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66)
EP.66 온기
[제가 만들었어요]고개를 갸웃거린 이하율이 홀로그램을 띄었다. 자기가 적어준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투였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걸까? 아니, 정확히는 어느 부분이 충격적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홍연화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내렸다.
길게 늘어진 목도리가 보였다. 보드라운 감촉이 손아귀에 잡혀 여실히 전해졌다.
빨간색 목도리였다. 그녀는 목도리를 슬쩍 들어 목덜미에 가져다 대봤다.
‘이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빨간색이 있다. 유사해 보이겠지만, 분명 차이가 있는 서로 다른 빨간색이다.
목도리의 색은, 시야에 언뜻 비치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유사한 색상이다.
단순히 빨갛다 수준이 아니라, 붙여두면 유사하다는 인상을 느끼는 정도다.
그냥 우연이 아닌가 싶었지만, 자세히 살피니 색감 자체가 엇비슷했다.
멍하니 목도리를 바라보던 홍연화가 시선을 돌렸다.
침대 맡에 앉아있는 이하율의 미소를 본 순간 흡사 세상이 환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따위로 취급하는 듯한 밝기였다.
‘귀여워.’
미소가 어떻게 저리 해맑을까.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헤실헤실 미소를 띠고 있다.
홍연화는 애써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고마워… 하율이가 직접 만들어준 거야?”
[네]“언제 만든 거야?”
[어제 만들었어요]“어제…? 어제 뒤풀이 있는 날 말하는 거지?”
[네]홍연화는 생각에 잠겼다.
이하율이 병문안을 와도 되겠냐며 물어본 것은 뒤풀이가 한창 진행될 시간이었다. 즉, 해는 옛적에 떨어진 밤에서야 물어본 것이다.
그렇다면 병문안 선물은 언제 준비한 걸까?
그녀가 뒤풀이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도 모르던 아침에?
병문안을 허락받을지도 모르는 그전에?
아니면,
허락을 받은 뒤 뒤풀이가 끝났을 그 늦은 밤부터?
홍연화는 슬쩍 이하율의 안면을 훑었다. 헤실헤실 거리는 얼굴. 귀엽다…
‘아니, 그 부분이 아니라.’
눈 밑에 생긴 음영이 유독 시선을 끌어당겼다.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 전체에서 이전보다 피로한 기색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려 양손도 살폈다. 여러 훈련으로 상해 있는 양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없이 찢어져 회복된 흔적이 역력한 손이었다.
그리고, 생겼다가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잔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전투를 수없이 치러본 홍연화이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이나 창 따위를 휘두르고 막아내다 생긴 상처가 아니다.
주먹질을 반복하다 생긴 상처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침이나 가위 따위에 생긴 상처에 가까워 보였다.
‘……’
손에 올려진 목도리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이하율의 기뻐하는 미소를 보니 더욱 그랬다. 자신이 직접, 손수 하나하나 직접 짜준 목도리를 선물로 주고서.
그 선물에 고맙다고 하니 저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선물을 쥐여준 주제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돌연 가슴이 울렸다. 평소와는 다른 맥박이었다. 기운이 빠져 축 늘어져있는 몸은 그런 맥박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건, 죄책감이었다.
홍연화가 보유한 겁화는 참으로 지랄맞은 능력이다.
겁화의 장점을 꼽자면 역시 출력이다.
개화, 진화, 성화 등의 확장능력으로 챙기는 만능성도 있지만, 겁화를 대표하는 장점은 언제나 출력이었다.
문제는 그 출력이 너무 뛰어나 소유자에게 해를 입히는 게 참 지랄맞다는 거다.
출력을 잘못 끌어올렸다가는 소유자를 불태워 죽이는 또라이 같은 능력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지랄맞은 부작용을 지닌 겁화는 시건방지게도 소유자에게 간혹 시련을 내릴 때가 있다.
제까짓 고유능력 주제에 무슨 시련인가 싶지만, 겁화의 소유자가 성장하면서는 꼭 겪는 과정이다.
시련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가장 처음 들이닥치는 시련은 모두 동일했다.
소유자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과거의 기억을 멋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실수를 범했던 일, 남에게 상처 입힌 일, 스스로의 실수로 발생한 참상 등.
사소한 것부터 커다란 것까지.
또한 환상 따위를 보여주며 사용자를 괴롭힌다. 음습하기 짝이 없는 시련이다.
홍연화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제대로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차례차례 지나간다.
홍연화는 성격이 급하고 입은 험했지만, 천성 자체는 선한 편에 속했다.
주먹을 휘두른 적은 많지만, 그 상황들에는 주먹을 뻗을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쉽게 말해 처맞아도 싼 놈들이었다.
간혹 시설물 따위를 부순 것? 개인 사비로 충당할 법한 간단한 사고였다.
그 외에 죄책감을 느낀 기억이라 해봐야 마경 부근을 가문의 어른들과 돌아다니며 목격한 참상 정도다.
홍연화가 친 사고라고는 이게 고작이었다.
본연의 정신력과 인내심 또한 출중하여 이까짓 시련은 며칠 내로 가뿐히 넘어갈 수 있다.
– 아, 아아아아아악─!
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을 거다.
선물을 받아줘서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이하율의 얼굴과, 고통에 젖어 주변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지르는 이하율의 얼굴이 겹쳐졌다.
넘실거리는 불꽃에 홍연화의 안색이 시꺼멓게 죽었다.
– 아윽, 아아악…!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불타오르는 오른팔. 땅을 구르며 불을 꺼트리고자 노력하지만 그에 반발하듯 화염은 더욱 거세게 타오를 뿐이었다.
그녀는 본 적 없는 기억이다. 그렇다면 환상일 것이다.
…환상일까?
환상과 겹치진 너머의 현실.
“…! …?!”
이하율이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휘저었다. 홍연화의 기색을 느끼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었다.
팔 토시에 감싸인 오른팔이 휘저어졌다. 그 안쪽에 자리 잡았을 흉터가 보이는 듯했다.
보건실에서 그 흉터를 본 이후, 이하율이 겁화에 당한 피해자라고 확신했다.
그러한 흉터는 겁화로 밖에 남기지 못하니까. 과거 그가 소속됐던 보육원이 불에 타 사라졌다는 정보를 들었으니까.
그 이후로 죄책감을 품었다.
언젠가 그녀가 이끌 가문의 노골적인 피해자였다. 그의 신체적 장애가 겁화가 끼친 영향이 존재할지도 몰랐다.
최근 새로운 가능성도 떠올랐다.
이하율이 겁화를 사용했다.
조절의 문제인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오른팔에 한정하여 발현됐지만, 그것은 분명 겁화였다.
이하율의 가문의 피를 이은 인물일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이 죄책감을 품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진 못했다.
겁화는 혈연을 통해 전해지는 고유능력이다.
때문에 시조의 피를 이은 이들은 머나먼 방계라고 해도 본가에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정식적인 가(家)에 속해있지 않은 경우까지는 추적할 수 없다.
환각이 변화했다. 마찬가지로 홍연화로서는 마주한 적 없는 광경이다.
빈민가라는 말도 부족할지 모르는, 쓰레기 같은 건물의 내부.
어릴 적의 이하율은 인간도 못된 버러지들에게 연신 구타당하고 있었다.
애정을 바라고 있는 아이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며, 부모가 자식에게 해선 안될 욕설이 난무한다.
역겹다. 당장 저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었고, 저 손을 산 채로 찢어발기고 싶었다.
거칠어지는 충동. 겁화의 장작이 되기 좋은 감정이 넘실거렸다.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짓을 당하기 시작할 무렵, 어깨를 쥔 누군가에 의해 몸이 약하게 흔들렸다.
등에 닿고 있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 가까이서 느껴지는 달콤한 향기.
그를 깨닫자 환상이 가라앉고 현실이 떠올랐다.
“…! …!? …!!”
환상 속에서는 배가 갈라지며 죽어가던 이하율이, 침대 위로 기어올라와 조심스레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목이 꽉 막혔다. 가슴에 쇳덩이를 얹은 듯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홍연화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이하율을 바라봤다.
방금의 광경이 환각에 불과한 건지, 정말 현실의 기록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저 본능이 현실에 가깝다고 속삭일 뿐이다.
그 이상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의 홍연화라면 냉정을 되찾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겁화로 인한 감정의 증폭, 부작용으로 인한 감정의 증폭과 환각의 재생, 현실이라 속삭이는 직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시야를 좁히고 판단 능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죄책감에 그녀가 짓눌렀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 화르륵!
내면의 겁화가 타올랐다. 지금껏 웅크리고 있던 화염이 몸집을 불렸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퍼먹으며 겁화가 세차게 일렁였다.
거칠게 타오르는 화염이 사방으로 번졌다. 그 화염이 죄책감의 산으로 번져가려는 찰나.
“…!”
안절부절못하던 이하율이 홍연화를 덥석 껴안았다.
따듯한 온기에 파르르 떨던 홍연화의 몸이 덜컥 굳었다. 번져가던 겁화도 함께 정지했다.
아른거리던 환상이 일시에 걷어졌다. 흡사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감각이다.
이어 상냥한 손길이 머리에 얹히더니, 어딘가 어색해하며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길에 담긴 따듯한 온기와 감정이 머리를 통해 몸에 스며들자, 몸이 흐물흐물 녹아들 것만 같았다.
“아…”
탄성이 새어 나왔다. 죄책감이 미약하게 걷어지며, 비대하리만치 증폭되었던 감정이 함께 씻겨나갔다.
흔들리던 초점이 돌아왔다. 안개가 낀 듯 어지럽던 정신이 조금씩 제자리도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어느새 이하율을 꼭 껴안고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품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몸이 움찔 떨렸다. 슬쩍 팔에서 힘을 풀자, 품에 파묻혀있던 이하율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괜찬ㅎ아요? 에리얼 니ㅁ 불러올ㄲ요?]홀로그램이 다급하게 떠올랐다.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어…”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홍연화는 차분히 방금의 상황을 떠올렸다.
간단히 말해, 그녀는 방금 좆 될뻔했다.
하마터면 겁화에 먹힐 뻔했다.
겁화가 멋대로 보여주는 환상에 잡아먹히고, 겁화의 통제력을 상실할 뻔했다.
그 후의 결과는? 뻔할 뻔자였다.
그를 자각하자 순간 손끝이 싸늘하게 식는 아찔함을 느꼈다. 자칫하면 그대로 타죽을 뻔했다.
홍연화는 침을 꿀꺽 삼키며, 심신의 안정을 위해 품에 안긴 이하율을 거듭 끌어안았다.
바둥거리던 그가 품에 담기자 싸늘하게 식어가던 몸이 다시 달아올랐다.
“후우…”
한동안 그를 품에 안고 있자니 아찔한 여운이 점차 가라앉았다.
홍연화는 슬쩍 제 품을 내려다봤다. 버둥거리는 것을 포기하고서, 순순히 몸을 맡긴 이하율이 보였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겁화는 다시금 가라앉았다. 환상은 걷히고 사방팔방으로 일렁이던 겁화는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제거되지 않았다.
시련이라고 치부하는 감각은 여전했고, 방금의 폭주를 일으킬 뻔한 죄책감은 지금도 존재했다.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언젠가는 터질 폭탄을 뒤로 넘기는 것일 뿐이다.
방금의 죄책감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리 다짐하자 공포가 일렁였다. 혹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할 그의 모습이 연상되어 두려웠다.
하지만 가만히 두어서는 안됐다. 그녀는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무섭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또 그에게 숨기고 묻었다가는, 좋은 결과가 아닐 거라고.
“하율아. 해줄 말이 있어.”
때문에 진실을 밝혔다.
두 가지 가설 중, 어느 쪽이든 그녀의 가문에 책임이 있을 진실을.
품엔 안긴 이하율을 토닥이며 진실을 전했고.
“?”
이하율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 * *
“…이렇게 된 거야.”
저게 무슨 소리지.
홍연화의 기나긴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이야기를 끝내고는 이쪽을 긴장된 기색으로 바라보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전의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목도리 선물을 좋아하며 받아주길래 몽실몽실한 기분을 느끼며 행복하기도 잠시.
갑자기 혼자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안색이 시꺼멓게 죽어버리고, 기겁하며 무슨 일이냐 묻자 갑자기 꺽꺽거리더니 엎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환자랍시고 누워있던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니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밖에 있을 에리얼 님을 부르기 전에, 상태를 확인할 겸 달려들어 껴안아주자 어째서인지 상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껴안고 쓰다듬어주자 다행히 효과가 있었나 보다.
안도하며 에리얼 님을 부르려 가려는 찰나.
갑자기 품에 덥석 껴안겨 쓰다듬어지고, 기나긴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고개가 기울어지는 이야기였다.
뭐? 내 팔에 흉터가 겁화에 의한 흔적이라고? 혹은 내가 겁화 가문의 일원일 수도 있다고?
이전 세계를 기억하는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쪽 세계의 이하율을 생각하면 또 나도 제대로 모르는 이야기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목도리 하나 쥐여줬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방금의 이야기로 이해가 되는 것이 있었다.
어째선지 죄책감이 짓눌릴 듯한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흉터를 겁화에 당한 상처로, 가문에서 옛적에 버려져 힘들게 살아온 거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쪽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런 문제는 일단 뒤로 밀었다. 우선 지금은 긴장하다 못해 죽어버릴 듯한 기색인 홍연화를 달래주는 것이 먼저였다.
‘음…’
지금 홍연화가 저렇게 긴장하고 죄책감에 짓눌려있는 이유…
이 흉터를 겁화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내가 겁화 가문의 핏줄인데 보육원에 버려졌다고 생각해서…
‘아. 모르겠다.’
다 집어치우고,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제대로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응. 뭐든 물어봐 줘.“
홍연화가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했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홀로그램을 띄었다.
[제 팔의 흉터가 겁화로 인한 흉터인가요?]“…응, 겁화가 분명해. 이건 확신할 수 있어.”
[홍연화 님이 저를 상처 입혔나요?]“…아니.”
[홍연화 님은 저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고자 했나요?]“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그럼 괜찮아요]“…응?”
문답 끝.
그렇게 질문을 멈추자 긴장으로 얼룩져있던 홍연화의 표정이 얼빵해졌다. 보기 드문 표정에 킥킥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야기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야. 이건…”
홍연화가 떠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귀찮았다. 나는 자의적으로 홍연화의 품에 덥석 안겼다.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우.’
맨 정신으로 안긴 건 거의 처음인 거 같은데, 장난 아니게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 내게 홍연화의 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인 것 같다.
부끄러움을 참고, 품에 얼굴을 묻었다.
포근한 감촉이 몸을 감싸주자 몽실몽실한 감각이 떠올랐다.
“어어…”
공간지각으로 느껴지는 홍연화는 납득이 가지 않는 듯 보였다.
멍한 기색으로 나를 끌어안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지 멍하니 왜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죄책감도 여전한지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음…’
푹신한 품에 안긴 몸을 빼낸 뒤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홍연화 님에게는 잘못 없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겁화로 내 팔을 지졌다는 이야기? 홍연화 본인도 아니고, 그 일에 얽히지도 않았다.
가문의 일이다? 이건 그리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래도 제게 미안하다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요?]“응. 뭐든지 말만 해줘.“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운운한 질문에 홍연화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프지 말아 주세요]“…뭐어?”
내가 전한 부탁에 다시 멍청한 표정이 됐다.
이 부탁은 진심이다.
뒤풀이 내내 홍연화가 아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고.
방금 전에 홍연화의 안색이 시꺼멓게 죽었을 때, 그녀의 숨이 턱 막혔을 때는 정말 정신이 아득해졌다.
죄책감 가득한 얼굴을 느끼자니 나까지 마음이 아팠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반론은 안 받아요. 피해자인 제가 부탁하는 거니까 가해자는 부탁을 이행해 줘요.]반론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며 품에 얼굴을 꾹 묻었다.
다행히 이제라도 납득하였는지, 홍연화는 복잡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빨간색 목도리가 쥐어져 있었다.
좋다. 헤실헤실 풀어지는 얼굴을 다잡았다.
부끄러워 당장 도망가고 싶었지만, 홍연화가 나를 껴안고 있어야 정신적으로 안정된다는 변명거리가 존재해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홍연화의 잘못은 없다라…’
말없이 손길을 즐기며, 방금 내가 했던 대답을 떠올렸다.
홍연화가 나를 상처 입혔느냐.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괴롭혔느냐는 문답.
‘그건 딱히 상관없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답이었다.
설령 과거 홍연화가 나를 상처 입혔더라도. 내 손에 흉터를 새긴 장본인이 홍연화라고 해도.
악의를 가지고 나를 괴롭히고 핍박했었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안아주는 감정이 진짜라면 괜찮았다.
충분히 용서해 줄 수 있었다. 아니, 과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애정을 주고 있는가다.
그 외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지금의 손길은 너무나 소중한 감촉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과거의 잘못 따위 몇 번이고 용서해 줄 수 있었다.
남들에게 끼친 피해가 아닌 내게 한한 잘못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 생각하며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목도리 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의식이 점차 가라앉았다.
‘졸려…’
목도리의 반응을 기대하느라, 홍연화의 갑작스러운 발작을 진정시키느라, 갑작스러운 출생의 비밀(추리)을 듣느라 심신이 너무 지쳤다.
그에 저항하지 않았고, 의식이 끊어졌다.
* * *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측정도]▶능력치
…
▶고유능력
…
▶심상상태
「애정결핍」 : 애정에 몹시 목마르다. 그 정도가 극히 심하다.
…
[플레이어 보정 시스템:호감도]이하율→홍연화
●●●●●●●●○○(83▷84/100)
「?」 「부채감」 「미안함」 「고마움」 「걱정」
[「침묵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고독의 저주」의 해주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