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32)
EP.32 위가 아닌 아래
엘리아의 대화에 호응하던 아틸라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힐끗 시선을 주자, 어둠을 헤치며 다가오는 에이든과 이하율이 보였다.
아틸라는 에이든의 안면을 확인하고는 눈매를 좁혔다. 사과하고 오겠다는 놈의 면상이 좀 묘했다.
‘…저 새끼 제대로 사과한 거 맞나?’
아틸라와 에이든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소꿉친구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친분을 쌓은 정도는 됐다.
때문에 에이든의 성향을 알고 있다.
에이든은 멍청하다. 눈치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으면 일단 들이박고 본다. 머저리의 표본이었다.
굳이 감싸주자면, 그래도 애는 착하다고 해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생각이 짧다는 근본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저 성격 때문에 사고도 치고 그러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번에는 정말, 정말 적당한 사고의 규격을 넘어서 자살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특례입학생 이하율.
그에게 대련을 처걸었을 때는 정말 심장이 주저앉는 줄 알았다.
‘아니 씨발.’
특례입학이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화제를 몰고 있는 특례입학생의 사정은 알고 있다.
각성한지 이제 막 한 달이라던가? 이제껏 들은 적이 없을 만치 늦은 각성이었다. 또 거기다 맹인에다가 벙어리란다.
그런 애한테 왜 대련을 거는건지. 정말 다행히도 개같이 발린 덕분에 대충 묻어갔지, 자칫했다가는 저 병신의 생활이 화려해졌을거다.
다른 건 몰라도, 싸늘하게 바라보던 홍연화에게 무슨 일은 당하긴 했으리라.
나중에 머리채를 짤짤 흔들며 이유라도 듣자며 물었더니, 대답도 가관이었다.
궁금했단다. 도대체 얼마나 특별하길래 특례입학으로 들어왔는지 보고 싶었단다.
미친놈. 제 딴에는 그냥 궁금해서 걸어본 걸지는 몰라도, 외부에서 보면 그냥 시비를 처 건 것에 불과하잖아… 아니, 그냥 시비 건게 맞나?
‘병신…’
맹인에게 싸우자고 한 놈. 그래놓고 꼴사납게 패배한 놈…
에이든이 시요람에 와서 사귄 친구들에게 듣고 있는 칭호였다.
병신…
아틸라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죽었으면 자살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마법 실험을 끝내고 돌아오자 슬슬 잠들 시간이 되었다.
던전에서의 취침. 당연하게도 다 같이 사이좋게 퍼질러 잠들어서는 안됐다.
4급이라고는 해도 던전은 던전이다. 방심은 죽음의 지름길, 아트라 교수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한 말이다.
“불침번은 공평하게 뽑기로 합시다.”
남자와 여자 텐트를 하나씩 설치하고, 아틸라는 취침에 들어가기 전 불침번을 정했다.
통조림통에는 나무막대 다섯 개가 있었는데, 그 끝에 순서가 적혀있다고 한다.
…나한테는 전부 보인다. 아틸라는 내 공간지각의 성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양심상 공간지각은 거두고 뽑았다. 불침번은 처음이랑 마지막이 제일 편하다던가?
“아싸, 초번.”
“시팔.”
순서가 정해졌다.
에이든, 나, 아틸라, 엘리아, 남연중 순이다.
초번을 뽑은 에이든이 주먹을 움켜쥐며 좋아했고, 그 옆의 아틸라는 3이 적힌 나무막대를 보며 작게 욕설을 뇌까렸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 초번인 에이든은 발열 마도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 외의 인원은 텐트로 들어가 수면을 취했다.
바로 다음 차례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텐트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도 잠이 오지 않았다. 터무니없이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더욱 정밀해진 공간지각 덕에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의 율동이 느껴졌다.
‘아.’
직감적으로 절대 못 잠들 거라고 느꼈다.
.
.
.
“하율. 교대 시간이야.”
[네]결국 에이든이 차례를 끝내고 텐트를 열어젖힐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애벌레 침낭에서 꾸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불쾌한 피곤함이 몸에 끈덕지게 눌어붙었다.
“이상은 없음. 잘 부탁해.”
[네]에이든과는 말을 놓았다.
내게 사과할 때라거나, 던전 공략 중 간혹 내게 말을 걸 때, 딱 봐도 어울리지 않게 말하길래, 사과도 했으니 그냥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나는 말을 못 하므로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아마 놓지 않을 거다.
살면서 깨달은 건데, 내가 반말해도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거다. 그냥 편하게 존댓말로 답하는 것이 귀찮은 일도 안 생기고 처신에 좋았다.
발열 마도구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중앙에 놓여 빛을 흩뿌리는 마도구와 그 곁에 놓여있는 간이 의자들, 바로 곁에 설치된 초록색 텐트.
흔히 말하는 캠핑이라도 온듯한 분위기다.
불멍이라던가. 장작이 타는 걸 멍하니 지켜보는 그런 문화가 있다던데, 정작 중앙에 놓인 건 장작이 아니라 달걀모양 마도구였지만.
후우웅. 서늘한 밤바람이 몸을 스쳤다. 시요람 활동복 위로 로브까지 걸쳤는데도 냉기가 파고들었다.
‘게윽…’
냉기, 추위. 세상에서 제일 싫다. 시원한 것은 좋지만 차가운 건 너무 싫다.
질겁을 하며 텐트에서 챙겨온 배낭을 뒤적거렸다. 중앙에 놓인 것과 똑같은 발열 마도구를 꺼내들었다.
– 딸깍
버튼을 누르자 회색 표면이 은은한 주황색으로 달아올랐다. 조금씩 달아오르는 온기를 느끼며 발열 마도구를 껴안았다.
‘오…’
크기도 내 몸통보다 작아 적당하고, 모양도 달걀 같아 껴안기 적합했다. 온도도 조절하니 뜨겁지 않고 딱 알맞다.
로브를 앞으로 넘겨 몸을 덮었다. 그러자 따듯한 온기가 로브에 갇혀 공기를 데웠다.
그러고 있자니 몸의 떨림이 줄었다. 거기에 로브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쓰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한겨울에 장판을 키고 이불에 꼬물꼬물 들어간 느낌.
‘후우…’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달걀모양 마도구에 턱을 얹었다. 그러고 있자니 노곤한 기분이 들어 깊은 숨을 토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불편하진 않았다. 이대로 시간을 죽이다가 다시 들어가면 되겠다.
– 추잡한 질투에…
“……”
신경이 늘어져서인지, 자꾸만 방금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매를 좁혔다. 질투,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어릴 적 부모의 집에서.
내게 있어 집이란 곧 세상이었다. 부모는 나를 만든 신이었고, 간혹 집을 찾아와 패악질을 부리던 깡패들은 외적이었다.
부모라는 연놈들은 부모의 자격이 없는 놈들이었다. 생식능력이 존재하여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생물학적인 부모는 맞았다.
하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쓰레기 같은 부류였다.
어릴 적에는 그걸 몰랐다. 내게 있어 세상은 집이었으니까. 주변의 사람은 모두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폭력적이었고, 나를 막대했다. 동네에는 언제나 고함과 울음이 일상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이게 평균인 줄 알았다.
나의 부모가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인 줄 알았다. 부모가 나를 때리는 것이 억울하고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화를 주체 못 하고 자식에게 손찌검을 날리는 것도, 머리채를 잡고 막 휘두르던 것도, 술병 따위를 내던지던 것도, 기분이 나쁘다며 걷어차는 것도.
모두 그게 정상인 줄 알았다.
화재가 나고, 부모가 타죽으면서 나는 빈민가를 떠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명줄이 붙어있는지 모를 시기였다.
그리 방황하다가, 어떤 사람들한테 발견되어 보육원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아직 평범의 잣대를 몰랐다. 주변의 아이들은 나와 같이 부모가 없었으니까. 대부분은 부모의 학대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나와 같았다. 그래서 모두가 나 같은 줄 알았다.
어쩌다가.
시내에 간 적이 있었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있었다. 나랑 같은 사람들이었다. 다리가 두 개였다. 화상은 없었지만 팔은 두 개였다. 나처럼 앞이 흐릿한 것은 아니었지만 눈도 두 개였다.
나와 다르게 말도 잘 했지만 입이 있었고, 숨을 쉬는 코도, 말을 듣는 귀도 있었다.
똑같았다.
– 야, 2차 고?
– 엔빵하면 간다.
– 저번에 소고기 처먹은 건 기억 못 하든?
달랐다. 고함과 비명이 오가지 않았다. 슬픈 흐느낌은 들리지 않았다. 욕설은 간혹 들렸지만, 담긴 것은 부모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장난기와 친근함이 느껴졌다.
– 아빠! 저거! 저거 내가 말했던 거!
–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천천히 가야죠?
– 빨리이!
나랑은 달랐다. 자식으로 보이는 아이가 부모의 손을 이끌었다. 부모는 화를 내며 주먹을 내지르기는커녕, 아이를 다독이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멍하니 그런 거리를 바라봤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마 크리스마스였던가? 아님 이브였던가.
내리는 눈을 머리에 쌓으며 멍하니 서있자, 어떤 어른이 다가와 길을 잃었냐 물었었다.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젓고는, 터덜터덜 보육원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만사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온갖 곳에서 불만을 느꼈다.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이전에도 불만은 있었지만, 그때와 같이 격한 감정은 아니었다.
이게 평범한 거였으니까. 모두가 불행하니까. 모두가 나와 같았으니까. 내 주변 보육원생도 부모가 없었고 학대를 받았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모두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모두가 그런 게 아니더라.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했지만, 그와 비견되거나 더 많은 사람이 나보다 행복했다.
나의 부모와, 그날 그 아이에게 이끌리던 부모는 달랐다.
– 뭐가 다른 건데.
질투(嫉妬).
– 왜 다른 건데. 쟤는 뭐가 잘났길래?
남을 시샘하고 시기하는 감정.
– 나는 뭘 잘못했길래?
안 좋은 감정이었다. 남을 시샘해봤자 나만 비참해졌다. 왜 쟤는 행복한데, 나는 불행한 건지. 저 아이는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나는 왜 이런 꼬락서니인지.
하찮은 짓이었다. 남을 시샘해봤자 얻는 것은 없었다. 남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나였다..
비참해지더라.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잘못 태어났다는 이유로 처지가 이렇게나 달라진다는 사실에 살고 싶지가 않았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겁쟁이라서, 불타죽은 부모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이대로 질투만 하다가는 정말 스스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질투를 긍정적인 의욕으로 바꿀만치 된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위를 보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나보다 행복한 경우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보다 못난 사람… 정확히는 나보다도 불행한 사람들.
잘 살펴보면, 나보다 행복한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불행한 사람도 많았다.
추악하게도 거기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최악은 아니구나, 나는 행복한 편이라며 역겨운 안도감을 느꼈다.
‘……’
추악하고도 역겨운 놈이었다. 간혹, 부모가 나를 그렇게 대한 것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마도구를 꽉 끌어안았다. 숨이 조금 벅차졌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 안정됐다. 조용히 몸을 움츠렸다. 혹여 누군가 볼세라 로브를 추슬렀다.
에이든과의 대련은 불쾌하지 않았다. 방금의 사과 자체는 불쾌하지 않았다. 사과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질투를 운운하는 사과 탓에, 좀 불쾌한 감정이 떠오를 뿐이었다.
사과한 것을 사과받아야 할 판이다.
고작 한두 시간 남짓의 불침번에 불과한데, 너무 길게 느껴졌다.
* * *
“자자! 쭉 들이켜요! 응? 애걔걔? 겨우 이만한 잔 하나 원샷 못해요? 실망이네~ 하는 짓에 비해 배포가 작아요! 흫.”
흐흐흐흫.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리아나는 테이블을 탕탕 두드렸다. 술잔에 담긴 술이 출렁거렸다. 꼬락서니가 주정뱅이 그 자체다.
술이 담긴 잔 근처에는 이미 내용물을 빼앗긴 술병이 그득했다.
비강으로 코가 삐뚤어질 정도의 알코올 냄새가 가득 찼다.
“하아…”
그냥 무시했어야 했다. 한번 져준다는 생각으로 수긍하는 게 아니었다.
아트라는 뒤늦게 후회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