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72)
EP.72 요람을 나온 병아리(2)
원작에서 플레이어의 활동 범위는 지구라는 맵 전체였다.
캐릭터가 원한다면 맵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1부의 주 무대는 시요람이다.
이건 권고사항에 불과하지 필수사항이 아니다. 시스템으로 플레이어의 탈출을 막진 않는다.
하지만 시요람을 박차고 나갔다가는 성장 그래프가 심연에 처박힌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7회차에서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시요람을 탈주해 봤고, 1회차에 비견되리만치 개같이 망했다.
성장은 턱없이 느리지, 한때 특례입학이었다는 이름값인지 웬 암살자들과 드잡이질까지 벌여야 했다.
뒤를 지지해 줄 세력은 없고, 변절자로 추정되는 것들이 목숨을 노리고, 그를 수습하고 상처를 돌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느린 성장이 또 느려졌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 안다던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결과는 한 회차를 투자하고서야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1부는 시요람에 곤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이론상 가장 빠른 성장을 이륙하기 위해서는, 4년 내내 시요람에 박혀 성장의 가호를 쪽쪽 빨아먹어야 했다.
2부에 시요람을 졸업하고서 플레이어는 맵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때쯤 가면 세상에는 암운이 드리우겠지만, 어찌 됐든 이동은 가능하다.
하지만 간혹 이동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정확히 말해서 시스템이 강제로 막아둔 장소는 어지간해서는 없었다.
대부분은 캐릭터의 조건 혹은 스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시로 이전 회차들에서는 출입이 불가했던 부유섬을 금강전사는 강제로 돌파해 침입하고, 추락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조건만 맞춘다면 어지간한 맵은 모조리 들쳐낼 수 있다.
– 덜컥
순간 몸이 움찔거렸다. 사소한 삐걱임이다. 보통이라면, 어지간한 초인도 느끼지 못할 미묘한 불협화음에 내 귀에는 아주 잘 들렸다.
슬쩍 주변을 살폈다.
고급스러운 열차 내부의 정보가 전해졌다. 보통 생각하는 구조와 다르게, 각 좌석이 방처럼 나누어진 구조였다.
나로서는 떨떠름하리 만치 비싼 고급 좌석이었다. 하지만 손아귀에 담기는 손잡이의 감촉이 영 어색하지는 않았다.
기숙사에서 느끼는 감촉과 비슷했다. 나도 이런 고급 물품에 익숙해진 걸까.
에든버러 게이트 터미널에서 나온 뒤, 곧장 북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에든버러 부근의 히든피스는 원작에서 찾지 못했고, 관광 목적도 없었기에 대충 공간지각을 쓱 훑고 곧바로 출발했다.
현지 시각으로는 새벽 4시 경이다.
햇빛은 모습을 감춘 시간대였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시요람과 스코틀랜드 지역은 시간차가 나니까.
날짜 상으로는 벌써 하루가 지나버렸지만, 시요람으로 귀환하는 시각은 시요람 기준으로 하면 되니까 문제없었다.
‘…넓다.’
열차 밖의 정보가 무수히 변화하는 중이다.
도시로 보이는 구역이 지나고, 푸른 풀잎의 향연이 펼쳐지는 자연도 지나갔다.
쉬지 않고 열차가 지나감에도 새로 들어오는 정보가 끝이 없이 몰아쳤다. 언뜻 비슷해 보이면서도, 사소한 곳에서는 차이점이 존재하는 정보였다.
그런 정보를 계속 받아내고 있자니, 새삼스레 세상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원에서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때와의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가린 구름도 없었고, 떠오른 해와 달과 별도 없었다.
당시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신기했고, 아무리 걸음을 옮겨도 벽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또 나 말고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보다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 너무나 질투…
– 짝
쓸데없는 감성팔이가 이어지기 직전에 뺨을 후려쳤다. 따끔함과 함께 멍해지던 정신이 돌아왔다.
기겁을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진짜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나.’
화끈해진 뺨을 문지르고 있자니 걱정이 밀려왔다.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느껴졌다.
물론 본래의 나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 멘탈이 개복치에 버금가는 병신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요즘 들어서 유독 심해진 듯한 느낌이다.
겁화를 사용해 본 이후로는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밤중에 혼자 수련하고 있을 때면 갑자기 눈물이 뚝뚝 나오기도 한다.
‘…위험한가?’
며칠 전에 리아나 교수와 함께 치른 심리검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를 보고 시간을 쪼개서 정신병원에 다닐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
정신병원에 다닌 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갑자기 미쳐가지고 목매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터.
초인에게 있어… 정확히는 한창 활동 중인 영웅에게 있어 정신건강은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였다.
일반인이 아닌 초인이다. 개인이 가진 힘의 궤가 다른데, 그런 이들의 정신이 회까닥 돌아가지고 날뛰었다가는 피해가 조금 나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도 적당히 돌지 않고 제대로 돌아버리면, 본격적으로 피해를 야기하는 빌런이 될 수도 있어 영웅에게 있어 정신건강의 관리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구비되어 있던 물병으로 뺨을 꾹꾹 문지르고 있자 자연에서 도시로 접어든 것이 공간지각으로 느껴졌다.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
.
.
내 최종 목적지는 시프나하.
목적은 그 부근의 던전에서 획득 가능한 고백의 목걸이다.
하지만 고백의 목걸이 하나만을 위해 주말을 버리고 나와, 그것만 회수해 가기에는 굳이 이 땅을 밟은 시간이 아깝다.
또 시프나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아니다.
주말을 통으로 소비해, 여기서 쉬이 얻을법한 히든피스를 몇 개 챙겨가자 계획하고 나왔다.
히든피스, 상급 아티팩트 「호수의 보옥」
푸른 보옥의 형태를 띤 아티팩트로 받아들인 마력을 수기(水氣)로 변화시킨다.
이 수기는 정화와 회복의 성질을 지녀, 사실상 반영구적인 치료약의 기능을 한다.
솔로잉 전략을 고수할 때는 이런 회복계열의 아티팩트가 무척 중요한데, 호수의 보옥은 효과가 출중해 후반 회차에서도 자주 찾은 아티팩트다.
위치는 기억한다. 스코틀랜드 북부의 한 잡화점에서 떨이로 판매─
“수정구? 그런 공예품은 다 팔린 지 몇 년 됐소. 수요도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는 거 떨이로 간신히 팔았지.”
…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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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피스, 상급 아티팩트 「주살의 창」
과거 혼란기에 활동하던 어느 영웅의 애장.
몬스터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영웅에게 붙들려 전장을 떠돌던 무장은 여러 우연이 겹쳐 저주에 가까운 고유함이 깃들게 된다.
창에 의해 상처가 생길 시, 상처에 악기가 서린 기운이 뿌리내려 회복을 방해하고 상처를 해집는다.
그 과정에서 악기가 과하게 묻을 시 생명에 치명적인 합병증마저 유발한다.
섬뜩한 설명이지만, 무언가를 죽일 때의 효과는 훌륭하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한번 찔리고 베이면 영구적인 손실을 유발한다.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맵 지형의 작은 무기 판매점 구석에 처박혀있다. 저주에 의해 빛을 잃은 무장의 기능을 사람들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9회차 이후로 자주 찾─
“아, 그렇군. 아마 십 년 전쯤에는 여기가 무장 판매도 겸하던 대장간이었네. 실적이 좋지 않아 재고를 처분하고 자리를 옮겼다고 들었지.”
엑…
.
.
.
…히든피스, 재료 아이템 「바이콘의 뿔」
희귀한 환상종인 바이콘의 부산물로, 그 뿔에는 사특한 기운이 서려있어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 아이템이다.
까다로운 것에 불과할 뿐, 제작자의 실력만 있다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제작 기술은 입문도 제대로 못한 허접이지만, 계획 상으로는 내게 제작 기술을 전수해 줄 사람이 있다.
그 사람한테 의뢰하면 적당한 무장이라도 만들어 줄 터.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다가 내다 팔아도 되고.
획득 방법은─
“이 정도에 팔겠네, 어떤가? 비록 이쪽에서는 장식용으로 가지고 다닐 것에 불과하지만, 그대들 사정에서는 꽤나 쓸모 있는 재료일 터이니 이 가격이면 적당하지 않겠나?”
‘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앞선 두 번의 실패를 생각하기 이전에, 바이콘의 뿔은 얻고 싶어도 얻기 힘든 종류의 히든피스였다.
나는 고개를 붕붕 끄덕인 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기술력이 발전해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지폐를 선호하더라.
“좋은 거래였네.”
– 끄덕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가격이 좀, 내 기준에서는 많이 비싸긴 했지만, 이 뿔로 만들어질 무장에 비해서는 값싼 가격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흑암색이 특징인 뿔을 덥석 집─
– 우웅!?
손아귀에 닿은 순간, 바이콘의 뿔이 기겁하는 듯한 울림을 토했다. 마치 절대로 닿아서는 안될 무언가에 닿은 듯 치명적인 울림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메스꺼움을 참고 애써서 잡았더니, 근본적인 무언가가 저 뿔을 부정했다.
뿔과 내 기운이 몇 차례 부딪혔다. 뿔이 위태로이 파르르 떨리더니, 삽시에 가루가 되어 와르르 무너졌다.
“……”
“……”
판매자의 손아귀로 수북히 쌓인 시꺼먼 가루가 불어온 바람에 사르르 휘날렸다.
때아닌 침묵이 내려앉았다.
판매자의 눈썹도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에 손아귀에 남은 가루의 티끌을 문지르더니,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품에는 문제가 없었네.”
아니 시발. 그럼 내 쪽이 문제라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세상이 밉다…
* * *
[「미인박명의 저주」가 악운(惡運)을 불러오며, 불행(不幸)이 찾아옵니다] [「미인박명의 저주」에 의해 생기가 소모됩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