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35)
EP.35 교수님 싫어요(2)
홍연화의 마음속 이하율에 대한 인식은 지켜줘야만 하는 연약한 아이였다. 그것도 한 시라도 눈을 떼면 큰일 날 것처럼 위험천만한 아이.
여리여리한 외견의 영향도 있었다. 솔직히 이하율을 한눈에 보고서 듬직하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은 턱없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하율과 함께 생활하며 보여준 모습이 인식의 형성을 도왔다.
자신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첫 만남부터 부딪혔을 때 이하율은 허무하게 나뒹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매를 잡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졸졸 따라오던 모습, 신입생 환영회 내내 구석진 곳을 찾아 움츠러들어 있던 모습.
또, 또! 자신의 실수로 일본인 생도와 부닥쳐 의식을 잃은 모습.
기절한 와중 악몽을 꾸며 끙끙 앓고, 끝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품에 안기니 서서히 진정하고. 공포에 질려 품 속으로 꼬물거리며 파고들던…
강의가 시작된 이후.
항상 주변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중 사레에 들리더니 컥컥거리고, 사탕을 쥐여주니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마워하고.
점심 시간에 가만히 놔두면 혼자 구석진 곳에서 초코바 따위나 오물거리고 있고.
어느 날 교수라는 작자에게 얻어맞고 돌아오고… 언젠간 보복할 거라 내심 생각하니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그러지 말라며 곁에서 찡찡거리면서 매달리고…
보답이랍시고 꾸깃꾸깃한 사탕을 쥐여주고는 혹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를 살피던… 귀여운 모습.
어쨌든, 그간의 행실 탓에 이하율은 굉장히 연약한 무언가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지켜줘야 한다.
죄책감과 평소의 모습이 엮여 그런 인식을 구성했다. 이하율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공예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홍연화는 언젠가부터 그를 마냥 보호해 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흠… 과연, 정확히 파악했어.”
하지만, 그 생각이 저번의 대련으로 일부 금이 가버렸다.
화요일 오전의 한산한 카페 내부.
유리창 바로 옆에 놓여 햇빛도 잘 들어오고, 테이블도 큼지막해 여럿이 않기 편이한 명당자리.
홍연화와 백아린을 비롯해 던전 공략을 일찍이 끝낸 친구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은 제외하고, 홍연화의 이야기를 진지한 자세로 경청한 백아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에 놓인 디럭스초코에디션(15,900원)을 한 모금 작게 머금어 입안을 적시고 잠시 할 말을 가다듬었다.
일자로 닫힌 백아린의 입술에 홍연화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무슨 말이 나올까 두근거리는 감정이 그득 담겨있었다.
잠시간의 정막 끝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백아린이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네가 지켜줘야만 하는 요정님이 박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가슴이 뛰었다고?”
“개씨발아.”
“아하하핳!”
제각각의 반응이 나왔다.
대화를 함께 듣던 친구들은 카페가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소음차단 마법이 없었다면 민폐가 따로 없었을 거다.
홍연화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끅끅거리는 친구들의 머리채를 모두 뽑아버리고픈 충동을 참아내고 있었다.
“엥. 이게 아닌가. 아님 말고.”
홍연화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뜬 백아린이 무책임한 말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히죽 올라간 입꼬리가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하고 있었다.
“왜 욕을 하고 그런담. 사람이 틀릴 수도 있는 거지…”
“개~ 좆같은 소리 마시구요. 내가─”
“아하핳! 요정, 요정…! 애핵…!”
홍연화의 말문이 뚝 멎었다. 심상찮은 뒤틀림을 토하던 주먹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으로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화야?”
호흡곤란이 올 기세로 웃어젖히던 신서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홍연화의 얼굴이 보였다.
이를 갈지도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지도, 얼굴을 일그러트리지도 않았다.
– 화륵
대신 불꽃이 피어올랐다.
.
.
.
“아니이~ 근데 결론은 비슷한 거 맞잖아.”
“더 처맞고 싶다고? 시발 면상 가져와 개년아.”
“아니아니! 장난이 아니라아! 진지하게 들어봐!”
머리에 혹을 매달은 신서율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휘저었다. 생명의 위기 앞에 폭발적으로 증폭된 신체능력 덕에 잔상마저 보일 지경.
홍연화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 들어는 보겠다는 제스처다. 신서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자, 정리해 봅시다. 우리 홍 씨는 첫날 이하율 씨에게 크나큰! 실수를 여러 차례 저질렀지요?”
“끅…”
비겁한 진실이 명치를 찔렀다. 크나큰 상처에 홍연화가 명치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감히 입에 담기도 힘든 흉악한 짓이었기에 이 부분은 넘기고, 그 과정에서 이하율 씨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너한테 노출했고, 너는 그 인식이 뿌리내린 거다~ 이 말이다.”
신서율이 말을 멈추고 음료에 꽂힌 빨대를 머금었다. 입안에 고이는 달달한 과일향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잖아. 연화 너한테는 이하율 씨의 첫인상이 ‘미안하고 연약하고 지켜줘야 하는 사람’으로 박힌 채 첫눈에 반한 거지.”
“뭔 개씹. 지랄하─”
“그 상태로 같이 생활도 하고, 강의도 엮이면서 보인 모습에 인식이 더더욱 깊이 박혀버린 거지. 그런데!”
탁! 말을 잇던 신서율이 돌연 두 눈을 부릅뜨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홍연화마저 움찔거릴 만큼 굉장한 박력이었다.
“지난번 화제의 대련을 통해 인식이 뒤흔들린 거지.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이하율 씨는, 사실 굉장한 저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말이 끝나지 않았다. 뭐랄까. 흥분해 있는 기색이 역력한 신서율의 모습에 홍연화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연약하고 귀여워 보이는 남자애가 사실은 저런 능력도 있었다는 반전 매력이 홍 씨의 마음을 뒤흔들었다는 뜻! 어떠한가? 이 신서율 님의 추리가?”
“와아아아.”
흥미로운 기색으로 귀를 기울이던 백아린이 짝짝 박수를 쳤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물개박수를 보냈다.
“음! 이거지!”
자신에게 보내지는 찬사! 급격히 치솟는 자존감에 신서율의 어깨가 치솟았다. 그와 반대로, 혹시나를 상정하며 힐끗 홍연화를 살폈다.
진담도 섞였지만 농담으로 뱉은 말이다. 홍연화에게서 당연히 개소리 말라는 일갈이 터질 줄 알았다.
“?”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홍연화는 손깍지로 턱을 지탱하고서는 고심에 잠겨있었다.
‘…첫인상.’
당혹스러운 시선이 꽂히든 말든, 홍연화는 생각에 잠겼다.
이하율에게 감히 대련을 신청한 개잡놈을 조져버리려 했다. 이하율이 막아섰기에 일단은 참았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
대련이 이루어지고, 상상 이상으로 선전하는 이하율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바닥을 나뒹구는 여린 모습은 어디 가고, 날아드는 검의 궤도를 정확히 예측하여 피하고 막아내고, 반격마저 섞어내는 잠재력 충만한 검사가 있었다.
그 이후.
강체를 발현했다. 또 강기를 발현하여 어쭙잖은 손대중을 하던 생도의 검을 부숴버렸다.
부서진 검의 파편들이 빛을 반사하며 휘날리던 모습을, 선명한 강기를 두른 검을 쥐고 있는 이하율의 모습에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특례입학. 지금껏 유례가 없던 총장이 선택한 생도. 홍연화는 그 의미를 어느 순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격렬한 대련으로 인해 얼굴에 맺힌 땀방울. 거칠던 호흡. 상기되어 보기 좋게 달아오른 뺨…
이쪽을 바라보며, 얼굴 옆으로 들어 올린 손이 취하는 제스처. 평소 시무룩하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옅은 웃음에 히죽 올라간 입꼬리.
“으흠.”
느닷없이 얼굴에 열이 올랐다. 본래 홍연화의 체온은 높은 편이지만, 고유능력을 발현하지도 않았지만, 정말 갑자기 열이 올랐다.
헛기침으로 생각을 끊었다. 테이블에 놓인 음료를 들었다. 차갑고 달달한 음료로 목을 축이니 조금이나마 열이 가라앉았다.
“와… 존나 극성이네.”
주변에서 들리는 질린 목소리는 무시했다.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니 계속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떠올랐다.
‘하율이… 마력이 부족했지.’
강체와 강기. 대련 중에 그렇게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숙련도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 탓에 눈길이 덜 끌었던 부분이 있었다.
상대의 검을 부숴버린 직후, 당장 흩어질 듯 불안하게 일렁이던 강기를 기억했다. 단순한 조작의 미숙함이 아니라, 강기를 피울 장작… 마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이하율은 마력에 입문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각성하는 순간 입문했다 쳐도 고작해야 한 달이다. 마력량이 바닥을 기고 있을 것이다.
‘보상.’
환영회 날부터 지금까지 저지른 실수. 어떻게든 보상하겠다고 지껄인 주제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보상을 못했었다.
기껏해야 사탕을 쥐여주거나, 간혹 밥을 사주는 정도로 그쳤다.
지금 떠올랐다. 현재의 이하율에게 부족한 것, 딱 알맞은 것, 이하율이 좋아해 줄 만한 것.
홍연화의 눈이 기대에 반짝였다. 드디어 조금이나마 보상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잘하면 이전의 미소를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
잠시 후.
“뭐, 뭐 씨발?”
이하율이 토악질하며 길바닥에서 졸도했다는 소식이 강타했다.
행복한 상상을 펼치던 홍연화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 * *
리아나는 두 눈을 끔뻑였다.
어제 새벽. 꽐라가 된 아트라를 손수 숙소에 던지고 집으로 귀가했다.
아트라의 고집이 워낙 완고하여 어떻게 설득할 수는 없는 걸까… 하는 고민과 함께 잠들었고, 조금 늦게 기상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서 숙소에 딸린 마당에 가지런히 앉아 여유롭게 마력 수련을 하고 있던 것이 방금의 상황이었다.
요즘 들어 겪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이후에도 점심은 대충 때우거나 거르고, 내일의 강의를 준비하고, 적당히 개인 연구나 하다가 잠에 들었을 것이다.
이하율이 길 한복판에서 토사물을 흩뿌리며 졸도했다는 호출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순간 정지한 사고를 일깨우고 헐레벌떡 달려온 보건실. 어질러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보건실을 쓱 둘러보았다.
침상에는 웬 하얀 애벌레가 놓여있었다. 정확히는 둥글게 말려있는 하얀 이불…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이하율이 이불을 둘둘 말고 있는 모양.
급하게 달려오느라 정확한 연유는 듣지 못했다.
‘…몸 자체는 이상이 없나?’
마법까지 써가며 살펴봤지만 딱히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리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건실 한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면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아트라. 평소와 비슷해 보이는 행동거지였지만, 표정이 심상찮다. 무슨 나라 잃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래요?”
“…아무것도.”
“뭔… 아무 일도 없는데 얘가 토하면서 졸도해요?”
리아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뭐 이상한 짓 했어요?”
“나도 몰라. 그냥, 갑자기 다가오더니… 구역질하면서…”
“아트라 씨랑 만나고요?”
아트라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엉기성기 이어지는 말을 보니 본인도 혼란스러운 모양.
‘뭐야?’
의문이 깊어졌다.
그러니까, 이하율이 아트라와 만나자마자 토하면서 기절했다고? 갑자기? 그럴 이유가 있나?
…있나? 막 초인이 된 얘를 험하게 굴리긴 했는데…
‘모르겠네…’
이게 웬 날벼락인지. 리아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침상으로 다가갔다. 기척을 느껴보면 의식이 있다. 방금의 대화도 들었을 터.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상주하고 있던 치유사의 진단으로는 몸에는 별 이상 없단다.
하지만 역시 정신적으로 불안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는 이하율을 자극하지 말고, 차분하고 상냥하게 대화를 틀어야 한다.
리아나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아트라와 달리 이하율에게 매사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이하율 또한 그 마음을 느꼈는지 리아나의 손길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 만큼 그녀를 따랐다.
리아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평소보다도 상냥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하율 생도? 저랑 잠시─”
– 부스럭
이불의 뒤틀림이 강해졌다. 잠시 꾸물거리더니 리아나와 미약하게 거리가 벌어졌다.
“…어?”
명백한 거부의 표시였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리아나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나, 나도 싫어…?”
– 덜썩
마치 동의하듯 이불이 들썩였다. 우연 따위가 아님을 증명하는 두 번째 거부의 표시였다.
리아나의 몸이 쩌적 굳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