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1)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11화(112/668)
〈 111화 〉 5장. 아카데미의 봄날 (4)
* * *
원작 주인공은 떡볶이 중독이다.
떡볶이라는 음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히로인과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항상 떡볶이를 먹고, 여럿이서 함께 모이는 자리면 언제나 떡볶이를 먹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랑 어지간히 친해지는 게 아니면 무난하게 파스타나 초밥, 조금 지갑 상황이 좋으면 스테이크하우스를 가기 마련.
그런데 주인공은 시작부터 우직하게 떡볶이를 먹겠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금발벽안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처세술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작가가 떡볶이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다.
‘떡볶이 묘사 나올 때면 쓸데없이 자세하게 서술했지.’
내가 국뽕 라노벨 소설을 보는 건지, 아니면 저기 떡볶이 미식 평론가의 수필을 보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구체적이고 장황하게 서술했었다.
오죽하면 한 편 내에서 떡볶이 관련 서술이 히로인과의 티키타카보다 더 많았으니, 독자들이 떡볶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글에 떡을 발라놓았느니, 방지턱이 떡져있다느니 말한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부분은 읽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한 편 나오는 글이 떡볶이 찬양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심지어 연참도 없었던 순간 진지하게 하차가 마려워지는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썼는데 한 번은 읽어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고, 결국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의 떡볶이 취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
작가는 떡볶이에 환장한 사람이었다.
고로, 유미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어?”
“처음은 떡볶이라고요.”
유미르는 굵직한 떡을 젓가락으로 들고 앞접시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그걸 길쭉하게 뻗은 뒤, 떡의 끝부분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처음은 떡볶이지. 나는 튀김이지만.”
나는 그에 오징어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링 형태로 말려있는 튀김은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드는 것보다 살짝 구멍이 컸고, 앞접시에 살짝 떡볶이 국물을 부었다.
“……흐음.”
유미르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나는 오징어튀김의 안쪽을 젓가락으로 빙글빙글 휘저었다.
“……!!”
유미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 떡을 입에 오물거리며 먹다가, 잠깐 사레가 들린 듯 떡을 끊고 앞접시를 내려놓았다.
“쿨럭. 지금 뭐하는 거예요?”
“소스 묻히는 중.”
젓가락으로 링의 안쪽을 휘젓는다.
젓가락 끝에 떡볶이 국물이 흥건하게 묻어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걸로 오징어튀김을 좌우에서 가볍게 붙잡았다.
“……선생님?”
“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밥 먹잖아. 너랑.”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오징어튀김을 젓가락으로 들어 한 입 크게 집어넣는다.
배달 덕분에 적당히 식어서 입천장에 데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나는 튀김을 씹으며 유미르에게 가볍게 눈을 으쓱였다.
“왜.”
“…….”
유미르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더니, 곧 튀김에 손을 뻗었다.
카샷.
대놓고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그녀는 고추튀김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마치 소태를 씹는 것처럼, 쩝쩝거리지는 않지만 일부러 크게 씹는 것처럼 튀김을 씹었다.
“맛없어?”
“아니요. 맛있죠. 저 원래 이렇게 먹어요.”
“되게 복 없게 먹는다. 너 나중에 먹방 같은 건 절대 못 하겠어. 시청률 팍팍 떨어질 것 같아.”
“제가 뭐 예능 나갈 일 있겠어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나는 큼지막한 떡볶이 하나를 잡아 앞접시에 올린 다음, 떡을 어묵 사리로 감쌌다.
국물에 젖었어도 여전히 탱글탱글한 식감이 한눈에 보였고, 나는 어묵으로 감싼 떡을 크게 베어 물었다.
“…….”
“또 왜.”
“가위 있어요?”
“있지.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식탁에서 가위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도구가 필요하면 쓰는 게 인간이죠.”
유미르는 내게서 가위를 받더니, 냅다 길쭉한 튀김들을 콱콱 자르기 시작했다.
튀긴 어묵은 반으로 갈라지고, 김말이는 안에서 당면을 옆으로 흘리며 해체되었고, 하나 더 있던 고추튀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난자당했다.
“그러고 보니 안 자르고 먹었네. 떡도 자를까?”
“절반만 자를게요.”
유미르는 굳이 나를 바라보며 계속 가위질했으나, 나는 딱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은유’를 하는 걸로 내게 시위하는 거라면, 이쪽이 훨씬 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선수다.
“배고파서 먹다 보니 정신이 없었네. 잠시만.”
나는 부엌 선반의 길쭉한 유리컵을 두 개 꺼낸 뒤, 옆에 함께 딸려온 자두 맛 음료를 컵에 따랐다.
“매운 건 괜찮아?”
“괜찮, 아요. 선생님은 매운 것도 제법 잘 드시네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매운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단련되었거든.”
“평소에는 잘 안 드시는 것 같던데?”
“아내가 매운 음식을 좋아해.”
유미르는 음료를 마시다가 그대로 손이 굳었다.
“아내분이 매운 걸 좋아하시는구나. 그렇구나아.”
자, 2라운드 시작이다.
“얼마나 좋아하세요?”
“죽는다 돈까스 완식 가능할 정도로.”
“……그거, 엄청 매운 걸로 악명 높은 거 아녜요?”
“맞아.”
엄청 매운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아내, ‘총수’는 완식에 성공했다.
그 외에도 온갖 매운 음식들을 즐겼고, 나는 총수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위장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혹시나 못 먹을 것 같으면 이야기해. 너는 이능력자니까, 나중에 해결 방법 하나 알려줄게.”
“뭔가 있어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할 건 아니고.”
“으음…. 알았어요.”
유미르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떡을 씹어 삼켰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좋은 거 하나 알려주시니까, 저도 하나 좋은 거 알려드릴까요?”
“좋은 거? 뭔데?”
“음, 이능력에 관한 거?”
유미르는 음료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뒤, 혀로 입술을 축였다.
뭔가 요염해 보이는 건 그냥 착각일 것이다.
그냥 입술이 화끈거려서 혀로 닦은 거겠지.
“막 이런 이능력도 있을 수 있다, 뭐 그런 거죠.”
“위키에 등재되어있는 이능력을 말하는 거야?”
“글쎄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아하.
지금 자기랑 거래하자는 거다.
내가 도깨비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유미르는 백금태양으로서 악마들로부터 빼앗은 이능력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거다.
“재미있네. 그래서 유미르 학생이 생각해낸 이능력은 뭐 어떤 게 있어?”
“음….”
유미르는 앞접시를 내려놓은 뒤, 상체를 내게 살짝 가까이하며 씩 미소를 지었다.
“공간이동?”
“…….”
뭔가 듣기만 해도 엄청나다.
“좌표를 찍고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이에요.”
“유미르 학생이 그게 가능하다고?”
“제가요? 에이, 설마요. 그런 게 가능했으면 제가 막 여기저기 나타났겠죠.”
유미르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살짝 웃고 있는 게, 딱 봐도 ‘유미르는 불가능하지만 백금태양은 가능하다’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도깨비도 공간이동은 불가능할걸요?”
“비슷하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머, 진짜요?”
“하려고 하면 뭔들 못 하겠어.”
영체화를 통해 이동해서 나타나면 그게 공간이동이지.
마나는 정말 더럽게 많이 잡아먹겠지만.
“세종섬에 있던 도깨비가 30분 뒤에 제주도에 나타난다거나, 그런 거지.”
“30분이라…. 흐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 진짜 1초 만에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술을 말하는 거예요.”
“그것도 가능할걸?”
“진짜요?”
“아마도.”
마력의 9할을 쓰고 변신이 바로 풀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쓴다면, 내가 갈 목적지는 단 한 곳으로 정해져 있다.
총수의 곁.
‘모순이지.’
다른 걸 다 내던지고 총수의 곁으로 도망친다는 건 상황이 위험하다는 건데, 정작 그렇게 이동을 하려면 내가 가진 마력의 9할을 전부 다 써야 한다.
긴급 탈출장치 같은 게 아니라, 사실상 총수를 만나러 가는 목적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술이다.
이 능력은 궁기나 다른 이들의 마력으로부터 보조를 받아도 소용이 없더라.
유감스럽게도.
하지만 유미르와 같이 마력이 넘쳐흐르는 존재라면?
“유미르 학생. 공간이동이 어디 쉬운 줄 알아? 좌표계산도 해야 하지, 이동할 공간에 물체가 있으면 안 되지, 무엇보다도 내가 온전히 그곳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동해야 한다고 확신을 해야지.”
“…….”
“왜?”
“아뇨. 되게 이능력자처럼 말씀하시는구나~ 싶어서.”
“소설이랑 영화 자주 보면서 든 생각이라서 말이야. 이능력자가 아니라고 해도, 이능력을 가지는 걸 상상해볼 수는 있잖아? 안 그래? E급인 유미르 학생이 공간이동 능력을 쓸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말이야.”
“흐응….”
유미르도 나도 서로 가진 능력을 이 자리에서 보여줄 생각은 없다.
“도깨비를 만난다면 한 번 물어봐야겠어요. 정말로 공간이동이 가능한지.”
“유미르 학생이 도깨비를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잘 물어봐. 혹시 알아? 유미르 학생이 뭔가 아이디어만 제공해줘도 도깨비가 보따리 확 풀어줄지도.”
“도깨비가 보따리를 히어로 지망생에게 풀어줄까요?”
“빌런이나 악마가 아니라면 뭔들 못하겠어? 자기처럼 악질인 빌런들 숙청하고 다니겠다고 하면, 옳다구나 하면서 도와주지 않을까?”
“도깨비도 노리는 게 있을 거 아녜요.”
“그건 유미르 학생이 알아서 답해야지. 히어로 지망생에게 뭘 바라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도깨비와 백금태양으로 만난다면, 서로가 유용하게 쓸 기술을 교환하겠지.
서로가 윈윈.
이상적인 관계다.
“흐응….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공간이동 같은 게 있으면 편리하긴 하겠네요. 만약 제가 그걸 배우면 선생님 집에 막 아무 때나 들어오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녜요?”
“주거침입으로 신고당하고 싶어?”
“그럼 선생님은 만약에 공간이동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데요? 아내가 있는 곳?”
“음…. 가고 싶은 곳이라.”
나는 유리잔을 가볍게 들며 유미르에게 들었다.
“울릉도.”
“……왜요?”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2박 3일 넘게 애국할 수 있으니까.”
“…2박 3일?”
“어.”
유미르는 얌전히 내 눈치만 보며 떡볶이를 오물거렸다.
“2박, 3일 동안…애국?”
“당연하지.”
“그, 그렇게나…? 그게, 가능해요?”
“그래. 나 이래 보여도 말이야.”
나는 느긋하게 음료를 마시며, 유미르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크리스마스에 아내랑 애국 여행 하러 갔다가, 새해 해돋이 보고 나온 남자야.”
자신 있으면, 진지하게 덤벼보시든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