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29)
EP.29 던전실습(3)
속이 울렁거리는 감각도 잠시, 곧 땅을 딛는 감각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이미 접어뒀을 공간지각이 파르르 떨렸다.
공간의 변화.
저절로 인지됐다. 솜털이 거꾸로 삐죽 솟아났다.
이곳은 지구다. 분명 지구에 속해있다. 개별 될 정도로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지구에 딸려야만 존재가 유지되는 아공간(亞空間)에 불과하다.
하나 분단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과 밖은 섭리의 차이가 있는 별계의 공간이다.
‘아.’
게이트는 어차피 똑같은 세계에 지어진 다리를 오고 간 것에 불과했다.
던전, 지구에 뿌리내린 작은 아공간. 지구가 있어야만 존재가 성립되는 불안정한 공간이지만, 어찌 됐든 지구와는 구별되는 다른 섭리의 공간이다.
저절로 인지된다. 깨달아 버린다. 저도 모르게 이해되어 버린다.
“…전원 입장 완료. 현 시간부로 공략을 시작합니다.”
한편 던전에 입장한 순간 나와 엘리아를 중심에 두고 삼각형으로 진형을 만든 셋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미리 상의해둔 대로 전투 전공 셋이 입장한 순간 보조 학부 둘을 지키는 진형.
“하율 씨, 주변 감지 부탁해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살피던 아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깨달음에서 오는 고양감을 느끼며 공간지각을 활짝 펼쳤다. 시꺼먼 세상에 정보의 해일이 밀려 들어왔다.
던전 밖에서는 게이트 때의 경험을 염두에 둬서 자제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반경 10m, 50m 100m… 200m…
대략 300m 남짓. 지름으로 따지면 600m 인가.
갑자기 범위가 몇 배로 늘어버렸다. 말이야 몇 배로 표현하는 거지, 구의 형태로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실제 늘어난 정보의 양은 수십 배를 가뿐히 넘는다.
– 찌리릿, 찌리릿…
머리가 번쩍였다. 짜릿한 전류가 머리에 맴도는 것 같다.
[범위 내, 몬스터 전무]“고마워요. 혹시 이상 현상이 발견되면 바로 알려주세요.”
[네]던전 공략에 있어 내 역할은 몬스터와 약초 등의 탐색. 공간지각이 있어 탐색은 담당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정보의 전달.
내가 말을 못 하는 벙어리다 보니, 정작 탐색을 해도 남에게 알리는 것이 불편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고백의 목걸이를 얻고 나면 해결되겠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미리 보고해둘 내용을 클립보드에 적어둬 재빨리 출력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주변을 더 꼼꼼히 탐사한 뒤 한곳에 모였다.
조장 역할을 맡은 아틸라가 큼큼, 기침으로 이목을 모았다.
– 쿵
큼지막한 방패로 땅을 두드렸다. 둔중한 진동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살벌한 무게가 체감되는 진동이었다.
“사전에 상의한 대로 우선 A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우선하겠습니다. 경로 상 만나는 몬스터는 토벌하되 그보다 깊숙이 들어가 토벌하는 것은 미루겠습니다.”
아틸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공략 실습은 시간제한이 걸려있는 과제였다. 또한 과제 달성을 위한 조건도 조 배정과 함께 공지되었다.
① : A 지점 도착 및 표식 발견, 임시 거점 구축(35)
② : 녹귀 80마리 토벌(40)
③ : 마력초 500g 채집(15)
11조가 받은 조건은 세 가지.
A 지점 도착 및 임시 거점 구축.
파일에 포함된 좌표에 도착하여 임시 거점을 설치하는 것.
녹귀 80마리 토벌.
평균 8위계에서 상위 개체는 7위계쯤 되는 몬스터 녹귀(綠鬼)를 80마리 토벌하여 그 증거를 가져오는 것. 보통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귀나 손가락 등을 잘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마력초 500g만큼 채집.
숲 환경의 던전에서 마력을 듬뿍 퍼먹고 자라나는 잡초를 500g만큼 채집하는 것. 마력초는 귀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연금술에서 기초적으로 쓰이는 탓에 공급과 수요 둘다 많다.
진형을 갖춘 뒤 A 지점의 좌표로 걸음을 옮겼다. 스마트워치에는 좌표 특정 기능이 있기에 간단한 일이었다.
일행은 나무와 풀이 빽빽한 땅을 가로질렀다.
초록색 풀이 허벅지 남짓까지 자라있다. 중간부터 서서히 구부러지는 풀이라서 그렇지, 만약 곧게 자랐다면 내 키를 넘을 높이다.
나무도 무척 거대하다. 높이만 15m는 가뿐히 넘고 두께도 엄청 두꺼웠다. 내가 네다섯 명씩 분열해서 둘러싸도 담아내지 못할 두께다.
잎이 넓은 걸 보니 활엽수일까.
공기도 축축했다. 숨을 들이마시자 습기 가득한 공기가 한껏 폐로 밀려 들어온다. 나무와 풀잎 곳곳에도 물방울이 잔뜩 묻어있다.
“길이 터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죠. 이걸 저희가 처음부터 탐색하고 길 만든다고 생각하면… 하하.”
다행이라면 저런 풀의 성벽을 하나하나 헤치며 나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
주기적으로 토벌하는 과정에서 이미 길이 나있었다. 던전 속 풀의 생명력이 워낙 왕성한 탓에 조금 다듬을 필요는 있었지만, 맨땅에 들이박기는 아니니 비교적 수월했다.
앞장서있는 아틸라와 남연중이 허리춤에 매달아둔 짧은 검으로 조금 자라나있는 풀을 베어내는 중이다.
걸으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좀 질척거리는 바닥 정도일까.
[서북, 75m, 2마리]“확인. 계속 신호해 주세요.”
그동안 나는 탐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금 더 넓어지고 정밀해진 공간지각 덕에 탐색에 무리는 없었다.
지금까지 지나친 녹귀가 몇 있었다. 코앞에서 마주친 것도 아니고 마릿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거점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단은 지나쳤다.
마력초도 많이 탐지했다. 공간지각이 땅 아래까지 범위이다 보니, 땅에 박혀있는 나무뿌리나 풀도 구별이 된다.
지금까지 지나치며 본 마력초만 뜯어가도 할당량은 가뿐히 넘는다.
마력초 조건이 그리 점수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발견한 마력초와 녹귀의 위치를 외우며 걸었다.
“A 지점 도착… 주변 탐색 후 거점 생성 들어갑시다.”
던전에 입장한 지 대략 두 시간 남짓이 지났을 즘에서야 우리 조는 A 지점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율, 표식은 찾을 수 있겠어요?”
[찾았습니다]“우선 표식을 찾으면서 터도 같이… 네? 벌써요?“
아틸라가 눈을 끔뻑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조원이 내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진짜 있네.”
굵직한 나무뿌리가 서로 엮인 사이로 꼽혀있는 사람 키만 한 깃발. 색깔이 흙색과 풀색이 섞인 위장색이라 감지능력이 없으면 찾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을 거다.
아틸라는 감탄을 표하며 깃대를 매만졌다.
“하율 씨의 감지능력은 엄청 정밀하네요. 아카데미 동기는 정밀성이 떨어져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는데.”
[고맙습니다]‘그거 구렸으면 억울해서 못 살았어요.‘
무려 눈과 코와 입을 맞바꾼 능력이라고.
비록 처음에 성능이 과하리만치 좋아서 제 주인을 죽일 뻔하고, 이후 원가절감을 명목으로 개떡 같은 시야만을 보여준 공간지각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거 없으면 살아갈 자신이 없다…
표식도 찾았겠다, 우리는 적당한 장소를 잡아 임시 거점을 설치했다.
잠시 널따란 공터가 없나 찾아봤지만 없어 그냥 나무를 좀 베어내어 공간을 만들었다.
거점이라 해봐야 하루 머물고 말 임시 거점인지라 특별한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널찍한 공간을 만들고, 거기다가 방범, 보호, 생존용 마도구를 깔아두면 완성이다.
순수마법사가 있다면 직접 마법을 설치하겠지만, 우리 조에는 마법사가 없었다.
엘리아는 강화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지만, 딱 그거까지만이고, 나는 아직 최하급을 간신히 다루는 초짜 중에 초짜이기에 나서지 않았다.
“어… 하율 씨는 챙겨온 게 많네요?”
‘……’
다들 나무를 베어 만든 공터에 모여 짐을 주섬거리는 와중, 유독 내 배낭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많아 시선이 집중되었다.
[혹시 몰라서 많이 챙겼습니다]아트라 교수가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뒀다. 너무 많아 무겁지 않겠냐 물었더니 무게 감소 술식도 배낭에 있다더라.
“그럼, 녹귀의 부락을 찾아보죠.”
적당한 거점 건설이 끝나고 좌표를 표시한 뒤, 적당한 휴식은 취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첫 번째 조건, A 지점 도달, 표식 발견과 임시 거점 건설은 달성.
이제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인 녹귀 토벌과 마력초 채집만 끝내면 된다.
“오면서 하율 씨가 녹귀를 발견한 곳 근처를 수색합시다.”
녹귀는 무리생활을 한다. 오면서 발견한 두세 마리씩의 무리는 부락에서 사냥을 위해 나온 놈들이다.
특징으로는 크기가 무척 작다.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닿을 키에, 몸도 대체적으로 비실비실하다. 인간의 미적 기준으로는 못생겼다.
요컨대 흔하디흔한 고블린이다.
부락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녹귀가 주로 발견된 곳을 중점으로 수색하니 금세 부락의 위치를 발견했다.
부락은 산을 등지고 강을 근처에 끼고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런 걸 배산임수라 하던가. 몬스터 주제에 저런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
‘정석적이네.’
나무를 베어다 끝을 뾰족하게 깎아낸 뒤 바닥에 일렬로 박아서 만든 벽. 내부에는 나무로 뼈대를 잡고 나뭇잎 따위로 덮은 구시대적인 천막이 있었다.
부락에는 녹귀 무리가 그득했다. 수는 대략 135마리. 더럽게 많다. 80마리를 제시간 안에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 번에 할당량을 찾아버렸다.
“…감지능력자를 왜 찾는지 알겠네요.”
내가 벽 안쪽의 상황, 건축물, 함정, 개체 수 등을 적어내자, 부락 바로 근처 숲에 숨어 나무 벽을 내려다보던 아틸라가 떨떠름하니 말했다. 옆에 있던 남연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몸값이 비싼 이유가 있으니까요. 애당초 감지능력자의 수 자체가 적다 보니 더더욱 그렇고.”
초인의 70%는 전위직이다. 고유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초인의 대부분은 강체와 강기를 활용하는 근접 전투가 주를 이루는 탓이다.
현대 인구 중 초인으로 각성한 이들은 적고, 고유능력을 보유한 이들은 더더욱 적다.
거기서 다시, 감지능력은 수가 부족하다. 애매한 능력 수준이라도 감지능력자를 다양한 곳에서 원하는 이유다.
요컨대 공급이 부족하다.
고유능력 없는 초인을 가짜라며 까내리는 안 좋은 문화도 있을 지경. 물론 그것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이 생길 만큼 고유능력의 보유 유무는 큰 격차를 만든다.
“백삼십. 대부분 8위계에 7위계가 셋…”
조장 역할을 맡고있는 아틸라가 고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수가 조금 많긴한데, 대부분 8위계니까 정석으로 들어가죠.”
일단 들이박아보자. 대책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나를 제외한 조원들은 각 지역의 아카데미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망주였던 이들이다.
8위계쯤은 눈 감고 잡을 테고, 7위계도 별문제 없이 처리할 거다.
거기다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지금 각 조원들의 팔목에 감긴 보라색 끈으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부총장이 배부했다는 안전장치다.
공간지각으로 살펴보면 멀미를 유발할 지경인 복잡한 술식이 엉켜있는 마도구였다.
시요람 내부에서 목숨에 위험이 될 상처를 입은 즉시 보호마법이 전개되고, 의료실로 소환하는 마법이 부여돼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당연히 잡다한 상처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조건은 목숨을 잃을 수준의 상처다.
어마어마한 효과다. 그런 게 가능한 건지 의구심이 들 지경. 부총장의 설명으로는 총장의 적극적인 보조가 있었기에, 또 요람에서 관리하는 던전이기에 가능한 기적이라고.
부총장이 부임한 이래 팔찌의 능력이 불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다. 덕분에 심리적인 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갑시다.”
방패를 들어 올리는 아틸라의 말에 각자 무기를 움켜쥐었다.
나도 긴장감에 침을 꿀떡 삼키며 지팡이를 움켜잡았다.
마냥 긴장을 놓다가 탈락이라도 한다면 아트라 교수에게 대차게 까이는 것은 둘째치고, 성적을 못 받는걸 넘어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아버린다.
시요람에서 버려지면 갈 곳이 없는 나로서는 절대로 밟아서는 안 될 선택지다.
나는 여기서 쫓겨나면 단순 정학이 아니라 인생 하직 수준이다. 절대 쫓겨나면 안 된다.
울퉁불퉁한 흙바닥을 밟으며, 조심스레 부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본격적인 토벌의 시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