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52)
EP.52 자나 깨나 불조심(1)
몬스터의 명칭은 대개 첫 발견자 혹은 발견 단체가 명명하지만, 대부분 직관적인 뜻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삐이이이이이이!
귓가에 내다 꽂히는 소음에 인상이 절로 찡그러졌다.
원래 나방이 저런 소리를 내나?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애당초 이세계 몬스터는 생물학적, 마력학적으로 구성이 다르니 가능하겠지.
기생나방.
원작에서 잡아본 적 있는 몬스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키워드는 ‘기생’과 ‘나방’이다.
감각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기생나방의 외형을 느꼈다.
연신 펄럭이며 바람을 흩트리는 세 쌍의 날개와 커다란 소음을 뱉어내는 주둥이.
무지막지한 마력의 기세.
‘…어우.’
속이 울렁거린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력의 기세가 터무니없다. 두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만약 현실에서 저딴 거랑 싸워야 한다면 바로 뒷걸음질 칠거 같다.
그나마 덜 겁이 나는 이유는 이곳이 현실이 아닌 탑의 내부라는 것과.
– 화르르륵!
“그아아악! 개씨발!”
기생나방의 아래로 그보다 더한 기세의 화염이 몰아치고 있으며, 그게 일단은 우리 편(?)이라는 것 때문이다.
이 일대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이전에 지나친 참상과 엇비슷했다.
차이점이라면, 이전의 장소는 모두 불타버린 흔적이지만 이곳은 생기가 쪽쪽 빨린 듯 완전히 죽어버린 흔적이라는 거다.
기생(寄生)나방.
그렇게 명명된 이유는 저러한 마력흡수 능력 때문이다. 일대의 생기와 마력을 대량으로 흡수하여 사용하는 것이 종족적인 능력이다.
거기다 저놈은 알파개체이니 더 강력하겠지.
– 끼이이이이!
기생나방이 이전과는 다른 소음을 토했다. 주변의 마력이 꿈틀거리더니 기생나방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 마력은 기생나방의 체내를 거쳐 주둥이로 모여들었다. 노골적인 전조에 홍연화가 땅을 박찼다.
– 콰아아아아!
이내 발포. 단순무식한 마력의 기둥이 하늘에서 내리꽂혔다.
마력을 모아 때려 박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은 태생적으로 마력 보유량이 막대한 몬스터의 주특기다.
기생나방이 주둥이를 이리저리 그었다. 대지에 큼지막한 자국을 그리는 마력의 선이 홍연화를 쫓았다.
– 화르륵
홍연화가 땅을 박찼다. 그녀의 신형이 화염처럼 일렁였다.
흑색의 세상에서도, 홍연화는 붉게 타올랐다.
그것은 화염 속성 마력과 그 영향을 받은 강기이기도 했고, 겁화 그 자체이기도 했다.
다리를 구를 때마다 땅이 부서졌다. 튀어 오른 파편이 마력의 기둥에 지워지고, 겁화에 휩싸여 먼지 하나 못 남기고 전소됐다.
기생나방은 게걸스레 마력을 빨아들이며 공격을 유지했지만, 마력의 기둥은 홍연화의 털끝 하나 스치지 못했다.
– 꽈앙!
공격을 피하던 홍연화가 진각을 밟았다. 큼지막한 굉음과 함께 그녀의 신형이 가속했다.
단번에 공격 궤도에서 멀리 벗어난 그녀가 한쪽 팔을 등 뒤로 당겼다.
투창과 엇비슷한 자세.
와르르 피어난 마력이 손아귀에 맺혔다. 마력은 이내 기다란 화염의 창이 되었다.
“뒤져어!”
이내 투척. 하늘에서 내려 박힌 마력의 선과 다르게, 붉은 선은 땅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 삐이이이이!
기생나방이 공격을 끊고 다급하게 몸을 틀었다. 큼지막한 몸체와는 다르게 몸짓이 신속했다.
화염의 창은 기생나방의 날개가 있던 허공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먼 하늘에서 폭음이 터졌다.
“아오! 저 씨팔 좇같은 날벌레 새끼가!”
홍연화가 인상을 구겼다. 못마땅한 기색이 잔뜩 피어올랐다. 그녀가 이내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저걸 직화로 구워 쳐죽여… 야… 엄…”
증폭된 촉감은 피부 위로 꽂히는 시선도 세밀하게 읽어낸다. 홍연화의 시선이 내 눈두덩에 맺혔다.
시선이 파르르 떨렸다. 난처하면서도 화색이 담긴 시선이 얼굴과 몸을 진득하게 훑더니 이내 떨어졌다.
고개가 돌아감에 따라 그녀의 시선이 내 옆에 엘리아와 백아린에게 닿았으리라 추측했다.
엘리아에게는 별 반응이 없었다.
기껏해야 반가움이 조금 담긴 시선. 엘리아의 친화력은 홍연화에게도 닿았나 보다.
그리고 고개가 백아린에게 돌아갔다.
“…안녕?”
백아린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화르륵! 겁화의 기세가 격해졌다. 노기(怒氣)가 노골적으로 떠올랐다.
감정을 장작 삼아 겁화가 타올랐다. 홍연화의 뒤편으로 당장이라도 쏘아질 듯 부들거리는 화염의 검이 와다다 형성됐다.
“꺄아아아악! 하율 씨! 살려줘요!”
백아린이 기겁을 하며 뒤로 펄쩍 뛰었다. 향한 장소는 내 뒤편이었다.
– 미안해요. 대신 죽어줘요.
‘갸아악!’
백아린에게 뒤를 내어주는 것. 꺼림칙한 일이다. 나 또한 펄쩍 뛰며 백아린의 뒤로 향했다.
백아린과 나는 술래잡기라도 하듯 엘리아를 중앙에 두고 서로를 빙빙 돌았다. 끝나지 않는 꼬리물기였다.
홍연화가 이를 갈았다. 뒤편에 생성된 화염의 검이 흔들리더니 이내 허공에 녹아들었다.
“저저 씹…! …어먹을, 친구야.”
“필터링한 결과값이 씹어먹을 친구…? 필터링 안 했으면 도대체 어느 정도 되는 쌍욕이 날아올 뻔한 거야…”
회전을 멈춘 백아린이 아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또한 간신히 회전을 멈췄다.
“쌍욕? 야! 네가 거짓부렁을 씨부… 지껄이니까 욕먹는 거 아니야!”
“연화 네가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튀어나간 게 문제가 아닐까…”
자연스레 둘이 티격태격 거렸다. 흔한 광경이었다.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감각을 위로 치켜새웠다.
– 삐이이이
기생나방은 하늘을 날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경계심이 특히나 홍연화에게 쏠려있었다.
‘겁화?’
자세히 느껴보니, 기생나방의 왼쪽 날개가 이상하다. 내부 마력이 불에 지져진 듯 너덜너덜한 것이 겁화에 당한 듯하다.
정통으로 맞진 않았나 보다. 정통이었으면 멀쩡히 날지 못했겠지.
“하율아!”
백아린의 짧은 비명 이후, 반가움이 역력한 목소리의 홍연화가 불쑥 다가왔다.
나도 마찬가지로 반가움이 일었다. 기껏해야 며칠이었지만, 홍연화를 보지 못해서 그랬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반가움을 억누르고, 손을 붕붕 흔든 뒤 하늘을 가리켰다.
내 의사를 알아들은 홍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설명해 줬다.
백아린의 구라핑으로 떼거지로 모여있는 생도 무리에 들이박은 홍연화는 마구잡이로 날뛰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탈락하고 일부는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정작 나는 보이지 않으니 이미 탈락한 건가 싶어 침울해하기도 잠시.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아 휴식을 취하며 하루를 보내던 도중, 정확히는 방금 전부터 보스의 기척을 감지했단다.
이내 벌어진 드잡이질.
“왼쪽 날개에 겁화를 처박았는데, 좀 빗나가서 치명상까지는 못 갔어. 비행능력이 조금 떨어진 정도.”
“다른 생도들은? 이 정도 소란이면 모여들었을 텐데?”
“싸우기 시작한 지 오래 지나지도 않아서 아직까지는 없어. 내가 깽판 벌여놔서 근처 애들은 다 도망간 탓도 있고. 근데 계속 소란이 이어지면 찾아오는 애들이 늘어날 거야.”
홍연화는 입맛을 다시며 검을 붕붕 휘둘렀다.
“지금은 저렇게 날고 있어서 토벌이 여의치 않아. 접근해서 두들기기도 뭣하고, 땅에서 마구잡이로 마력을 쏟아내도 맞추기 힘들고.”
원래 비행이 가능한 몬스터는 특히나 토벌이 어렵다. 그래서 몬스터의 위계 구분에서도 비행은 특히 높게 치는 경향이 있다.
비행이 가능한 5위계 알파개체? 저게 세상에 풀리면 상급 초인 여럿이 달라붙어도 잡기 어렵다.
대강 설명이 끝났다. 대화하면서도 꾸준히 기생나방을 경계하는 홍연화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고개의 방향에는 백아린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에 잠긴 듯한 기색이었다.
내가 알기로 여기서 전략전술에 가장 능한 것은 백아린이다. 그녀라면 뭔가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이렇게 하면 어때?”
기대에 보답하듯 백아린의 입이 열렸다.
.
.
.
그리고 나는 활을 들었다.
‘……’
이미 산화해버린 이름 모를 생도의 활이었다. 보급형이라고는 하지만 생산지가 시요람인 탓에 훌륭한 성능이다.
나는 멍하니 활을 조물거리다가 감각을 돌렸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늘을 향해 얼음의 창을 난사하는 백아린이 보였다.
그러다가도 땅을 박차 날아오르더니, 얼음 블록 따위를 발판으로 삼아 날아다니는 기생나방을 직접 노리기도 했다.
기생나방은 그녀를 피하느라 부산스레 세 쌍의 날개를 펄럭이는 중이다. 날개에 휘감기는 바람의 기류가 이상한 것을 보니 바람속성 계통의 능력이 있는 모양.
간혹 몇 발 얻어맞는 공격이 있었지만, 위계의 값을 하듯 견제용 공격에는 별 피해가 없었다. 기생나방의 반격에 백아린은 거리를 벌려가며 짤짤이 공격을 넣었다.
나는 방금 들은 계획을 떠올렸다.
– 계획은 간단합니다! 엘리아의 버프를 받은 저랑 이하율 씨가 나방을 견제하여 틈을 만들면, 연화가 최대출력 겁화로 마무리!
간단한 계획이었다. 그때 나는 덤덤하게 있었지만, 백아린이 나를 보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 어쩔 수 없어요. 연화한테 주변 생도가 몰살당했다고는 하지만 언제 또 다른 생도가 몰려들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 몰살이 아니라 탈락 개같… 지 않은 년아.
– 아극!
‘…활이라.’
나는 활을 써본 적이 없다. 아트라 교수에게 대련은 받고 있지만, 창검, 주먹질, 발길질 따위를 배웠지, 아직 총이나 활을 직접 써보지는 않았다.
사실 활에 대한 이미지부터가 조금 그랬다. 원래 세계에서 살던 나로서는 왜 총을 놔두고 활을 사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그걸 따지기 시작하면, 창이나 검을 들 바에는 총을 들면 된다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막말로 홍연화도 날아오는 총알을 손가락으로 튕겨낼 수 있을 텐데, 총이든 활이든 사용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침착하게 활을 겨누었다. 목표는 하늘을 부산스레 날고 있는 기생나방.
긴장할 것 없다.
목적은 기생나방의 시선을 끄는 것.
굳이 치명상일 필요는 없다. 홍연화가 공격을 적중시킬 잠깐의 틈만 만들어주면 된다.
활을 쥐고서 조심스레 자세를 취했다. 실제로는 처음 들어보는 건데도 제법 자세가 그럴듯하게 취해졌다.
‘팔방미인.’
다양한 분야에서 최소한의 자질과, 숙련도 보정의 효과를 가진 고유능력.
일단 전투라는 항목은 같은 만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사용법 자체는 알고 있기도 하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잡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끼기긱… 마력인 주제에 제법 그럴듯한 소리가 귀를 스쳤다.
활에 내장된 섭리가 발현되며, 시위에 마력의 화살이 메겨졌다.
「마력화살 구현」
보통 무장으로 활용되는 활에 내장되는 기초 기능이다.
실존하는 화살에 마력을 머금고 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유분이 없을 때는 통짜 마력으로 쏘아내기도 한다.
마력을 끌어들인다. 코어를 두드려 마력을 뽑아내 활시위로 인도한다. 주인의 명에 마력은 군말 없이 신속하게 내달렸다.
당겨진 활시위로 마력이 뭉쳐 화살이 되어간다.
‘…「화염 부여」.’
화르륵! 마력의 화살에 화염이 휩싸였다.
하급의 속성부여 마법. 부여하는 것은 화염의 속성.
생명체에게 불이란 건 당연하게도 위험한 요소다. 골렘 같은 이상하거나 특수한 부류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다.
기생나방. 일단 생긴 건 저래도 일단은 벌레다. 몸체가 돌이나 바람, 물 따위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마력을 듬뿍 퍼먹은 화염이면 제법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다.
끼기긱… 시위를 최대한으로 당긴다. 팔방미인이 자세를 보조하고, 마력친화로 하여금 부여된 속성마법을 조율한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맞으면 위험하다’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마력을 더욱 퍼부었다. 화살에 달라붙은 화염이 거세졌다.
– 우우웅!
높은 순도의 마력을 장작 삼아 불이 타올랐다. 두 손으로 쥔 활이 무겁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화살이 받아먹은 마력이 많았다.
‘이 정도면…’
될 거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때를 노리는 홍연화와 백아린, 엘리아에게 신호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그녀들로부터 경악스러운 시선이 꽂혔다.
– 화르륵!
팔토시에 감싸인 오른손에서 돌연 화염이 솟구쳤다. 화살에 붙은 화염이 빛바랠 정도로 거친 화염이었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왜 또 지랄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