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56)
EP.56 히든피스(2)
예전 세상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억까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피할 수 있는 사고였지만, 내가 굳이 대가리를 들이밀어 마신 고배였다.
그 결과 후천적 다리병신이 된 나는 거액의 보험금과 합의금을 받아 강제적으로 방구석에 틀어박히게 됐다.
다리가 병신이 되어 아르바이트 자리는 잃었지만, 손에 쥐어진 돈이 내 딴에는 워낙 거액이라서 별문제는 없었다.
덕분에 고시원 방도 빼고, 적당한 원룸 하나를 잡아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환경에서의 방콕이었다.
잠깐 밖에 나가려 해도 휠체어나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집에서 쉬는 것이 성향에 맞았다.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는 것은 편했지만, 나는 앉아버리면 눕고 싶어지는 배은망덕한 놈이라서 편안함이 들어오자 즐거움도 스리슬쩍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즐길 거리를 끼적이다가 찾아낸 것 중 하나가 바로 ‘세이비어’라는 게임으로.
간혹 휴대폰으로 퍼즐게임이나 끄적이던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입문해 본 컴퓨터 게임이다.
당시에는 마치 신문물을 마주한 야생인이 된 듯한 심정이었다. 엄청 재밌더라. 그래서 깊이 빠져들었다.
인터넷에서 공략집 따위를 찾지 않은 이유다. 누군가가 이미 공략한 정보를 보고 따라 했다가는 지금의 재미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걱정없고 행복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보스가 출현한 주변이네요. 여기가 중앙쪽이던가 그랬을 텐데.”
앞장서 일행을 이끌던 백아린이 말했다. 임시 거점을 정리하고 나선지 시간이 꽤 흘렀다.
이동하는 도중 생도를 몇몇 마주치기도 했다. 이쪽의 전력이 전력인지라 모두 무리없이 탈락시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쫒기면서도 특히 주연격 인물을 만나지 않았다.
1~2일차에 주연에게 쫒겼다면 아마 탈락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운이 어지간히도 좋았다고 세삼 깨달았다.
“중요한 건 다 중앙에 모여있나 봐요.”
“확실히 한곳에 몰아두면 관리가 편하겠죠.”
1층의 중앙. 그래도 중앙 땅값은 하는지 이 근처에서 보스도 소환되고, 이런 히든피스도 존재하고 있다.
히든피스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벅차오른 흥분을 쓰다듬으로 진압당한 뒤, 엘리아의 안내에 따라 일행을 이곳까지 데려왔다.
보스를 잡고 헐레벌떡 도망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그냥 온 것은 아니다. 나도 막무가내로 생떼 부린 게 아니라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다.
엘리아가 발견한 장소에 특별한 것이 있다. 나를 도와준다면 보상을 적절히 나누겠다.
답변에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고?
“탐려득주가 총장의 교육 방식인가?”
백아린이 문득 그리 중얼거렸다.
탐려득주探驪得珠.
검은 용을 찾아 진주를 손에 넣는 다는 뜻으로, 큰 위험을 무릅쓰고 큰 이익을 얻는다는 사자성어다.
“보스와 동일한 몫의 점수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신 특수한 보상의 위치를 알려준다라… 확실히 버티기야 한다면 시련도 되고 보상도 받고 좋겠네.”
요컨대 거는 판돈이 많을수록 성공했을 때 받는 대금이 많아진다는 당연한 말이다.
“어그로를 그렇게 끌어놓고 버티기는 무슨.”
백아린의 혼잣말에 후방에 서서 기습을 경계하던 홍연화가 불퉁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엘리아의 바로 뒤를 따라 걸으며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제로 나는 운이 좋았음에도 2일차에 끝날 뻔했다.
일행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겐 무적의 변명 사유가 있으니까.
이례 없던 특례입학생. 총장이 선택한 생도.
저 신분이 훌륭한 변명거리가 되었다. 특례입학생은 나밖에 없으니까. 다른 공지가 교수들을 통해 내게 내려오는 것도 없으니까.
실제로 총장이 나한테 기원의 알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나? 아니다. 애당초 나는 총장의 얼굴도 모른다.
기록된 역사에서도 그렇다. 총장의 영웅적인 행보를 통해 존재 여부는 알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총장은 과거 자료에서도 외적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부분이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원작에서 성장의 탑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데려온 특례입학생을 방치하는 걸 보면 원작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내 거짓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진위를 물어볼 대상은 나와 총장밖에 없는데 총장은 침묵 중이니까.
설득에 있어 유일한 어려움은 입이 이 모양이라 바닥에 글자를 적어가며 알려야 했다는 것 뿐이었다.
수어는 너무 오랜만이라 여러모로 어색했다.
“여기에요.”
주변을 샅샅이 살피던 엘리아가 말했다. 일행은 걸음을 옮겨 숲을 헤쳐나갔다.
곧이어 내 감각에도 이질적인 장소가 느껴졌다. 허벅지를 간지럽히던 수풀이 걷혔다. 확 트인 공간이 나오며 문득 바람이 불어왔다.
“확실히 제가 본 구조물과는 다르네요.”
주변을 둘러보던 백아린이 그리 말했다.
수풀을 헤치자 나타나는 널찍한 공터.
그 한가운데에 놓인 것은 묘한 마력을 머금은 석제 제단과 그를 감싸고 있는 여덟 개의 기둥이다.
공간지각이 망가진 지금은 정확한 외형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원작에서 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셋의 검은색 기둥은 중심에 있는 석제 제단을 삼각형으로 감싸고 있다.
검은색으로 느꼈다. 내재된 음침하고 위협적인 마력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다섯의 하얀색 기둥은 석제 제단을 오각형으로 감싸고 있다.
하얀색으로 느꼈다. 내재된 굳건하고 단단한 마력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하율 씨, 여기 맞아요?”
공터에 들어서기 전 마법으로 주변을 확인한 백아린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잠시 기둥의 마력을 느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입합니다.”
그 말에 따라 일행이 걸음을 옮겼다. 나도 침을 꿀꺽 삼키며 따라붙었다.
‘어떠려나.’
자신 있게 설득하여 이곳으로 왔지만, 사실 나도 확신은 없었다.
기원의 알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3회차다.
맨땅에 대가리 박기로 쓴맛을 제대로 본 1회차와 생도들과 드잡이질을 벌이며 한창 성장하느라 여유가 없던 2회차.
3회차는 그래도 성장의 탑 내부 맵을 탐사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끝내 맵 중앙부에 위치한 기원의 알을 최초로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의 이야기다.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이 된 이상 마냥 부정할 정보가 아니란 것은 안다. 하지만 그래봤자 게임이 아닌가.
현실에서도 그럴까? 진짜 저절로 보상이 나올까? 한구석에 그런 의심이 있었다.
만약 내가 다가갔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또 총장의 이름을 팔아야 했다.
– 우웅!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내가 공터에 발을 디딘 순간, 새하얀 다섯 개의 기둥이 진동을 토했다. 땅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다리로 여실히 전해졌다.
일행의 발이 멈췄다. 내게로 계속 진입하겠냐는 뜻이 담긴 시선이 꽂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걸음을 옮겼다. 평평한 흙바닥을 밟으며 제단 쪽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도 기둥이 토하는 진동은 여전했다. 위기감이 느껴지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상한 비유였지만 무언가 환영하는 듯했다.
끝내 제단의 코앞까지 왔다.
나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진동을 토하는 하얀색 기둥. 원작에서는 저런 이펙트가 없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이곳은 성장의 탑이니 위험하더라도 그냥 탈락하여 밖으로 뱉어지는 게 전부일 거다.
조금 마음을 편히 다잡고 제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바닥으로 서늘한 감촉이 담겼다. 관리되지 못한 구조물 표면의 까끌까끌함도 함께 담겼다.
“……”
아무 일도 없었다. 헛방인가? 생각할 시점이었다. 손바닥이 닿은 제단으로부터 청량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석제 제단의 틈 사이사이로 연기처럼 느껴지는 마력이 무럭무럭 새어 나왔다. 내 마력만은 못하지만 순도 높은 마력이었다.
새어 나온 마력은 천천히 주변을 물들여갔다. 점차 변화하는 마력의 범위가 셋의 검은 기둥을 담고, 다섯의 하얀 기둥을 감쌌다.
– 철, 컥
기름칠하지 않아 삐걱대는 듯한 기계음이 귓가에 담겼다. 발생지는 제단 내부였다.
제단이 덜컥거렸다. 그러더니 점점 진동이 심해진다.
사시나무 떨듯 덜컹거리는 제단의 모습에 혹시나 싶어 뒷걸음질 쳤다.
몇 걸음 채 물러서기도 전에 제단의 덜컥임이 멎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더니, 제단이 한쪽에서부터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밀려왔다. 나는 손으로 코와 입가를 막았다.
그보다도 다른 곳으로 감각이 쏠렸다. 와르르 무너진 제단의 안쪽에서 묘한 마력을 풍기는 물체가 있었다.
제단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원작의 지식이 있어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길쭉하면서 둥근 달걀 같은 형태와 사람 머리보다도 커다란 크기. 뭐라 형용하기 힘든 마력의 성질.
‘기원의 알.’
있다. 진짜로 있었다. 게임에서나 있던 히든피스가 현실에도 있었다.
감겨있는 눈이 반짝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후다닥 무너진 돌 파편을 밟으며 다가가 기원의 알을 주워들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묵직하다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꽤나 무게가 나갈 테지만, 지금의 신체능력으로는 가볍기 그지없다.
품에 안아든 알의 표면을 매만졌다. 매끈하면서도 미약한 따듯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오호.”
기원의 알을 확인하고 있자, 조금 떨어져 있던 백아린이 불쑥 다가와 손가락으로 알을 두드렸다.
갑작스레 다가온 냉기에 움찔거리려는 몸을 다독이며, 호기심 어린 기색인 일행에게 알을 보여주었다.
“이 달걀이 보상이야?”
– 끄덕
마찬가지로 성큼 다가온 홍연화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묘하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네. 이게 정확히 어디다가 쓰는 달걀인데?”
“영약 제조할때 드는 재료 아닐까요?”
“그런가? 몬스터 알이 꽤 쓰인다고는 들었는데…”
저들끼리 용도를 추측하는 이들을 기다려주다가, 주변에 널브러진 나무 막대기를 주워 바닥에 죽죽 문자를 적었다.
“응?”
홍연화가 눈을 끔벅이는 것을 느꼈다. 백아린과 엘리아도 비슷한 기색이다.
엘리아가 바닥에 적힌 문자를 읽었다. 자신이 읽은 것이 맞는지 확인받는 듯한 물음이다.
“뽑기?”
그 의문에 막대기로 ‘뽑기’라 적힌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며 긍정했다.
기원의 알.
사용할 시 사용자의 기원을 읽어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게 기본 옵션인 히든피스.
사용하면 특정 등급 이상의 무작위 아이템을 얻는다.
잡다한 영약 세트부터, 후반에 가서도 구하기 어려운 최상급 아티팩트마저 뱉어낸다.
즉, 고급 랜덤 가챠다.
“음…”
설명을 듣더니 다들 어딘가 묘한 기색을 흘렸다.
잠시 침음을 흘리며 뭔가를 고민하던 홍연화가 불쑥 말했다.
“한 입만 먹어볼까?”
“…!”
나는 기겁하며 기원의 알을 등 뒤로 숨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