까? 근데 지금 말하기엔 타이밍 좀 그렇지 않나?
계속 감추는 건 좀 아닌 거 같고… 나중에 타이밍을 봐서 말하자.
사실 맛을 못 느낀다고, 그때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식사를 끝낸 뒤 서로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서 갈라졌다.
홍연화는 전투 전공의 심화 강의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리아나 교수 : 특례입학 생도는 전공 시간에는 특별 교수와 1대1 강의! 해당 장소로 2시까지 도착할 것! (오늘 13:03)
1대1 강의.
리아나 교수에게 아침에 안내받았고, 문자로도 자료를 전달받았다.
이것도 원작과는 달랐다. 원작에선 기초반으로 편입돼 생도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교수에게 1대1 특별 수업이란다.
▶리아나 교수 : 그리고 아침의 일은 미안해 (⑅◞‸◟) (오늘 13:05)
▶리아나 교수 : [로얄캔디 교환권]x10 (오늘 13:05)
▶리아나 교수 :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 (오늘 13:06)
▶나 : 제 탓인걸요. 교수님이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오늘 13:51)
▶리아나 교수 : 진짜진짜 미안해! ?(T-T )ノ (오늘 13:53)
또 아침의 일로 사과를 받아버렸다.
리아나 교수는 딱히 잘못 없는데, 그냥 내가 긴장해서 실수한 건데…
떨떠름한 마음으로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범벅의 이모티콘이 되돌아왔다.
한숨을 내쉬며 특별 강의에 대해 생각했다.
‘이쪽이 더 좋은 건가?’
교수 한 명이 수십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한 명을 가르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처음 특례입학으로 데려왔을 때는 별 혜택 없는 건가 생각했는데, 이것도 혜택이라면 혜택일까.
어찌됐든 수준 높은 시요람의 교수에게 단독으로 받는 가르침이니까.
소화도 시킬 겸 안내받은 장소로 걸어서 향했다.
1학년이 쓰는 시설은 대부분 한 구역에 몰려있어 여유롭다면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요람 하면 대부분 첨단기술을 접목한 최신식 시설을 떠올린다.
실제로도 그렇다. 당장 기숙사 건물만 봐도 어지간한 건 다 자동화더라.
훈련 시설도 그렇다.
탑의 존재 때문에 빛이 바랬지만, 증강현실 등의 기술로 탑재한 장치부터 난이도에 따라 움직임이 다른 대련 인형, 내부 중력이 강화되어있는 중력실 등등.
다 이전 지구의 어디서도 못 본 기술이 탑재된 시설들이다.
‘여긴가.’
걸어서 도착한 장소는 첨단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자 투박한 감촉이 전해졌다. 잡초 하나 찾아보기 힘든 딱딱하고 메마른 흙바닥이다.
수련장보다는 운동장이라는 어감이 더 어울렸다. 실제로 커다란 공터를 빙 두르는 흰색 띠가 그어져 있다.
이곳저곳에 투박한 흔적 따위가 이따금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공간지각 덕분에 더더욱 잘 느껴진다.
단순히 땅이 파이고 메꿔진 흔적뿐만 아니라, 일자로 쭉 그어진 검상이라거나, 불타고 물에 젖고, 땅이 한번 뒤집어진 흔적도 읽혔다.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먼, 구식 운동장 같은 느낌.
“제법 일찍 나왔군.”
“?!”
무릎을 굽혀 일자로 그어진 흔적을 매만지던 중,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과, 곧바로 이어진 목소리에 솜털이 거꾸로 솟았다.
기겁을 하며 펄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엔 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없었다. 특히 공간지각으로 주변을 살피던 중이라 더더욱 확신하고 있었다.
“흠.”
내가 혼란스러워하던 말던, 여성은 팔짱을 낀 채 터벅터벅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와 보니 키가 무척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의 180? 아니, 그보다도 컸다.
내 눈높이로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할 정도다.
“말하기 전부터 이미 기척을 눈치챘군. 맞나?”
[네.]사소한 차이긴 하지만, 분명 말하기 전에 기척이 잡히긴 했다. 부총장의 공간이동과는 달랐다.
부총장은 ‘나 들어간다’하고 공간지각을 두드린 다음 들어온 느낌이었는데.
이 여성은 어느 순간 내 집 침대에 누워서 날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감지계열. 개화한 지는 대략 한 달 만에 내 기척을 잡아냈나… 나쁘지 않군.”
뭔가 중얼거리며 멋대로 견적을 잰 여성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이 살랑거렸다.
“아트라 클라이드. 너에게 전투 전공에 관련된 수업을 해줄 교수다.”
[특례입학으로 들어온 이하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이번엔 모르는 인물이다. 말을 멈춘 걸 보니 등급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
그리 적은 뒤 고개를 숙였는데, 특례입학이라는 부분에 아트라 교수가 미세하게 눈을 찡그린 것이 느껴졌다.
‘아, 이거 안 좋은 건가.’
특례입학에 불호쪽인 교수라면 난감한데.
“…우선 짚고 넘어가지.”
뭔가 싶어 고개를 들자, 한숨을 푹 내쉰 아트라 교수가 입을 열었다.
“난 특례입학이란 것에 별생각이 없다. 눈감고서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반대로 마냥 긍정할 생각도 없다.”
눈을 가늘게 뜬 아트라 교수가 나를 내려다봤다.
“총장이 선택한 인선이니 일단 하겠다만, 아직 증명된 것이 없어 의구심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알겠나? 일반 생도였으면 모를까, 특례로 들어온 너에겐 상당 이상의 기대가 있다.”
눈을 가늘게 좁힌 아트라 교수가 꿰뚫어보는 시선을 보냈다.
“나 말고도 모두가, 세간의 시선이 그렇다. 사정은 제쳐놓고서. 너는 요람의 주인이 선택한 최초이며 유일한 특례니까.”
최초이며 유일.
특례입학이 그렇게나 주목받는 이유.
내가 121기 입학생이었나. 그럼 121년간 제도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특례입학생이 없었단 말이다.
“…말이 길었군. 슬슬 시간이다. 훈련을 시작하지.”
– 터벅터벅
아트라 교수는 운동장 외곽으로 걸음을 옮겨 바닥을 가리켰다. 그것엔 흰색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뛰어라.”
“……”
공간지각으로 흰색의 선을 따라갔다. 커다란 운동장을 감싸고 있는 선… 그러니까 달리기 트랙이다.
[몇 바퀴 뛰나요?]“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아니면 기절할 때까지.”
아트라 교수는 고개를 까딱였다.
“체력 시험이다. 너는 특례로 들어와 딱히 기록된 자료가 전무해 이렇게 측정해야 한다. 자─”
시작.
덤덤히 말하는 아트라 교수에 나는 입을 오물거리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상상하는 종류의 수업은 아니었지만, 이런 방식도 있는 거겠지.
그리 생각하며 땅을 박찼다.
그리고 정말 기절하기 직전까지 뛰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