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59)
EP.59 휴식
공간지각은 내가 가진 고유능력 중 그나마 액티브로 분류 가능한 능력이다.
아직 기술계열로 확장능력을 이루지 못한 팔방미인과, 마력에 친화력을 가져다주는 마력친화.
다른 둘은 그냥 상시 적용되는 패시브적인 고유능력이다.
공간지각도 패시브 같은 성격이 크지만,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그나마 액티브와 비슷하다.
첫날에는 그걸 못해서 죽을뻔했다.
넓게 펼쳐진 공간지각이 물어오는 정보를 뇌가 감당하지 못해 머리가 터질 뻔했다.
정보를 분류해서 가져오는 법도 몰랐고, 가지고 오는 정보를 적당히 덜어내는 법도 몰랐다.
심지어 그때의 공간지각은 수상하리만치 성능이 좋아서 들어오는 정보가 엽기적으로 많았다.
지금도 그날을 회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만약 거기서 조절에 실패했다면 그대로 죽어버렸을 거다.
– ……
사고가 느려졌다. 처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다. 정말 온갖 것이 뇌리에 쑤셔들어왔다.
처리가 느려진다. 때문에 사고가 느려진다. 마치 세상이 나와 함께 느려지는 듯하다.
위험하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공간지각을 제어했다.
‘축소.’
제멋대로 크기를 확장하는 공간지각을 붙잡아 끌어당긴다. km를 넘나드는 범위를 다시 좁힌다.
‘분류.’
관측되는 정보에 기준을 둔다. 쓸데없는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것은 방지한다. 공간, 신체, 마력, 술식, 기관 시설의 내부… 지금으로써는 필요하지 않은 깊은 자료를 막아낸다.
관측되는 공간을 조율한다.
공간을 접고, 그 안에 들어오는 정보를 걸러낸다.
조작이 어렵다. 지금껏 억눌려져 있던 것이 폭주하듯 날뛰고 있다. 때문에 조절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절되었다. 첫날의 내가 아니다.
그 이후로 공간지각을 얼마나 많이 다루었는데, 그때와는 숙련도의 수준이 다르다.
확장하는 것은 막았고, 정보의 수집도 구별해뒀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조절하는 과정에서도 정보가 들어왔다. 과하리만치 쓸데없는 정보다.
그 순간 팍-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몸에서 울렸다.
돌연 코가 시큰거렸다. 숨 쉬는 게 걸리적거린다. 코를 손으로 매만지자 새빨간 피가 묻어 나왔다.
‘코피 터졌네.’
첫날엔 딱히 피는 안 터졌… 터졌, 던가?
순간 머리가 멍했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첫날, 공간지각이 펼쳐진 순간…
…어땠더라? 그때는 기억이 애매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묘하다.
“드디어 끝… 나아아악! 하율아!?”
멍하니 공간지각을 다스리고 있을 무렵, 근처에서 비명이 터졌다.
뭔가 싶어 그쪽 정보를 끌어당기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홍연화가 있었다. 매력적인 빨간색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닷새 만에 제대로 관측되는 얼굴이다. 고작해야 닷새에 불과한데도 엄청 오랜만이라는 감상.
“왜! 왜?! 무슨 일이야!”
헐레벌떡 다가온 홍연화가 나를 살폈다. 워낙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수군거림이 들렸다. 대충 쟤 왜 저러냐는 당혹스러운 반응이다. 재빨리 코를 훔쳤다.
고작 코피 하나 난 것 가지고 너무 과잉 반응이다.
떨떠름하면서도, 뭔가뭔가인 감정을 느끼며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주었다.
그때 한쪽 눈에 간지러움이 일었다. 감고 있음에도 그랬다. 안쪽에서 뭔가 찰랑이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르륵.
눈에서 피가 나왔다. 핏줄기가 볼을 타고 내리며 선을 그었다.
‘아?’
“아.”
어디선가 휴지를 구해와 내 코를 닦아주려던 홍연화의 움직임이 굳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반대쪽 눈도 가려움이 일더니, 피가 흘렀다. 두 개의 빨간 선이 그어졌다.
홍연화가 입을 벌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
.
.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그저 주변 엘리아와 백아린 등 치유능력을 가진 생도들이 소란을 듣고 달려온 것과, 홍연화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진 것 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학년 담당교수들도 찾아와 내 상태를 살폈다.
복합마법의 달인으로 알려진 춘분반의 담당교수, 테오닐 아르반이 내 얼굴을 이모저모 살피더니 진단을 내렸다.
“원인은 능력의 과도한 운용으로 보입니다. 시련 도중 능력에 이상이 있어 보였는데, 그와 관한 것입니까?”
– 끄덕
“갑작스러운 능력의 변화 탓인가… 성장의 탑이 이를 잡아내지 못하다니 의아하군요. 어찌 됐든 안정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가능하면 능력도 한동안 자제하시고요.”
테오닐 교수의 진단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생도들은 이미 해산한지 오래다.
막 성장의 탑에서 나와 피로와 상처는 사라졌지만 정신적 피로는 여전한 탓이다.
안절부절한 태도로 내 주변을 배회하던 이들은 리아나 교수가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그럼 이번 주는 그냥 푹 쉬는 게 좋겠어요. 이하율 생도?”
옆에서 함께 진단을 듣던 리아나 교수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듣고 있다는 시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나 교수가 복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시련에서의 일은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그 내용이 발설된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구요.”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나는 안도하며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겁화, 창해, 태산을 사용한 3회차.
가장 먼저 겁화를 먹고 그다음으로 태산을 운용했었다.
그런데 도중에 태산의 사용을 들키는 바람에 한바탕 관계도가 곱창이 난 적이 있었다.
게임에서도 그 모양이라 이번 일이 조금 두려웠는데, 리아나 교수의 확답을 받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내 표정의 변화를 보고는 리아나 교수가 키득이더니 손을 뻗었다. 상냥한 손길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평소 쓰다듬어지던 손길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 와서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한 말로 어색해도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
그렇게 쓰다듬어지고 있자니 묘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시선의 주인은 아트라 교수였다. 그녀는 무언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트라 교수는 1학년 담당은 아니지만, 내 전공 담당으로 함께 시련을 보고 있었단다.
뭔가 싶어 아트라 교수에게 고개를 기울였다가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피드백?’
내가 닷새간 진득하게 싸우는 것을 직관했을 아트라 교수다. 그녀의 눈으로는 온갖 지적 거리가 수두룩하니 쏟아지지 않았을까.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경청하겠다는 표현이었다.
아트라 교수는 내 태도에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잘…”
‘잘?’
아트라 교수는 답지 않게 말을 뭉그러뜨렸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기색. 그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렇게 엉망이었나?’
공간지각이 병신이 된 것치고는 나름 잘 싸웠는데.
확실히 공간지각을 가진 움직임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하자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공간지각만 온전했다면 획득한 점수의 두 배는 벌 수 있었을 거다.
내가 공간지각만 써온 걸 봐온 아트라 교수에게 있어 시련 동안의 내 움직임은 엉망진창으로 보였을까.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잘했다.”
뜻밖의 대답에 멍하니 입이 벌어졌다.
“감지능력의 문제점은 보완해야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곧바로 대응책을 마련해 활동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칭찬?이 이어졌다.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내 상태를 고려해 준 것인지 몇 마디 해준 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번에 폐를 끼쳤음에도 역으로 걱정 받은 이후로, 아트라 교수도 좋은 사람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런 칭찬을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내 표정을 본 아트라 교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고, 묘한 표정의 리아나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묘한 표정… 정확히는 히죽거리는 거리는 표정이라 해야 하나.
“…왜 그런 낯짝이지?”
“아뇨, 딱히?”
그렇게 받아친 리아나 교수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는 내 스마트워치가 들려있었다.
반색하며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일순간이지만 반쪽짜리 입을 되찾았다.
“이하율 생도도 이만 들어가 보세요. 주말 동안 푹 쉬시고, 다음 주에 만납시다.”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리아나 교수와 무심히 고개를 까딱이는 아트라 교수에게 인사를 건넨 뒤 몸을 돌렸다.
.
.
.
가숙사로 돌아왔다.
‘뭔가 오랜만인 거 같네.’
입고 있던 생활복을 빨래 바구니에 던지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자니 어딘가 어색했다.
고작해야 닷새 남짓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그런 감응을 받았다.
이전에도 기숙사를 비워두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랬다.
오전에 공용강의, 오후에 아트라 교수에게 수업을 받은 이후에는 도서관이나 개인 수련실을 찾는 편이니까.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걸터앉았다. 푹신한 감촉이 엉덩이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유혹이 이성을 두드렸다.
어서 몸을 눕히라고, 여기서 잠들라고…
‘… 자면 안 되는데.’
신체의 상처와 피로는 사라졌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꽤 남아있었다.
그것뿐이었다면 상관하지 않았을거다. 여러모로 피곤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 하여 시간을 버릴 이유는 되지 못하니까.
그런데 탑을 나와서 공간지각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버렸다. 느닷없이 폭주하더니 내게 강렬한 정신적 공격을 갈겨버린 것이다.
홍연화의 앞이기도 했고,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들어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좀 위험했다.
당장 기절할 것 같았다. 침대의 유혹이 더해지자 더욱 기절할 것 같다.
첫날에 사경을 헤맨 것에 비하면 정말 굉장한 발전이지만… 피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깐만 자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잠깐만 잤다가 일어나자… 그러고서 계획을 점검하면 되겠지.
그런 자기합리화를 마치며 짐을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원의 알은 고민하다가 침실 선반에 올려두었다.
적당히 몸을 헹구고서, 편안한 차림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푹신한 감촉이 전신을 물고 늘어졌다.
정신이 가라앉았다. 속으로 리아나 교수가 가르쳐 준 수면법을 되새기며, 의식의 끈을 놓았다.
* * *
침대에 몸을 눕힌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잠에 빠진 이하율이 고른 숨소리를 흘렸다.
둥글게 몸을 말고서 두꺼운 이불을 덮어 얼굴의 일부만이 겨우 바깥으로 나온 모양새.
고요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아무런 간섭이 없었음에도, 기원의 알이 흔들렸다.
– 띠링
뒤를 이어 고요한 침실에 조용한 알람음이 울렸다.
[기원의 알이 소유자의 기원을 읽어내립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