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63)
EP.63 냉기
차디찬 밤바람이 볼을 스쳤다. 피부 속으로 스미는 냉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백아린에게 이끌려 나온 연회관 밖의 공원.
햇빛은 이미 종적을 감춰 어두컴컴한 분위기였다. 근처의 광원이라고는 가로등과 산책로에 박힌 발광석이 전부였다.
‘벌써 밤이네.’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몇 시간이 흐른 건지.
그냥 인사만 하고 나가자는 계획이 처참히 망가졌다.
백아린은 내 소매를 잡고서 공원의 산책로를 거닐었다. 입장하면서 한번 가로질렀던 공원이다.
“어우, 시원해라. 이제 좀 살겠네.”
내가 냉기로 인해 한차례 파르르 떨던 와중, 백아린은 오히려 가슴을 활짝 펴며 만족스럽다는 양 중얼거렸다.
“안쪽은 난방을 너무 틀어놨어요. 옷에 땀이 찰 지경이라니까. 하율 씨는 안 더웠어요? 저는 더워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는데.”
급기야 가슴께 옷을 펄럭이며 더움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그 자태에 경악을 느끼기도 잠시, 그녀의 체질을 생각해 보면 더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연회관 안쪽이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르고 있었는데 몸이 전체적으로 따끈따근한 상태였다.
밖으로 나온 지금 차가운 공기를 얻어맞으며 식어가는 체온 덕분에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따듯한 쪽을 선호하는 탓에 별 불만은 없었지만, 백아린은 아니었겠지.
창해를 발현함으로써 수기와 냉기를 받아들이는 데 체질적으로 특화된 그녀다.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둔 것처럼 후덥지근한 내부는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백아린은 투덜거리며 산책로에 마련된 벤치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본인도 같은 벤치에 나란히 엉덩이를 붙였다.
벤치 옆에 세워진 가로등 어둠을 밝혔다. 마냥 밝지 않고 은은한 세기 덕분에 나름의 운치가 생겼다.
흔히 인터넷에서 감성 짤로 돌아다닐법한 벤치와 가로등이었다.
‘후우…’
밖으로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십분 남짓일까.
짧은 시간이지만 개인적으로 뜨근한 몸을 밤바람으로 식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백아린은 그렇지 않은지 여전히 옷을 잡고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ㅎ게 더ㅇㅝ요?]“네. 쌓인 열이 너무 많아서 녹아내릴 것 같네요…”
백아린은 드물게 약한 소리를 내며 등받이에 몸을 늘어트렸다.
그 정도로 안쪽이 더웠나? 물론 몸이 뜨근해질 정도는 맞는데, 냉기를 지닌 백아린이 저렇게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창해를 보유한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으리라. 그나마 비슷한 건 겁화일까.
겁화는 보유하는 것으로 화기에 특화되니까, 겁화의 사용자는 대체적으로 몸이 따끈따끈하다.
그래서 홍연화의 품은 유독 따뜻… 요즘 진짜 왜 이러지.
갑작스레 이상한 곳으로 이어지는 사고에 급히 고개를 털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상한 사고의 방향을 끊어낼 수 있었다.
챱챱 뺨을 두드려준 뒤 스마트워치를 조작했다. 방금의 생각으로 잊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홍연화 님은 어ㅣ가셨나여?]“연화는 겁화 부담감 다스리느라 불참한데요. 보아하니 며칠은 쭉 갈 거 같던데.“
[아]겁화의 부작용. 탑의 마지막 날부터 골골거리는 홍연화를 본 탓에 알고 있었다.
백아린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해 봤다.
‘부작용이 그 정도인가?’
원작의 기억을 더듬었다.
1회차부터 12회차까지.
회차 초반부에서는 플레이어가 일으킬 수 있는 나비효과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후일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 씨앗을 심는 데 그치는 정도.
첫번째 입탑은 특히나 초반부라서 플레이어가 무언가 큰 사건을 일으키기는 힘들다.
덕분에 초반부는 어지간해서는 동일하게 흘러가는 편이고, 홍연화는 매 회차마다 겁화의 변화를 겪었다.
그게 큰 이벤트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강력했던 겁화의 출력이 더욱 지랄맞아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관심 줄만한 이벤트는 아니다.
‘…괜찮을려나.’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걱정이 떠올랐다.
탑에서 컨디션이 나빠 보이던 홍연화에게 연신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말 그래도 컨디션이 조금 떨어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아 그 말에 수긍했었는데… 부작용이 심해져 뒤풀이에 나오지 못할 정도가 된 걸까?
확실히 원작에서 홍연화가 부작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첫 입탑을 마치고 홍연화를 만날 경우 겁화의 변화를 겪어 더욱 강해져있었다, 정도로 축약 가능했으니까.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알지 못했다.
[홍연화 님은 괜찮으신가요?]“본인 말로는 괜찮다는데… 이번 부작용은 특히 심한지 상태가 별로더라구요.”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있던 백아린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 말에 조금씩 고개를 내밀던 걱정이 심해졌다.
문득 11회차의 기억이 떠올랐다.
11회차에서 겁화 가문의 기록을 털 적에, 부작용으로 죽어버린 겁화 사용자가 적지만 존재하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것이 불안함을 부추겼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걔가 막무가내처럼 보여도 선은 알고 있어서, 혼자서 해보다가 진짜 위험하겠다 싶으면 가문 사람을 불러서라도 해결할 거예요.”
내 표정을 본 백아린이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설명에도 내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백아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 걱정되시면 병문안이라도 한번 가보세요. 분명 좋아할… 거…”
이어지던 말이 돌연 허물어졌다. 끝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백아린이 두 눈을 깜빡였다.
“음… 흐음?”
‘?’
그러고는 입으로 이상한 비음을 흘렸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뭔가 싶어 잠시 기다려주었다.
한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던 백아린은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짓궂은 미소였다.
“하율 씨.”
[네?]그러고는 나를 호명하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짓궂은 미소로 말을 이었다.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을까요?”
마치 중요한 이야기라도 되듯, 주변에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음에도 속닥이는 것은 덤이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말을 하다가 끊어진 것을 볼 때 무언가 생각이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
.
.
[왜 이럭케 찍는 건가여?]“그냥 찍으면 밋밋하니까 사진 찍을 때는 다 이렇게 포즈를 잡는 거예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숨결에 어깨가 떨렸다. 감각을 조율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탑에서처럼 증폭된 감각으로 이랬다면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공간지각으로 전해지는 정보 속, 벤치에 앉아있는 나와 백아린.
백아린은 내 쪽으로 바짝 붙은 채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
조금 전 백아린은 왜 사진을 찍어야 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 연화한테 보내주게요.
설명은 이랬다.
홍연화 본인은 컨디션 때문에 뒤풀이에 참여하지 못하니, 백아린에게 나를 조금 살펴달라고 부탁했단다.
설명을 듣고서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백아린이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묘하게 나를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는데, 저런 내막이 있었다면 이해가 갔다.
컨디션이 나쁜 와중에도 나를 걱정해 준 홍연화에게 묘한 감응을 느끼는 와중.
잘 살펴주고 있다는 뜻으로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겠다는 백아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게 방금의 상황이었다.
“자, 이제 찍습니다~”
백아린의 신호에 자세를 바르게 했다.
– 찰칵!
백아린의 팔에 부착된 스마트워치가 홀로그램을 띄었다.
카메라 특유의 알람이 울리고, 홀로그램 속에는 백아린과 내 모습이 담겼다.
“끝!”
자세를 푼 백아린이 스마트워치를 조작했다. 홍연화에게 사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 띠링!
잠시 후 알람이 울렸다.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내진 듯하다.
‘이제 슬슬 갈까.’
사진도 찍었고 몸의 열기도 꽤 가라앉았다. 머리도 서늘해져 생각이 편해졌다.
상태도 괜찮아졌겠다, 이제 돌아갈 생각으로 몸을 일으킨 순간.
– 띠링!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백아린의 스마트워치가 미친 듯이 알람을 울렸다. 갑작스러운 알람 세례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하하핰!”
그러든가 말든가, 백아린은 뭐가 그리도 웃긴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소리가 사방팔방 퍼질만치 커다란 웃음이었다.
[백아리ㄴ 님?]“으흐흑… 아흐. 네, 별거 아니에요. 연화가 사진 보내줘서 고맙다네요.“
백아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고맙다고 전하는데 저렇게 많은 문자를 보내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본인이 저렇게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문자 내역을 볼 수 있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호기심을 꾹 눌러 담았다.
나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뭔진 모르겠지만, 백아린은 퍽이나 즐거워 보이는 기색이었다. 지금도 홀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평소 부드러운 분위기를 취하는 백아린에게는 찾기 어려운 태도였다.
사람이 원래 그랬다. 사람이 매사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마냥 이렇다 저렇다 나눌 수 없는 것이 사람이었다.
사람은 딱딱 설정이 정해져있는 NPC가 아니니까.
망해가는 세상에서 끝까지 플레이어의 곁을 지키던 1회차의 백아린.
플레이어의 등을 찔러 죽이던 8회차의 백아린.
더운 것을 싫어하고, 이상한 옛날 사탕을 좋아하는 백아린.
고작 게임에 불과할 지식들. 게임의 지식과 일치하는 세상.
게임 캐릭터 대로 작성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
‘……’
시간대가 밤이라서 그런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새벽 감성이라던가.
여러모로 복잡한 감상이었다.
* * *
– 띠링!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호감도]이하율→백아린
●●●●●○○○○○(50/100)
「호감」 「의문」 「혼란」
[「침묵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고독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