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53)
EP.53 자나 깨나 불조심(2)
원래 세상에서는 어중간하게 힘들었다.
차라리 거동도 못할 만큼 반병신이 됐다면 포기했을 텐데, 어중간하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건강했어.
정말 못돼처먹었으면 남이 뒈지든 말든 가만히 있었을 텐데, 어중간하게 오지랖을 부려서 다리 병신이 됐어.
– 화르륵
이 세상에 와서도 그래.
미련이 없다면 저주고 뭐고 콱 뒈져버리는 건데, 어중간하게 미련이 남아서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으려고 빌빌 기어다니고 있다.
힘들다고. 매일 일찍 일어나서 몸을 굴리는 것도, 별 이상한 지식을 머리에 구겨 넣는 것도 싫어.
대련 내내 무기 쥐고 휘두르는 거, 손바닥 살가죽 찢어비고 손톱 부셔지는 거, 다리가 부서져라 땅을 뛰고 발바닥에 물집이 잔뜩 잡히는 거.
터덜터덜 복귀해서 혼자 수련하는 거, 못 따라간 이론 진도 혼자서 낑낑대며 따라가는 거, 그러다가 지쳐서 기절할 때마다 좆같은 악몽을 꾸는 거.
전부 지긋지긋하다.
– 화르륵…!
전부 싫어.
단명의 저주. 정확히 언제 죽는지는 나도 몰라. 비슷한 저주를 가진 npc의 사례랑 설명 텍스트를 보고 10년 남짓이라 짐작할 뿐이다.
단명(短命)이라는 말 그대로, 며칠 뒤에 픽-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무섭다. 그런 공포감을 느끼는 것도 싫어.
제대로 된 맛을 느끼고 싶어.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맡던 바닐라 향도 다시 맡고 싶어.
공간적 정보가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고 싶어. 이젠 보지도 못하는 하늘을 직접 보고 싶어.
조금 실수했다고 목이 찢어져라 아픈 것도 싫어.
억울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하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는 사람한테 폐 안 끼치려고 최선을 다했어.
정말 그 연놈들 말대로 내가 잘못된 거야? 난 태어나선 안됐던 거냐고. 남에게 피해밖에 끼치지 못하는 해악이었어?
난…
– 화르르르륵─!
무언가 타는 소리. 연소. 장작… 소비되는 감정. 그를 보충하기 위한 감정의 증폭.
이상하면서도 익숙한 지식이 떠올랐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아니, 아니! 시발 뭐야. 정신 차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꼴사나운 징징거림을 자각한 순간, 늘어지는 정신이 팽팽해졌다.
늪처럼 들러붙는 부의 감정을 한순간 떨쳐냈다. 동시에 주변이 인지됐다.
바로 곁에서 무언가 불타고 있다. 아니, 불타고 있는 건 내 한쪽 팔이었다.
시위를 당기고 있는 오른팔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있다. 확실히 인지될 만치 강력한 마력을 머금은 화염이었다.
‘이게 뭐야.’
팔에서 화염이 분출됐다. 상상도 못한 이변이다.
탑 내부에서는 칼에 베여도 따끔거리는 정도로 끝날 만큼 고통이 극감한다.
‘뜨거워…!’
그런데도 뜨겁다. 탑에 들어와 느낀 감각 중 가장 강렬하다. 기세가 점점 거세졌다. 이러다간 팔이 정말 집어삼켜질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내게 피해가 크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거세지는 기세를 보면 이대로 놔뒀다가는 화를 입을 듯하다.
– 억울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데.
‘끄윽…’
순간 정신이 흔들렸다. 몸집을 불린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을 흔들었다.
팔이 후들거렸다.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다행히 몇 초 지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기생나방이 날고 있고, 백아린이 놈의 주의를 끌고 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는 엘리아와 홍연화가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모두가 경악이 서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홍연화의 반응이 격하다. 마치 눈앞에서 세상이 무너진 듯한 기세가 역력하다.
영문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멍 때리는 것은 최악의 수다.
이 순간에도 격렬한 화염은 여전했다.
소유자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감정을 장작 삼아 타오르는 화염.
홍연화의 이상하리만치 격한 반응.
그것들이 어떠한 화염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일단 의문은 뒤로 미룬다. 나중에 가서…
…나중에 가서 알아낸다? 내가 가진 의문 중 해답을 찾아낸 것이 있기야 한가?
– 화르륵
어릴 적 그토록 여린 몸뚱이로 부모에게 매일같이 처맞고도 살아남은 것.
칼에 뱃가죽이 열리고도 살아있는 것.
부모와 함께 화재에 휩쓸리고도 나만 살아있는 것.
거진 몇 년을 제대로 처먹지도 못하고 길거리를 전전하면서도 살아남은 것.
사고를 당해 병신이 됐던 다리가 저절로 복구된 것.
이 세상에 끌려온 것.
공간지각의 폭주, 게이트에서 본 여백의 정체, 나를 데려왔으리라 추정되는 총장의 속내, 언젠가 일어날지 모를 재앙이벤트.
뭐 하나 알아낸 게 있나? 그리고 알아낼 수 야 있나? 대처할 수야 있나?
‘일, 단… 쏴야 해.’
뿌득- 이를 악물었다. 감정이 격해진다. 그를 따라 화염도 함께 격해진다.
이건, 정상적이지 못한 감정이다. 그리 되뇌며 활을 기생나방에게 겨냥했다.
무슨 연유로 팔이 이 지랄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쏘고 생각하자.
생각을 좁힌다. 과도하게 많은 생각을 모두 접고 하나에 집중한다.
– 화르륵!
화살에 달라붙은 인첸트 마법… 보다도 팔에서 마구잡이로 일렁이는 화염에 의식이 쏠렸다.
문득 뇌리에 어떤 생각이 번쩍 스쳤다.
팔을 휘감고 거칠게 타오로는 화염. 발생 원인은 모르겠지만, 주변의 마력을 태우면서도 내 마력으로 피어오르는 화염이었다.
그렇다면, 제어권도 내게 있지 않을까.
시도해 봤다.
화르륵! 화염이 전보다 거칠게 일렁였다. 흡사 고개를 치켜들며 반항하는 듯한 모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씩 고개를 수그리더니 내 인도에 따라 화살촉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전의 화살은 내가 판단해도 제법 위협적인 기세였다. 어차피 한방만 쏘면 될 거, 마력도 잔뜩 긁어 밀어 넣은 탓이다.
지금은.
– 화르르르륵─!
지금껏 내가 해온 공격 중에서도 가장 강해 보인다.
슬슬 팽팽하다 못해 끊어지려는 활시위를 놓았다.
땅에서 하늘로, 적색의 선이 그어졌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일어나는 바람의 격류가 피부를 스쳤다.
빠르다.
기생나방의 날갯짓에 담긴 다급함이 느껴졌다. 바람의 흐름이 어지러워졌다.
맞췄다.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고.
– 콰아아아앙─!
폭음이 그 뒤를 따랐다.
* * *
눈앞이 어지러웠다. 제 눈으로 본 세상이 의심됐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그냥 꿈이었으면 했다.
잠에서 깨 박차고 일어나, 잠시 화를 낼지언정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흘릴 수 있을 거다.
꿈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감각은, 직감은 이곳을 현실이라고 가리켰다.
‘으…’
머리가 깨질 듯 아파졌다. 홍연화는 숨을 헐떡였다. 꽉 움켜쥔 손아귀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저 너머로, 화염에 휘감긴 오른팔이 보였고, 흉흉한 기색의 화살이 보였다. 사출된 화살이 그녀조차 놀랄 속도로 허공을 꿰뚫었다.
– 콰아아아앙─!
기생나방에게 정확히 꽂힌 화살이 거대한 화염의 폭발을 일으켰다. 괴물의 비명이 사방을 울렸다.
곧이어 몰아친 돌풍에 홍연화의 옷자락이 거세게 펄럭였다. 전투의 여파로 곳곳에 쌓인 흙더미 따위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화염.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다. 가문의 상징은 화염이었고, 이어지는 고유능력 또한 화염이었다.
하지만, 저 화염은… 그녀의 가문이 입혔을 흉터에서 발해진 화염은…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익숙했다.
그 사실이 홍연화의 마음을 좀먹었다.
“연화!”
익숙한 목소리. 백아린의 외침에 홍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일단! 토벌 먼저!”
짧게 본론만 전한 내용. 홍연화는 잠시 버벅대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맞는 말이다. 저것은… 보스를 먼저 잡고 물어도 될 일이다.
– 화르륵!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바란다면 언제나 피어나던 불꽃이다. 불쾌한 감정을 머금은 겁화는 이전보다도 짙게 피어났다.
꽝! 겁화를 두른 다리가 땅을 박찼다. 풍경이 뒤로 밀려나고, 있는 힘껏 밟아 하늘로 쏘아졌다.
– 삐이이이이…!
폭발의 여파가 가라앉으며 기생나방의 몸체가 드러났다.
위태롭게 출렁이던 기생나방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화살이 적중한 왼쪽 날개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비행을 지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아린과 함께 틈을 만들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저 정도로 치명적인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기생나방은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꼈는지 발악을 하며 홍연화에게 멀어지고자 했지만, 홍연화는 이미 기생나방의 직전까지 육박했다.
그녀는 핏발이 선 눈으로 기생나방을 노려봤다.
지금 홍연화는 무척 화가 났다. 곱상한 표현이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겁화가 가장 잘 받아먹는 것은 소유자의 감정이다. 때문에 겁화의 사용자는 감정까지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그걸 하나의 결과로 인도했다.
이 모든 감정의 원흉은, 저 좆같은 몬스터 새끼 때문이다.
책임을 떠넘긴다 해도 좋다.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로써 감정을 효율적으로 태웠다.
‘아직.’
5위계. 한번 혼자서 잡아봤지만, 이 정도로는 뭔가 모자랐다.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죽일 수 있어도, 곱게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개체와는 구별되는 고유함. 이능이 만연한 세계에서, 스스로의 독립됨을 주장할 수 있는 권한.
그것이 고유능력이다.
‘겁화.’
스스로와 세계를 태우는 불꽃이며, 증오하는 것을 재 하나 남기지 않는 화염.
마력과 생기, 모든 것을 장작으로 삼는 화염이지만 특히나 감정을 잘 태운다. 그를 위해 소유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특징이 있다.
겁화는 하나의 분류로 나누기 힘든 고유능력이다.
화염을 발현하는 속성계열이며, 신체 내부에 발현하는 것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신체계열이다.
또한 전투에 있어 여러 장점을 가져오는 전투계열의 능력이기도 하다.
고유하다는 것.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것.
고유하다는 걸로는 모자라다. 최초의 초인들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초인들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 당장 고유할지라도, 나중에 가서도 특별하며 고유할지는 모를 일이다.
모두가 나아가는 와중 답보한다는 것은 퇴보와 동일한 뜻이니까.
그러므로 진보해야 한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고유함을 확장해야 한다.
기생나방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기습 이후 없었던 절호의 기회다. 홍연화는 손에 든 검을 버리고, 손을 뻗었다.
손아귀에 겁화가 실타래처럼 엉켰다.
‘확장능력.’
개화(開火).
화륵. 손아귀의 화염이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몸에 휘감겨 거칠게 일렁이던 화염도 돌연 모습을 감췄다.
겁화로 인해 추가되는 신체능력의 상승도 함께 사라졌다.
대신.
– 화르르르르륵─!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격렬한 화염이 손아귀에서 터져 나왔다.
선택과 집중.
자잘한 부분을 버리고, 오직 출력에만 집중하는 것.
“뒤져.”
– 콰아아아아─!!
짙은 붉은빛이 하늘을 덮었다. 막대한 열기가 사방으로 확산했다.
화염에 정면으로 삼켜진 기생나방의 몸체가 그림자로 언뜻 비쳤다.
허나 그림자는 폭풍 앞의 횃불처럼 불안하게 일렁이더니, 제대로 된 단말마조차 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모습을 감췄다.
.
.
.
겁화를 마지막까지 깔끔히 쏟아붓은 홍연화가 땅에 착지했다.
그나마 멀쩡하던 땅덩이가 여기저기 녹아내리고 그을리고 아주 개판이다.
조절은 했다. 나름 땅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하늘을 향해 개방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을 멈출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홍연화는 다급히 사방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반구 형태의 얼음 구조물이 보였다. 후폭풍을 대비한 백아린의 대처였다.
홍연화는 반색하며 그쪽으로 내달렸다.
그녀가 다가가자 쩌적- 얼음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안쪽으로 백아린과 엘리아, 그리고 이하율이 모습이 드러났다.
“하율아…!”
홍연화의 얼굴이 걱정에 젖어들었다. 이하율의 얼굴이 무척 불안해 보였던 탓이다.
호흡이 거칠고 얼굴이 붉게 올라왔다. 몸도 미약하게 좌우로 휘청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백아린과 엘리아를 제치고서 바로 이하율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하율아! 괜찮아?! 어떡해… 아, 맞아! 치료! 아린! 하율이 치유… 아니, 그전에! 팔! 하율아 저쪽 팔 보여줘!”
홍연화가 부산을 떨며 손을 휘적였다. 막 마력을 대량으로 사용해 어지러웠다.
“?”
이하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머리를 여러 차례 갸웃거리더니, 앞으로 팔을 뻗었다.
– 포옥
“…어?”
품에 가득 차는 만족감. 홍연화는 얼빠진 탄성을 뱉었다. 이어 허리에 팔이 휘감겼다.
동공 지진까지 일어난 그녀의 눈이 아래를 바라봤다.
제 품 안에 쏙 들어온 이하율이 보였다.
“어…?”
썩둑 잘리는 정신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사고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현재의 상황을 분석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하율의 팔에서 솟구친 겁화와 비슷한… 아니, 겁화.
겁화, 고유능력.
감정을 장작 삼아 거칠게 타오로는 특징.
때문에 소유자의 감정을 부추긴다는 단점, 장점의 존재.
감정을 부추기는…
일련의 사고를 마친 홍연화의 시선이 이하율의 안면을 훑었다.
달아오른 뺨과 거칠어진 숨결, 입에서 새어 나오는 옅은 신음…
방금과 엇비슷한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품에 안기더니 제법 편안해지는 표정.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걱정과 함께 다른 감정이 불쑥 떠올랐다.
“…꿀꺽.”
홍연화가 침을 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