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3)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23화(124/668)
〈 123화 〉 5장. 증명의 전장, 울릉 (8)
* * *
백설희는 히어로다.
그리고 나는 빌런이다.
따라서 빌런이 히어로를 현혹하는 건 빌런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는 사기꾼이다.
백설희에게 사기를 치고, 나중에 사기가 들키면 ‘사기당한 놈이 잘못한 거지!’라고 적반하장으로 소리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기꾼들은 자신을 포장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설령 자기 주변을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S급 히어로를 상대로 어쭙잖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진실을 교묘히 절반 정도는 숨기며, 백설희 스스로 오해하고 혼자 생각하여 소위 ‘삽질’을 하게 만든다.
“설희 씨. 저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평소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화두를 던졌다.
백설희는 나를 향해 경계하는 눈길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 말을 꺼내기 전에 던진 말을 곱씹는 것 같았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내가 원한다면 저는 기꺼이 하늘에 있는 별도 달도 따줄 수 있습니다.”
“별이랑 달이 양다리 불륜은 아니잖아요.”
“그게 아내가 원하는 별과 달이라면, 그렇게 해야죠.”
백설희의 얼굴에 혼란이 스친다.
이상한 게 맞고, 비상식적인 게 확실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인 게 분명하다.
아무리 나로서는 이세계라고 한들 원래 세계에서도 통용되지 않을 말이며, 그런 짓을 했다가는 미친 인간이라고 취급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이 세상은 ‘뭐든지 그럴 수 있다’라고 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얼음 그물로 비행기의 이륙을 막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랑 사랑을 나누는 걸 보고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까 봐.
“제 아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일단 이해는 했어요. 지난번에 아주 짧게나마 저 자리에서 확인도 했으니까. 하지만.”
백설희는 내 왼손을 가리켰다.
“그런 문제로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계실 건가요?”
“설희 씨.”
“어쩌다가 왼손을 다친 거죠?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
“정말로 욕실에서 사고가 난 건가요? 어디 부딪친 게 사고로 부딪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부러진 건가요?”
이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제가요. 도깨비인데요. 강원도에서 백설희 씨랑 싸우다가 왼손으로 주먹을 받아냈다가 그만 손이 부러졌어요. 당신 때문이니까 고소해도 되죠?
……놓치지 않겠다, 도깨비!!
아무리 백설희가 순둥순둥한 면이 있다고 해도, 도깨비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사나워지는 여자다.
내가 도깨비라고 밝히는 순간, 이 여자는 바로 나를 감금하고 구속하여 지하실에 처박은 다음 자기 마음을 가지고 논 것에 대해 화가 풀릴 때까지 나를 묶어둘 사람이다.
“…부부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솔직히 말해봐요.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안 할게요. 어디 사고 난 거예요, 아니면 맞아서 그런 거예요? 진짜로 솔직하게.”
“……맞았습니다.”
너한테.
“정확히는 때리려고 하던 걸 막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니!!”
백설희는 바로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런…!”
“그. 설희 씨. 진정하고….”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백설희 씨.”
내가 성까지 붙이며 목소리를 깔자, 백설희는 주춤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원인을 따지고 보면 설희 씨 지분도 조금 있습니다.”
“제, 제가요…? 아앗, 혹시…!”
백설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제가 연락한 것 때문에…?!”
히어로라서 그런지, 아니면 천성이 원래 그런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시너지를 안 좋은 방향으로 일으킨 건지.
백설희는 내가 얻어맞은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사실이다.
“뭐, 설희 씨 때문이기는 하지만, 설희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랑 조금 다릅니다. 아내가 화를 낸 건 설희 씨랑 그런 관계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상식을 초월하라.
“…백설희가 심야에 이렇게 연락하고 있는데, 세종섬에 있었어야지 왜 서울로 올라와서 나를 만나러 왔냐고 따진 거거든요.”
“예?”
눈동자가 혼란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죠? 저도 참 그랬어요. 하하. 아내가 참…특이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자기만의 세상이나 에고가 조금 강한 사람이라.”
말을 하는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가는 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더 실감 나게 말할 수 있었다.
“모처럼 만나러 서울 올라갔는데, 차라리 오지 말고 백설희 집으로 가든 울릉도 펜션에 가든, 아니면 작정하고 집으로 몰래 초대하든 그랬어야지 하면서 구박하더라고요. 하하….”
“아니, 그, 진짜요…?”
“그랬습니다.”
속이 후련한 듯 한숨을 한 번 푹.
“…어디 가서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내의 명예도 있으니까.”
“아니, 그런 명예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설희 씨한테 정말 미안하고 죄송해요. 지금 계속 설희 씨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 사과했다.
나중에 혹시 도깨비로 마주쳤을 때 지금까지 가지고 놀았냐고 따진다면, 그때 ‘4월에 울릉도에서 만났을 때 이용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라고 따질 거다.
쓰레기 같은 짓?
빌런이 쓰레기 짓을 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그, 일단 왼손을 좀 줘볼래요?”
“왼손은 왜…?”
“한 번 볼게요. 제가.”
백설희는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착 가라앉은 눈에는 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
백설희는 바로 내 왼손을 잡더니, 하얀 손으로 꾹꾹 누르며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백설희의 마나가 내 왼손을 타고 흘러오는 게.
완전히 피부 안으로 침투하는 건 아니고, 자기 마력의 흔적이 내 왼손에 남아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다.
백설희의 속내를 짐작하자면 약간 그런 게 아닐까.
아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게 말이나 되나?
그냥 내게 말도 안 되는 진실을 숨기려고 미친 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아내가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랑 애국하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라는 것보다, 차라리 도지환이 도깨비라는 게 더 개연성이 있는 거 아닐까?
마침 다친 상처도 같은 부위잖아.
그래, 차라리 도깨비라서 이상한 변명을 했다고 하는 게 더 상식적이야. 도지환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모든 게 맞아떨어져.
세상에 어느 여자가 자기 남편이 딴 여자랑 바람피우지 않고 자기한테 왔다고 사람을 때리고 그러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미르도 그렇지만, 백설희의 사고방식은 더 읽기 쉽다.
원작 소설 속 등장인물이기도 하고, 히로인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도깨비와 도지환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온 여자니까.
“설희 씨?”
“아, 네, …아니네?”
백설희는 내게서 손을 떼어냈지만, 표정은 살짝 겁에 질려있었다.
그렇겠지.
도깨비라면 당연히 자기 마력이 내 손에 남아있어야 할 텐데, 마력의 잔향이 단 하나도 없으니까.
백설희의 빙결 마법과 마력은 유리조각과도 같다.
겉으로 보이는 유리 조각은 핀셋으로 떼어낼 수 있어도, 피부에 박힌 먼지처럼 작은 유릿가루까지 떼어내기는 힘들다.
하물며 그게 마력이라면 더더욱.
백설희는 내 손에 혹시나 자신의 마력이 약간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랐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진실은 ‘도지환 도깨비설’이 아니라 ‘도지환 아내 NTR취향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려고 미리 궁기랑 열심히 마력 갈아치웠지.’
왼손에 침투한 백설희의 마력을 빼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백설희는 모를 거다.
자기 마력의 도트뎀이 진짜 끝장나게 아프다는 걸.
“괜찮습니다. 이제는 뼈도 제법 붙었고, 따뜻한 물에 담그면 금방 치료된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음, 저기, 지환 씨?”
“네.”
목소리가 한껏 누그러진다.
도깨비인 걸 알았으면 바로 나를 얼음 그물로 구속할 텐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혼란이 그녀를 잠식하고 있다.
“…아내분은 어째서 그런 취향을 가지게 된 거죠?”
이제, 백설희는 완전히 넘어왔다.
지속적인 불륜 가스라이팅을 통해, 백설희는 이제 내 아내의 취향에 어울리게 된 여자라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뇌내 도지환 도깨비설을 밀었던 건, 자신이 불륜녀가 아니라는 무의식의 반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백설희는 불륜녀인데.
아내가 있는 걸 알고서도 접근해서,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유부남을 이용한 여자다.
세간에는 정의로운 히어로지만.
도지환과의 관계에 있어서 백설희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상간녀.
“설희 씨. 아내가 왜 그런 취향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는 여자고, 저는 그런 여자를 제 아내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뒤틀린 순애로다.
“이유가 있다면…아뇨. 이거까지 말씀드리기는”
“지환 씨. 괜찮아요. 어떤 상황이든, 이해할게요. 함부로 화도 안 낼게요. 조금 이해하기 힘들어서 놀란 것도 있긴 하지만….”
살짝 여지를 주기 무섭게, 백설희 또한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제가 노력해서 도와드릴 테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세요. 아내분은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죠?”
“…….”
오해.
삽질.
“제 아내는.”
그 모든 것은 언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지금,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