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4)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24화(125/668)
〈 124화 〉 5장. 증명의 전장, 울릉 (9)
* * *
히어로를 불륜타락시키기 위해, 나는 내 아내를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하나 전제를 확실하게 하고 갈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내는 누구인가?
당연히 이매망량의 주인인 ‘총수’다.
총수는 내게 백설희와 유미르를 영입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라고 말했고, 자신을 아내로 소개해도 된다고 직접 말하기까지 했다.
일단 내가 지칭하는 아내는 총수다.
그렇다면 아내가 지금 임신을 하지 못하니, 총수는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된다.
“정말…인가요?”
“예. 제 아내는 지금 임신을 하고 싶어도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 딸이 있다는 이야기는…?”
“…….”
그랬다.
나는 지난 번 이 자리에서 딸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 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당신을 팔아서 백설희를 납득시키겠습니다.
그녀가 지금 당장은 임신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건 분명하니.
“참, 이런 걸 함부로 말하기가 좀 그런데. 가족사라서 어디 쉽게 꺼내기 어려운데, 설희 씨에게 제가 실례한 것도 있고 하니,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이런 문제로 괜히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거짓말을 해봤자 들통나면 상당한 문제가 된다.
“아내는 아이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을 할 겁니다. 그 사랑의 과정에 결실이 생겼지만…조금 사소한 문제가 있을 뿐이죠. 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이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어떻게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되더라고요. 하하. 백방으로 노력해봤는데…. 정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후후. 그게 참….”
세상에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 아내는…. 후.”
이라는 것처럼.
“죄송합니다. 설희 씨까지 괜히 신경을 쓰게 만들어서.”
나는 빌런이기에, 하던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부분만 쏙 빼놓은 채.
마치 햄버거에 소고기 패티를 빼놓고 ‘보시는 바와 같이 햄버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숨겼다.
“그러니까…지금 아내분이 임신이 안 된다고요?”
“예.”
거짓은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문장은 완벽한 팩트에 기반하고 있으며, 법정에 가도 거짓말을 한 죄로 처벌받지 않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떠한가?
실제를 백설희가 알 필요는 없다.
“이전에 했던 말들은…좋게좋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설희 씨.”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거짓으로 이전의 것들을 포괄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됐습니다.”
“아, 아아…. 얼마나 된 거죠?”
“…….”
내가 필요한 건 그저 침묵뿐.
나는 복분자를 담아둔 컵을 들어 창밖을 보며, 백설희가 뭔가 답을 하기를 기다렸다.
“그럼…혹시 불륜하라고 하는 것도…?”
“자신이 못 해주는 게 있으니, 다른 사람과 대신하라고 하는 배려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내도 아내만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 필요했고, 마침 제가 세종섬에 들어오면서 서로 잠시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하지만 시선은 아래로 두고, 복분자가 든 컵을 가볍게 원을 그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가끔, 저도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이걸 그대로 이어 나가야 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진실을 덮기 위한 장황하면서도 영양가 없는 문장을 덧붙이고.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제가 아내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뜬금없는 동문서답이지만 감성을 호소하는 말로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것 또한, 제게 주어진 운명인 거지요. 하늘의 뜻이거나, 신이 제게 주신 시련이거나 사랑이거나.”
이성적 설득으로는 쉽게 설득할 수 없는 종교적 믿음으로 마무리.
“환멸하셨습니까?”
그리고 화살을 백설희에게 돌린다.
“제 사정을 조금 구차하게 말한 것 같지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설희 씨의 상황을 이용해, 설희 씨에게 제 사정을 묻지도 않고 강요한 사람입니다.”
“…아녜요.”
드디어.
백설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환 씨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분도…아마 잘못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설희의 눈에 혼란이 엿보인다.
아마도 자기가 말을 하면서 뭔가 위로는 해야겠는데,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니 차마 아내를 욕하지는 못하겠는데, 나를 위로해야 하니 뭔가 답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설희 씨.”
“그래요. 아마도 그분이 그렇게 된 건, 유…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일 거예요.”
“…….”
“여자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음,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게 좀 있거든요.”
그렇구나.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우울증이 온 걸 수도 있어요. 그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이 그런 방법일지도 모르고요.”
이 여자, 제대로 낚였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스트레스가 그런 식으로 발현된 거죠. 그 왜, 옛날에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그렇잖아요. 아이를 낳지 못해서 후처를 들이는 경우처럼. 아, 이게 아닌데…. 으, 그러니까.”
“…….”
말문이 막혀서 호응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몇 년 동안 고생한 경우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한 번 큰 상처를 겪은 뒤로 시험관도 실패하고, 인공수정도 실패하고…. 돈도 돈이지만, 부부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한다는 게 두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더라고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백설희가 다 알아서 뼈대에 살을 붙여주고 있지 않은가?
“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이혼하는 가정도 있다고 들었어요. 여자의 나이가 제법 찰 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한 나머지, 결국 갈라지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들. 문제가 어느 쪽에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으니…결국 서로서로 행복을 빌어주면서 갈라지는 거죠.”
백설희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한 가지 물어볼게요. 실례일 수도 있지만, 혹시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했다.
단서가 달리는 것으로부터 진실의 조각을 모아 해답을 찾아내는 건 나중의 일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백설희에게 답을 내어놓았다.
“좋아요. 그럼 지환 씨. 지환 씨는 아내분과 아이를 가지고 싶으신가요?”
“예.”
거짓은 없다.
“마음 같아서는 아내와 아이를 낳아, 축구팀을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11명이요?”
백설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관용구라고는 해도, 아이를 낳는데 두세 명이 아니라 11명이라고 하면 일단 잠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11명은 뇌절 아닌가?
맞다. 일부러 조금 큰 숫자를 불렀다.
그리고 이왕 뇌절을 한 거, 백설희를 혼란스럽게 하려면 추가타를 날린다.
“축구 대결을 하려면 22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괴, 굉장하시네요. 그, 그만큼 아내분을 사랑하신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강력한 의지의 표명을 전하며, 그만큼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과시한다.
이건, 사실이니까.
“물론 그만큼 아이를 낳는 건 아내의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니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뇌절을 수습하고, 한 편으로는 물리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그럴 자신 있다는 자신감 또한 내비친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아내 대신 아이라도 가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남녀의 문제가 있으니 그건 불가능하죠.”
있는 건 오직 진실뿐.
“생물학적으로 번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능력학적으로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이능력자인 자식을 낳기 위함이 아니라, 저와 제가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자식을 낳아 제가 이룩한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은, 저와 아내가 평생을 사랑할 자식을 낳고 싶을 따름입니다.”
거짓 없이, 진실만을 말한다.
“단지, 그게 잘 안 됐을뿐.”
백설희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설희 씨는 어떻습니까?”
나의 턴은 끝.
이제, 백설희에게 화살을 돌릴 차례다.
“설희 씨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진지하게?”
“…….”
“국가에서 지정해주는 누군가와 결혼해서 그 사람의 아이를 낳아 애국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
백설희의 표정이 점차 굳어간다.
그런 생각을 했든 안 했든, 지금 이 자리에서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답이니까.
“그.”
백설희는 조금은 어려운 얼굴로, 밖을 가리켰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좀 가져도 될까요?”
“…….”
본래, 여기서 생각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백설희는 상관없다.
왜?
어려서부터.
이 세계, 이 나라는 이능력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착한 사람이 되어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네. 생각 정리되면 들어와요. 저는 잠깐, 침실 정리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어려서부터 나라가, 세계가 백설희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으니까.
세뇌와 선동에는.
세뇌와 선동으로 맞선다.
불리할 때는 거짓을.
유리할 때는 진실을.
내로남불을 통해,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은 백설희를 결과적으로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바야흐로.
네토라이팅.
원래 히로인을 세뇌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도깨비니까.
* * *
그 시각.
“여깁니다.”
“와.”
유미르는 펜션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여기, 하룻밤에 얼마나 해요?”
“때에 따라서 다릅니다만, 1박에 최소….”
소곤소곤.
펜션 사장은 아주 작게 유미르에게 말했고, 유미르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깜짝 놀랐다.
“그, 엄청…비싸네요…?”
“최고급 시설에 나름 온천까지 딸린 곳이니까요.”
“그, 혹시.”
유미르는 작게 목소리를 낮췄다.
“다음 주 주말에 혹시 방 잡을 수 있을까요? 저, 돈 충분해요.”
“저런. 정말 아쉽습니다. 이 펜션은 하루에 단 한 팀만 받는 곳이거든요. 그리고….”
장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예약으로 방이 꽉 찼습니다.”
* * *