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22)
EP.22 마력(4)
리아나는 살면서 재능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태어났을 적.
타고난 마력의 용량이 남들의 수십 배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친화력도 뛰어나 마력을 다루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자연스레 조작 능력도 상승했다. 아직 고유능력을 발현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뛰어난 초인이 되리라고 모두가 의심치 않았다.
고유능력의 발현.
극히 희귀하다 못해 정말 비유대로 손에 꼽을 정령계열의 고유능력. 그녀에게 향해지는 기대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던 시기.
그렇게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영웅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다.
스스로의 선택이 있기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사람을 구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 돈도 왕창 벌고 있으니 나중에 은퇴해서 잘 살면 되지 등등…
어찌됐든, 그녀는 그렇게 영웅 생활을 꽤 해왔고, 그 과정에서조차 재능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름 좀 날린다 싶으면 여지없이 재능있는 이들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력의 재능, 마법의 재능, 무술의 재능, 고유능력…
재능, 재능, 재능.
무수히 많이 들어봤다. 별의별 부문에서 재능이 튀어나왔고,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재능있는 자가 산더미처럼 있었다.
잠시 과거가 우수수 떠올랐다. 체감상 머나먼 과거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최근의 기억까지.
하늘은 오늘도 여전히 푸르렀다. 아프리카 전선과는 다른 하늘이었다.
리아나는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몇 뼘 차이도 나지 않을 거리의 풀밭.
처음의 반듯한 정자세는 어디 가고, 새우처럼 몸을 말고서는 고른 숨소리를 내쉬는 소년이 보였다.
“풋.”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양새가 퍽이나 귀여워 보였다. 외모부터가 그런 쪽이다 보니 하는 행동거지가 다 귀엽게 보였다.
이건 외모지상주의의 폐해일까. 아니면 성격까지 순한 이하율의 매력일까.
어느 쪽이든 보고 있자면 쓰다듬어주고픈 욕구가 생긴다.
간혹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하율은 특히나 추위를 자주 타는듯했다.
리아나는 혹시나 싶어 챙겨왔던 겉옷을 꺼내 이하율에게 덮어주었다.
이불처럼 외투가 덮이자 만족스럽기라도 한 건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욱 웅크렸다.
이젠 완전히 외투 속으로 파고들어 버렸다.
그 광경에 리아나는 웃음을 참고자 숨을 죽였다. 자칫하면 빵 터질뻔했다.
한동안 참을 인을 그리고 있자니 서서히 진정됐다. 아직도 벌렁거리려는 심장을 다독이며 리아나는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마정석을 가공한 수정구. 기초적인 마력운용 능력을 기르는데 애용하는 도구다.
과정은 총 세 가지.
수정구의 마력과 접촉하는 것이 1단계.
접촉한 마력의 저항을 허물고 구멍을 뚫어 마력을 빼내는 것이 2단계.
빼낸 마력을 지배력으로 흡수하는 것이 3단계.
이하율의 경우 처음 마력에 입문하는 단계이기에 더욱 어려운 과정이었다.
앞선 세 단계 이전에, 자신의 마력을 자각하고, 운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구는 그 매개체였다. 하나만 있으면 특징을 알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두 개를 나란히 두면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것을 유도한 거다.
즉.
이하율은 자신의 마력을 자각하여 운용하고, 그것을 외부로 끄집어내 수정구의 마력과 접촉, 운용으로 구멍을 뚫고, 흩어지려는 마력을 끌어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기서 리아나가 판단하기에 이하율에게 마력에 관한 재능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특례입학. 지금껏 전례가 없던 신분의 입학생.
수십 년 전부터 부총장이란 연락책을 통한 전언을 제외하고는 외부 활동을 일절 끊어버린 총장.
사실 죽은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돌 만큼 그녀는 요람 어딘가에서 수십여년간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 와중 부총장이 그녀의 전언을 알려왔다.
특례입학생을 선정했다고.
당시의 혼란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러한 여러 일을 거쳐, 끝내 요람에 들어온 것이 리아나의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이하율이다.
그녀도 사정을 알았을 때야 무척 놀랐다.
그 과정이나 연유는 제쳐두고, 그 총장이 직접 선택하였으니 분명 재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아트라에게 듣기로도 미묘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 미묘한 재능? 뛰어난 재능도 아니고 미천한 재능도 아니고,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 말 그대로다. 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학습 속도야 빠르지만… 뭔가 이상하다.
– 엥.
아트라의 평가상. 뭔가 이상한 재능…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술 쪽에 재능이 있다고 하니 이쪽에도 재능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재능이 있다면 그녀가 직접 지도해줄 생각이었다.
하여 이하율이 한 번 수정구를 가지고 끙끙대는 걸 지켜볼 생각이었다. 뭔가 지적하려면 문제가 뭔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이하율은 수정구를 쥐고서 집중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수정구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쪽쪽 빨아먹어 버렸다. 무슨 며칠은 가뿐히 굶은 거지가 빙의한 것처럼 게걸스레 흡수해버린 것.
놀라운 일이었다. 본래의 세 공정… 이하율의 경우는 자각과 조작까지 하여 거의 다섯 공정에 가까운 것을 한 번에 끝내버린 거니까.
여기까지였다면, 리아나는 이하율의 재능에 마냥 감탄했을 것이다. 재능이 있구나! 안도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한 번에 마력을 접촉시키고, 구멍을 뚫어 마력을 빼내고, 빠져나온 마력을 흡수하는 것.
놀라운 일이지만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니까. 리아나 본인부터도 그렇게 했으니까. 이하율 쪽이 훨씬 빨랐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리아나와 이하율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흡수량. 리아나는 기껏해야 절반 남짓을 그러모았나? 이하율은 거의 전부를 채갔다. 압도적으로 빨랐으면서 가져가기는 두배를 가져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리아나가 진정 감탄을 넘어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 이후다.
리아나는 슬쩍 주변을 바라봤다. 바닥에 깔린 잔디가 묘하게 생기를 잃은 듯하다.
기분 탓인가 싶다가도, 저 멀리의 잔디와 자세히 비교해보면 차이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마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변의 마력 농도가 명백히 옅어져있다.
영향권은 그리 넓지 않았다. 기껏해야 반지름 2m나 될까.
중요한 것은, 수정구의 마력을 넘어 주변 공간의 마력까지 흡수해버렸다는 것.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것.
현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의문.
리아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이하율이 수정구를 잡고 있을 무렵. 신호를 주기 위해 그의 손에 얹었던 부분.
놀랍게도, 믿을 수 없게도.
이하율은 리아나의 마력까지 흡수해버렸다.
물론 그녀가 체외로 마력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며, 저항하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다.
저항하고자 했다면, 이하율은 그녀의 마력에 일절 침범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리아나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뇌리 한구석의 혹시나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아트라가 말했다. 이상한 재능이라고. 보통의 재능과는 무언가 이질적이라고.
리아나도 그렇게 느꼈다. 그 부류는 다를지언정, 그녀 또한 이하율의 재능을 이질적이라 판단했다.
이걸 뭐라 해야 할까…
리아나의 시선이 이하율, 색을 잃은 수정구, 주변의 초목, 자신의 오른팔을 차례로 흝었다.
이렇게 비유하면 될까.
마치 접속 권한이 다른 듯했다. 보통의 마력 친화력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아트라가 왜 굳이 몰아붙이면서도, 파악에 시간이 걸리는지 알겠다. 확실히 이질적이다.
리아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보드라운 머릿결이 닿았다.
중독성 있는 감촉이었다.
* * *
신서율은 아침이 빠른 편이다.
별 이유는 없다. 새벽 특유의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서늘하면서도 마냥 차갑지 않고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감각이 좋았다. 햇볕이 마냥 뜨겁지 않고 은은한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간혹 이른 새벽에 일어날 경우 조깅을 하는 편이었다.
적당히 편하게 갖춰 입고, 물에 약간 적신 스포츠 타월 한장을 목에 걸치고서 잠시간의 질주.
적당한 템포로 새벽의 공기를 두르고서 뛰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이 있다.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 뒤, 기숙사에서 챙겨나온 군것질거리를 근처 앉을 곳에서 조지는 것이 행복 그 자체.
막 조깅을 끝내고서, 조금 달아오르기 시작한 몸속에 들이붓는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커피의 맛이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이다.
“……”
단돈 8,500원(부가세 포함)짜리 커피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수전증을 앓지 않았다. 따로 잔병치레로 겪은 적 없는 건강한 소녀였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 서늘한 새벽공기에 얻어맞은 탓도 있지만, 그냥 기분이 서늘해져서 그런 것도 있다.
새벽 분위기를 흠뻑 뒤집어쓴 공원. 초록빛 나무 사이로 펼쳐진 산책로가 꽤나 운치 있는 공원에 시선이 끌려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봐버렸다.
호수 근처 잔디에 몸을 웅크리고서 잠들어있는 이하율을.
귀엽다.
처음 느낀 감상이다. 외모 자체가 귀염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선이 얇고 부드럽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보다 예뻐 보여 어이가 없었고, 또 다시 보면 잘생겨서 어처구니가 없다.
낙하산이니 장애인특례니 탐탁잖던 시선이 조금씩 걷어지고 있는 이유는 분명 저 외모도 한몫하고 있으리라.
정말 요정(妖精)이 따로 없다.
지난번에 홍연화가 스쳐 가듯 이하율을 요정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자기도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인지, 직후 말실수를 깨닫고는 뚝 굳어버린 얼굴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그 직후 친구들과 합세해 요정에게 홀렸냐며 놀리다가 몇 대씩 얻어맞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마냥 박장대소했는데, 이렇게 보면 요정 같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다.
새벽녘 안개의 덮인 호수 근처에 몸을 뉘고 있는 이하율… 의 근처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성.
신서율 본인이 보기에도 감탄이 나오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푸른 생기가 만연한 이곳에서도 초록색 눈동자는 독보적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리아나 벨루스.
입춘반의 담당교수.
우수반인 신서율로써는 안면이 없는 교수였다. 기껏해야 홍연화와 백아린을 보러 갈 때 몇 번 인사한 것이 고작.
하여 저쪽의 사정은 몰랐다.
왜 이 주말 새벽녘에 둘이 함께 있는지.
왜, 이하율은 저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그녀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니 외투까지 덮고 있네? 딱 봐도 이하율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왜, 리아나 교수가 이하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사정이 있을까? 확실한 건 신서율로써는 그 사정과 애당초 사정이 있는지의 유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순간 리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리아나는 픽 웃음을 흘리며 입술 앞으로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 쉿
귓가에 파고드는 음성에 신서율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마력을 통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의사를 보내는 전음이다.
백업팀에 속하는 염화계열 고유능력은 아니지만, 꽤나 실력 있는 초인들이 간혹 사용하는 기술이다.
“……”
신서율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아나가 만족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신서율은 등을 돌려 공원을 벗어났다. 묘하게 꽂히는 시선이 사라질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득 주변을 살피자 어느새 새벽이라기보단 아침이라 부를 시간이 도래했다. 조금씩 활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신서율은 미간을 좁히며 친구를 떠올렸다.
성격이 불같고 더럽지만 한번 친해지면 좋은 점도 보이고, 놀리면 유쾌한 반응을 해주던 샌드백 역할의 빨간색 친구.
부모님 앞에서도 딱히 성격을 죽이지 않던 계집애가, 이하율 앞에만 서면 무슨 규중처녀라도 되듯 내숭 부리던 어이없는 광경.
친구가 친구에게 실수한 일이 있었는데 남자는 무슨 사탕 좋아하냐며 묻던 일…
홍연화가 이하율을 보던 눈…
그리고 방금의 광경. 공원에 누워 잠든 이하율과, 그에게 손수 외투를 덮어주고서 머리도 쓰다듬어주던 리아나 교수…
인생을 살면서 축적해온 여러 정보를 취합한 끝에 하나의 결론을 감히 예측했다.
머릿속으로 한편의 장편 드라마가 재생됐다.
“오…”
끝내 도출된 충격적인 결론에 신서율은 전율하며 고개를 저었다.
“씁… 상대가 좀 빡센데.”
제아무리 그녀의 친구라도 이번 상대는 강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