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18화(119/668)
〈 118화 〉 5장. 증명의 전장, 울릉 (3)
* * *
“도깨비 말이에요, 아마도 변신을 해제하면 막 알몸이 되거나 그런 거 아닐까요?”
환복과 샤워를 마친 뒤.
“왜 그렇게 생각해?”
“변신을 푸는 장면이 지금까지 한 번도 남들에게 걸린 적이 없으니까요.”
“그거랑 알몸이 무슨 관계야?”
“알몸이 되니까 남들 앞에서는 기를 쓰고 변신을 해제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안 그래요? 선생님?”
나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유미르와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런 걸 알면 과연 도깨비가 그걸 알아챈 사람을 살려둘까?”
“죽기 싫으면 얌전히 입을 다물어라?”
“도깨비방망이로 강제로 입을 다물게 하지 않을까?”
“그러면 확 깨물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유미르 학생의 이가 얼마나 단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도깨비방망이도 엄청 단단할걸?”
“……칫.”
유미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에 묻은 물방울을 내게 튕겼다.
“와. 반응하는 거 봐. 이제는 숨기지도 않네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인데?”
“그게 일반인인가요?”
“그럼. 비능력자인걸.”
“하.”
나는 그걸 여유롭게 피한 다음, 태극워치와 스마트폰을 통해 커뮤니티를 뒤진 자료를 전부 유미르에게 보였다.
“이거 한번 봐볼래?”
“뭘 보라는…흣…?”
유미르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세상에는 이런 미친놈들이 많아.”
내가 유미르에게 보여준 사진은 두 가지.
금부도사의 사진과 유미르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찍’힌’ 사진이 서로 비슷한 각도에서 겹쳐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이 정도로 겹치는 건 ‘비슷하긴 한데?’라는 정도까지인 것 같아. 세상 사람들 참 악질이라니까. 유미르 학생 같은 사람이랑 이런 히어로랑 사진 겹치면서 막 오해하게 만들고.”
“아니, 이렇게까지…?”
“그럼. 세상에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이 많은데.”
다크웹의 존재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안에서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는 모르는 유미르로서는 이런 세상의 더러움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걸 조심해야 해. 언제 어디서, 누가 이런 짓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릴지 모르거든. S+급 이능력자, 마법소녀 금부도사와 유미르 학생의 체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왜 도깨비가 그렇게 기를 쓰고 자기체형을 가리려고 한 지 이제는 알겠네요.”
유미르는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진작 알려주셨으면 갑주 형태로 돌아다녔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백금태양. 괜히 한국의 미와 얼을 살린다고 이런 모습을 해서. 사실은 막 이것도 도깨비가 펼쳐놓은 함정인 거 아녜요?”
“함정?”
“이런 식으로 정체가 드러날 수 있으니까, 자기네 결사의 도움을 받으라는 식으로 현혹하려고.”
“아마도 그렇겠지? 도깨비가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잖아. 빌런인걸.”
숨길 생각도 없다.
한국의 얼과 미를 바탕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 한복 코스튬을 입는다?
애초에 유미르가 자기체형을 드러내는 걸 본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정체를 누군가는 밝혀낼 거라고 생각은 했다.
이거 도촬 아님?
그런 것보다 사회 정의가 더 중요하거든요!
아닌 것 같은데. 얘 외국인임. 외국인이 저런 한국적인 코스튬을 입을 리가 없음.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가 있음.
뭔데요?
금부도사가 더 큼ㅋ
단지 아직은 ‘의혹’일 뿐.
만약 자료가 더 쌓이고 증거가 모이기 시작하여, 언젠가 ‘빼박’이 되면 그때 대처하기에는 이미 늦다.
“갑자기 유미르 학생 번호로 스미싱 같은 게 날아갈지도 몰라. 막 ‘이거, 너지?’라면서 사진 하나만 덜컥 보내는 거. 그런 거 날아오면 조심해. 그 사람은 사실상 유미르 학생이 금부도사라고 확신을 두고 움직이는 걸 거야. 오해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요?”
“스미싱 범죄자를 처리해달라고 도깨비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도깨비가 그런 것도 해줘요?”
“도깨비에게 있어 그런 게 꼭 필요한 행위라면, 도깨비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겠지. 세간이 바라보는 도깨비는 빌런 처형인이지만, 도깨비의 행동 목적은 어디까지나 ‘결사의 이익’이니까. …이 모두, 도지환 사서의 추측이다. 이 말씀.”
“…….”
유미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도촬 사진과 히어로로서의 자신을 체형 비교분석까지 하는 걸 직접 눈으로 본 만큼, 자신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자들이 이런 짓까지 벌인다는 걸 눈으로 본 만큼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에서 혹시나 수영 실습 같은 거 하면 조심해야겠네요….”
“커리큘럼에 그런 거 있는 것도 다 이런 뒷조사를 위한 거야.”
“정말요?”
“그럼. 마냥 수영을 통해 물에서의 생존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어?”
아카데미는 생각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치졸하고 잔인한 곳이다.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에 대한 모든 것을 침해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니까.
“역설이지. 정체를 드러낸 히어로는 수영장에 가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지만, 정체를 숨기는 히어로는 수영장에 한 번 놀러 갔다가 찍힌 사진으로 정체가 탄로 나고 그러니까 말이야.”
“…무서운 세상이네요.”
“대격변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연예계 파파라치들이 전부 이능력자를 대상으로 돌아다니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약과다.
정체를 숨긴 이능력자를 조사하는 건 파파라치뿐만 아니라, CIA나 국정원과 같은 첩보기관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S+급 이능력자. 일단 원리는 모르겠지만 악마가 된 이능력자를 이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되돌리는 건 확인. 이능력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악마의 이능력을 없앨 수 있다는 건 확인.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의 관심이 가득한데, 이능력을 빼앗아 하나의 물질로 만들어내거나 자기 것으로 온전히 가질 수도 있다? 어우, 난 그런 히어로 있으면 나라도 다 관심 가질 것 같은데.”
“도깨비마저도 자기 정체를 드러낼 걸 각오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이능력자라….”
“그래. 나름 자기 나름대로 조심한다고는 하겠지. 하지만 그 조심한다는 정도보다 더 조심해야 해.”
나는 자세를 고쳐 앉은 다음, 도깨비의 사진을 꺼냈다.
“유미르 학생이 얘기했지. 도깨비가 변신을 해제하면 알몸이 될 거라고. 그럼 질문. 도깨비가 사람들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게 부끄러울까?”
“……아뇨.”
유미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깨비는…자기 몸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래. 알몸이 되는 걸 부끄러워하는 자가 아니야. 진짜로 걱정하는 건 그 몸 사진을 이용해서 도깨비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사람들이지. 최소한 그런 상황이 되면 얼굴은 가릴 거 아냐.”
“얼굴을 가리는 대신, 몸을 보고 누군지 도깨비를 찾아낼 것이다?”
“그래. 이건 우스갯소리인데.”
결코.
“얼굴만 확실하게 가릴 수 있다면, 아마 움츠리는 것 없이 당당히 허리에 손까지 올릴걸? 어때?”
알몸이 부끄러워서 남들의 눈을 피해 변신을 해제하는 게 아니다.
“유미르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
“…….”
잠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던 유미르는.
“…인정.”
내 말에 깊게 수긍했다.
* * *
늦은 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아카데미 대학생에게 통금은 없다.
“바래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늦은 밤에 여대생 혼자 집으로 보내면 남자 매너가 아니지.”
“…흥. 저 이능력자거든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갑자기 시가지에서 꽁냥거린다고 S급 악마가 나타나고, 그걸 제압하는 금부도사가 나타나는 세상이라고.”
“그리고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위험한 사람도 나타날지도 모르는 세상이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에 가까워졌다.
교직원은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구역이었고, 앞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남녀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자기, 정말 괜찮아? 아픈 건?”
“괜찮아. 다 나았으니까. 나는 누나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기숙사 앞, A급 이능력자인 파이어너클과 그의 여자친구로 보이는 둘이 꽁냥거리고 있었다.
당장 몇 시간 전에 큰 사고를 당했지만, 살아있으니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리라.
“저기. 혁아. 오늘…안 들어가면 안 돼? 관사의 내 방으로 가자.”
“누나?”
“나, 너한테 사과하고 싶은 게 있는데…. 교직원은 학생들 기숙사 못 들어가도….”
“누나.”
파이어너클은 여자친구의 손을 붙잡으며 헤실거렸다.
“가죠. 당장.”
“아, 정말…!”
둘은 깨를 뿌리며 사라졌다.
“이야, 애국각이다. 애국각. 저러다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불꽃 펀치 날리는 게 아닐까 몰라.”
“무슨 말을 그렇게. …아니, 물어볼게요. 그러면 도깨비 아이가 생기면 아이는 어떨 것 같아요?”
“도깨비의 아이? 흐음…. 누가 아이를 낳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 봐. 시간이 많이 늦었네.”
“…….”
유미르는 뭔가 미련이 남은 듯,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 선생님. 오늘 여러모로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다음에도 ‘특별과외’, 하러 갈게요.”
아아.
그런가.
그런 설정이구나.
“당연하지. 나는 유미르 학생이 사서에 관심 있으면, 얼마든지 앞으로도 특별과외를 해줄 생각이야.”
“사서인가요?”
“그럼. 도서관의 사서는 최강이거든.”
“도, 서관. 흐음…. 알겠어요. 그, 그런데.”
유미르는 결심한 듯, 나를 올려다보며 태극워치를 가리켰다.
“혹시, 다음 주말에 시간 되세요?”
“다음 주말? 그때면….”
“저 지방 실습 다녀온 뒤인데.”
유미르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저, 어디 구경하고 싶은데요. 1박 2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나와의 여행을 제안했다.
“울릉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